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인 줄 알았는데, 소설이란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성장소설'을 써보고자 하는 작가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고 4.3소설이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독자는 소설이란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순이삼촌>처럼 4.3에 대한 세세한 묘사가 그려져 있지 않았음에도 더 많은 4,3의 공기가 느껴졌다. '역사교육'이 왜 필요한가를 절실히 느끼고 있어서 일수도 있겠다. 국회의원 자격 조건에 역사에 대한 필수이수 과정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암기식 역사교육 말고,제대로 된 역사교육...!!

이 소설에서 저는 4.3을 ‘말로는 다 할 수 없는,즉 언어절의 참사‘라고 썼습니다.인간이 사용해온 언어로는 그 참사를 설명할 수도 묘사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
역대 독재정권들은 그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도록 혹은 잊히도록 하기 위해 서슬 푸른 공포정치를 구사했습니다.흔히 그것을 망각의 정치라고 하죠.그런데 그 망각의 정치의 세뇌효과는 대단하여 어느 정도 민주화된 지금에도 국민의 상당수가 4.3을 모르거나 알아도 잘못 알고 있습니다. 잘못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옳다고 막무가내로 우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더 나쁜 것은 4.3의 진실을 악의적으로 왜곡하는 정치세력이죠.그리고 모르면 알려고 해야 하는데 알면 마음이 편치 못하다고 아예 외면해버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많은 사람들에게 4.3은 ‘불편한 진실‘인 것이죠. 그러나 아무리 부정하고 왜곡하고 외면하려고 해도 4.3은 엄연히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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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작품 내용과 관계 없는(?) 공감을 하게 되었다. " 예건대, 나는 존 스타인백의 단편소설<도주>를 읽다가 작품 내용과 관계없이 거기에서 나 자신의 것을 발견한다"/164쪽


잊혀진 과거를 떠올리는 일은 이성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내 나이 또래들이 일반적으로 겪은 연대기적 사건들이나 습관,관행 제도적인 것들은 증언과 자료들이 더러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재생이 가능하겠지만 나 자신에 고유한 사적 경험들을 되살리는 일은 그렇게 호락호락 쉬운 게 아니다.이성보다는 오히려 오관의 감수성에 의하여 그것들이 망각 밖으로 드러나는 수가 더 많은 것 같다.시각을 토완 연상 작용은 흔한 일이지만 냄새.소리.맛 피부 감각도 잊혀진 과거를 일깨우는 단서가 된다/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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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를 재현으로 풀어내는 영화는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무거워지려는 감상 보다, 뭔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했던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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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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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음악(?)이야기일거라 생각했다. 속단은 금물인데, 언제나 뒤늦은 후회를 한다. 마치 죽음이 가까이 오고 나서야, 지난날을 후회하게 되는 것과 같은 걸까..그렇다면, 이런 후회는 무한 반복이 될텐데,하고 생각하니 조금 쓸쓸해진다. 내 죽음이 가까이 왔을 때, 가까이에 살던 내 짝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나서야 우리는 후회를 한다. 그때 좀 더 잘해 줄 걸 하고...물론 영원히 알 지 못하는 이들도 있을테지만. "평생 마르파를 가엾게 여긴 적도 아껴 준 적도 없었던 것이 떠올랐다.한 오두막에 산 지 52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개나 고양이도 아닌데 한 번도 관심을 주거나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109쪽 죽어가는 동안 오히려 행복한 미소를 보인 아내를 보면서 야코프는 자신의 지난날이 비로소 떠올랐다. 그러나 아내는 이제 없다.아내에게 모욕을 주고 안달했던 일들에 대해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제 아내는 야코프 곁에 없다. 그리고 비로소 절규한다. 아니면 또다른 한탄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지독한 염세주의자였으니까..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서로 못살게 굴면서 사는가? 이로 인한 손해가 얼마나 큰가 말이다. 정말 끔찍한 손해이지 않은가! 증오나 원한이 없다면 사람들은 서로에게 엄청난 이득이 될 텐데"/112쪽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사는가? 라고 질문하는 야코프의 목소리는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떠올리게 했다. 언제인가 읽었지만,리뷰로 남겨 놓지 않았고, 기억은 띄엄띄엄 남아있는 톨스토이의 이야기. 야코프가 톨스토이의 소설을 읽었다면 자신의 아내에게 덜 야박했을까..하는 상상이,다시 톨스토이의 소설을 읽어 보고 싶게 했다. (그래서)..톨스토이선생이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던 걸까.천사가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것이 비현실적인 것 같지만... 우리 안에 없으면서도, 있는, 아니 있어야 할 그것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다는 걸 알았다. 소소한 에피소드까지 기억하지 못한 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질문 자체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으로 있을 때 제가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계획해서가 아니라 지나가던 사람과 그의 아내 마음에 있는 사랑 덕분이었습니다.고아들은 자신을 챙길 수 있어서가 아니라 낯선 여인의 마음에 있는 사랑으로 그들을 가엾게 여기는 사랑으로 살아남았습니다.모든 사람이 스스로 계획해서가 아니라 사람 안에 있는 사랑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40쪽











야코프는 아내가 죽고 나서 비로소 아내에게 친절하지 못했던 자신을 후회한다.그런데 톨스토이의 천사가 깨닫게 된 '사랑'이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모르겠다.죽는 것이 쓸쓸하고, 아끼던 바이올린을 더이상 켜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자신과 함께 관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더 안타까웠던 건 아닐까..그토록 무시했던 로트실트에게 자신의 바이올린을 남겨주는 순간, 뭔가 울컥하는 아름다움 보다,자신의 바이올린이라도 지키고 싶었던 마음이 더 간절했던 건 아닐까.하는 삐딱한 마음으로 읽었다. 그래서 더 재미나게 읽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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