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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 - 일상을 깨우는 바로 그 순간의 기록들
조던 매터 지음, 이선혜.김은주 옮김 / 시공아트 / 2013년 4월
평점 :
진실한 것은 화가이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사진이다.
현실에서 시간이 정지되는 일은 없으므로.
-로댕
현실에서의 시간이 정지되는 일이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 사진은 시간과 시간, 분과 분, 초와 초, 찰나를 늘 열어두는 매체다. 밀물과 썰물, 들숨과 날숨처럼 수없이 쌓이고 부딪혀 제 흔적을 만든다. 열렸다가 닫히는 순간. 그 순간과 찰나를 포착하고자 하는 노력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했다면, 그의 사진에 감동하여 야구선수에서 포토그래퍼로 전향한 조던 매터는 '움직임’에서 ‘멈춤’으로 향하는 기억을 잡으려고 노력한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니콘 D3S, 1/320의 셔터 속도, 연속 촬영이 아닌 한 컷의 사진, 어도비 브릿지, 폴 테일러 댄스 컴퍼니, 앨빈 에일리 아메리칸 댄스 시어터, 아스펜 산타페 발레단, 애틀랜타 발레단, 발레 이스파니코, 휴스턴 발레단, 노블모션 댄스단, 퍼시픽 노스웨스트 발레단, 파슨스 댄스 컴퍼니, 새러소타 발레단, 테이크 댄스단, 조던 매터, 그리고 사람이 사는 일상의 어떤 움직임. 이 책이 나오기까지의 어떤 것들. 시간은 늘 흐르고 사람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가 화를 내기도, 움츠러들기도, 슬퍼하거나 기뻐하기도 한다. 그 자체로 문학이 되는 날씨, 몇 장으로 한숨을 내쉬게 하는 영수증, ‘예스’라는 말에 뛸 듯 기뻐지는 사랑의 설렘, 자기 자신에게 거는 기대.
사람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존재이고 좀처럼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동적인 자세, 열렸다가 닫히는 존재.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한 번의 심호흡이건만 정작 우리의 삶을 이루는 것은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셀 수 없이 많은 들숨과 날숨이다. 인생을 이루는 모든 중요한 요소는 이렇게 기억 속에서 잠시 잊혔다가 결정적 순간에 모습을 나타낸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어떤 부분을 포착하려는 시선.
본다는 것은 곧 지각하는 것. 무언가를 보려면 어둠 속이라 하여도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의 빛과 굴절이 필요하다. 사람의 신체를 타고 흐르는 빛, 피부를 둘러싼 공기의 흐름. 이 책에서 포착한 모습에는 긴장된 근육, 극대화된 움직임이 정지된 공간 안에서 점, 선, 면 없이 그 형체를 드러낸다. 회화와는 달리 사진은 시간을 이렇게 극적으로 변화시키고 드러내려는 노력을 숨기지 않는다. 이 사진들을 보는 순간 우리는 ‘보는 것은 곧 만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깊이와 빛, 움직임에서 정지된 것으로 가는 때를 잡는 시선. 끊이지 않는 것을 포착하였을 때 느끼는 경이로움.
거리를 걷노라면 사람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무언가에 바쁘게 길을 걷는다. 그 사이를 묵묵히 걸으며 시간을 조금씩 조금씩 꺼내어 쓰다 보면 종종 궁금해질 때가 있다. ‘다들 무슨 생각으로, 무슨 재미로 살지?’ 이 책은 그 질문에 참으로 깜찍하고 긍정적인 대답을 한다. 빗속에서 춤을 추는 댄서의 모습. 전부를 던져야 사랑을 얻는다는 바디 서퍼의 멈춤. 혹은 이런 질문을 하게 될 때도 있다. ‘나만 힘든가?’ 그에 관해서는 전철이 오고 있는데도 핸드폰을 바라보는 여자의 정지된 순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맹위를 떨치고 지나간 집에서 몸을 구부리고 있는 여자의 어로. 잠든 순간 꾸는 꿈속에 머물고 싶어하는 듯한 묘지 위에서 애도하는 자의 침묵으로 등을 토닥인다. ‘사는 거 무섭다.’라고 중얼거릴 때면 이 책은 또 이렇게 답할 것이다. 계산서 속에서 할 말 잃은 여자의 빚더미. 지하철을 갈아타는 남자의 바쁜 뜀박질. 사랑이 꼭 아름답지만은 않다고 말하는 남자와 여자의 저녁 식탁으로 우리를 초대한다.‘이렇게 무섭고 힘들어서 어디 제대로 살겠어?’라는 자조와 한탄에는 그러나 이 책은 또 다른 말을 건넨다. 건강하게 죽은 시체는 없으므로 가능성도 희박한 전기충격기를 든 수호천사의 손길. 이렇게 힘들어도 카스트로 디스트릭트에서 나누는 남자들의 키스와 달빛 아래서의 소나타로.
고단하고 슬프고 기쁘고 지루한, 그와 동시에 긴박하거나 산만하고 길거나 짧은 하루하루 그날그날은 우리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나누고 모르는 것의 감정과 느낌을 극대화한다. 우리가 아는 것은 무엇이고 모르는 것은 무엇인가? 눈으로 보는 것, 손으로 만지는 것. 보았다고 믿는 것, 느꼈다고 자부하는 것.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지만 잠깐 교류할 수 있는 찰나의 가장 완벽한 맞닿음. 인간 육체의 경이로움을 넘어서 완벽한 자기절제를 뽐내는 무용수들은 우리 일상의 구태의연함을 찬란하게 잡아냈다.
이 책에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깊이라든지 미셸 푸르니에의 산문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은 단지 훨씬 더 극화되고 화려해서 조금은 균형이 맞지 않는 것 같은, 처음 날갯짓을 하는 듯한 커다란 새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기획의 참신함과 일상의 포커스가 세련된 무용수의 근육을 만났을 때 느낄 수 있는 재미와 다채로움, 감각. 앞으로 조던 매터에게 깊이가 더해지기를 기대하는 바가 아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화사하게 정지되어 일 초 전에 움직였음을, 일 초 후에 움직일 것임을 잠시 잊게 하는 흥밋거리도 있음을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볼 수 있다. 우리는 또한 짧은 시간이나마 쉬엄쉬엄 누군가의 뷰파인더 너머로 우리의 일상 그 자체를 넘겨다 볼 수 있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숨 내쉬기는 이렇게 이루어질 수도 있다.
덧붙이기-책의 서문에는 그가 사진을 하게 된 동기, 가족 이야기 등이 있다면 연속하는 사진의 말미에는 짤막한 사진 뒷이야기가 실려있다. 모든 뒷이야기가 다 실린 것은 아니지만 주로 사진을 찍을 때 느낌, 찍게 된 경위, 연출의 변 등을 참여 인원과 함께 소개하는데, 그의 홈페이지에도 이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 중이며, 연출과정을 보면 와이어, 이미지 수정 없이 이런 사진을 선보이게 된 과정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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