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아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9
이디스 올리비어 지음, 김지현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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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든 목소리가 사그라지고 다른 존재와 말이 통하지 않는 세계로"/15쪽



소설은,엄마의 장례식이 막 끝난 상황으로 시작된다. <이방인>의 뫼르소가 소환된 건, 그녀가 온전히 외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은 감정 상태로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그럴수 있는 상황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 할 수도 있다.무튼 뫼르소가 엄마가 죽고 나서, 누군가를 죽이게 되는 상황을,애거사는 이해할 수 있었을까? 둘이 만나게 되었다면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되었을까..혼자 잠깐 상상해봤다.엄마의 장례식을 치르고 난 후 그녀가 <이방인>을 읽었다면,어릴적 자신이 만들어 냈던 상상의 인물을 가져오지 않았을지도. ...현실의 시간으로 그녀는 돌아오지 못했다. 상실의 기억을 찾아(?)냈고..그녀는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자신의 진짜 목소리가 아닌,말이 통하지 않는 세계로.. 적어도 처음 읽는 (지금의) 나는 그렇게 밖에 이해되지가 않는다. '공황' 이란 단어가 언급되어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애거사는 모호하게 대답했다.공황이 서서히 밀려왔다.이성을 잃을 것만 같았다.클러리사가 점점 더 수습 불가능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28쪽


엄마와 둘이 살아왔기 때문에, 이후 어떻게 해야 할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딱히 엄마와 사이가 좋았던 것 같지도 않았다는 그녀의 고백.그리고 자신이 만들어 놓았던 과거속 아이는, 애거서가 만들어낸 또 다른 애거사가 아니였을까... 숨은 행간을 해석하기가 벅차서,그렇게 밖에 이해되지 않았고,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사생아'는 결국 자신을 향한 말은 아니였을까? 어릴적 그녀가 의유부단하지 않았다면, 현재를 살아내려고 노력했다면,엄마의 죽음이란 상실을 또 다른 방법으로 극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사생아'라는 단어가 그녀 입에서 나오는 순간, 그녀는 스스로 자신이 이미 죽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였을까? 데이비드의 존재는 그래서 또 마음이 아프게 다가왔던 것 같다. 독자 입장에서 보자면 애거사는 상실을 극복해내지 못한 인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어느 때보다 상실을 잘 극복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한 시절이라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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