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자유로워야 한다!!^^

(ps...티모시 샬라메배우가 새롭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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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읽은 <우미인초> 다시 읽기를 막 끝내고 나서 보게 된 알라딘의 기록. 지난해 소세키전집을 읽었다는 사실은 기억하고 있었지만, 나는 고양이..가 1년 전 기록으로 올라오게 될 줄은 몰랐다. 정확(?)하게 말하면 오늘은 <우미인초> 리뷰를 작성했던 걸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무튼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다시 소세키 소설을 읽게 된다면 <우미인초>가 될 거라 생각했다. 애정하는 카페서 '우미인초' 블랜딩을 마시지 않았다면, 간만에 찾아본 일드에서 '우미인초'가 언급되지 않았다면..2월에 읽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혹 내년에도 어쩌면 <우미인초>.를 읽게 될지도 모르겠다.그만큼 소세키의 <우미인초>가 좋다는 이야기일터. 그닥 밝은 내용이라 할 수..는 없는데, 하이쿠같은 문장들이 너무 좋아서..



거의 드라마를 보지 않지만, 우연히 보게된 작품에서 '책'이 언급되면 마냥 반갑다. 게다가 소세키의 소설을 읽은 커플이라니..드라마에서 '우미인초'가 중요한 역활(?)을 했는지..알 수 없지만 적어도 저 커플은 '우미인초' 덕분에 진정한 사랑에 대해 눈을 뜨지 않았을까..믿고 싶다.




"<<화엄경>>에 '외면은 보살 같고,내면은 야차 같다'라는 구절이 있다. 알고 있지?

"그 구절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견소라고 한단다.꽃은 아름답지만 가시가 아주 많지.어디 한번 만져봐라"/335쪽 '우미인초'가 언급되었다는 반가움에 순간 남녀의 대사를 우미인초서 언급된 대사인 줄..알고,기억나지 않아 다시 <우미인초>를 찾아 읽고 싶었던 것도 이유였다. 처음 읽을 때는 후지오의 마지막이 너무 장렬(?)해서 소설 이야기 전체가 까맣게 타버린 느낌이었는데, 다시 읽으면서도 여전히 그녀의 마지막은 어떻게 말 해야 할지... 우리가 이렇게 힘든 이유는, 내 마음이 하나가 아니라 그렇고.당연히 타인을 바라볼 때도 겉과 속 마음이 다를수 있음을 헤아릴 눈이 깊지 못한 것때문에 그런건 아닌가..생각했다. 굳이 소설속 인물들 면면의 성격에 대해 따져 묻고 싶지 않은 이유도 그래서이다. 내 뜻대로 일이 되지 않아서 힘든 것이 아니다.겉과 속이 다른 마음을 헤아릴 힘이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읽을 때마다 새롭게 읽혀지는 것이 고전의 맛이라 생각한다. 일년 밖에 되지 않아, 거의 비슷한 느낌으로 읽었지만, 지난해 도덕적인간에 대한 물음은, 겉과 속이 다른 인간들의 복잡한 마음과,그것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이유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소설 속 인물들에게 조금은 더 연민이 생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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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아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9
이디스 올리비어 지음, 김지현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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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든 목소리가 사그라지고 다른 존재와 말이 통하지 않는 세계로"/15쪽



소설은,엄마의 장례식이 막 끝난 상황으로 시작된다. <이방인>의 뫼르소가 소환된 건, 그녀가 온전히 외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은 감정 상태로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그럴수 있는 상황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 할 수도 있다.무튼 뫼르소가 엄마가 죽고 나서, 누군가를 죽이게 되는 상황을,애거사는 이해할 수 있었을까? 둘이 만나게 되었다면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되었을까..혼자 잠깐 상상해봤다.엄마의 장례식을 치르고 난 후 그녀가 <이방인>을 읽었다면,어릴적 자신이 만들어 냈던 상상의 인물을 가져오지 않았을지도. ...현실의 시간으로 그녀는 돌아오지 못했다. 상실의 기억을 찾아(?)냈고..그녀는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자신의 진짜 목소리가 아닌,말이 통하지 않는 세계로.. 적어도 처음 읽는 (지금의) 나는 그렇게 밖에 이해되지가 않는다. '공황' 이란 단어가 언급되어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애거사는 모호하게 대답했다.공황이 서서히 밀려왔다.이성을 잃을 것만 같았다.클러리사가 점점 더 수습 불가능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28쪽


엄마와 둘이 살아왔기 때문에, 이후 어떻게 해야 할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딱히 엄마와 사이가 좋았던 것 같지도 않았다는 그녀의 고백.그리고 자신이 만들어 놓았던 과거속 아이는, 애거서가 만들어낸 또 다른 애거사가 아니였을까... 숨은 행간을 해석하기가 벅차서,그렇게 밖에 이해되지 않았고,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사생아'는 결국 자신을 향한 말은 아니였을까? 어릴적 그녀가 의유부단하지 않았다면, 현재를 살아내려고 노력했다면,엄마의 죽음이란 상실을 또 다른 방법으로 극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사생아'라는 단어가 그녀 입에서 나오는 순간, 그녀는 스스로 자신이 이미 죽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였을까? 데이비드의 존재는 그래서 또 마음이 아프게 다가왔던 것 같다. 독자 입장에서 보자면 애거사는 상실을 극복해내지 못한 인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어느 때보다 상실을 잘 극복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한 시절이라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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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에서였던가,아무리 거칠게 날뛰는 태풍이라도 그 정중앙은 완전히 고요하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폭풍이 애거사와 데이비드의 영혼을 이리저리 던져내는 동안 클러리사는 초연하게 동떨어진 상태로 그런 평화로운 수정구 속에 존재하는 듯했다"/106쪽


어느 책이였을까 궁금해서 구글링 했더니,책에 대한 언급은 찾을수 없었지만 융이 검색되는 글을 더러 보았더랬다.









언제가는 읽겠다는 다짐에 매번 등장(?)하는 칼 구스타브 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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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학을 읽을때마다 부러운 것이 있다. 수많은 작가들의 이름이 감초처럼 등장한다는 것.해서 여전히 읽지 않은 작가의 이름도..이제는 친근하게 다가온다는 거다. 그래도 언젠가 허영의 시장은 꼭 읽겠다는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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