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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하명희 지음 / 북로드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4/0215/pimg_761734135972696.jpg)
사랑은 상처를 인정하고 고독을 견디는 것이다 - 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_ 스토리매니악
요즘 시대는 예전 보다 확실히 관계의 폭이 넓어졌다. 직접 대면하기 전에는 관계를 맺기 힘들었던 때에 비해, 인터넷이라는 기술의 도움으로 거리와 시간의 제약이 없어져 마음만 먹으면 상당히 넓은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다. 넓은 관계를 시공간 제약 없이 이루어낼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그만큼 단점도 많다. 인터넷은 익명성이라는 커다란 장애를 안고 있다. 이 익명성은 관계의 폭은 넓혀주지만, 관계의 깊이는 얕다. 그만큼 손실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그 손실을 오프라인 만남으로 메운다. 온라인 상의 만남에서 오는 실체에 대한 호기심도 있겠지만, 좀 더 깊은 관계를 위해 실체와의 만남을 선택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책의 주인공들 처럼...
선천적으로 사랑을 할 수 없게 태어났다고 생각하던 '현수'는 친구의 주선으로 PC통신 요리 동호회에서 '정선'을 만난다. 곧 친해진다. 그리고, 만난다. 그 만남으로 현수는 자신의 가슴에도 사랑을 품는다. 한 번의 만남으로 자신의 가슴에 깊은 인상을 남긴 '착한스프'를...
PC 통신을 통한 익명의 존재가 실체가 되어 나타났을 때, 그녀는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하나의 의문을 품는다. '알지도 못하면서 사랑할 수 있나?'. 이 소설은 이 의문에 대해 현수가 답에 도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철저하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깊게 파인 상처를 얻으면서,그렇게 사랑한다.
솔직히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랑의 방식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특히 정선의 방식은 답답하다. 난 사랑을 하면서 '상대를 위하여, 상대의 행복을 위하여', 내 사랑을 포기하거나 양보한다는 이야기가 참 싫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데, 단지 자신이 상처 받지 않기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의 정선이 딱 그렇다고 본다. 정선은 자신의 감정을 애써 다른 이유를 대며 멀리하고, 엉뚱한 방식으로 자신의 기준을 세우려 하고 있다. 사랑에 이렇게 자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진짜 사랑이라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현수와 정선의 사랑을 방해하는 '홍아'라는 존재 또한 요상하다. 자신의 허전함을 위해, 자신의 존재성을 위한 훼방은 잘 와 닿지 않는다.어쩌면 여성의 심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도 생각된다. 결말 부분에서 드러나는 홍아의 심리는 말 그대로 여성이 아니면 쉽사리 이해할 수 있는 범주는 아니다.
이렇듯 이야기 하는 사랑의 방식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데, 참 재미있게 읽었다. 모순이다. 그러나, 책을 놓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난 현수라는 인물에 꽤나 몰입했던 듯 하다. 현수가 정선을 내내 마음에서 놓지 않았던 부분, 그 과정들,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이라는 것을 정의하고 지켜가는 나름의 흐름에 공감이 갔다.
상처를 두려워하는 사랑은 깊어질 수 없다. 멀어지거나 파국을 맞을 뿐이다. 이 소설의 결말을 보면 이를 여실히 알 수 있다. 정선과 홍아가 두려워했다면, 현수는 당당히 맞섰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 과정이 즐거웠다.
전화를 받지 않는 착한스프의 벨소리가 가슴 한 구석에서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엇갈린 사랑에 대해, 사랑과 고독에 대해, 적잖은 현기증을 선사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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