"걸으려고 생각하면 걷는 것은 자신임에 틀림없지만 그렇게 걷자고 생각하는 마음과 걷는 힘은 과연 어디에서 불쑥 샘솟는지, 형님에게는 그게 커다란 의문이었던 거네"/369쪽


일본어 잘 하시는 지인에게 표지 문장 해석을 요청 했다.인용된 독일 속담의 문장이었다. 독일 속담이라고는 하는데 출전은 알 수 없다고 했다.사람과 사람 사이에 연결 고리가 없다는 뜻일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어렵다는 뜻이였을까? 소설을 처음 읽을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다가,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와서 비로서 '행인' 이란 제목이 궁금해졌는데...생각과 마음의 불일치에서 오는 어떤 괴리감에 대한 무엇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소세키의 전기3부작을 읽고 난 후..후기 3부작이 보여 읽어 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춘분..을 읽을 때도 느낀 거지만,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이 몹시 지친다 싶었더니, 후기3부작에서 내가 미처 찾아내지 못했던 것은..후기 '에고(ego)' 3부작이었다는 사실. 오래 전 '마음'을 읽을 때는 저와 같은 생각은 들지 않았던 것 같은데..이번에는 어떤 시선으로 읽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무튼 '에고'에 관한 이야기라서 이치로란 인물에 대해서는 공감도 되고, 공감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 수시로 반복되는 기분이 들었다.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 연구를 하기 시작했는데...연구를 하면 할 수록 고독해졌고, 외로워지는 모순들..사람을 믿을 수 없고..누구도 신뢰 할 수 없다는 건 얼마나 잔인한가..너무 많이 알아서..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이가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 역시 이치로가 만들어 놓은 함정은 아닐까... 이치로가 주변인들에게 행하는 모습은 잔인하기도 하고, 스스로 거미줄에 걸린 것 같은 기분에서 드러내놓은 화두는 또 가슴에 와서 콕 박히는 기분...아내를 신뢰하지 못해서,동생을 믿지 못하는 것 같은 행동은...사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불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여자는 20년 이상 00의 가슴속에 감춰져 있는 그 비밀을 파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그녀에게는 천하의 모든 사람이 다 갖고 있는 두 눈을 잃고 남들로부터 거의 반편이 취급을 받는 것보다 한 번 장래를 약속한 사람의 마음을 확실히 손에 잡을 수 없었다는 것이 훨씬 더 고통스러운 일이었던 것이다"/240쪽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이치로와 주변인들의 관계 속에서 다양한 에고에 대한 사례를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다 읽고 난 후 머릿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이치로의 고민보다 아버지가 들려준 에피소드 였다. 이치로만 에고에 사로 잡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녀가 자신을 버린 남자에 대해 그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것이 현재의 자신이 맹인이 되었다는 사실 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것이, 얼마나 강한 에고를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반증이라 생각한다. 이치로처럼 드러내놓고 에고에 몸부림치는 이들이 있고, 그녀처럼 에고를 숨기며 살아가는 이들도 있지 않을까... 에고 가 없는 삶은, 허수아비같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지만, 에고가 강한 것이 과연 행복한 것인지...이도저도 아닌 행인..처럼 될 바에는 에고를 조금 덜어 내놓고 살아가면 좋지 않을까..싶은데, 그러면 소세키선생은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믿고 싶다.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사람에게 남을 행복하게 할 힘이 있을 리 없네.구름에 싸인 태양을 보고 왜 따뜻한 빛을 주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것은 그렇게 다그치는 쪽이 억지일 걸세(...)우선 형님의 머리를 에워싸고 있는 구름을 걷어내주는 게 좋을 걸세(...)"/4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