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픽시리즈는 작가 이름보다 제목으로 먼저 손이 가게 되서 읽게 된다.

조금은 노골(?)적인 제목이라 나는 또 호기심이 가게 되었고..

그런데 읽다가 문득 떠오른 책들이 있어 ~도둑 들어간 책이 처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기뻤지만 같은 제목의 책이 있다는 사실도 반가웠다. 읽지도 않은 '도둑맞은 가난' 제목이 제일 먼저 생각났다는 건, 이제는 읽어야 할 타이밍이란 의미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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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을 따라 가는 것 자신을 내맡기는 것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내맡기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러지 못했다. 머리의 안쪽과 바깥쪽 사이에 세워진 벽이 무너져야 했다. 진실함에는 그것이 요구되었다. 그레타의 시 같은것(...)"/29쪽








 

'일본에 가 닿기를' 낭만적인 제목이라 생각했다. 페이지를 펼쳐보고 '아카디아'를 떠올렸다. 이것 또한 너무 낭만적이란 생각을 했다. 그레타가 품었던 사랑을 이해하고 싶어서는 아니였나 싶다.(아주 잠깐...) 시인의 마음으로 특별한(?) 사랑을 갈망했던 걸까? 아니면 정말 사랑이 하고 싶었던 걸까공교롭게 최근 읽었던 졸라의 <사랑의 한 페이지>와 제임스 우드의 <인생에 가장 가까은 것> 를 떠올려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졸라는 소설에서 폭풍 같은 사랑으로 인해 아이를 잃게 하는 고통을 그녀에게 주었다. 앨리스 먼로의 이야기 '일본에 가 닿기를' 에서는 그렇게까지 가혹한 형벌을 내리진 않았다. 그러나 '죄'에 대해 생각하는 마음은 그녀에게도 찾아왔다.


"죄,그녀는 다른 것에 관심을 기울였었다. 결연하고 탐닉적인 관심을 아이가 아닌 다른 것에 기울였었다. 죄" /39쪽



사랑(?)으로 인해 아이를 잃을 뻔 했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죄'를 묻는다. 그리고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에서 인용된 맥베스 글을 읽다가, '소리'라는  은유가, '일본에 가 닿기를' 에서도 공포로 작용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멕베스를 읽으면서 한 번도 '소리'에 집중하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소설은 '이해'의 영역이 아닌 '은유'의 세상으로 읽혀질 때 훨씬 더 풍요롭게 읽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이렇게 또 배웠다.


"단순한 이해는 유용하고 필수적이긴 하지만 인간의 정신에서 가장 보잘것 없는 능력이며 가장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으려 한다"/143쪽 '모든 것을 사용하기' (드 퀸시의 인용문이다.그의 책을 읽으려다 포기했는데,다시 읽어봐야겠다)











"사람들은 그곳을 통과할 때 늘 걸음을 서둘렀다. 덜컹대는 소리와 흔들림은 결국 세상 모든 것이 그리 필연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지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거기에, 객차들 사이에 끊임없이 시끄러운 소음을 내는 금속판 하나에 케이티가 앉아 있었다. 눈은 크게 뜨고 입은 약간 벌린 채 몹시 놀란 듯 혼자 케이티는 울고 있지 않았지만 엄마를 보자 울음을 터뜨렸다"/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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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계속 읽게 되는 이유...

살면서 근본적으로 소설이 가르쳐준 인간에 대한 이해가 나에게 도움을 준 적이 자주 있었다. 사람들의 동기를 파악하면서 누군가가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서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읽을 수 있었다.때로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얼마나 모르는지를 깨닫고 나면 적잖이 놀라기도 한다. 이럴 때면 사람은 마치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내려다보는 사제처럼 우위에 선 느낌을 받는다. 이는 소설을 읽을 때 주어지는 특권이기도 한데 우리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려 하는지 허구와 환상으로 자신을 구성한 다음에 그 요소들을 어떻게 억압하거나 망각하려 하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107~108 ‘진지한 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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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난 영혼
조지 엘리엇 지음, 박희원 옮김, 김선옥 해설 / 아고라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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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지 엘리엇의 <고장난 영혼>을 읽었다. 중편정도의 소설인 줄 알았는데, 두 편의 이야기('벗겨진 베일' 과 '제이컵 형')가 실린 소설집이었다. 공교롭게도 ~베일이란 제목 덕분에 몸선생의 '인생의 베일'을 떠올릴수 있었고, '제이컵 형'은 윌림언 포크너의 <고함과 분노>를 떠올려 볼 수 있어 읽는 즐거움이 배가 되었던 것 같다.(물론 '벗겨진 베일'에서도 포크너의 소설이 생각났다)










고장(?)난 영혼에 관한 이야기였다. 포크너 소설의 사람들이 다시금 이해되는 상황이다. 영혼이 고장난 사람들...굳이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고장난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가, 타인의 의식을 읽어낼 수 있어 불행했던 '벗겨진 베일' 속 남자.그러나 나는 애정을 충분히 받지 못한 탓에 타인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한 걸로 이해했다. 예전에 읽었다면, 만약이란 가정을 해보았을 텐데, 지금은,우리에게 사랑이 얼마나 필요한지, 정서적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가 자라면서 겪게 될 고통을 생각했다. '제이컵 형'은 '벗겨진 베일' 보다 더 포크너의 <고함과 분노>를 떠올리게 했다. 형제가 등장한다는 건 특별하지 않지만, 장애인(그것도 콕 찍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을 등장시켰다는 점이 그랬고,그 속에서 발악하는 데이비드는 포크너 소설의 제이슨을 떠올리게 했다.이름을 바꾸는 상황(지금까지 소설을 읽으면서 이름을 개명하는 장면은 자주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도 데이비드가  프릴리라는 이름으로 개명까지 하면서 성공하고 싶었으나, 그의 앤딩이 결코 해피앤딩으로 막을 끝나지 않아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을 했는데, 그 상황도 포크너의 소설 <고함과 분노>에서 제이슨이 마주한 상황과 비슷해서 신기했다. 시간의 격차를 두고 읽었다면 포크너의 소설을 떠올리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니까 두 소설을 연이어 읽게 된 건 기쁨이다. 포크너 소설 인물들에 대해..조지 엘리엇이 '고장난 영혼'이라고 정리해 준 셈이니까. 포크너 소설을 읽을 때 몰락하는 가문보다 몰락하는 사람들이 더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그 중심에 부모님 특히 자기 중심적인 엄마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제이컵 형' 이야기 속 엄마는 그 반대였음에도 불구하고 데이비드에게 문제가 있었다. 정서적 사랑을 듬뿍(?) 받으면 건강한 아이로 자라게 될 것이란 생각은 지나친 낙관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두 소설을 나란히 읽은 덕분에, 포크너 소설 속 인물들의 '영혼'이 고장났다는 사실을 받아 들였다. 단지 부모의 사랑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이 있음도 이해받았다. '벗겨진 베일' 보다 '제이콥 형'을 더 재미나게 읽었다. 포크너 소설에 대한 생각,그리고 오늘날 유행하는 디저트열풍이 이미 과거부터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선량한 포 부인은 전적으로 무력해 작디작은 다른 선택조차 할 수 없었던 이토록 불량한 아들을 자신이 세상에 내놓았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못했다. 어째서인지 아들이 비뚤어진 것은 부모의 의무를 다하는 데 손톱만큼이라도 부족함이 있었을 그 아비,어미의 탓인 것만 같았다.부인이 생각하는 부모의 의무란 고상하고 은근한 것이 아니라 (....)"/176쪽 '제이콥 형'


"내 인생은 그런 것과는 전혀 달랐지. 엄마가 말했다./그런 사악한 짓을 하다니.더 이상 알고 싶지도 않다.나는 대부분 사람들과는 달라"/390쪽 '고함과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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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십 년 동안 아니 그보다 더 오랫동안 나는 이 경이로운 이야기를 다시 읽고 또다시 읽게 되는데 그 이야기란 안톤 체호프가 스물일곱 살에 쓴 <입맞춤>이라는 짧은 소설이다"/ 73쪽  

체홉의 단편을 애정하는 1인이다. 해서 틈틈히 한 편씩 읽고 있는 중인데, '입맞춤' 이야기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관찰'가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지 궁금했는데, 내가 쓸 독후기에도 '관찰' 이란 시선이 있어 우선 반가웠다.


키스가 부린 마법 효과(?)가 강렬했다. 조금 웃프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소심한 랴보비치는 군인정신이 아주 강건한 인물은 아니었나 보다. 소심해서,사람들 무리에 섞이기 보다는 주변을 머물며 관찰하는 것을 선호한다.자신에대한 컴플렉스가 그를 짓누르고 있는 탓이다. 그런데 느닷없는 반전이 그에게 찾아왔다. 낯선 여인이..랴보비치를 자신의 애인으로 착각하고 키스..를 하게 된거다. (그런데 그녀가 착각을 한 것인지..랴보비치를 놀리려고 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무튼 이후 그는 정체 모를 여인의 키스 덕분에..기분 좋은 상상을 하게 된다.비록 그녀를 찾을 수 없게 된 건 아쉽지만..자신의 마음대로 이미지를 만들고..행복한 모습을 상상하게 되더니...이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을 거란 철학적(?) 사고까지 하게 된다...키스가 그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다고 해야 할까... "지금 내가 꿈꾸는 것들 이땅에서 일어날 수 없는 모든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본질적으로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이 모든 것은 지극히 평범하며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야.이를테면(...)살마노프는 무례한 데다 전형적인 타타르인지만 연애해서 결혼을 했어.....나 역시 그들과 같은 사람이며 언젠가는 모두가 겪는 일을 겪게 될 거야.."/189쪽 진짜 사랑의 키스를 한 것도 아닌데도,이렇게 자신감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 조금 웃프긴 했지만..뭔가 터닝포인트가 될 만한 자극제가 되었다면 그걸로..도 좋지 않니한가..생각했다. 여전히 자신의 운명에 맞서기에는 벅차보이지만...여인의 키스가 그에게 기분 좋은 마법을 부렸다고 믿고 싶다.^^










"<입맞춤>은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이며, 이야기의 정의 중 하나가 이야기란 원래 더 많은 이야기를 불러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야기는 이야기 생산자다.먼저 체호프의 단편소설이라는 형태의 이야기가 있고 라보비치에게 툭 하고 떨어진 별개의 사건이 있고 그 사건을 생각하며 랴보비치가 지어내고 상상하고 상상하다 실패해서 결국 말하지 못한 수만 가지 이야기가 있다.어떤 한 가지 이야기도 그 이야기 하나만으로 그 속에 있는 이야기를 전부 설명할 수가 없으며 이 이야기의 핵심에 놓여 있는 수수께끼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79쪽


'낯선여인의 키스'를 읽으면서 랴보비치의 소심함이, 키스 덕분에 컴플랙스를 조금은 극복하게 된 건 아니였을까 상상하며 읽었는데,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를 읽으면서 남자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관찰'을 하다보면 어느덧 상상하게 되고,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게 될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솔 벨로(포크너도 읽었고, 헤밍웨이도 읽었으니까^^) 의 책들을 읽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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