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1 - 더 깊고 풍부해진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만화 상상력 사전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김수박 그림 / 별천지(열린책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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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가서 처음 책을 산 건, 7살이나 8살 때 쯤이었다. 엄마와 누나랑 같이 가서 무려 2시간 넘게 책을 골랐다. 책을 꺼냈다, 보고, 다시 넣고, 또 보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께서는 지루하고 피곤하실 수 있던 상황인데도 우리를 기다려주셨다. 그때 고르고 골라서 샀던 책은 사자성어를 4컷 만화로 풀어낸 <이럴 땐 이런 말>이다. 사자성어를 미리 공부하려는 기특한 생각은 없었고, 그냥 만화가 재미있어 샀다. 그런데 이게 알게 모르게 공부가 되었는지, 수능 전까지 사자성어만 나오면 항상 자신만만했다.

 

갑자기 왜 이런 얘기를 하나고? <만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이하, 만화 상상력 사전)을 읽으며, <이럴 땐 이런 말>이 계속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은 4컷 만화가 아니고 훨씬 심도 있는 주제를 다룬 책이다. 하지만, '어떤 주제'를 만화로 재미있게 풀어냈다는 점은 같다. 특히 학생들이 읽으면 '참 좋겠다'란 생각을 했다. 폭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능력, 인류와 동물, 곤충 등 전우주를 아우르는 상상력을 자극받을 수 있다. 시간을 거슬러 엄마랑 누나랑 갔던 서점에 <만화 상상력 사전>이 있었다면, 이 책을 고르지 않았을까?

 

 

<만화 상상력 사전>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이웃에 사는 헐렝이, 이쁜이, 멋쟁이 3총사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설정이다. 독자는 헐렝이나 이쁜이 입장이 되어 편하게 귀를 기울 수 있다. 마치 어릴 적 할머니 무릎에 누워 옛날이야기를 듣는 듯한 행복감도.

 

아, 등장인물을 좀 더 살펴보자. 3총사라 했지만 멋쟁이는 비중이 미미하고, 사실 헐렝이와 이쁜이가 핵심인물이다. 나이도 명확하진 않으나, "학사경고를 받았다"(p.150)란 코멘트를 보아 대학생으로 보인다. 이쁜이는 이름처럼 똑부러지고 얼굴도 예쁜 커리어우먼 같은 인물이다. 헐렝이는 그런 이쁜이를 좋아하며, 항상 이쁜이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한다. 아, 멋쟁이를 짝사랑하는 깡순이(p.169)도 있고, 화가 김수박님도 군데군데 카메오처럼 등장하신다. (p.97 우측하단에는 이세욱 역자님으로 추정되는 인물도 보임^^)

 

<만화 상상력 사전>을 읽으며 가장 놀랐던 건, <개미>와 <제3인류>의 주제의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점이다. 특히 개미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경쟁자들 : 개미](p.30)을 시작으로 [두려움](p.62), [마약 중독자](p.72), [사회성](p.99), [세스토드](p.116), [암개미의 운명](p.138)까지. 특히, 암개미가 개미사회를 건설하는 과정을 설명한 [암개미의 운명]은 놀라웠다. 고난의 비행을 끝에 살아남는 개체가 2000마리 중 1,2마리라니. 거기다 건설 초기, 자기의 날개와 알을 먹고 생명을 부지한다는 건, 충격 그 자체였다. 또한, p.76과 p.156은 신작 <제3인류>에도 등장하는 내용이다.

 

 

그밖에 교미과정에서 암컷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꾀를 내는 금파리 수컷이야기(p.104), 6마리 쥐 실험을 통해 살펴본 집단 역학관계 이야기(p.144), A4지 사이즈의 비밀(p.170)이 재미있었다.

 

 

만화가 아닌 <상상력사전>과 <만화 상상력사전> 모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매력을 가득 담긴 책이지만,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폭넓은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선 <만화 상상력사전>이 낫다. 재미있는 만화로 접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무한 상상력은 정말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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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분 후의 삶
권기태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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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등학교 2학때였다. 학교 옆 은행나무에서 은행을 따려 했다. 냄새나는 은행은 왜? 갑자기 효심이 발동했었다. 은행을 따다 어머니께 가져다 드리고 싶었다. 때마침 학교정문에선 나무 베기가 한창이었는데, 어떤 공사때문에 걸리적 거리는 나무를 베어 내는 거였다. (아, 우리 학교는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로, 주변에 수령 30,40년 정도 된 나무들이 아주 많았다. 이 나무 역시 높이 10,20미터 정도됐다.) 은행을 따러 담장 밖으로 나가 있던 나를, 인부들은 알아채지 못했다. 나 역시 나무 베기에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던 중, '으드득 쾅!!!!!!' 어마어마한 나무가 내 눈앞으로 덮쳐 왔다. 내가 서 있던 바로 옆으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난 어떻게 됐을까? 깔린 걸까? 천만다행으로 바로 옆으로 쓰러졌다. 생채기하나 생기지 않았지만, 1미터만 옆이었다면 살아 있지 못했을 거다. 냄새나는 은행을 따다, 나무에 깔려 죽는다라...너무나 허무하지 않은가?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순간이란 걸 절절히 느꼈다. 하지만, <일분 후의 삶>을 읽고보니 내 경험은 어린아이의 장난과 같은 거였다.

 

2.

 

사실, <일분 후의 삶>이 정확히 어떤 책인지 알지 못했다. 그냥 'KBS2 [인간의 조건]에 소개된 책' 정도만 알고 읽기 시작했다. 점점 눈시울이 붉어졌고, 죽음이 손짓하는 긴박한 상황에선 몸이 부르르 떨렸다. 삶의 강렬함이 죽음을 밀어내는 순간에선,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그렇구나. 이 책은 삶의 의지에 대한 책이다. 인간에 대한 책이다. 한순간 사그라들지도 모를 당신 인생에 관한 책이다.

 

<일분 후의 삶>은 '죽음의 위기를 극복하고 생의 진정한 순간들을 겪은 열두 사람의 이야기'(일러두기 참조)이다. 작가는 이들은 수차례 만나 인터뷰하고, 이야기를 재구성해 냈다. 이런 노력덕인지 글은 착착 감기고, 생동감 넘친다. 거기다 실화라 더욱 강하게 몰입할 수 있었다.

 

3.

 

이야기 어느 하나 감동적이지 않은 게 없지만, 특히 극적이고 놀라웠던 이야기는, [나를 방생해준 자연](p.32)이다. 주인공은 방글라데시 차타공으로 가던 상선에 타고 있다. 잠시 바람을 쐬러 갑판으로 나왔던 주인공은, 파도에 휩싸여 망망대해에 빠진다. 빠르게 항해하던 배는 멀찌감치 사라져버린다. 누구도 그가 빠졌는지 모르는 상태.

 

주인공은 생각한다. '도대체 내 발아래 몇 미터를 내려가야 바닥에 닿을까? 100미터? 200미터? 아니 1킬로미터도 넘을지 모른다. 그럼 육지까지는? 생각도 못 한다. 수백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다. 그럼 헤엄쳐 갈 수도 없는 게 아닌가. 이럴수가 이렇게 죽는 거구나.'(p.38)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상선은, 되돌아와 수색하지만 주인공을 발견하지 못했다. 점점 체력이 바닥나고 희망이 사그라들던 순간, 기적이 강림한다. 커다란 거북이가 주인공 곁에 나타난 거다. 흥분한 주인공은 거북이에게 말까지 건다. "희한하지, 거북아. 네가 어떻게 나를 살려주려고 여기까지 왔냐? 언제 왔냐? 내가 여기 있는 걸 알고 왔냐? 고맙다, 거북아. 정말 고맙다."(p.47) 주인공은 이렇게 거북이 등에 업혀 구조를 기다렸고, 결국 구조된다.

 

동료들은 거북이를 보며 이렇게 중얼거린다. "이거 동화책에나 나오는 일인데."(p.51) 더욱 놀라운 건, 주인공의 아내가 매년 거북이를 방생해 왔다는 거다. 우연치고는 신기하지 않은가?

 

4.

 

삶과 죽음은 단어의 깊이 때문에, 때론 멀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은행을 따다 거대한 나무에 깔려 죽을지도 모르고, 전신주에 걸린 연을 내리다 25만볼트 전기에 감전될지도 모른다. 또한, 갑자기 인도로 질주하는 차에 치일지도 모른다. 다들, "나는 아니겠지. 나는 괜찮을 거야" 라고 자기 위안하며 애써 태연한 척하는 건 아닌지.

 

<일분 후의 삶>은 희망의 책이다. 죽음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극한 상황에서, 삶을 갈망했던 12명의 생존 의지가 담겨있다. 삶과 죽음을 넘나들었던 이들에게, '일분 후의 삶'은 얼마나 소중한가? 삶의 소중함, 이 중요하고도 잊기 쉬운 교훈을 새삼 일깨우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라. <일분 후의 삶>을 읽기 전의 당신과 읽은 후의 당신은, 아주 많이 아주 많이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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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도시 감성여행 - 낭만을 찾아 떠나는
염관식.옥미혜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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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도시 감성여행>을 읽으며, 크게 놀랐다. 이전에 보던 여행안내서와는 차원이 달랐다. 지금까지의 여행안내서가 작가의 여정을 그대로 소개하고 안내하는데 그쳤다면, 이 책은 맛집, 명소 등을 테마별로 소개하고 독자가 직접 여행계획을 세울 수 있게 돕는다. 유명인의 여행경로를 그대로 따라다니는 게 무슨 여행인가? 여행 디자인은 스스로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도시 감성여행>이야말로 여행안내서의 본분을 다하고 있는 게 아닐까?

 

12개의 도시가 소개되는데, 도시마다 주제가 있다. 강릉은 [커피여행], 가평은 [캠핑여행]처럼 말이다. 강릉이 커피여행 테마인 게 약간 의아했는데, 강릉은 인구수 대비 가장 커피전문점이 많은 곳(p.16)이고, 안목해변에는 자판기만 70여 대가 늘어서 있다고 한다. 근처에 살면서도 몰랐던 사실.

 

 

테마별로, 처음에는 1) 여행기 같은 에세이가 있고, 이어 이 책의 핵심, 2) [여행 디자인하기]가, 다음에 3) 구체적인 명소와 맛집이 소개된다. 1) 항목에서는 감성을 한껏 충전한 다음, 2)에서 여행 디자인을 하고, 3)에서 실용적인 정보를 얻는 거다. 또한, 2) 항목엔, 3)에서 소개될 부분의 페이지가 실려 있다. 그래서, 필요한 항목만을 찾아볼 수 있다. 입체적이고 유기적인 활용이 가능하도록 배려되어 있는 것이다.

 

올컬러 사진이 하나 가득한데, 특히 맛집 소개가 잘 되어 있다. 주말에 읽다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모른다. 특히, 통영 우짜(p.85), 전주비빔밥(p.124), 흑임자 팥빙수(p.126)페이지에서 침이 10리터 정도 흘렀다.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저자분들이 생선과 해산물을 좋아하시는지 소개된 맛집 상당수가 생선과 해산물 요리 전문이었다는 거. (난 생선이나 해산물을 아주 싫어한다-_-)

 

 

책 속에 가득한 명소는 전부 아름다웠지만, 추리고 추려서 딱 세 군데를 골랐다. 나중에 가볼 곳으로. 첫째는 경주의 유채꽃 들판(p.151). 경주하면 어릴 적 수학여행 생각이 난다. 불국사, 석굴암에 줄지어 들어갔던 기억도 나고. 당시에는 "맨날 경주만 가?" 이러면서 싫어했는데, 돌아보면 즐거웠던 추억. 둘째, 드라마 [환상의 커플] 촬영지, 독일마을(p.262) 국내에 독일마을이 있다는 것도, [환상의 커플] 촬영지가 독일마을이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독일 분위기를 만끽하며, 나상실 장철수를 떠올리는 것도 좋을 듯. 셋째, 대관령 양 떼 목장(p.438) 넓게 펼쳐진 목장이 마치 스위스 같았다. 항상 겨울되면 첫눈이 가장 빨리 내렸다고 나오는 곳인데, 겨울철에 가보면 유럽 분위기가 날 듯.

 

 

<소도시 감성여행>은 여행에세이의 촉촉한 감성과 여행안내서의 실용성을 겸비한, 최고의 여행도우미이다. 1) 독자 스스로 여행을 디자인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점 2) 가격, 연락처, 운영시간까지 꼼꼼하게 상세정보를 제공한 점, 3) 엄청난 양의 올컬러 사진을 소개한 점은 발군이었다. 그간 여행서의 업그레이드판을 확인하고 싶다면, <소도시 감성여행>을 펼쳐보시길.

 

 

 

* 멋진 사진이 하나 가득한 책이라 포토리뷰를 준비했습니다. 책사진을 100여장 찍었는데, 편집하고 보니 하나같이 그지같네요-_- 결국, 포토리뷰는 포기. 극히 일부 사진만 첨부했어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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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살의 유서
김은주.세바스티앙 팔레티 지음, 문은실 옮김 / 씨앤아이북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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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채널A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약칭, '이만갑')는 항상 챙겨보는 프로그램이다. 탈북미녀들의 미모에 놀랐고, 충격적인 탈북스토리에 가슴이 아팠으며, 생소한 북한 이야기가 신기했다. 이 책의 저자인 김은주씨 역시 이만갑에서 자주 봤었고, 은주씨 어머니도 출연하신 적이 있었다. 교환학생으로 미국유학을 간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어느새 책을 썼다니...

 

<열한 살의 유서>는 은주씨가 경험했던, 굶주렸던 북한생활, 탈북과정, 지옥같은 중국생활, 한국으로 오기까지를 써내려간 생생한 기록이다. 삶과 죽음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던 이 기록에 대해, 어떤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까? 드라마로 만든다면, 300부작 대하드라마도 가능할 법한 충격의 스토리에 더이상의 할말을 잊었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이러한 것이 은주씨만의 일이 아니라, 수많은 탈북자들이 겪고 있는 진행형 문제라는 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동포들은 중국에서, 북한에서 고통받고 있다.

 

은주씨는 왜 11살 나이에 유서를 남겨야 했을까? 어머니와 언니는 입에 풀칠할 것이라도 구하기 위해 나진,선봉으로 향했고, 은주씨는 홀로 빈 아파트에 남겨져 있다. 장판까지 뜯어 판, 아파트는 전기도 끊겼고, 먹을 것도 없었다. 겨우겨우 무시래기 조각을 모아 맹탕인 국을 끓여(p.12) 버텨보지만, 배고픔을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갔다.

 

"잠을 청하려고 누우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나를 방바닥이 잡아먹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중략) 문득 나는 내가 죽음의 문턱에 서 있음을 깨달았다. (중략) 이렇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가 버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나는 유서를 쓰기로 마음 먹었다."(p.12.13)

 

어머니와 언니를 돌아왔지만,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세 모녀는 탈북을 결심(p.66)한다. 우여곡절 끝에 탈북에 성공(p.92)하지만, 기다리는 건 인신매매. 세 모녀는 단돈 2천 위안에 팔려 간다. p.106이하는 지옥 같았던 중국생활 이야기인데, 이만갑이나 다른 곳에서도 들을 수 없던 이야기라 더욱 가슴 아팠다. 세 모녀는 팔린 중국인 집에서, 죽도록 일만 하고 온갖 냉대와 모욕을 견뎌야 했으며, 어머니는 아기 낳을 것을 강요받는다.

 

특히, 슬펐던 건, 은주씨 어머니와 은주씨가 계속해서 지옥 같았던 중국인 집으로 찾아가는 장면이었다. 북송 후(p.135) 다시 중국으로 와서, 끔찍한 소굴로 다시 들어갔고,(p.152) 춘절에도 지옥으로 찾아간다.(p.164) 왜? 거기엔 원치 않는 임신이었지만, 아들이 있었다. 아, 눈물겨운 모생애. 또한 중국 땅에서 그들은 기댈 곳이라곤 없었다. 인신매매 당해서 팔려간 곳이었지만, 그런 곳이라도 바라보고 기대야 하는 현실, 너무 슬프지 않은가?

 

은주씨는 상하이에 와서, 남한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고 한국으로 갈 결심을 한다. 하지만, 한국행은 쉽지만은 않았다. 여러 루트중에 몽골루트를 선택했는데, 죽음의 고비사막을 지나야(p.187) 했다. 끝없는 모래사막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나가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하지만, 은주씨 모녀는 결국, 한국행을 성공한다.

 

<열한 살의 유서>를 읽으며, 탈북자에 대한 더 큰 관심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같은 민족이 인신매매 당해 팔려가는 현실을 그냥 보고만 있을 것인가? 또한, 한국에서 탈북자들이 느꼈을 소외감이나 경제적 어려움도 걱정이 됐다. 오직 한국행만을 꿈꾸며 죽을 각오를 하고 넘어왔는데, 한국은 꿈에 그리던 이상향만은 아닌 것이다. 아마존 정글보다 더 치열한 경쟁사회니, 탈북자들이 제대로 적응할 리가 없다. 다행스러운 건, 은주씨와 어머니는 한국사회에 잘 적응하는 있는 듯 보인다는 것. 특히 은주씨는 서강대에 다니며, 교환학생으로 미국유학도 다녀왔다. 하지만, 책에는 미처 적지 못한 고민거리가 하나 가득할 것이다. 탈북자에 대한 인식재고, 탈북자 지원시스탬 등을 다시 한 번 돌아봤으면 좋겠다.

 

<열한 살의 유서>는 한국인이라면, 한번 읽어야 할 책이다. 북한동포도 우리 민족이고 우리의 현실이다. 굶주리지 않고, 탈북자로 떠돌지 않아도 될 날이 오길... 남과 북이 대립하지 않고, 언젠가 하나가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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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요, 서울에 물들다 - Sun Yao's Seoul Diary
손요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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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먼저 이 이야기부터 하고 싶다. 외국어를 말하고, 읽는 것과 외국어로 책을 쓰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당신이 중국에 가서 중국어로 책을 쓴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힘들겠는가? 손요씨는 모국어가 아닌 한국어로 이 책을 썼다. 그것도 서울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책을. 이 하나만으로도 <손요, 서울에 물들다>는 놀라운 책 아닌가?

 

KBS '미녀들의 수다'(미수다)는 빼놓지 않고, 챙겨봤던 프로그램이다. 여러 미녀들 모두 예뻤지만, 한국어 실력이나, 논리정연함, 톡톡 튀는 매력에선 손요씨를 따라올 미녀는 없었다. 거기다 같은 학교를 다녔고, 같은 시기에 캠퍼스를 누벼서 더욱 친근감이 들었다. (아쉽게도 캠퍼스에서 뵙지는 못했다. 베트남 출신 흐엉씨나, 그루지아 출신 타티아씨는 여러 번 봄ㅋㅋㅋ) 미수다 폐지 이후 미녀들(특히 손요씨)의 근황이 궁금했었는데, 반갑게도 이 책을 만났다. 

 

2.

 

<손요, 서울에 물들다>는 손요씨가 서울에서 보낸 10년간의 기록이다. 6개의 PART로 이루어져 있고, PART5까지는 한국적응기, 에피소드, PART6은 [손요의 도심 속 힐링여행]으로 손요씨의 추억이 담긴 명소 12곳이 소개된다. 또한, 각 파트 말미에는 손요씨가 직접 그린 만화형식의 [손요의 못다 한 이야기]가 있는데 실력이 대단하다. 알고보니 손요씨는 예술고등학교 출신으로 미술학도를 꿈꿨다고 한다.

 

3.

 

손요씨는 왜 한국으로 유학을 왔을까? 놀랍게도 처음에는 일본유학을 생각했고 일본어 학원에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어는 자기와 맞지 않았고 곧 포기한다. 그러던 중, 재잘거리며 다가오는 어린아이들의 대화를 듣게 된다. 그건 한국어였다. 손요씨는 이런 생각을 한다.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대화를 듣는 순간, 내 머리속은 멍해졌다. 20년이란 세월을 살아오며 들었던 말 중에 가장 아름다운 언어였다.'(p.16) '그래, 내가 배워야 할 언어는 일본어가 아니고 한국어야!"(p.17) 때마침 한류열풍이 불어 한국드라마와 음악이 크게 인기를 얻었고, 결국 손요씨는 한국 유학을 결심한다.

 

이 책을 읽으며, 손요씨는 '성공할 수 밖에 없는 여자'란 생각을 했다. 굉장히 적극적이고 실천력 있으며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 거기다 얼굴까지 예쁘니, 실패하라고 등 떠밀어도 기어이 성공할 사람이다. 손요씨의 적극성이 제대로 드러나는 에피소드(p.92)가 있다. 한국인 친구를 사귀어야 한국어도, 한국문화도 제대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 손요씨는, 한국인 친구를 찾아 나선다. 외대 도서관 스터디룸에서 대상을 물색(?)하던 그녀는 맑은 목소리로 중국어를 구사하는 여학생을 발견한다. 먼저 다가가, "니하오! 저는 중국 사람이에요. 같이 앉아서 공부해도 돼요?"(p.94)라며 말을 건낸다. 이것이 베스트 프렌드 박현정씨와의 첫 만남이었다. 멋지다.

 

손요씨는 외대 어학당을 다니다, 경희대 무역학과에 진학하는데, 이에 관련된 이야기도 재미있다. 왜 외대가 아닌 경희대를 선택했을까? 손요씨 말을 들어보자. "처음엔 당연히 나의 모교였던 외대에 다니려고 했지만, 어느 날 경희대에 다녀 온 이후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경희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마치 다른 풍경을 보는 것처럼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유럽풍의 고전적인 건물과 로맨틱한 학교 정원, 그리고 아름다운 예술작품들이 많았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학교에서 4년을 보낸다고 하니 상상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다. 그리하여 나는 외대를 저버리고 경희대를 선택하기로 했다."(p.125) 책속에는 처음 외대 캠퍼스를 보고 실망했다는 이야기(p.66)도 나오는데, 누구라도 외대 캠퍼스와 경희대 캠퍼스를 본다면 손요씨 같은 선택을 하리라. 캠퍼스만 딱 놓고보면, 비교가 되지 않는다.

 

4.

 

빠질 수 없는 미수다 이야기.(p.180) 손요씨는 어떻게 미수다에 출연하게 되었을까? 외대출신 PD는 동기에게 외국학생 소개를 부탁했고, 처음 면접제의를 받은 건, 상팡씨였다. 상팡씨는 '중국인 학생 중에 손요씨가 가장 어울릴 것 같다'며 손요씨에게 함께 출연하자고 권했다. 하지만 손요씨는 단순한 방청 아르바이트로 생각하고 거절한다. 물론 나중에는 방송국 구경도 하고 추억도 남기자는 상팡씨 권유에 흔들려 마음을 바꾸지만 말이다. 만약, 끝까지 거절했다면? 미수다에 손요씨는 보이지 않았을거고, 많은 한국인이 손요씨를 알지도 못했겠지. 아, 상팡씨는 뭐하시는지 궁금ㅋㅋ

 

5.

 

미수다에서 한국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손요씨를 보며, '어릴 때부터 한국어를 접했나? 혹시 부모님 한 분이 한국분?' 이런 의심까지 했었다. 의식하지 않으면 중국인이란 걸 거의 모를 정도였으니. 그런데 손요씨가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정말 치열하게 공부를 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하나 소개하자면, 손요씨는 주변 간판을 보고 다음과 같은 계획(p.76)을 세운다. <1. 노트와 펜으로 길에 있는 모든 간판을 메모한다. 2. 도서관에 가서 [한중사전]으로 단어를 찾는다. 3. 단어를 모두 외운다.> 대단하다. 한국어 공부를 위해, 주변 간판까지 메모하고 다닌 열정이라니. 유창한 한국어 실력 뒤에는 손요씨의 엄청난 노력이 감추어져 있었다.

 

<손요, 서울에 물들다>는 손요씨의 좌충우돌 한국 적응기일 뿐 아니라, 열정이 가득한 20대의 성장기이다. 파트1에서 파트5까지 읽는 동안 조금씩 성장해 가는 손요씨의 모습을 확인하는 건, 또 다른 재미였다. 한국어가 서툴러 힘든 미용실 알바를 하던 유학생이, 어느새 한국어 말하기대회에서 입상할 정도의 실력이 되고, 교회 십자가를 보고는 놀라 뱀파이어 생각을 하던 유학생이, 누구보다도 한국문화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인재가 되다니. 한국에 대한 애정이 곳곳에 묻어있는 책을 보며, 그 어떤 한국인보다도 더 큰 애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그리고 고맙다. <손요, 서울에 물들다>는 미수다 손요씨의 색다른 매력과 열정을 느끼게 해주는 유쾌한 책이고,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이들, 특히 대학 새내기, 유학준비생들에겐, 희망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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