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만인을 위한 철학 - 커피 홀릭 철학자와 커피 전문가 21인이 커피와 철학을 논하다
스콧 F. 파커 외 엮음, 김병순 옮김 / 따비 / 2015년 2월
평점 :
품절


 

 

 

자동판매기 식당, 에드워드 호퍼. 캔버스에 오일.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한 잔을 따르세요.

 

 이제 진한 주황색 커피 같은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니까요. ... 커피는 보통 사람들에게 황금같이 귀중한 존재죠. 마치 황금처럼 모든 이에게 호사와 고결함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고마워요, 후안 발데스. 

 -밥 딜런, <테마가 있는 라디오 시간 Theme Time Radio Hour>.

  '커피'. 방송 시작 멘트.

 



 마분지 슬리브를 끼운 종이컵. 라테, 카푸치노, 아메리카노, 치노 종류의 카페인. 코너마다 늘어나는 커피 프랜차이즈, 독립 매장. 백 가지 커피, 백 가지 이야기. 하지만 다른 것은 없을까. 어떤 것일 수도, 그 무엇도 아닐 수도. 소중했을 수도, 그저 그런 하루의 순간이었을 수도. 아침을 시작하는 누군가의 일상이었을 수도, 전투에 들어가기 위한 군장의 일부였을 수도 있었을 커피.

 

 

 



 커피에 관한 책이 나왔다. 철학, 이데올로기, 이야깃거리가 되는 테제와 안티테제, 공간과 비공간, 녹색무역과 소비, 장소와 고독, 역사와 이야기를 엮은 이 책을 읽노라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패션에 관해서는 전혀 모르는 신입 앤디에게 미란다가 '세룰리안 블루'에 관해 천천히 말하며 조소하는 장면이 겹친다. 너의 그 허접스러운 아웃핏을 완성하기 위해 오스카 드 라 렌타가 처음 그 세룰리안 블루를 등장시켰을 때 패션업계는 환호했었지. 혹은, 영화 속에서 편집자 나이젤이 '너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겠지만, 롱 아일랜드에서 바느질 수업 대신 축구 클라스에 억지로 들어가야 했던 어린 소년에게 이런 잡지는 빛나는 이정표였어. 라고 말하던 대목. 패션이든 커피든, 어떤 대상을 좋아하기 위해서는 이해가 우선이다. 읽고 난 다음 좋고 싫음을 가리는 정도의 예의는 필요하지 않을까. 최소한 '전 어떤 무엇을 볼 때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겠어요. 그래서 아예 읽지(보거나 듣거나 먹거나) 않아요.'라는 말이 얼마나 무례한 말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경험해보지 않은 것은 포기할 수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엮음이 울퉁불퉁하여 그 불협화음이 오히려 협화음을 만들어낸다. 깊게 파려는 욕심 대신 넓게 나아가려는 욕망을 택했다. 다양한 화제가 커피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곡선을 그린다. 묵직하고 가볍다. 때로는 그 애정 탓에 약간의 억지가 느껴지기도 한다. 생각해 보자. 커피가 없었다면 발자크의 소설이 없었을까. 커피가 없었다 하여도 철학은 존재했을 것이고 토론의 장은 다른 형태로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첫 번째 장, 커피와 형이상학의 각각의 글을 읽노라면 커피가 무엇인가를 오히려 거칠게나마 생각해 볼 수 있다. 커피의 수요가 이렇게 늘어나기 전, 혹은 사람들이 커피를 이렇게 많이 마시기 전에도 잠에서 깨기 위해, 혹은 정신을 차리기 위해, 다른 이들과 이야기하기 위해, 커피 비슷한 무언가는 있었다. 요컨대 어떤 필요로 이미 커피의 본질은 세상에 있었다. 이렇게 본다면 사르트르의 실존은 본질에 우선한다는 말이 오히려 틀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것을 사람의 본질이라고 치환해 본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어떤 행동을 하고 먹고 마시고 떠드는 어떤 사람이 있기도 전에 이미 그 사람의 본질은 존재해 왔었다. 어쩔 수 없게 정해진 운명. 첫째, 혹은 둘째로 태어나는 운명. 프랑스나 가나에 태어날 운명. 이미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마시기도 전에 알 수 있을 때 더욱 또렷해지는 그 굴레를 우리는 무엇이라 해야 할까.

 

 

 

 

 이것은 한 인간의 다른 인간에 대한 기대. 운명하는 기대가 아닌 운명된 기대를 둘러싼 욕망과 갈등.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타인이 요구하는 본질. 이에 반대해서 스스로 회복해 나가는 실존에의 과정. 역설적으로 1장에서 다섯 명의 저자가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것은 커피를 통해 떠올리는 실존과 본질의 가치이다. 커피는 매개이기도 하고 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주인은 형이상학이어야 했다.

 

 




 1장의 책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커피는 커피이고 형이상학은 형이상학이다. 그것이 아무리 어떤 의미를 가진다 해도 커피가 다른 이름일 수는 없다. 단, 중독성이 다른 중독성 물질(발륨, 코카인, 헤로인 등) 낮으면서도 이렇게 광범위하게 퍼져나간 음료 자체의 신비로움, 혹은 그 음료에 바치는 애정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 책이 1장으로 끝나지 않고 2, 3, 4장으로 엮인 것이 당연하다. 할 이야기가 많으니까!

 2, 3장을 읽노라면 각기 다른 아홉 명의 저자는 굳이 엮은이로부터 '애정을 담아서 부드럽게'라는 요구를 받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깊이 바라보고 찬찬히 관찰하고 천천히 마시는 가운데 이들이 커피를 얼마나 좋아하는지가 보인다. 개인이 사적인 경험, 떠오르는 경험. 그것이 옳은 일인지, 겉치레와 허세 가득한 일은 아니었을지 뒤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1장보다 억지가 덜하다. 예의를 갖추어서 다른 가치를 허용하는 조용한 글쓰기가 아래와 같은 생각으로 조용히 빛난다.


 


 


 따분한 근무일을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까? 커피는 짧은 휴식과 각성을 제공한다. 돈을 벌어 무엇에 쓸까? 중산 계급의 빠듯한 수입으로 실컷 살 만한 것이라고는 5달러짜리 커피밖에 없다. 단조로운 일터와 고립된 가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갈 곳은 어딜까? 유감스럽게도 미국에서 공공의 공간은 소비 공간이다. 커피숍은 돈을 많이 쓰지 않고도 외출할 기회를 제공한다. 시간에 쫓기며 통근하는 직장인의 삶에 무슨 낙이 있을까? 비록 차 안에서라도 커피 마실 시간은 있다. 캐러멜 시럽을 탄 커피는 몇푼 안 되는 돈으로 누릴 수 있는 향락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즐거움이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준다. -Brook. J. Sadler.

 


 


 빠듯한 업무 시간, 혹은 해야 할 과제. 또는 깊이 숙고해야 할 어떤 일. 계속 나아가야 하는 어떤 과정 중에서 시간을 남겨두기. 커피가 많은 사람에게 하는 가장 흔한 일은 이런 것일 것이다. 위의 저자가 말하는 커피 일상에 있어서 문화적 공간을 벗어나 다른 방향에서 다른 곳을 본다 하더라도 많은 각색이 필요하지는 않다. 즉, '커피를 마시는 것에 내재한 현실은 우리의 삶에 냉정한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 

 우리가 하는 많은 일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하나씩 줄여나가는 일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피하기 위해 집과 우산을 구한다. 언젠가 걸릴지 모르는 암을 준비하기 위해 보험에 가입한다. 혼란스러움, 필사적인 발버둥. 불안함, 소비. 긴박감, 서두름. 이러한 커플링의 한가운데 종종 커피가 있다. 커피는 겹쳐져 정신없는 서류 몇 장 위에,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걷는 구두 굽과 함께, 공사장의 먼지를 배경으로, 혹은 활자와 숫자, 말소리와 함께 있다. 별도의 형식과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음료는 기대와 충족이 만나는 점을 유지한다. 


 


 


 그렇다면 배경으로 존재하는 공간은 어떨까. 나는 그것이 스페셜티 커피이든, 스타벅스의 커피이든 대부분의 카페가 공항과도 같은 일종의 비장소non-place를 연출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카페 첸트랄, 카페 드 플로르 내지는 데멜 같은 이야기가 있는 몇몇 카페가 있다. 그러나 평소 사람들이 자주 가는 카페는 묘하게 단절된 에어 커튼을 치는 느낌이 든다. 종종 말을 거는 사람들이 있다 하더라도 카페는 여전히 비장소이다. 분명히 사람들은 함께 있지만, 같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카페에 혼자 갈 때 나는 누구도 내 공간에 들일 생각이 없다. Will Buckingham이 아래에서 말하는 종류의 고독이 피어나는 공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숍의 고독은 묘한 종류의 고독이다. 나는 파스칼이 자기 방에 홀로 있었을 방식으로 홀로 있지는 못한다. 그것은 타자와 함께하는 고독이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타자와 함께하는 특별한 종류의 고독이다.  (중략) ... 그것은 타자를 배제하는 고독이 아니다. 사람들은 카페에 앉아서 글을 읽거나 커피를 마실 때, 역시 고독하게 커피를 마시는 다른 사람들과 일종의 동지애를 느낀다. 이것은 레비나스가 두려워할 법한 비 사회, 곧 연대 없는 사회가 아니다. 우리처럼 월요일 오후에 게으름을 피우며 숨는 사람들 사이에는 일종의 예의가 있다. 우리는 서로의 고독을 존중한다. 우리는 마치 저마다 타자의 고독을 보호해주는 사람인 양 서로 방해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우리는 자기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우리는 여기서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으며 함께 있는 것이다. -Will Buckingham



 



 공기가 사라진 대기. 배경이 멈춘 공간. 그 사이를 채우는 커피.

 음료치고는 꽤 훌륭한 매개체.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의미를 두고 싶어한다. 종종 부러 어떤 느낌을 간직하기도 한다.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월요일 오후 조용한 카페를  Will Buckingham은 조용한 배려가 있는 공간으로 읽는다. 그러나 그는 지나친 도약을 피하려는 듯, '카페가 일시적인 휴식의 장소라는 것 또한 명백하다'고 말한다. 즉, 이것은 일시적인 것이다. 영원함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커피 브레이크는 브레이크일 뿐이다. 

 반증에 반증을 거듭하여 이 책을 중간 즈음 읽어가면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복잡하고 어려우며, 요구에 응하는 일은 성가시고 무언가를 훌륭히 해내기는 더욱 어렵다. 다른 이에 대한 책임감, 나에 대한 중압감, 눈을 떠서 잠들기 전까지 닿지 않는 바닥에 닿으려 허우적거리는 와중 커피는 종종 괜찮은 친구가 되어준다. 그곳이 스타벅스이든 블루보틀이든,  길모퉁이 카페이든 간에 커피가 있는 곳은 스톱 버튼은 아니더라도 일시 정지 버튼 정도는 될 수 있다는 것.

 

 

 

 



 커피와 공간에 대한 생각이 2장을 채웠다면 3장과 4장은 녹색 커피, 직접 무역과 커피를 만드는 사람들의 고민을 담았다. 저자가 다르기에 그 굴곡이 마치 비포장도로를 랜드로버로 운전하는 기분이다. 공정 무역을 통해 커피 농민의 삶을 개선해왔다는 한 저자의 글을 읽고 나면 실제로 커피 농민의 삶이 달라진 것은 여전히 거의 없다는 목소리가 있다. 다 읽은 다음 엮은 이 두 사람의 에필로그에는 흥분과 과장이 있다. 시작과 끝이 다른 커피 볶는 공간에 들어선 느낌의 책. 그 책을 따라가는 독자의 호흡도 종종 울퉁불퉁, 비뚤비뚤해짐이 당연하다. 어쩔 수 없다. 모든 읽기는 글쓴이의 호흡을 따를 수밖에 없으니까. 리뷰가 원문을 이길 수 없다는 변명으로 끝을 맺기에는 뭔가 좀 허전하다. 마치 아래 영화에 나오는 두 명의 케이트 블란쳇을 본 느낌이랄까.


 

 

 



 앞서 보았던 레비나스의 그 구절을 다시 읽는다. "여기서 당신은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게 될 때까지 완벽하게 긴장을 푼다. 사람들이 영혼 없는 세상의 공포와 불의를 견뎌내는 것은, 카페에 가서 모든 일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내는 다양한 뜻이 담긴 개념이다. 한편으로, 우리가 공포와 불의를 용인하지 않으며, 우리의 대응 능력과 의지를 유지하는 것-우리가 할 수 있는 처지에 있고, 능력이 있으며, 우리의 행동이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고 믿을 때-은 좋은 일이다.그러나 우리가 날마다 끔찍한 짓과 사건을 접하더라도, 기꺼운 마음으로 세상 속에서 사는 방식을 배우는 것 또한 좋은 일이다. 또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이 세상을 견뎌낸느 법뿐 안라 올바르게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좋은 일이다. 견뎌낼 수 없는 것과 마주칠 때 가장 좋은 대응책은 힘겨운 의무감이 아니라 일종의 발명, 곧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하는 것이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생각과 발명, 창조성이 꽃피는 열린 공간도 없다면, 세상에 어떤 희망이 남을 수 있겠는가.-Will Buckingham



 



-글 속 모든 인용은 '커피, 만인을 위한 철학' 발췌.

-영화는 짐 자무쉬 감독, 커피와 담배 중의 한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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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5-03-04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읍~ 왜이리 오랫만에 오셨어요~~~

커피로 이렇게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사유할수 있군요...

이책을 읽지 않았지만,
감히 리부가 책보다 나을것이라고 믿쓤니닷*^^*

Jeanne_Hebuterne 2015-03-05 09:38   좋아요 0 | URL
아무개님
2월엔 이런 저런 일들로 산만하고 분주했지 뭡니까. 그러면서 마음이 무엇인가 의아했어요. 그게 무엇이길래 어제와 오늘이 같은데 나만 이렇게 들떴다가 가라앉았다가, 어제는 잘 읽던 책을 오늘은 한 페이지를 단숨에 못 읽고 이리 딴생각을 하게 하는걸까.
이 책은 여러 사람이 각자 커피에 관련된 생각을 쓴 글모음집이어서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제가 읽기에 시기적절했습니다. 칭찬은 잘 읽으셨다는 인사로 들을게요.
대형황사가 곧 들이닥친다는데 3월도 건강하게 보내시기를 바라요 :)

VANITAS 2015-03-04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참 좋아합니다.^^

Jeanne_Hebuterne 2015-03-05 09:41   좋아요 0 | URL
VANITAS님!

이 책은 사실 저자에 따라 호오가 심하게 나뉘었던 책이었어요. 아무리 커피가 그리 대단한 물질일지언정, 커피가 없었다 해서 형이상학이 없었을거라는 생각은 좀 과장이 아닐까 싶기도 했고, 그 애정의 강도가 커피를 좋아하는 저로서도 좀 갸웃하게 되기도 했거든요. 그치만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읽기에는 꽤 괜찮은 책 같았습니다.
요즈음에는 커피, 공항, 요리, 이런 식의 눈에 보이고 제가 인상적으로 접했던 소재가 참 재미있어요 :)

2015-03-05 1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06 0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요코이 2015-05-07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피 향이 물씬 풍겨지는 리뷰 덕분에 어떤 책일지 좀 더 궁금해졌습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Jeanne_Hebuterne 2015-05-14 07:48   좋아요 0 | URL
요코이님, 커피를 마시며 썼어요. 정말로요. 좋아하는 것에 대해 요즘은 조금씩 읽거나 보는 중인데 의외로 제가 이 두 가지를 하지도 않으면서 좋아한다는 생각만 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가까이서 계속 바라보니 그 전과는 다른 것이 보이더라구요.
요코이 님 댓글을 보고 나니 또 커피 생각이 떠올라요!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