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인 세대는 1970년대생으로 분석됐다. 대표적 민주화 세대인 ‘86세대(1960년대생)’는 물론 1980년대 이후 태어난 밀레니엄세대보다도 더 진보적이었다. 특히 1970~1974년생은 86세대와 달리 나이가 들어도 거의 보수화되지 않았다.

원문보기: 
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612121745001&code=920100&med_id=khan&rccode=lvRc#csidx8a1715498d6603d885a271d1fbf1c3a 



이 기사 보면서 

저 세대에 속하는 1인으로서 

음 그래. 비결이 뭔지 말해줄까? 


비결의 일부로 생각난 게 송골매의 저 노래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시절, 하늘 쨍하던 겨울 오후의 학교 운동장 생각나는 노래. 

송골매가 송씨 사람 이름이냐 아니냐. 구창모는 그룹사운드 이름이냐 아니냐. 

그런 걸로 싸우던 운동장. 이 노래도 그 시절 초딩의 가슴을 쳤지만 "어쩌다 마주친 그대" 이것도. 


산울림도 알았고 따라 불렀고, 대학가요제는 삼촌, 고모들과 같이 보았고 (즐겼고?) 

중학교 가면 아하, 듀란듀란, 마이클 잭슨. 하여튼 "팝송". 전두환 노태우 정권 시절엔 오히려 어떤 면에선 적극적으로 방목되었던 세대. 그렇지 않나.  


어쨌든 나는 저 세대의 초등, 혹은 중학교 1-2학년일 시절

특히 송골매, 김수철(못다 핀 꽃 한송이), 이 사람들이 한 일이 뭔가 있는 것 같다. 

그들이, 내면 있는 개인주의자가 되게 하는 데. 


아니라면, 아닐 수도요. ;; 

그래도 저 세대가 또 "부머" 세대니, 아마 거의 똑같은 기억 가진 사람들도 부지기수. 

똑같은 기억 가진 누군가를 보는 것 같아지면서, 이제 자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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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광화문 마지막 유세던가,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그의 연설 들었는데 들으면서 놀라고 

그 후 잊혀지지 않은 게 연설에 등장했던 The West Wing. 청와대를 떠나 

대통령 집무실을 정부청사로 옮기겠다면서. 미국 드라마 웨스트 윙에서 대통령과 참모진이 일하듯 

일하겠다고. 


그는 "친미주의자"처럼 말하지 않았고 (어쨌든, 미국의 무엇을 좋다고 좋아한다 말하면서 

이 정도는 안전하리라.. 하는 게으른 태도는 아니었고), 대강 이게 (소통하고 민주적인 대통령으로 모두가 아는) 

좋은 예겠거니 노력없이 지르고 보겠다.... 도 아니었다. 실제로 그 드라마를 보았고 어떤 면을 좋아했지만 그러나 주로 비판적인 입장인 사람이, '예를 든다면 그걸 생각해... 그게 최선의 예는 아니지만' 정도로 언급한다고 나는 느꼈고 


바로 그 순간 그에게 반했달까 ; 

한국에 저 정도로, 특히 저 나이 남자라면

자기 말을 거의 단어 수준에서 '반성'하면서 말하는 사람. 드물지 않나? 같은 생각도 했던 것 같다. 


*My work here is done. 

이 말은 문재인이 민주당에게

아주 강력한 의미로 할 수 있는 말이다.. 고 생각하다가 쓰기 시작한 포스트. 

음 술이 취;해가니 자세한 얘기는 우리 나중에 하도록 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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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화에서 가장 자주 반복된 대사는 Let's get out of here. 라는데 

영화와 드라마에서 반복된 대사 top 10 안엔 못 들더라도 top 30 안엔 들 것 같은 대사로 이것 꼽아 보겠다. 

My work is done. (My work here is done). 


저 말이 한국에서도 밈이 될 수는 없겠는데 

그건, 개인이 어떤 조직에 혹은 상황에 개인으로서 (그만의 능력, 그만의 개성으로) 기여한다. 

이런 이해, 관점이 거의 없기 때문. 심지어는 상부에 있는 인간들도, 그들이 하는 기여나 그들이 남길 유산 같은 게 

희생이고 "갈아넣는" 무엇으로 여겨지기 때문. 탁월한 기여를 하고 유산을 남긴 인물이 있다면 그는 예외적인 인물로 

미화되고, 그보다 정도는 덜하더라도 비슷하게,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래도 어딘가 누군가엔 흔적을 남긴,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같은 인식 없기 때문. : 이런 생각 하면서 장을 보고 장을 보는 김에 맥주도 사고 맥주를 샀으니 마시고 있는 중이다. 


아니 진정 조직 생활을 해보긴 했는지. 조잘알;; 쩔어요. 

(아 실제 조잘알 그렇다는 게 아니라 혹 완전히 잘못 알고 있을 가능성......) 


긴 세월 학생으로, 이어 여러 형태; 비정규직으로 학교에만 있어보았으나 그렇다고 (그렇다면) 조알못 까진 아니겠으니

저런 의견 가져보겠다. 


학부 시절 수업에서 몇 번, 아도르노 등이 했던 이성비판, 근대성 비판은 

한국에서는 의미가 없는 게, 여기서 무엇보다 필요한 건 이성의 힘이고 근대가 여기 온 적은 사실 없기 때문. 이런 얘기 들었었다. 그런 줄 알고 있다가 긴 세월 뒤 대학원에서 아도르노 직접 읽고 느꼈던 놀라움이 뭐냐면, 그의 사상 거의 전모가 서구보다 오히려 여기서 더 적실하다는 것이었으므. 개인의 소멸(청산). 사고의 금지(폐지). 이런 것들이 서구에선 징후, 경향으로나 존재했고 존재하지만 한국에선 유구하고 생생한 현실. (이라고 쓰고 보니, 아우슈비츠 이것만으로도 저와 같이 말할 수는 없겠단 생각도 든다. 그러나 어쨌든, 20세기의 "미국"으로 한정한다면 한국에서 모두가 겪는 바의 개인의 부정.. 이런 건 일어나지 않았. 다고도 말하긴 어렵겠는게 유색인종과 성소수자 등을 생각한다면. ㅜㅜ 아 이 점과 관련해 조금 더 정확히 말해보는 일은, 다음 포스트로..........) 


그래도 "my work here is done." 이 짧은 문장 속에서 

좋은 유산이 지켜지고 있다고 생각하겠다. 그게, 우리는 아직 시작도 못한 무엇이라고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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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는 악은 낭만적이고 다채롭다. 

실제의 악은 음울하고 단조롭고 불모이고 지루하다. 

상상하는 선은 지루하다. 실제의 선은 언제나 새롭고 

경이롭고 우리를 도취시킨다." 


이 말 참 심오하다 생각한다. 

그런데 완전히 동의하기 어려운 한 지점은, 실제의 악이 "지루하다". 

실제의 악이 행사하는 음울하고 저급한 종류의 스릴, 흥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루한 악도 있고 반면 음울(암울)하고 저급해서 그렇지 그 나름의 흥분을 자극하는 악도 있지 않나 함. 





"우리가 그에 장악될 때, 악은 악으로 느껴지지 않고 

어떤 필연으로, 심지어 어떤 의무로 느껴진다." 베이유의 이 다른 문장이 말하는 바엔 

바로 그것도 있지 않나. 어떤 필연이고 의무라서, 그래서 악에도 순교자(martyr)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순교의 흥분, 그런 것도 있을 수 있다는 것. <미니마 모랄리아> 67번 단장에서 "1933년 베를린에서 국가 사회주의 최초의 몇 달을 보았던 사람이면 누구도, 조작된 도취 -- 횃불 행진과 북소리 -- 에 동반했던, 죽음을 예고하는 슬픔의 순간을, 반쯤은 자각했던 나락으로의 자기-항복을, 모를 수 없었다." : 이런 문장도, 악이 악으로 느껴지지 않고 필연이며 의무로 느껴진다는 게 어떤 건지 전하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악행자들이 거의 예외없이 보여주는 당당함, 뻔뻔함을 설명하기도 하지 않나. 

그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누구라도 그랬다. 그게 최선이었다. 막을 수 없었다. 내가 해야 했다. 기타 등등. 


그런가 하면 "실제의 선은 언제나 새롭고 경이롭고 우리를 도취시킨다" 이 말에도 정말 큰 진실 있는 것 같다. 

이 말을 기억하고 이 말이 전하는 진실을 따르기만 해도 막을 수 있는 수많은 재난들이, 있을 것이다. 막지 못했던 

재난은 어쩔 수 없지만, 막을 수 있을 재난들을 생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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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 교육의 목표가

신념의 주입에 있었던 적은 없다. 신념을 형성하는 능력의 파괴가 그것의 목표였다." 


어제 그알 조금 전 보고 나서 

나름 여러 번 읽고 생각했지만 온전히는 이해하기 힘들었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이에 대해 

구글에서 찾아지는 인용들은 무엇이 있을까 검색해 봄. 이것저것 보다가, 위의 말 옮겨 온다. 역사 국정교과서는 

신념의 주입을 목표로 했던 건가, 신념을 형성하는 능력의 파괴를 목표로 했던 건가. 신념 형성 능력이 무화된 다음 

들어서는 (그 다음에만 주입할 수 있는), 유사 신념. 그런 것도 있나. 악행자들, 그들은 무엇을 믿는가. 저렇게 말할 때 "믿는다(믿음)"은 무엇인가. 


일반적인 범위에서는 "악의 평범성"이 지탱되지만 

그 범위 바깥에서는 (아이히만, 박정희, 박근혜, 이명박 등등등) 전혀 아니지 않나. 

악이 비범해지지 않나. 악행자들이 즐기는 (그들에게나 허락될, 특별한) 도취. 계획, 실행의 면면에서. 

하여튼, 알고 즐기며 행하지 않나. 


그 바깥을 한번이라도 직접 체험한 사람이면 

아렌트의 이해가 어디선가 물러서고, 어쨌든 크게 미흡하다고 느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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