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이 고전인 건 구조적 법칙에 따라서도 아니고 

어떤 정의에 부합하기 때문도 아니다. (정의가 있다 한들, 저자가 그 정의를 알았을 리도 없다). 

고전이 고전인 건, 그것이 갖는 영원하며 무책임한 신선함 덕분이다."


파운드의 말 중에선 

"문학, 그것은 영원한 뉴스 (낡지 않는 뉴스. 언제나 뉴스인 뉴스). 

literature is news that stays news." 이게 정말 최고긴 하다. 미쳤을 정도로 최고지 않나. 

실제로 그가 미치기도 했지만....;;; 하여튼, 저 말은 정말, 그 자신이 news that stays news. 


고전에 대한 위의 말은, 

irrepressible 이 단어가 내가 읽었던 것에선 "irresponsible" 이었음을 (그래서 ??!! 임을) 잠시 밀쳐두면 

아니 "억누를 수 없는"이든 "무책임한"이든, 어느 쪽이로든, 이 말도 최고. 영원한 신선함. 무책임한 신선함. 흐으. 


미국에서 시비평의 빅네임 Marjorie Perloff는 

무리한다 싶을만큼 파운드를 열렬히 옹호하기도 했었다. 

파시즘, 반유태주의... 등등, 그가 지은 죄들이 죄이고 그가 지은 게 맞지만 

하지만 그의 시대 수많은 이들이 지었던 같은 죄 안에서 악랄함을 따진다면 그는 가장 바닥에 있고, 가장 온순하거나 어쨌든 순진하다. 심지어 어떤 지점에선, 그의 죄는 그가 가졌던 이상과 공명한다. 그리고 그 모두를 다 떠나더라도, 어쨌든 그는 가장 위대한 시인만이 할 수 있을 수준에서, 시의 역할과 미래를 구상했고 꿈꾸었고 실천했다. 


나는 마조리 펄로프가 쓴 글들을 읽으면서 반한 적도 없고 

(내가 읽은 건, 뭐 그리 대단치 않았다) 하여튼 그녀 편이 아님에도 

그럼에도 그녀가 진심 열렬히 파운드를 옹호하는 걸 듣고 있다가, 파운드의 옹호자가 저 정도라면 알것같다 파운드가 얼마나 뛰어난 시인인지. 이런 옹호를 받는다면 그것이 그 자체로 그의 삶이 잘 산 삶이라는 증거겠지. : 그러던 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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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혐오는 품위있을 뿐 아니라 영예롭기도 한 것이라고 결정하자. 

남성혐오주의자가 되려면, 상당한 창의성, 독창성, 탄력성이 필요하다. 

여성혐오주의자가 되는 데엔, 그 중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다." 


서재에 포스트 쓰기 전에, 쓰려는 그 주제론 누가 어떤 유명한 말을 했을까 구글 검색해보는 게 

얼마 전부터 습관인데, 조금 전 여혐, 남혐으로 찾으려던 게 아니라 "대화"로 찾던 중 어쩌다보니 조애너 러스의 

위의 말을 발견. 아주 마음에 들었다. 진리 아닌가. 남성 혐오는 (적어도, 어떤 남성 혐오는) 지적인 작업. 반성의 결과. 정신의 시험 (정신이 통과한 시험). 그런가 하면 여성 혐오는 (모든 여성 혐오가) 지성의 청산, 반성의 실패, 정신의 무능. (.............) 까지는 아니겠지만, 그 방향의 경향성. 아니, 그렇지도 않더라도, 둘을 어떻게든 대비하고 싶어져서 해보았다. 






"대화"를 주제로 찾아진 말들 중에선 이게 가장 마음에 들었다. 

"아, 세상에 좋은 대화만한 게 어디 있으랴. 아이디어들의 공기, 그것만이 숨쉴 가치가 있는 공기다." 

이디스 워튼. 이름만 알고 있는 워튼 여사를, 저 한 마디 때문에 찾아 읽고 싶어지기까지. 그녀 소설에

"air of ideas" 바로 그 공기 숨쉬며 대화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면. 그런 거 좋지 않나? 아주 잘 쓴, 지식인들의 대화. 어쨌든 지적인 대화. 혹시 이디스 워튼, 여자 헨리 제임스인가. 그 비슷한 얘길 어디서 들은 것 같기도 하다. 


"노예제, 천연두, 아파르트하이트는 세상에서 사라졌다. 

세상에서 사라지게 하고 싶은 악에 대하여, 그게 무엇인지, 왜 사라져야 하는지, 어떻게 사라지게 할 건지 쓰라" : 이 작문 주제로 수업에서 토론했을 때, 우리말에 스며든 일본어의 잔재가 사라져야 하고 그건 우리의 의식에 끼치는 해악 때문이며 무엇이 그 잔재인지 밝히고 쓰지 않기로 하면 사라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고 답한 학생이 있었다. 


그와 아마 정반대 입장일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전부 의견을 말해보게 청했고 

다수가, 아니다 언어는 걍 냅두는 게 좋다 쪽이었다. 나는 냅두는 게 좋겠음 족으로 개인적인 예를 하나 들었다. 

'여자사람친구 남자사람친구, 여사친 남사친 이 말도 일본어에서 유입되었다고 하던데, 그런데 저 말들을 처음 들었을 때 아 이 말들이 한국어의 정확성을 조금이라도 높인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다, 이거 필요했던 표현이다.. 같은 생각 들던데? 아닙니까?' 히히. 흐흐. 맞다고. 맞아요. 그러는 학생들 반응 앞에서 


하여튼, 열심히 공부하고 정직하게 그리고 지치지 않으며 살아야겠다. 다짐. 

(뜻밖에 끝을 내기 어려운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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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 사후 

레너드 울프가 그녀의 방대한 일기에서 발췌 편집하여 1권으로 A Writer's Diary가 나왔고 (위)

울프 연구자들도 이걸로도 많이들 인용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전부 5권으로 나온 The Diary of Virginia Woolf 이것이 그녀 일기의 진경 (진짜 경제학이다...... 아 아닙니다). 나는 무수히 무진장 놀라면서 읽었다. 무슨 일기가 이렇게 고퀄이야. 누가 이런 걸 일기로(일기에) 써. "천재는 낭비한다"던 니체는 진정 옳았어. 


강인한 섬세함. 울프 자신 그런 감수성이겠지만, 다른 작가들에게서도 같은 면모에 반했음을 알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재능 혹은 에너지를 말할 때 "얼음"과 비교하기. 1920년의 일기에서, "그것은 무력감이다. 얼음을 자르지 못한다는. It's a feeling of impotence; of cutting no ice." 쪽수를 적어두지 않아서 지금 원문 찾지는 못하는데, 누군가의 재능에 대해 "그가 가진 것 같은 재능은 꽉 잡는다. 그것은 하고자 하면 얼음을 자른다." "얼음을 자르는 철사의 힘, 그에게 그 힘이 있다." 





Les belles lettres에서 바슐라르 책. 바슐라르의 시학을 논의하는 장에, "집(거주)"의 주제에 대해 하이데거와 비교하는 긴 대목이 등장한다. 바슐라르와 하이데거는 같은 주제에, 같은 문제의식에서 그러나 아주 다르게 생각하고 썼던 두 사람일 거라고 나만 알아본 줄 알았는데 (영어권 연구자들 중 이에 대해 쓴 사람은, 없다), 아니었고 둘을 비교한다면 해야할 중요한 얘기는 이미 이 책에서 다 나오고 있을 것 같다는 실망 + 신기함 속에 한 줄 한 줄 보고 있는 중. 


모르는 단어는 모두 사전 찾고, 구문을 이해 못하겠으면 구글 번역도 동원하고 

그렇게 해독한다 해도, 아주 간명한 문장들 제외하면 이 문장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무슨 말을 

하고 있지 않은지, 온전히 확신하지는 못하면서 보는 것이고 그러고 있다 보니 "얼음을 자르는 철사의 힘" 이것이 

텍스트 해독(독해) 차원에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무엇이라는 생각이 듬. 정말 쉬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이렇게 슉슉 자르는 이해를 해야 하는데 말이다. 


불어 공부하겠다고 사들인 책들이 사실 많아서..... (동사만 따로 다룬 책도 있고 등등) 

필요한 건 시간. 시간인데, 페이퍼는 언제 쓰고 ㅜㅜ 정규직, 정규직은 언제 되긴 할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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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6-12-18 0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집을 구성하는 유별난 상상 구조에 있어서 가스통 바슐라르는 다락과 지하실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송두리째 지상단층뿐인 집ㅡ아파트도 결국은 그와 마찬가지지만ㅡ에는 매우 중요한 한 가지 차원이 결여되어 있다. 걸어올라가고 그에 맞먹도록 걸어내려오는 행위로 이루어진 수직적 차원이 빠져 있는 것이다. 이 수직적 차원을 물적으로 실현해놓는 것이 바로 계단이다.
ㅡ미셸 투르니에 <짧은 글 긴 침묵> 중에서 [계단의 정신]
투르니에도 공간에 대한 많은 에세이를 남겼죠. 참고로 투르니에도 바슐라르를 매우 존경했습니다.

몰리 2016-12-18 04:52   좋아요 1 | URL
맞아요! <생각의 거울>(<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 <흡혈귀의 비상>에도
바슐라르를 인용하고 논의하는 (아니면 어쨌든, 강력히 연상시키는) 대목이 있지 않나요. <생각의 거울>은 오래 전에 봤던 책인데, 그런 대목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흡혈귀의 비상>은 실제로 본 적은 없는 책이지만요. 그의 출세작 <방드르디>에도, 바슐라르의 영향으로 볼 대목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바슐라르가 없었다 해도 투르니에 혼자서 했을 생각이고 상상이라 하더라도, 그런데 바슐라르는 있었고 그는 바슐라르를 읽었으며 그래서 그의 이 책은 그 면면이 바슐라르의 사유, 문장과 공명하고 대화하면서 쓰여진 책. 이라고 (저 혼자, 멋대로) 생각합니다.

<공간의 시학>에 다락방과 지하실에 대해
정말 늠늠 좋은 문장들이 있지요. ˝오직 철학자들만이 1층에 살도록 처단되는 것일까.˝ 하나의 단어에도, 다락방의 의미와 지하실의 의미와 1층의 의미가 있는데, 1층의 의미 외의 의미를 배제하려는 철학자들을 향해, 저런 문장으로 질타하시기도 하고. 어떻게 이런 문장들로 이런 책을 썼을까. 참 경이로운 책.
 

















bbc radio3에서 하는 팟캐스트 중 Arts and Ideas가 있는데 

며칠 전 업로드 주제가 "A Brexit Reading List"였다. 시작할 때 

최초의 "포스트-브렉시트" 소설이라는 알리 스미스의 위의 소설 (올해 8월 출간)에서 인용한다. 


All across the country, people felt it was the wrong thing. 

All across the country, people felt it was the right thing. 

All across the country, people felt they really lost. 

All across the country, people felt they really won. 

All across the country, people felt history hit their shoulder. 

All across the country, people felt history meant nothing.


나라 어디서든, 사람들은 그게 틀렸다고 느꼈다. 

나라 어디서든, 사람들은 그게 옳다고 느꼈다. 

나라 어디서든, 사람들은 이제 졌다고 느꼈다. 

나라 어디서든, 사람들은 이제 이겼다고 느꼈다. 

나라 어디서든, 사람들은 역사가 그들의 어깨를 두드렸다고 느꼈다. 

나라 어디서든, 사람들은 역사엔 아무 의미도 없다고 느꼈다. 


더 이상 단순할 수 없는 이런 문장들도 

곳곳에서 번역의 문제를 제기한단 생각이 새삼스럽게도 든다. 역시 번역은 정말, 심오하고 중대한 일. 

그냥 아무렇게나 하는 (나같은) 사람이 있고, 예술이자 과학이게 한 사람들이 있고. 


나는 특히 끝의 두 문장에서, 이게 바로 최근의 내 심정.... 이라며 격하게 공감했다. 

역사가 어깨를 두드리는데, 하지만 아무 의미도 없을 것 같은. 무의미라는 게, 사건들이 향하는 경로나 방향이 없을 것이다의 무의미가 아니라 혹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같은 것도 아니고, 역사 vs. 개인의 구도면 개인은 순간 소실점을 향해 질주한다 같은 무의미. (털썩). 그를 끌어다 어떻게 도로 출발선에 세울 것이냐. 


저 문장들에 탄복했고 

현역 작가들을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하였습니다. 


출연자들이 제안한 "브렉시트 이후 읽을 책들"엔 다음의 것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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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 얘기 쓰고 나니 

<식스핏언더>에서 그 명대사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1시즌에서 고3인 클레어. 아주 우등생은 아니지만 대학 가려고 공부 조금 시작하려는 클레어가 

가브리엘을 만나고 공부를 등한시하게 됨. 클레어가 몰고 다니는 차, 피셔네 장의사에서 쓰던 장의차에서 

클레어와 가브리엘이 처음 섹스를 하게 되는데 클레어가 가브리엘의 발가락에 집착한다. 그랬다는 게 

가브리엘에 의해 전교에 소문이 남. 모두가 그렇다고 알면서 클레어를 놀리는 가운데, 클레어 차는 낙서도 당함. 

Foot Slut. Toe Sucker. 


그 사실을 놓고 놀리는 남학생에게 클레어가 하던 말: 

야 너 너랑 잤던 파커 맥케나에게 듣자니 

고환이 땅콩만 하다면서? 그것도 하나라면서? 


으 이거 최곱니다. 실제 장면으로 봐야 하는데 

유튜브에서 찾아지지 않는 이걸, 디비디에서 캡처하는 법을 아직도 몰라 (디비디가 오래 전 거라서 안되는 것일 수도) 

올리지는 못하지만 하여튼 최고에요. 그냥 말로 적어선 역부족. 클레어의, fuck you all 정신. 자길 놀리는 남학생만을 향하는 게 아니라 세계를 향해. 조롱하고 반짝이며 맑은 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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