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에 가서 두어 시간 막내를 기다려야 했다. 부모님 모두 외출하셔서 혼자 느긋하게 독서를 하려고 했는데, 조금 졸았다. 우리 아부지는 화초를 참 잘 기르신다. 문구점에서 파는 행운목 (연필 같이 생긴 것들)도 50센티 넘게 쑥쑥 키워주심. 그러나 당신 키는 ..... (이수근 정도 이심)
이렇게 예쁘게 노란 꽃도
손톱 크기의 분홍꽃들도 이렇게 귀엽게 달려있다. 예뻐서 물을 주고 싶었으나, 내가 손을 대면 다 죽어버리기 때문에 참았다. 아빠가 전화로 '화초 만지지 마라'고 하셨다.
들고 간 책은 황정은 작가의 '웃는 남자'였는데, (라로님 말씀처럼 저도 빅토르 위고 생각이 났지요) 김유정 문학상 수상 작품집이다. 황정은의 수상작은 예전에 읽었던 '디디의 우산' 뒷 이야기. 디디가 겪는 하찮은 세상과 비극이 문장에 묘사에 충분하게, 하지만 넘치지 않게 담겨 있었다. 읽으면서 나도 문장을 적어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건성으로 읽히지 않는 이야기. 디디와 디의 생활, 그리고 여소녀의 그 검은 복도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건조하다. 눈 앞의 저 푸릇푸릇한 화초들, 추운 날씨에 거실로 들여놓은 화분을 하나씩 바라보다가 황정은 소설 속 방, 거리, 그리고 세운상가는 얼마나 무채색인가 떠올렸다. 하지만 진공관은 뜨겁다. 손을 덴다. 미지근한 사물들 보다는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