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화성의 인류학자
화성의 인류학자 - 뇌신경과의사가 만난 일곱 명의 기묘한 환자들
올리버 색스 지음, 이은선 옮김 / 바다출판사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게 된 사연은 다소 독특하다. 지난 봄, 지인들과 '인생의 책'을 나눌 일이 있었는데, (엄밀히는 경매)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 민정언니가 가져온 책이었고, 나는 필사적으로 심지어는 원가보다 비싼 가격에 이 책을 데려왔다. 와인을 한 잔 마셨던 탓이라 변명하지는 않겠다. 하하! 그냥 그날의 분위기가 그랬다. 후회같은 건 하지 않아요, 책값이 얼마였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ㅋ

이 책은 뇌신경학자인 올리버색스가 그가 만났던 일곱명의 환자들에 대해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깨달은 걸 하나 고르라 하면 그것은 단연, 나의 무지함이다. 다양한 뇌신경 질환에 대해 '아 이런 병도 있구나'라고 깨달았다는 게 아니다. 그런 무지함이라면, 살면서 수도 없이 느끼는 것 아닌가.

물론 나는 다양한 뇌질환 등에도 굉장히 무지하다. 하지만 무지는 무관심을 낳고, 무관심은 폭력을 낳는다지. 나의 무지함은 스스로 나도 모르게 적용시켜 왔던 '정상'이라는 기준이 실은 얼마나 일방적인 것이며, 이 기준으로 누군가에게 정상이 될 것을 강요한다는 게 다분히 폭력적이라는 사실에 대한 것이다. 물론 그 사실을 몰랐던 게 아니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신체에 이상이 있어 정상의 범주에 들지 못하는 경우에까지 해당될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을 나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심봉사는 당연히 눈을 떠야 하고, 초원이는 자폐증을 고쳐야 행복한 거겠지, 심봉사로, 초원이로는 최상의 행복을 누릴 수 없겠지, 라는 사고 방식이 나도 모르는 새 나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시각장애인 버질은 눈을 뜨자마자 큰 혼란을 느끼고, 삶의 위협을 느끼기까지 한다. 저자는 시력회복이라는 선물이 저주로 탈바꿈했다는 표현을 쓴다. 나름 자신의 세계 안에서 질서와 규칙을 만들어 가며 살아오고 있던 그에게 갑자기 보게 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의 이전 세계의 파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정상이라는 기준을 우리 나름대로 만들며 제공하던 우리가 우리 기준으로 행복할 것을 강요해온 것이 그들의 불행의 가장 큰 원인이 아니었을까.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는 것, 그 모습 그대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 나가는 것, 하지만 역시나 쉽지만은 않은 문제이다. 그렇지만, 그 편협함을 스스로 일깨울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일은 내게 충분히 의미 있었다.

웬디, 웬디의 따뜻함으로 여기 등장하는 사람들의 다름을 마음 가득 받아들일 수 있을 거야, 재미있게 읽을 수 있길, 라고 언니는 책 앞에 메모를 해줬다. 하지만 나는 역시나 그들의 다름에 대해 편협한 한 사람인 것을. 언제쯤 나의 한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여전히 기약은 멀고 길은 막막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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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인류학자 - 뇌신경과의사가 만난 일곱 명의 기묘한 환자들
올리버 색스 지음, 이은선 옮김 / 바다출판사 / 2005년 10월
구판절판


I씨는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사고를 당하고 몇 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더라면 색맹을 '치료하려고' 모든 수단을 동원했겠지만 이제는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는 세상이 질서정연하고 완전하기 때문에 그런 제안 자체가 어리석고 불쾌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80쪽

우리는 가끔 의식과 도덕과 양심의 무게, 본분과 책임과 의무의 무게가 감당하기 힘들게 느껴질 때면 억제의 틀을 부수고 이성의 세게에서 탈출하고 싶어진다. 전두엽을 벗어나 휴일을 누리고, 감각과 충동으로 이루어진 디오니소스의 축제를 즐기고 싶어진다. 이것이 전두엽 과잉에 시달리며 억눌려 있는 문명인의 본능이다. 인간은 누구나 전두엽을 잊고 잠시 휴일을 즐겨야 한다. -112쪽

전두엽절제술과 절리술이라는 엄청난 사건은 1950년대에 자취를 감추었지만 이는 의학계의 반발로 보류된 것이 아니라 신경안정제라는 신종 도구가 개발된 덕분이었다. 신경안정제는 정신외과처럼 부작용이 없는 강력한 치료법이라고 선전되었다. 하지만 신경학적으로나 윤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정신외과와 신경안정제가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불편한 주제다. 신경안정제도 다량으로 복용하면 정신외과처럼 평안함을 유도하고 정신병 환자의 망상을 잠재울 수 있다. 하지만 신경안정제의 고요함은 죽음의 고요함과 비슷하다. 게다가 역설적으로 자연적인 해결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고 환자를 약물로 인한 질병 속에 평생 가두어 놓는다. -112쪽

그는 능숙한 손길로 동상을 꼼꼼히 더듬으며 전과 다르게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시각장애인이던 시절에 그가 얼마나 능숙하게 독립적으로 살았는지, 두 손으로 얼마나 쉽고 자연스럽게 세상을 경험했는지, 우리가 지금 얼마나 그를 몰아세우고 있는지를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우리는 그에게 손쉬운 방법을 버리고 어렵고 낯선 방식으로 세상을 인식하라고 요구하는 셈이었다. -202쪽

시각장애인도 나름대로 온전한 세계를 구축하고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완벽하다. 시각장애인을 무능하다거나 사회부적격자라고 여기고 시각장애를 문제로 생각해 그것을 고치려 드는 사람들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라는 것이다. -210쪽

프랑코는 자나 깨나 폰티토 생각뿐이었고 환영 속에서도 폰티토를 보았고 정말 살기 좋은 곳으로 묘사했지만 정작 돌아가겠다는 결심은 하지 않았다.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을까? 하지만 원래 향수의 중심에는 역설이 도사리고 있다. 향수는 이루지 못할 상상이고 실현되지 않을 때에만 존재할 수 있다. -247쪽

프로스트는 인간을 순간의 퇴적으로 간주했고, 순간의 기억은 이후 벌어진 일을 더 이상 통보받지 않으며 잼항아리처럼 완전 밀봉 상태로 머릿속 창고에 보관된다고 했다. -251쪽

나는 자폐증 화가 제시 파크를 찾아갔을 때 딸에게 엄청난 애정을 표현하는 부모님을 보고 가슴 뭉클한 적이 있었다.
"딸을 얼마나 아끼시는지 피부로 느껴지던데 따님도 부모님을 잘 따르나요?"
내가 물었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아이의 능력이 닿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 우리를 사랑하고 있을 겁니다."-302쪽

아스퍼거는 캐너보다 훨씬 분명하게 이런 가능성을 예견했다. 따라서 '고도의 능력'을 갖춘 자폐증 환자들은 아스퍼거증후군 환자라고 불린다.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을 밝히자면 다음과 같다.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들은 과거의 경험과 느낌, 심리상태를 이야기할 수 있지만 전형적인 자폐증 환자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 전형적인 자폐증 환자의 머릿속에는 우리가 들여다 볼 수 있는 창문이 없다. 하지만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들은 자의식이 있고 부분적이나마 자아성찰과 보고가 가능하다. -3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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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식한아가씨의반성록
    from 지극히 개인적인 2007-09-24 23:24 
    이 책을 읽게 된 사연은 다소 독특하다. 지난 봄, 지인들과 '인생의 책'을 나눌 일이 있었는데, (엄밀히는 경매)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 민정언니가 가져온 책이었고, 나는 필사적으로 심지어는 원가보다 비싼 가격에 이 책을 데려왔다. 와인을 한 잔 마셨던 탓이라 변명하지는 않겠다. 하하! 그냥 그날의 분위기가 그랬다. 후회같은 건 하지 않아요, 책값이 얼마였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ㅋ 이 책은 뇌신경학자인
 
 
 
모험소년
아다치 미츠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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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1학년 때 룸메이트 언니의 영향으로 처음 접하게 된 아다치 미츠루. 절제된 듯한 간결한 그림선 만큼이나 절제된 표현들, '억눌림'이 아닌, 분명하게 '표현'은 하되 간결할 줄 알았던 그 매력에 아다치 미츠루를 참 좋아했던 것 같다. 

당시에 읽었던 러프와 터치 이후로는 아다치 미츠루의 다른 작품들을 만나지 못했던 내게 알라딘 메인의 아다치 미츠루 신작 단편집 소식은 묘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러프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맘설레하던 시절을 기억하며 거침없이 구매를 클릭하고, 오늘 도착한 한무더기의 책들 중 가장 먼저 집어들었다.

총 7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모험 소년, 단편 중 하나의 이름을 따온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단편 리스트에 모험 소년이라는 작품은 없다. 단편집의 제목인 '모험소년'은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컨셉이다.

오늘을, '살아가며', 예전의 어느 한 때에 비한다면 지금은 다소 현실을, '알고있다고 믿는' 나처럼, 일단 몸과 나이는 '어른인' 사람들이, 우연한 계기로 과거를 떠올리고, 과거의 꿈을 떠올리며, 그 때의 자신을 만나게 된다는, 이 단편집속 작품의 설정들은 내가 아다치 미츠루의 배너를 알라딘에서 보고, 아다치미츠루의 작품을 읽던 그 대학 1,2학년  시절을 잠시나마 떠올렸던 그 마음만큼이나 아련하다. 철없고 순수하던 마음이 아련하다 못해 아찔하기까지 한 그 때를 떠올리는 마음은 마지막 작품인 '스케치북' 속의 남자가 10년 전 그 카페에서의 자신을 떠올리고는 앉아있기가 불편해져 이내 카페를 나설 수 밖에 없던 마음과 닮아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을 떠올리는 일이 내게 아찔하다는 것은 그 시절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가 철이 들었거나, 혹은 성숙했음을 전제로 이야기하는 것일텐데, 그 시절보다 내가 철이 들었다는 건 다소 슬픈 현실인지도 모르겠고, 철이 들었다는 것이 꼭 성숙함을 근거로 하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 실은 진짜 철이 들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각 단편 속 주인공들이 과거의 한 시기를 떠올림으로 현재 자신을 돌아보고 정제할 수 있었으며, 미래를 살아갈 따뜻한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처럼, 내가 살아왔던 과거도, 또한 앞으로 만들어갈 과거도 그런 따뜻한 에너지를 만들어줄 수 있는 그 무엇일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 만화처럼 간결하나 분명하게 새긴다. 

훈훈한 여운이 오래도록 남아 옆에 두고 가끔 꺼내보고 싶은 만화다. 몇년 후쯤 다시 이 만화를 읽을 땐, 이 만화를 처음 읽으며 가졌던 지금의 아련함도 함께 떠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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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09-01-30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거 읽었어요! 1월에~ 12월에 선물로 받은건데~ 단편이라서 좀 아쉬웠어요..하나의 주제로 묶은 건 괜찮았는데...오래 전에 보고 히데노리를 접한 이후 아다치 미츠루는 자연 스럽게 멀어졌는데...10년두 넘게 안접하다가 보니 괜찮네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었어요..
 
코드 훔치기 - 한 저널리스트의 21세기 산책
고종석 지음 / 마음산책 / 2000년 10월
품절


자유화의 물결 또는 재자본주의화의 물결은 옛 체제에 지쳐 있던 사람들에게 풍요와 행복을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이 지켜지지는 않았다. 흔히 '신자유주의'라는 경멸적 어휘로 불리는 미국 중심의 이 새로운 세계 체제는 많은 사람들을 주변부로 내몰고 있다. 개혁은 너무 느리거나 방향을 잘못 잡은 듯 싶고, 그래서 경기는 침체되고 실업자는 늘어나지만 옛 체제가 그런대로 쳐 놓았던 사회적 안전망은 거의 파괴된 상태다. <사회주의의 미래 中>-18쪽

개인주의는 고립주의가 아니다. 그래서 개인주의자는 은자가 아니다. 공심의 결여나 비사교성은 개인주의와 무관하다. 개인주의자는 개인주의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다른 개인과 연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중략)
존재하는 것은 개인주의라기보다는 개인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개인주의적 개인은 개인주의에 대한 각자의 개념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막스 슈티르너는 이기주의라는 말을 긍정적 맥락에서 사용한다. 그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이기주의자다. 이타주의자란 타인의 쾌락을 통해 자신의 쾌락을 추구하는 이기주의자일 뿐이다. <개인들의 시대 中>-30~32쪽

실천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태도는 순수 또는 순결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는 것일 것이다. 순수한 민족(피), 순결한 이념, 순수한 교리 따위에 대한 집착은 흔히 광신자들을 낳고 광신자들은 언제 어디서고 이단과 불순분자와 인민의 적과 민족의 원수를 발견해서 그들에게 성전을 선포하기 때문이다. 불순함에 대한 옹호가 필요한 것은 그래서다. 불순함을 옹호하는 정신은 너그러움을 옹호하고 실천하는 정신이다. 그것은 나와는 다른 사람과 더불어서 살겠다는 정신이고 우리 속에도 수많은 그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정신이다. 그것은 새로운 세기의 시대 정신이다. <우리와 그들 中>-40쪽

자크 아탈리는 지난해에 낸 저서 21세기 사전에서 지식인을 이렇게 정의했다. "세상의 광기를 자유롭게 관찰하는 사람, 확신시키기보다는 이해하려고 애쓰는 사람, 지배하기보다는 매혹하려고 애쓰는 사람, 순응주의에서 벗어난 사람, 세상이 잠든 밤에도 깨어 있는 사람, 눈먼 확신의 속죄양" (중략)
사르트르는 지식인에 대한 모든 비난은 "지식인이란 자기와 상관도 없는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라는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고 말한 뒤 바로 그것이야말로 지식인의 정확한 정의라고 되받았다. 지식인은 자기와 관계없는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다. 그 말을 바꾸면 지식인은 세상의 모든 일이 자신과 관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중략)
사르트르는 더 나아가 자신의 지적 영역에서 쌓은 명성을 남용(사르트르에게 이 남용이라는 말은 당연히 긍정적 의미로 사용된다)하여 기존의 사회와 정치권력을 비판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사르트르에 말하면 이 남용이야말로 지식인의 본질적인 부분이고, 어떤 체제, 어던 시대에도 지식인이 처할 수 밖에 없는 불편함을 설명해주는 개념이다. <지식인의 죽음, 지식인을 위한 변호 中>-59~61쪽

위대한 반대자로 불렸떤 미국 연방 대법원 판사 올리버 웬델 홈즈가 지적했듯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은 우리가 동의하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증오하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모색 中>-72쪽

그러나 스포츠가 지금처럼 실력 위주의 위계 기준과 숙련에 기초한 성공만을 찬미할 때 오직 기록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을 통해서 그릇된 사회 진보관을 제시할 때, 인간의 신체를 능률성과 생산성이라는 기술주의적 준거틀에 맞추어 바라보게 만들 때 소외된 사람들을 현실에서 도피시키는 보상 매커니즘으로 작용할 때, 상업주의를 숭배하며 국가와의 상징적 연결을 통해서 억압적 국가의 정당성을 재생산해낼 때, 그때 스포츠는 장-마리 브롬의 책 제목대로 '측정된 시간의 감옥'이 되고 말 것이다. <호모 스포르티부스 中>-125쪽

소설 장르의 개척자 가운데 한 사람인 프랑수아 라블레는 지금부터 5백년 전에 과학이 윤리에 의해 제어되어야 할 필요성을 '양심(자각,의식)이 없는 과학(앎)은 정신의 폐허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로 요약했다. <테크놀로지의 미래 中>-201쪽

민주주의의 세계적 확신은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라고도 불리고 더 멋지게는 '역사의 종언'이라고는 말로도 포장된다. 이런 종말의 선언은 복음인가? 드보레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에 따르면 경제가 정치를 대체해버린 이 새로은 보편적 민주주의의 질서보다 더 맹목적이고 위험한 유토피아는 없다. 왜냐하면 냉전의 종식은 우리를 '역사 이후' 시대의 평화로운 해안가로 인도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공화정을 위하여 中>-208쪽

전세계적으로 볼 때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유산은 그것이 교육이든 자연자원과 환경이든 우리가 앞세대에게서 물려받은 유산보다 양으로나 질로나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의 세대 또는 기성 세대가 미래의 세대 또는 새 세대에게 책임감을 지니고 있다면 그들은 지금의 성장에서 생기는 몫의 큰 부분을 떼어내 비축해 놓아야 한다. 다시 말해 현재의 세대들은 특히 선진국의 시민들은,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사회보장혜택을 줄여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세대 계약이 돼야 한다. 이것은 정부가 지금 세대의 이기주의에 맞서서 미래 세대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자신의 세대보다 미래 세대에 더 마음을 쓰는 것은 진화의 법칙이 가리키는 자연적 명령이기도 하다. <늙음과 젊음 中>-2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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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병역거부?
평화의 얼굴 - 총을 들지 않을 자유와 양심의 명령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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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식 교수의 평화의 얼굴은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으나, 당시 나의 도서 구매 정책 때문에 (2달간 구매 금지!) 선뜻 구매하지도 못하고 얼래벌래하다가 천원 할인 쿠폰도 놓쳐버렸다. 하지만 두달간 저 정책을 (어쨌든) 지켜준 나 자신에게는 스스로 매우 뿌듯함을 보내주고 있는 중이다. 흐흣- 그리고 천원 더 주고 산 이 책은, 그 천원이 절대 아깝지 않은 책이었다. 


김두식 교수의 쉽게, 말하듯 흐르듯 글쓰기는 이 책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된다. 누군가를 설득하는 글을 써야 한다면 그의 말투를 빌어오고 싶을 정도로 그의 말투는 정중하면서도 분명하다. 한껏 예의를 갖췄으며 모난 표현으로 상대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이 드물다. (사실 나는 나름 '상대'의 입장이 아니라 '같은' 입장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어 '상대'의 자리에 서보지 못했기에 '없다'라는 단언은 섣불리 못하겠다.)

하지만 그것이 논리까지 두리뭉실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는 정중하면서도 확실한 논리로 일단 그의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수긍할 수 밖에 없도록 자신의 글을 전개해 나간다. 특히 상대의 논리를 설명하며, 그 논리가 가진 한계를 짚고, 그것으로 다시 상대의 논리가 가진 모순을 지적하는 부분에서는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는지 모르겠다. 

소개가 늦었다. 이 책은 그가 오랜동안 관심을 갖고 연구해 온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에 대한 책이다. 그는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들에게 단순히 관용을 베풀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 전에 먼저 (그들이 대부분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이기에) 이단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정죄하는 데 앞장서 온 주류 기독교에 대한 비판 및 반성의 촉구를 선행한다. 그 역시 주류 기독교에 속한 자이기에 자신의 반성 또한 곁들인다. 그는 이러한 현상이 주류 기독교가 정치권들이 불편해할 만한 것들은 하지 않아 왔던 것과 주류 기독교에서 정의한 '이단'이라는 것을 사회 전체의 이단으로 규정해버리는 우리 사회의 몰지각성에 대해 지적한다. 기독교인으로서 무엇이 바른 것인지에 대한 사유하지 않음, 그리고 예수님의 평화의 명령을 몸소 실천하지는 못할 망정 그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모순에 대해 가감없이 지적한다. 또한 많은 기독교인들이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들 또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였으며, 이는 기독교 내에서도 역사가 오래된 일임을 설명한다. 

또한 정부와 국가에게는 그들이 무엇을 위해 남북대치를 하고 있으며, 무엇을 위해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는지의 근본적인 원인부터 되묻는다. 남북대치의 목적이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라면.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인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제한하는 행위가 진정 옳은 것인지 묻는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그것의 기본정신을 포기해야만 하는 모순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그는 일부 사람들의 정당한 전쟁도 있을 수 있깅 양심에 따른 무조건적인 병역 거부는 있을 수 없다는 논리에도 일침을 가한다. 정당한 전쟁론자가 되기 위해서는 전쟁에 나가기 전 그 전쟁이 정당한 지 여부에 대한 깊은 고찰과 사유가 필요하기 때문에 진짜 정당한 전쟁론자가 되기란 쉽지 않다고 말하며 정당한 전쟁이라는 것이 이론이 아닌,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움을 역설한다. 상대를 악에서 구하기 위해 상대를 죽일 수도 있다는 논리는 그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만약 진짜 정당한 전쟁론자라면 전쟁의 상황이 닥쳤을 때 평화주의자와 다르지 않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맺음말에서 그는 다시 입대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택하겠노라, 고 함부로 단언하지 않는다. 이는 이 책의 전신 격인 칼을 쳐서 보습을을 읽고 그에게 병역거부를 하겠다며 편지를 보냈다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그러지 말 것'을 당부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어이없게도 박민규가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고 회사를 그만두겠다며 찾아온 독자를 돌려보냈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는 여호와의 증인과 같은 공동체의 성원이 없는 가운데 '홀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택하기에 이 땅의 토양이 얼마나 척박한지를 설명한다. 결국 그는 그 자신의 몫을 많은 사람들이 양심에 근거한 선택을 하게 될 때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나가는 데 있다고 보는 듯 했으며 향후 그가 그 역할을 그답게 충실히 해 나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전쟁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취하면서도 병역 및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문제 앞에 민감하게 고민해 보지 못했던 스스로를 돌아 본다. 나 역시 어느 정도는 기성 교회의 시각에 젖어 있던 부분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역시 '나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진지하게 고민할 기회가 없었음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이 책은 이런 나로 하여금 그들에 대해 또한 나에 대해 충분히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줬으며 향후에도 끊임없이 관심을 갖겠다는 다짐의 시작이 됐다. 

헌법의 풍경, 평화의 얼굴에 이어 그가 준비중이라는, 교회와 정치, 그리고 그에 대한 처절한 반성을 담았을 것으로 예상되는 세번째 책에 담겨 있을 그의 목소리 역시 매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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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de 2007-08-12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어요~ 저도 한번 읽어봐야겠단 생각 드네요 ^^

웽스북스 2007-08-13 13:0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꼭 한번 읽어보세요 ^^

멜기세덱 2007-08-13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김두식 교수의 목소리를 우리 사회와 주류 기독교 계는 경청해야 할 것입니다.

웽스북스 2007-08-13 13:03   좋아요 0 | URL
네, 멜기세덱님~! 잘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바람결 2007-08-13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부터 관심하던 책인데, 좋은 리뷰를 만나 반갑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한 명의 종교인으로써 '평화'의 참된 의미와 대면할 수 있는 계기일 수 있겠다 싶습니다.^^

웽스북스 2007-08-13 22:56   좋아요 0 | URL
네, 바람결님, 평화의 참된 의미를 마구 고민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 감사드립니다!

마늘빵 2007-08-27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이드님 서재 통해 건너왔습니다. 왜 여길 몰랐을까.

웽스북스 2007-08-27 21:10   좋아요 0 | URL
저는 이미 유명인이신 아프락사스님 서재를 여러번 다녀왔는걸요 ^^
제 서재는 뭐, 모를만 합니다 흐흣

2010-03-15 1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