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문학, 공항을 읽다 - 떠남의 공간에 대한 특별한 시선
크리스토퍼 샤버그 지음, 이경남 옮김 / 책읽는귀족 / 2015년 1월
평점 :
나를 알려면 나와 함께 비행기를 타야 한다. 일단 앉으시라. 내 좌석은 통로 쪽이고 당신은 창가 쪽이다. 갇힌 셈이지. 당신은 페이퍼백을 펼친다. 지난봄에 히트를 친 법정 스릴러다. 혼자 있겠다는 뜻이로군. 물론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안다. 사실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지. 멋진 남자 승무원이 음료수를 가져온다. 내게는 얼음 조각을 하나 넣은 2퍼센트 저지방 우유를 주고 당신에게는 와일드터키를 준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활주로는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어두워진다.
-업 인 디 에어, 월터 컨.
다른 날. 밝았던 낮이 사라진 캄캄한 어둠, 그러나 눈앞의 무언가를 볼 수는 있을 정도로 일부러 꾸민 어둠 속에서 인체공학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의자에 비스듬하게 앉아 목을 쭉 펴고 사방을 본다. 통로 건너편 11시 방향의 남자의 모니터에는 운항정보가 보인다. 그 옆에 앉은 누군가의 모니터에는 액션 영화가, 그 뒤에서는 아예 모니터를 끄고 깊은 잠에 빠져들어 있다. 옆의 누군가는 리딩 라이트를 켜고 책을 읽는데, 페이지가 휙휙 넘어가는 페이퍼백인 것을 보니 필시 댄 브라운이나 다빈치 코드 같은 페이지 터너 같은 책인듯하다. 늘 항공기 안은 춥고 또 추워서, 담요를 세 개 정도 둘러서 얼굴만 빼꼼 내놓고 다시 눈을 감는다. 때로는 너무 갑갑해서 내리고 싶고, 때로는 아무도 나를 건드릴 수 없다는 안도감에 좋아한 공간, 비행기 안. 연락 두절의 매혹과 기다림의 마법을 담은 공간. 이륙할 때 중력이 가볍게 사라지고 착륙할 때 중력이 삶의 무게만큼 느껴지던 곳. 재빨리 스쳐 지나가던 공항을 떠올린다. 새를 닮은 비행기와 여행 가방을 닮은 공항에 관한 책을 읽는다.
다음 떠남을 계획하거나 이전 떠남을 반추하는 이에게 알맞은, 공간에 대한 관점을 또렷이 밝힌 글.
이 책은 공항에 관한 이야기다. 그것은 일상에서 회자되는 평범한 공항 이야기면서 공항만의 비밀스러운 이야기, 공항의 겉모습에 감추어진 당황스럽거나 언짢은 이야기다. 나는 미국에서 공항이 현대생활의 특정 개념을 보호하는 방식에 늘 관심을 가져왔다. 공항은 사람들의 정체를 수상히 여기거나 신분을 확인하는 장소이고, 남들에게 자신을 과시하는 장소이고, 사생활이 먼저냐 국가 안보가 우선이냐를 놓고 갈등을 빚는 현장이며, 애국심과 기동성의 특권을 조장하는 종합 공장이다. 동시에 공항은 금방 잊게 되고, 때로는 불쾌한 기억으로 남는 포괄적인 장소로 여겨지기도 한다. 공항은 통과하기 위해, 그것도 빨리 통과하기 위해 설게되었다. 인류학자 마크 오제가 비장소라고 말한 것도 그런 의미의 전형이 공항이다. 또한 공항은 장소와 지역과 표준 시각의 문제와 얽힌다. 이런 것들도 내가 이 책에서 말하려는 주제의 일부다.
-책 앞부분에서.
일상이 이토록 어수선하고 불확실한데, 이만큼 매력적인 휴식처가 또 있을까? 요컨대 공항은 떠나기 위해 만든 곳, 모든 것이 명확하고 분명한 곳. 저자는 공항이 떠나기 위해, 그것도 빨리 통과하기 위해 설계된 곳이라는 점을 짚는다. 국경을 넘기 위해 만든 곳이고 통과해서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만든 장소. 마크 오제가 설명하는 non-place는 바로 이런 장소, place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라면 참지 않을 일을 공항에서는 참는다. 반면 일상생활에서라면 불가능할 정확성을 공항에서는 기대한다. 정확하게 사람을 가려낸다. 사람이 하는 일. 심증만으로도 사람을 검문한다. 카프카가 보았다면 '성'의 장소를 '공항'으로 삼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부조리하면서 복잡하고, 간단하면서도 비일상적이다.
911 이후 조지 부시가 patriot act에 서명하는 모습은 샤를 드골 공항의 공항 책임자가 '무슨 일이 있어도 승객의 흐름을 끊지 않는다'고 자랑스레 말하던 장면과 이상한 충돌을 일으켰다. 그것은 흡사 이 책에서 발췌한, 공항 안 무빙 워크에서 일부러 반대로 걷는 운동을 하는 인물이 일으키는 생경스러움과도 같은 것이었다.
장소라고 하기에는 기묘한 곳.
인천국제공항만 하더라도 그곳에 가려면 리무진 버스를 타고 한 시간 가량을 도심에서 달려야 한다. 중국의 베이징은 고속철로 한 시간 반의 거리를 칠 분으로 줄였지만, 늘 세계각국의 공항을 오가는 길은 평균 삼십 분에서 한 시간의 거리. 그것이 버스이거나 승용차이거나 택시이거나 리무진이거나, 베이징의 경우 시간이 줄어들었지만, 지리상의 거리가 줄어든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곳은 늘 지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일상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다.
도착지와 같은 출발지, 떠남과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 요컨대 이 책의 저자가 바라본 공항은 씨실과 날실이 모여 하나의 텍스타일을 만드는 장소이다. 그곳에서 '읽기'는 어떤 의미인가? 또한, 그 장소 자체를 읽는 것은 어떤 일일까? 사람들이 떠나는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일은 무엇인가? 모든 일터가 그 자신만의 독자적인 생명력을 가진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공항도 마찬가지일진대 그곳의 숨은 무늬는 어떤 것일까? 911 이후 공항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보안심사, 탑승절차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복잡해졌다는 것, 제한사항이 더 늘었다는 점 말고 또 무엇이 달라진걸까? 계산하고 수거하는 수하물 공간은 어떤 곳일까? 저자의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은 흩어진 구슬을 한데 그러모아 손가락으로 어루만지기도 하고, 손바닥에 들어 올려보기도 하는듯 다각도에서 조망된다. 총 아홉 개 장으 따로 흩어진 이야기는 책장을 덮을 무렵이면 일상으로 희미하게 사라진다.
이러한 각 장을 채우는 것은 이 공간과 관련된 이야기, 시, 소설, 논문, 신문기사, 저서 등이다. 그것은 마크 오제의 비공간이기도 하고 제인 베넷의 존재 이야기이기도 하다. 알랭 드 보통의 공항에서 보낸 일주일 이야기이기도 하며 디프랑코의 노래이기도 하다. 그리고 때로는 이렇게 은근한 안개가 책장 속에 자리 잡기도 한다.
차를 기다리며
짐 옆에 서서 시간을 흘려보낸다.
오스틴텍사스 공항-내가 탈 차는 아직 오지 않았다.
전처는 집에서 웹사이트를 만들고 있다.
아들 하나는 좀처럼 볼 수 없다.
다른 아들과 그의 처는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두고 있다.
아내와 양딸은 주중을 읍내에서 보내고 보낸다
그래서 그 아인 고등학교에 갈 수 있다.
96세인 어머니는 여전히 혼자 살고, 역시 읍내에 있다.
항상 제정신을 찾는 일이 드물다.
전전처는 특이한 시인이 되었다.
내가 하는 일은 거의
변변치는 않지만 다 됐다.
올해의 만월은 10월 2일, 나는 월병을 먹고, 데크에 나가 잤다.
소나무 검은 가지 사이로 지나가는 백색 달빛
부엉이 울음소리와 덜걱거리는 사슴뿔,
카스토르와 폴룩스가 힘차게 떠오른다.
부극ㄱ성이 흘러간다는 것을 알면 좋을 텐데
지금 우리의 밤하늘도 미끄러져 가버린다는 것을,
나야 못 보겠지만
아니 볼지도 모르지, 한참 나중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하늘에 난 정령의 오솔길을 걸으며,
정령의 기나긴 걸음-거기서 너는 곧바로 다시 떨어져
"좁고 고통스러운 바르도의 통로"속으로
너의 작은 머리를 들이밀어 봐
그러면 다시 그곳일 테니
네가 차를 타기를 기다리며
(2001년 10월 5일, 스나이더)
독립된 여정, 서로 모르고 알 생각도 없이 한 장소에 일시적으로 모이는 행위, 이 두 가지가 만날 때 생기는 묘한 매력을 저자는 '버려진 땅과 뜰과 건물 지대, 여행객의 걸음걸이가 달라지는 대기실과 역의 플랫폼, 계속되는 모험의 가능성으로서 도망자의 기분이 계속되는 우연한 만남의 장소, 할 일이라고는 "일어나는 일을 보는 것뿐"이라는 느낌이 드는 매력이라고 말한다.
버려진 땅, 생명이 움직이는 땅, 움직이는 컨베이어 벨트, 기다림이 지배하는 공간. 이 공간이 갖는 매력 속을 스미는 기억을, 스나이더는 산문시 blast zone에서 끌어낸다. 단도직입적인 도입, 개인의 연고와 기억, 생태와 천문에서 시가 닻을 내린다. 그 확고한 지점은 독자를 오스틴 공항의 수하물 찾는 곳에서부터 노스 캐롤라이나 생태 지역으로 이끌고 간다. 별이 떠도는 법을 생각하고 속도를 없앤 느린 시간에 맞춘 시선으로 스스로를 생각한다. 생각과 영혼이 흘러가는 길이 은하수라면, 저자 크리스토퍼 샤버그가 인용한 스나이더의 산문시는 컨베이어 벨트를 은하수로 변환한다. 인용 시에서 스나이더는 공항에서 자신이 탈 차를 기다린다. 다른 시 '강인한 영혼'에서 그는 '공항에서 그를 곧 만날 것' 이라고 밝힌 다음 '세관에서 [고은을] 만나기 위해 공항으로' 간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왜 하필 공항이어야 하는가. 무대는 바다 가까운 산등성이의 무덤일 수도, 풀이 무성한 야산일 수도 있고 에코 모텔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하필 공항이어야 했던 이유를 저자는 '시에서 공항은 주변적이고 삭막하고 단순한 무대 배경으로 존재한다. '다른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공간이다. 공항이 하나의 출발점이 되는 것은, 그것이 잠시 속도를 제거하기 때문이다' 라고 밝힌다.
일레인 스케리가 말하는 평범하고 당당한 형태, 일상과 상호작용의 패턴을 가로질러 활보하는 그 무엇의 무대가 되는 곳. 스나이더의 '건물 지대'에서 출발해 오제의 '체험 강도'를 높이는 공간. 속도가 순간 사라지고 기다림이 가득 채워 다음에 일어날 일만을 기다리는 곳.
그곳에서 사람들은 잡지를, 페어퍼백을, 와이파이로 인터넷을, 킨들을 읽는다. 그러나 무엇을 읽을 수 있는 라운지와는 달리 수하물 앞 컨베이어 벨트에서는 모두가 뚫어져라 가방이 고무 커튼을 통과하거나 검은 입구를 통해 나오는 광경을 주시하며, 말 그대로 '기다림' 말고는 할 일이 없다. '고도를 기다리며'와 다른 점은 정확한 때와 대상을 확신할 수 있다는 점이며, 카프카의 '성'과 다른 점은 언젠가는 다른 장소로 진입할 것이라는 '다음'의 확신이 있다는 점이다. 여러 모로 이 공간은 확신과 불확실성이 만남으로서 그 특징을 갖는 공간이다.
그 불확실성이란 무엇인가.
911 이후의 불안. 심증만으로도 길게 누군가를 심문할 수 있다는 사실.
'내가 아는 누군가는'으로 시작하는 이야기가 길게 이어진다. 출입국심사대의 태도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오는지 가는지 신경 쓰지 않으련다'와 '당신이야말로 미래의 불체자 혹은 테러리스트'. 크나큰 환대를 기대하지는 않더라도 후자의 경우가 사람 신경을 긁는 것은 오로지 심증만으로 생면부지의 관리가 승객을 세컨더리 룸으로, 심하면 입국을 불허할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크리스토퍼 샤버그는 '무함마드 아타의 마지막 날'(마틴 에이미스)을 인용함으로써 추측과 무작위의 가상영역과 연결되어 표준화된 전산과정을 이야기한다.
"가방은 직접 꾸리셨습니까?"
무함마드 아타의 손은 이마를 향해 움직였다.
"예."
그가 말했다.
"가방을 계속 지니고 있었습니까?"
"예."
"누가 운반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습니까?"
"아니오. 비행 일정이 시간대로 진행됩니까?"
"중간에 갈아타야 합니다."
"그러면 이 가방들은 곧장 갑니까?"
"아니오. 로건에서 다시 수속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절차를 또 겪어야 한다는 뜻인가요?"
테러행위가 지난 수십년 동안 이룩한 것이 무엇이든 간에, 세상의 지루함에서 순증가를 이룬 것만은 분명했다. 세 가지 질문을 묻고 답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약 15초 정도였다.
그러나 데드타임에 대한 질문과 대답은 한 마디도 틀리지 않고 하루에도 수없이 반복되었다. 항공기 운항이 계획대로 진행되었다면, 무함마드 아타는 더 많은, 아마도 훨씬 더 많은 데드타임을 지구 곳곳에 남겼을 것이다. 테러가 또한 가장 확실한 적을 적극조장한다는 것은 적절한,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논리일 것이다. 지루함이라는 적 말이다.
-'무함마드 아타의 마지막 날', 마틴 에이미스
911의 간접적인 발현은 공항에서였다. 수수께끼로서, 해석해야 하는 장소로 드러나는 공항. 일상과 떨어져 있고 구분할 수 있는 장소. 이야기를 왜곡하거나 드러내고 발전시키는 장소. '무함마드 아타의 마지막 날'에서 911 테러범의 하루를 공항에서 재현함으로써 그곳은 출입구이자 걸림돌이었으며 세세한 내용을 기억하고 다시 말하게 한다. 같은 소재를 우리는 상상하고 재현할 수 있으며 이 자체는 911을 기억하는 것, 혹은 중재하는 것을 복잡하게도 하고 시간을 중첩하기도 한다. 설화란 모름지기 이런 것이 아닐까.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어 하나의 아우라를 뿜는 일. 그것이 긍정이든 부정이든 그 아우라의 힘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우리는 그 아우라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고 싶어서 폐쇄 회로와 공항 검색대, 출입국 수속과 서류 더미, 감시 카메라를 필요로 하는 게 아닐까.
그 모든 문답과 계획, 감시와 이동에서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은 인생의 한 부분이다. 육하원칙이 이보다도 존중받는 공간이 또 있을까? 또렷해야 하고 분명해야 한다. 불안할수록 순서는 복잡해진다. 전신 스캐너 앞에서 신발과 노트북, 핸드폰까지 스캐너에 맡긴 채 신체를 검색한다 해도 마약은 누군가의 몸속에, 폭발물은 100밀리리터 이하 액체 병이 아닌 항공기 좌석 밑에 미리 장착될 수도 있다. 혹은 저자가 직접 보았다는 증언에 따라 음료수 병 속에 권총을 넣어서 탈 수도 있다. 요컨대 이것은 막고자 하는 자와 막히지 않으려는 자의 대치이다. 그 사이에 수법은 다양해지고 자유는 제한된다. 전신 스캐너까지 등장한다면 이제는 무엇이 더 남았을까. 불안은 높은 밀도의 조사를 동반한다. 계획적인 진부함, 특정 시간 동안 소비하는 일회적 여흥을 거치고 나서 돌아오는 곳은 수하물 컨베이어 벨트의 존재 확인이다. 늘 내 존재의 압축을 보는듯한 묵직한 수하물을 찾고 나면 여행이 끝났음을 다시 한 번 실감한다. 물질과 부담, 여행이 끝난 후, 공항이 이제 저 너머 일상 속으로 희미해지는 부분. 그 곳에 있을 때는 늘 인생의 어느 부분을 좀 더 깊이 조사받은 이후의 묘한 허탈함이 느껴진다.
사진, 음악 출처는
SF airport International lounge by Jeanne_Hebuterne
New Yorker cover by Adrian Tomnie
Samson, by Brian Goggin
Music for airports by Brian E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