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다 읽고 덮었는데 아침에 눈이 내리고 있다. 차가운 눈. 작고 야무진 눈송이들은 빠르게 내린다. 어젯밤 내가 읽은 사연들과는 또다른 2018년의 눈.

 

단편집을 순서없이 읽었는데 그래도 마지막 작품을 제일 나중에 읽어서 다행이다. 인물들이 연결되고 결혼식이나 회갑연 대신 장례식으로 사람들이 모인다. 드라마 마지막회 처럼 출생의 비밀과 인연의 끈들이 드러난다. 책소개글에서 말했듯 '뜨개질하는 것처럼 인물들이 연결'되는데 꾸민티가 나도 마음에 들었다. 작은 눈송이들, 작은 별들의 사연들. 완의 엄마와 안나가 만나지도, 장지에 나타나지도 않아서 좋다. 어디선가 흔들리며 내려가는 두 눈송이로 상상해보고 싶다.

 

세번째 만나는 은희경 작가의 책이다. '태연한 인생'은 힘빼고 너무 편하게 쓴 소설이 아닌가 싶었고 '러시아 룰렛'은 세련되고 똑똑한 이야기였다. 역주행으로 만난 이번 책 '눈송이'는 더 촘촘하고 더 이야기 뜨개질 코가 보이도록 따뜻하게 인물들을 엮어놓았다. 매 단편 조마조마 어떤 일이 터질까, 긴장했고 답답할 만큼 소극적인, 혹은 멍충한 인물이 나오지만 그들이 나름의 속도로 그 사건을 견뎌내서 마음에 든다. 여자들이 험하게 죽거나 다치는 장면이 없어서 좋았다. 그 뻔하고 쉬운 폭력 말고 다른 방법으로 이야기를 떠나간 작가에게 고맙다. '가장 추운 날들이 이어'지는 올 겨울, 이 한 권의 눈송이 같은 책을 만나서 위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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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8-01-13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은희경 작가의 새의 선물 하나 읽었는데 글을 참 잘 쓴다고 생각했어요. 유부만두 님이 세련되고 똑똑한 이야기라고 칭찬한 책 읽어보고 싶어요. ㅎㅎㅎㅎ 이 책은 정말로 제목 기억하기 어렵다는요. ㅎㅎㅎㅎ

유부만두 2018-01-14 09:39   좋아요 0 | URL
전 은희경 작가 책을 몇 년 전에야 처음 읽기 시작했어요. 선입견을 갖고 있었거든요. 반성합니다. 읽어보지 않은 책은 모르는 거죠.

어려운 제목이죠? 하지만 가만 읽어보면 잘 어울리는 제목이에요. 숱하게 많은 눈송이들중에서 그 하나의 눈송이니까요.

책읽는나무 2018-01-13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희경 작가의 책도 안읽은지가 참 오래구나!!생각했어요.
오랜만에 읽어보고 싶은^^
제목 어렵지만......책표지는 참 깔끔하네요^^

유부만두 2018-01-14 09:39   좋아요 0 | URL
다들 은희경 작가는 예전에 읽으셨군요! 오랜만에 만나시면 더 특별한 눈송이 독서가 될 거에요. ^^
 

제목을 외우기 어려운 단편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읽었다. 책에 수록된 여섯 편 중 뒷쪽에 실린 두 편을 골라 읽고 그만 덮어야지, 했다가 표제작인 이 '눈송이' 단편을 그래도 읽어볼까, 하는 마음에. 그리고 내처 '스페인 도둑'도 읽었다. 표제작의 힘. 여전히 소심하고 외로운 등장인물들. '스페인 도둑'에는 처음으로 속을 들여다볼만한 청년 '완'이 나온다. 그는 어쩌면 '프랑스어 초급과정'의 그녀가 신도시에서 낳은 아들일지도 모른다. 완이 겪은 미국 유학 생활 경험을 어느정도 공감했고, 그 이사 과정의 풍광이 어떤지 상상할 수 있었다. 완과 소영의 재회 혹은 엇갈림, 그리고 막연한 저 멀리 상상 속의 스페인. 여기, 이 신도시, 혹은 서울도 나에게는 낯설고 남의 땅 같다. 남은 두 편도 마저 읽어야겠다. 이상하게 낯익은 오늘의 기온, 약속을 취소하고 어제 불려 놓았던 보리굴비를 쪘다. 환기도 못할 날씨에 쿰쿰한 냄새가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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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8-01-12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희경 좋아했는데 안읽은지 한참 되었네. 그건 그렇고... 보리굴비가 뭐야? 구어먹지 않고 쪄먹어야하는거야? 아흑 맛보고 싶다. 생선먹어본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나는데. 나는 뭘로 반격하지? 흑

라로 2018-01-12 16:14   좋아요 0 | URL
아흑, 저도 보리굴비라는 것은 먹어 본 적도 없어요,,,보리랑 함께 찌는 걸까요???
암튼 프님은 담에 만나면 제가 고등어 조림이라도 쏠께요!!! 기운내요~~~.ㅎㅎㅎㅎㅎ

유부만두 2018-01-13 08:54   좋아요 0 | URL
굴비를 보리쌀 통에 넣어 숙성시킨 게 보리굴비에요. 굴비보다 더 짜고 더 딱딱해요. 요즘엔 그냥 굴비보다 보리굴비를 더 많이 팔더라구요. 더 비싸서 그런가? ..
하루 불리고 찌는데 냄새가 ..ㅎㅎㅎ... 그래도 맛있어요. 딱딱하고 짭쪼름해서 냉녹차에 만 밥이랑 먹어요. 황석영 작가의 ‘여울물 소리‘에도 보리굴비 먹는 장면이 나와요. 전에 광주 여행갔을 때 그곳 한정식 집에서 제일 나중 코스로 나오더라고요. 오차스케랑은 다른데 깔끔하고 맛있...(추릅) ... 이건 반격이 어려우십니다.
 

 

맨부커 수상작 Lincoln in the Bardo 를 읽기 시작했다. 티벳 불교에서 죽은이들이 환생과 진짜 죽음 사이에서 머무는 공간이 'Bardo'라고 한다. '연옥'과 비슷한 이 특별한 공간에 오랫동안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적어도 독자에게 자기 소개를 그렇게 하지는 않으면서) 머물러있다. 백 명이 넘는 인물들이 쉴 새 없이 떠들고, 한 편에선 링컨 대통령 시기의 기록들을 배치해서 기록들과 주변 인물들이 엇갈려 쏟아지는 느낌이다.

 

링컨의 아들, 그가 아끼고 사랑한 아이 윌리가 죽었다. 껑충한 키의 어색한 몸짓의 대통령이 모든 관례를 무시하고 장례 후 아이의 무덤에 찾아와 이미 식어버린 아이의 몸을 꺼내서 품에 안는다. 그가 우는 모습을 주위의 '인물들'이 보고 '이런 적은 없는데....이미 상자에 담긴 우리를 이렇게 찾아와서 따뜻하게 안고 슬퍼하는 사람은 없었지'라며 놀란다. 나 역시 그랬다. Bardo의 링컨 쥬니어는 아직 천사를 따라가지 않았다. 선배들이 하는 '이제 갈 길 가야지' 라는 조언을 듣지만 윌리는 아버지를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 '신과 함께'에서 김자홍이 어머니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싶다고 하던 장면이 생각난다. 죽은 사람들은 늘 못 다한 말이 있다. 자, 링컨의 아들 윌리가 아버지를 다시 만나서 말을 할 수 있을까? ... 이제 1/4 읽었을 뿐인데 책이 어려워서 조금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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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하나 둘 씩 떨어지는 눈송이에 날씨를 '눈'으로 적기는 애매했는데 밤새 눈이 더 내려 쌓여있었다. 날씨 연관 소설 읽기, 로 은희경의 단편집.

 

'프랑스어 초급 과정' '독일 아이들만 아는 이야기' 읽었다. 겁이 많고 소심한 여자 주인공들, 자신과 가족들 사이에 생겨난 삐걱거림을 가만히 쳐다보다 일어선다. 별일이 더 생기지 않기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따라갔다. 상투적인 상황이나 사고로 이어질 뻔할 때, 소설은 끝난다. 그래서요? 어떻게 된거에요? 제목이 주는 인상과 아주 다른 이야기, 그러나 흔하게 내 옆과 내 안에서 생기는 이야기. 공격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덤덤하게 상처 받는 마음들. 세 번 째 읽는 은희경 작가의 책. 능숙한 작가의 세련된 말솜씨에 이끌려 가며 읽는다. 꾸민듯이 깔끔한 소설.

 

알라딘에서 새해선물을 받았다. 컵도 다이어리도 마음에 든다. 자, 이제 새해 결심을 적어봐야지. 작심사흘씩 세 번이 지났으니 연습도 충분했다.

 

* 매일 아침 서재글을 하나씩 올린다.

* 매일 단편 1편 이상, 혹은 책 1권씩 읽는다.

* 다이어리에 매일 3문장을 적는다.

* 막내 공부를 매일 돕는다.

* 책장 정리를 한다. 올해 덜 사고 더 내놓겠다. (어제까지 6권 샀고 2권 선물로, 18권 중고로 보냈음.)

* 매일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보고 계시죠? 라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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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1-10 0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누가 뭐 맛있게 먹고 재미있게 사는 거 보는 게 너무 좋아요. 그런점에서 좋아요 하나 드렸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18-01-10 08:17   좋아요 0 | URL
그 좋아요, 감사히 받겠습니다! 맛있는 거 먹고 재밌는 책 많이 읽을겁니다. 올해.
그런데 다이어트나 운동, 이런건 새해 결심에서 뺐어요. 지난 9일간 그걸 다시 확인했죠. ㅎㅎ

2018-01-10 0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유부만두 2018-01-10 12:58   좋아요 0 | URL
오늘부터 하면 되지롱~~~ 아직 우리에겐 356일이 남았다구!

psyche 2018-01-10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일 유부만두 서재는 저녁 먹은 후에 들어오는 걸로..
새해 결심같은거 안한지 오래였는데 유부만두의 결심를 보니 나도 할까 하는 생각이 드네. 뭔가 좀 열심히 살아야지 하는 반성만 맨날 ㅜㅜ

유부만두 2018-01-10 12:59   좋아요 0 | URL
그런데 서재글 올리기와 3문장 적기 말고는 거의 예전의 계획과 비슷해요. ㅎㅎㅎ
너무 크고 어려운 계획은 세우지 않기로 했어요. 매일 조금씩.
언니, 호떡으로 반격하시는 거에요?!?!

psyche 2018-01-10 13:33   좋아요 0 | URL
유부만두가 올린줄 모르고 올렸던건데 앞으로 계속 반격을! ㅎㅎ

라로 2018-01-10 16:03   좋아요 0 | URL
제말이요. ㅎㅎㅎㅎ

라로 2018-01-10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근 보고 있지요!!! ㅎㅎㅎㅎ

저는 이 글이 염장을 지르는 것에도 불구하고 넘 사랑스러운!!!
우선 제가 너무 좋아하는 유부만두 님의 글을 매일 볼 수 있다는 것!!! 저 뿅~~~갑니다, 유부만두 님 글에!!! ㅎㅎㅎㅎ
그리고 유부만두 님 막내는 너무 좋겠다요. 지성인, 엘리트인 엄마가 공부를 매일 돕는다니!!!!!!! 우리 해든이도 보내고 싶어요. 유부만두 님 댁으로 유학~~~~ ㅠㅠ
막내 아들 너무 부럽네!!!! 좋겠다 막내는. 전생에 뭘 구했기에 유부만두 님을 엄마로 해서 태어났을꼬!!!!

유부만두 2018-01-11 09:30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 이런 무지막지한 근거없는 칭찬은 ....
왜이러시는겁니까?! 김치전을 보내드리겠습니다! ㅎㅎㅎ

우리 막둥이가 하도 공부를 안해서 엄마가 끼고 가르쳐 볼라고 새해결심을 했어요.
어제도 영어 숙제를 하면서 (학원 안다니고 학습지만 겨우 합니다) 엄마, ‘알다가 뭐야? ‘ ‘노우‘ .... ‘뭐?! 그건 아니라는 거쟎아!‘ ..하하하하 Know 를 아직 크노우로 읽더라는 겁니다. ㅜ ㅜ

비연 2018-01-11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맛있어 보입니다.... 점심 먹고 왔는데.. 사실 국수가 땡겼는데 말이죠.
메뉴에서 품절로 떠서 ..(ㅜ) 참치볶음밥 먹고 왔더니 마음부터 허합니다...

유부만두 2018-01-12 08:50   좋아요 0 | URL
국수보다는 밥이 더 든든할 것 같지만, 입맛이 땡기는 편이 더 마음도 속도 채워주나봐요. 오늘은 어제 보다 더 춥다는데 따뜻한 점심 챙겨 드시길 바랍니다.
 

스티븐 킹의 It에 이렇게 귀여운 장면도 나온다고 남편이 알려준다.
Seeya later, alligator. 하면 After awhile, crocodile. 하고 받는다.

우리말론 ‘천만의 말씀’에 ‘만만의 콩떡’으로 받는 거 같다니까, 그건 할머니들이나 하는 말장난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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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8-01-09 09: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eeya later, alligator! ㅎㅎ

유부만두 2018-01-09 10:17   좋아요 1 | URL
After awhile, crocodile!

라로 2018-01-09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분 왜이리 귀엽!!!

유부만두 2018-01-10 08:14   좋아요 0 | URL
원래 귀엽.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