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판 위의 빈집

 

    

    그 집은 담쟁이덩굴에 휩싸여 벌판 한가운데에 있다.
   사람들은 그 벌판을 지나갈 때면 의아심을 품고 한번씩은 그 집을 바라본다. 왜냐하면 그 자리에 왜 저런 집이 있는지를 모르겠기 때문이다. 논과 밭이 이어지고 이어지는 가운데 느닷없이 집이 한 채 서 있으니 누군들 그런 의아심을 갖지 않겠는가. 누가 살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그 집에서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을씨년스럽지만 한 가지 정다운 것은 창문에 쳐진 하얀 레이스로 짠 발이었다. 그 발의 꼬임은 얼마나 정교하던지 그걸 짠 사람의 손 움직임이 보이는 듯하다. 빈집이니 오다가다 사람들이 이 레이스로 짠 발을 걷어갈 것도 같은데 아무도 손대지 않는다. 그 집은 처음부터 대문이란 있지도 않았는가보다. 바로 현관으로 통하는 계단이 가파르게 보인다. 하나 둘 셋 넷…… 계단 숫자는 아홉 개, 빈집이라고 계절이 깃들지 않는 건 아니다. 여름 무렵이면 그 집은 담쟁이 잎새가 휘감아버린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것 같은데 무슨 시퍼런 것을 먹었는지 담쟁이 잎새는 너무도 짙푸르게 그 집을 싸안고 있어서 사람들은 한번쯤 그 집에 들어가보고 싶어하다가도 그 시퍼런 담쟁이 잎새의 기에 겁을 먹고는 돌아서버린다. 질기게 넝쿨을 뻗고 그 속에서 기름지게 돋아난 잎새들은, 벌판을 가로질러가는 바람이 휘감칠 때 보면 잎 하나하나가 푸른 혓바닥 같다. 사람이 들어서면 언제든지 목을 휘감아 둥글게 말아버릴 것 같은 기세다. 용케도 기름진 담쟁이덩굴과 잎새가 휘감지 못한 곳은 현관으로 통하는 그 가파른 계단이다. 오래 인적이 끊긴 것 같은 그 가파른 계단은 오늘도 괴괴하게 푸른 담쟁이덩굴 사이에서 어딘가로 통하는 길처럼 거기 하얗게 놓여 있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이 집에도 한때는 행복과 노래가 있었다면 누가 믿을까, 아무도 믿지 않는 기쁨이 있었다면. 하지만 벌판의 바람은 알고 있다. 한때 이 벌판 위의 집에도 기쁨이 있었다는 걸. 무슨 전설 같은 그런 기쁨이 있었다. 지금도 바람은 심심한 날이면 저희들끼리 그 여자와 그 남자 이야기를 한다. 그 여자와 그 남자가 처음 이 벌판으로 걸어들어왔을 때의 그 초라한 행색에 대해서, 그들의 사랑에 대해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함께 살 집을 마련하지 못해 부부가 되지 못했던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어느 날 이 벌판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들은 너무나도 가난하여 도시에서 사랑을 할 수가 없었다. 서글픈 마음에 하염없이 걷고 걷다가 이 벌판으로 흘러들었고, 이 집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이 빈집은 충분히 그들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처음엔 살짝 문만 열어보았고, 다음엔 거실로 들어가보았고, 다음엔 방문을 열어보았다. 그 누구도 그들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들은 거기서 잠을 자보았다. 그래도 아무 일도 없었다. 그들은 이불을 싸들고 와서 거기서 살아보았다. 그래도 아무 일도 없었다. 여자는 마룻바닥을 닦고 세면장의 녹슨 수도꼭지를 갈아끼웠다. 남자는 지붕에 올라가서 물이 새는 곳을 고치고서 사방을 휘휘 둘러보았다. 들과 들, 그리고 그 끝에 산의 능선이 멀리 보일 뿐이었고, 그 경치들은 그들이 거기 살고 싶어하는 걸 안다는 듯이 평화롭게 그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와 여자는 울었다. 그 집은 그들의 사랑이 찾아낸 임자가 없는 보금자리라고 믿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런 행운이 자기들에게 날아들었는지 믿기지 않아서 서로의 얼굴을 만져보곤 했다. 남자는 들판에서 멀리 떨어진 공사장에 나가 하루벌이를 했다. 여자는 점심을 지어 보자기에 싸서 들고 남자에게 갔다. 그들은 함께 있는 것이 원이었고, 그 벌판의 빈집에서 그 원이 이루어졌으므로 삶에 대해 더이상의 바람이 없었다. 오후가 되면 여자는 남자를 위해 저녁을 지어놓고 노래를 부르며 남자를 기다렸다. 남자는 벌판으로 퍼지고 퍼지는 여자의 노래를 들으며 행복하게 귀가하곤 했다. 이것이 그들 생활의 모두였다. 때때로 여자는 남자의 손을 꼭 잡고 떨기는 했었다. 왜 이렇게 순조로운 나날인지, 그 무엇이 그들 사이로 끼어들어 그들의 순탄함을 한순간에 몰아가버리지나 않을까 해서. 그때면 남자는 주름진 얼굴을 여자의 얼굴에 가까이 대고 말했다. 우리는 더이상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이야. 이 벌판은 현실이 아닌 거야. 우린 꿈만 꾸면 되는 거야…… 걱정 말아.
더이상 여자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 둘 사이에 아이가 생겼던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 다섯 살이 되도록 아무도 그들을 그 벌판의 집에서 내쫓지 않았다. 남자는 열심히 일했고, 여자는 순종하며 아이를 길렀으므로 처음에 황폐하기만 하던 그 벌판의 빈집은 윤이 반들반들 났다. 꽃병도 생겼으며, 여자는 흰 레이스로 발을 짜서 창에 걸었다. 남자도 이제 공사장의 소장이었다. 옛날처럼 모래나 벽돌을 등에 지지 않아도 돈을 받을 수가 있었다. 그들 사이에 태어난 여자아이도 건강했다. 붉은 뺨은 귀엽고 통통했으며 엉덩이에도 예쁘게 살이 올랐다. 아이는 틈만 나면 그들에게 엄마, 나 이뻐? 아빠, 나 이뻐? 하고 물었다. 아이의 그 어리광에 대답하는 것도 그들의 기쁨 중의 하나였다. 그들은 벌판 위의 빈집이 내려준 이 행복에 감사했다. 그런데 빈집은 그들에게 딱 그만큼의 행복만 주기로 한 모양이었다.

   어느 날 여자는 아이를 데리고 도시로 나갔다. 여자는 필요한 생활용품을 메모지에 적힌 대로 모두 샀다. 그리고 다시 벌판의 집으로 돌아왔다. 초여름인데도 바람이 심상치 않게 불었다. 여자의 손에는 무거운 짐이 들려 있었고 아이는 앞장서서 아장아장 걷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 현관으로 통하는 가파른 흰 계단 앞에서였다. 한 계단을 올라서더니 아이가 돌아섰다. 아이는 오랜만의 외출이 피곤했는지 뺨이 하얗고 창백했다. 아이는 그러면서도 장난스럽게 여자에게 물었다.
   엄마, 나 이뻐?
   여자는 이뻐, 하고 대답했다. 아이는 한 계단을 더 오르더니 또 물었다.
   엄마, 나 이뻐?
   여자는 대답했다. 그럼, 이쁘지. 아이는 세번째 계단에서 또 물었다.
   엄마, 나 이뻐?

   여자는 손에 들고 있는 짐이 너무 무거웠다. 하지만 아이가 실망할까봐 기쁘게 대답했다. 너보다 더 이쁜 아이를 나는 보지 못했지. 아이는 즐거워했다. 여자의 대답을 들을 때마다 아이는 깡충거렸다. 네번째, 다섯번째, 여섯번째, 일곱번째, 여덟번째, 가파른 계단을 오를 때마다 아이는 그 하얀 얼굴로 여자를 돌아보면서 꼬박꼬박,
   엄마, 나 이뻐?
하고 물었다. 니가 세상에서 제일 이뻐…… 여자는 그 물음에 꼬박꼬박 대답은 하면서도 무거운 짐을 든 팔이 빠져버릴 것같이 괴로웠다. 아이가 그만 물어주었으면, 어서 현관문이나 열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앞장선 아이는 아홉번째 계단에 오르자 다시 뒤돌아보며 물었다.
   엄마, 나 이뻐?

   여자는 들고 있던 짐을 철퍼덕 내려놓았다. 담쟁이 잎새가 바람에 우우 소리를 냈다. 그래, 너 예쁘다니깐! 여자는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아주 순간적으로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어떤 힘이 자기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하지만 아이를 떠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저 아이의 엉덩이를 한대 때려줄 참으로 손을 뻗었는데, 아이는 여자의 손이 닿자마자 무슨 회오리바람에 휘말리듯이 이제까지 힘들게 올라온 아홉 개의 흰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안 돼. 여자는 곧 뒤따랐지만 아무래도 벌판 위의 빈집은 그들에게 그만큼만의 행복을 주기로 한 모양이었다. 피는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아이는 하얗게 죽었다. 아이는 숨이 끊어지는 순간에도 여자를 향해 물었다. 엄마, 나 이뻐?

    고요한 세월이 흘렀다.
   슬픔이 회복되지 않아 늘 적막한 세월이었다. 남자는 여자를 위로했으나 여자는 웃음을 잃었다. 남자는 여자를 더욱 사랑하려 했으나 여자는 늘 먼 곳만 바라보았다. 여자는 그날의 그 알 수 없는 힘을 골똘히 생각하곤 했다. 무엇이었을까? 무엇이었을까? 무슨 혓바닥같이 자신의 내부로 파고들던 그 제어할 수 없는 힘. 여자는 늙어갔다. 하루가 지나면 한 살을 더 먹는 듯 야위고 거칠어졌으며 광대뼈가 튀어나왔다. 이제 여자는 남자의 누나나 어머니 같아졌다. 그 속에서 그들이 행복할 기회는 다시 한번 찾아왔다. 그 적막 속에서도 둘 사이에 다시 아이가 생겼던 것이다. 그들의 사랑은 다시 생긴 아이로 인해 겨우 회복되기 시작했다. 여자는 오랜만에 다시 꽃병에 꽃을 꽂았다. 태어난 아이는 또 여자아이였다. 남자는 여자에게 큰아이와 똑닮았다고, 그 아이가 환생한 거라고 위로했다. 그제야 여자는 웃었다. 그제야 여자는 먼산을 바라보지 않았다. 조금씩 그녀의 늙음도 회복되어 여자는 다시 남자의 여자같이 되었다. 여자는 아이를 사랑했다. 어쩌면 남자보다 더. 아이에 대한 여자의 사랑이 지나쳐서 때로 염려가 안 되는 건 아니었지만 남자는 여자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것, 그것이 더 고마웠다. 아이는 아무 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서 다섯 살이 되었다. 여자와 남자는 아이를 위해 도시로 나가 살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럴 자신이 없었다. 처음보다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가난했다. 남자는 여자에게 여기서 조금만 더 살자고 했다. 언젠가는 아이와 함께 도시로 나가 살 수 있을 날이 올 거라면서. 여자는 남자의 그 언젠가는, 이라는 말을 믿었다. 그들에게 희망이 생겼던 것이다. 언젠가는, 이라는. 어쩌면 벌판 위의 빈집은 이들의 언젠가는, 이라는 희망을 샘냈는지도 모른다.

   처음에 여자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아이 손을 잡고서 예전처럼 생활용품을 사려고 도시로 나가는 버스를 탔을 뿐이었다. 한 달에 한 번쯤밖에 나가지 않아서 언제나 여자에겐 지나칠 정도로 짐이 많았다. 초여름이었고, 바람이 심상치 않게 불었다. 그래도 여자는 아무 눈치도 못 채고 있었다. 그날이 첫아이가 죽은 날이라는 것도 잊고 있었다. 여자가 오 년 전의 그날이 재현되고 있음을 깨달은 건 들판 위의 그 집으로 돌아가는 바로 그 계단 앞에서였다. 그녀 뒤를 따르던 아이가 갑자기 앞으로 아장아장 걸어갔던 것이다. 아이는 계단 앞에 서자 한 발을 첫번째 계단에 올려놓으며 여자를 향해 물었던 것이다.
   엄마, 나 이뻐?

   처음에 여자는 짐을 내려놓고 얘, 그러지 마…… 하면서 아이를 껴안으려고 했다. 두번째 아이는 한 번도 그런 것을 물은 적이 없었으므로. 하지만 아이는 아주 차갑게 여자를 피했다. 그러면서 다시 묻는 것이었다.
   엄마, 나 이뻐?
   여자는 아이를 뒤따르며 응, 이뻐, 하고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식은땀이 났다. 이게 어찌 된 셈인가? 아이는 두번째 계단에서 또 물었다.
   엄마, 나 이뻐?
   여자는 무릎이 꺾이는 것 같았다. 오 년 전의 악몽이 그대로 되살아났다. 여자는 죽을 힘을 다해서 대답했다. 그럼, 이쁘지. 아이는 세번째 계단에서 다시 물었다.
   엄마, 나 이뻐?

   여자는 아이를 뒤따라 오르는 발바닥에 꾹꾹 힘을 주었다. 그래, 이뻐. 여자는 간절하게 남자를 불렀다. 나를 좀 도와주세요. 그렇게 아홉번째 계단에서였다. 여자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다시는 그날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아야 해. 그것만이 이 위기를 모면하는 길이야. 아이는 오 년 전의 그날처럼 아홉번째 계단에 오르더니 하얀 얼굴로 여자를 뒤돌아보았다.
   엄마, 나 이뻐?
   마음을 굳게 먹었는데도 여자는 거의 오들오들 떨었다. 그래, 이뻐. 니가 제일 이뻐. 아이는 떨고 있는 여자를 의아하다는 듯이 빤히 쳐다보며 다시 물었다.
   그런데 왜 그때 나 밀었어, 엄마?

   남자가 공사장에서 돌아왔을 땐 벌판 위의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여자도 아이도 찾을 수가 없었다. 가파른 계단 밑에 여자와 아이가 도시에 나가 쇼핑해온 생활용품들만 널브러져 있었다. 남자는 아주 오래 여자와 아이를 기다렸다. 식음을 전폐하고, 공사장에도 나가지 않고, 남자는 아이보다 여자를 더 기다렸다. 그러나 여자는 오지 않았다. 밤마다 담쟁이덩굴이 그 남자를 휘감았다가 풀어놓았다. 하룻밤이 지날 때마다 남자는 바싹 야위어갔다. 바람이 몹시 부는 어느날 밤이었다. 남자는 쭈그리고 앉아 담쟁이 잎새들의 아우성 소리를 들었다. 엄마, 나 이뻐? 남자는 귀를 막았다. 응, 이뻐…… 여자의 기운 없는 대답 소리도 함께 들렸다. 날이 새자 남자는 하얗게 질려 벌판 위의 집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남자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벌판엔 아직도 그 빈집이 있다. 담쟁이 잎새는 무얼 먹었는지 날이 갈수록 더 기름지게 푸른빛을 낸다. 가난한 당신이 어느 날 혹시 그 들판을 지나가다가 그 집을 보게 돼도, 그냥 지나가야 한다. 행복과 노래는 그 한때였다. 여자가 손수 짜서 창을 쳐놓은 흰 레이스 발이 정겨워서 들어가 살고 싶어져도 뒷걸음질을 쳐야 한다. 밤마다 기름진 푸른 담쟁이 잎새와 가파른 아홉 개의 계단이, 그런데 그때 왜 나 밀었어, 엄마? 우우 속삭이는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 「벌판 위의 빈집」,『감자 먹는 사람들』(창비) 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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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별곡 2009-08-09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나전 다읽고 나왔는데 뭔가 생각나서 다시보니 특별연재
단편이군요.
벌판에 계단이 아홉개면 지하실이 있는집

처음시작은 김기덕의 빈집
점점 납량추리소설같은 느낌
결국은 저주의집 '흉가'
흥미롭습니다.
계단이 열개가 아니고 아홉개인데 왜 불행이 찾아왔을까...
새로운 장르네요.

여백 2009-09-16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읽고 갑니다...매우 흥미로웠습니다....담쟁이 넝쿨과 가난 아이 사랑....

딱새 2009-11-19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가난한 사람들의 사랑이야기 이기엔 너무 아픔만이 남내요.
어렷을적 담쟁이 넝쿨이 있는 집들은 부잣집 또는 어느 관사일거라 생각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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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판 위의 빈집」에 붙여


   아주 오래전에, 그러니까 십오 년도 더 전에, 아주 무서운 이야기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습니다. 미루다 미루다 더 미룰 수 없게 되어서 어쨌든 무서운 이야기를 써야 했습니다. 어찌나 원고 독촉을 심하게 받았는지 무서운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 주문을 걸고 다녔어요.  그때는 구기동의 오피스텔에 살았습니다. 매일 새벽에 승가사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곤 했던 때입니다. 그날도 승가사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데 저만큼 어느 집 높다란 담장을 담쟁이 잎사귀들이 시퍼렇게 뒤덮고 있더군요. 매일 마주치는 풍경이었는데 그날따라 바람에 수수수 흔들리며 뒤채는 잎사귀 하나하나가 푸른 혓바닥처럼 느껴졌어요. 그 앞을 지나올 때는 수만 개의 혓바닥이 길게 뻗어나와 내 목을 휘감는 것 같았지요. 그 순간 이 작품이 탄생했습니다. 그 당시 내가 들었던 무서운 얘기, 엄마 나 이뻐? 와 담쟁이 잎사귀를 서로 접목시켜 들판으로 내보냈더니 이런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이 「벌판 위의 빈집」을 페루에서 낭독한 적이 있습니다. 이 작품이 선택된 것은 단 하나, 짧다는 것이었죠. 33매밖에 되지 않습니다. 33이라는 숫자는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의 나이이기도하군요. 무서우라고 썼는데 그쪽 사람들은 매우 아름다운 이야기로 받아들여서 잠깐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그렇지요. 지나친 아름다움은 두려움을 느끼게 하고, 지나친 아름다움은 슬픔을 느끼게 하고, 지나친 아름다움은 불안을 느끼게 하고, 지나친 아름다움은 또……  

   갑자기 이 오래전에 쓴 무서운(?) 이야기를 여러분께 드리고 싶어졌어요. 무더운 여름이니 무서운 얘기로 우리 서로 한순간을 견뎌보자는 의미입니다. 

2009. 7. 29.
신경숙 씀

 
   


안녕하세요. 알라딘 연재소설입니다.

무더운 여름, 독자 여러분들 모두 즐겁게 지내고 계신가요. <어디선가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연재도 어느덧 1달째에 접어들었습니다. 조금 더 시원한 여름을 위해, 신경숙 선생님이 독자분들께 드리는 특별한 선물이 도착하였습니다.

이전에 신경숙 선생님이 발표하셨던 단편 '벌판 위의 빈 집'을, 8월의 첫 월요일-3일에 특별 공개합니다.(<감자 먹는 사람들>(창비, 2005)에 수록)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다음 주 월요일을 기다려주세요!


   
 

   신경숙의 「벌판 위의 빈집」은 아주 짧은 단편소설이다.
   길이는 장편(掌篇)소설급이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장편(長篇)소설의 구조를 가진 이 작품은 나를 이상하게 전율하도록 만들었다.
   나는 이 짧은 소설을 읽고 그 주술적인 무서움, 세상의 허망한 종말을 보는 슬픔, 그럼에도 그것들을 모두 싸안는 전율적인 아름다움을 느꼈다.
   (…)
   우리에게 이 소설은, 그냥 무서운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무서울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슬프고 아름답다.
그리고 허망하고 아득하며, 인생유전의 끝을 본 듯한 절망을 그것은 동반하고 있다.
   그 슬프고, 아름답고, 그러면서, 그 슬픔과 아름다움을 싸안고 다가오는 섬뜩함은, 어떻게 하나의 춘사(椿事)처럼 일어난 것인가. 

_김병익, <불길한 아름다움 : 신경숙의 「벌판 위의 빈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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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2009-07-31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며칠전에 선물을 주신다더니 이거군욧!!
아..얼마나 무서운 얘기일지 기대만빵입니당!
휴가도 못가는데 감사합니다 작가님!!꾸벅꾸벅^^^

이매지 2009-07-31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조만간 선물을 주신다더니 이거였군요!!
어떤 이야기일 지 궁금하네요~~~
월요일이 더더 기다려져요 >ㅁ<

말도없이 2009-07-31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왓! 기대하겠습니다!!

terubump 2009-07-31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완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흰곰 2009-07-31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워요.

snoopy 2009-07-31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두말 할 것 없이!!
기다리겠습니다~~

목나무 2009-07-31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선생님 깜짝 선물이 너무 기대됩니다. ^^
본격적으로 더워진 여름의 한 복판에서 과연 어떤 이야기를 만날지..흐흐흐~~~

rose 2009-07-31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홋@@ 작가님 웃는모습 처음봐요.
작가님책에 들어있는 프로필사진들중엔 미소짓는 사진이 없었던거 같은데 말이에요.
미소가 참 예쁘십니다.

필로우북 2009-08-03 11:45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 생각했는데^^ 이 사진 종종 보면 좋겠어요.

엘리사벳 2009-07-31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가족과 짧은 여행을 다녀오며 짙은 초록의 산과 나무들을 보니 이 여름도 얼마남지 않았다는
...다소 쓸쓸한 생각이 들더군요...아직도 한낮의 태양 아래 서기를 두려워하면서도요...
무서운 이야기가 왠지 보너스 같은 느낌입니다...이 여름 잘 지냈다는...
잘 읽겠습니다...감사합니다.

jinny 2009-07-31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보너스네요. 고3딸때문에 작년부터 휴가 반납 아! 정말 어디론가 가고 싶어요. 하지만 참아야겠죠. 작가님 보너스 정말 고마워요. 위로가 되네요.

왕여사 2009-07-31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굉장히 기다려 지네요
여름에 무서운 이야기 스릴인가요 아닌 커다란 충격
하여튼 기대대되네요

granchef 2009-07-31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기다려져요.
여름의 납량특집! 불길한 아름다움이라니요.^^

오빠달려 2009-08-01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 예 ~~~~~~~~~~
얼마나 처절하게 아름다운 무서움일까요?...

Pooka 2009-08-01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신작가님과 알라딘(?)님, 여름나기 선물 감사드립니다!
얼마전 깜짝선물을 그새 참지 못하고(?^^) 잠깐 언급하셨던 신작가님 입가에 있었을 법한 미소가 상상되어지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기다릴께요!

요안나F. 2009-08-01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렇게 무덥고 습한 날...
신경숙 작가님의 무서운 소설이라
무척이나 기대 됩니다
좋은 보너스 한아름 안고 이 더위 견디어 볼랍니다^^
감솨합니다..사랑해요

여름의훈장 2009-08-01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벌판 위의 빈집] 기억 저편에서 아른거립니다. 한 번은 들렀던 빈집이었지만, 작가님의 선물로 다시 읽게 되어 기쁩니다. 여름날의 청량한 소나기같은 작가님, 주말 편안하게 휴식하시고 좋은 글 이어 주세요.

melory 2009-08-01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 기대되네요. ^^

가을이 2009-08-01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얼마나 오싹할지 기대되는걸요.
김병익 선생님이 무서울 뿐 아니라 슬프고 아름답기까지 하다고 하시니 더욱 기다려집니다.
더위에 선생님도 건강 조심하세요.^^

미망 2009-08-02 0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기형도의 <빈집>이 떠올라요..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기 형도, <빈집> 전문
기대합니다.신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한여름 2009-08-02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은 읽을거리가 하나 더 있군요 :)
작가님의 선물 잘 읽어보겠습니다!

나도나도 2009-08-02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선생님 넘 귀여우시다. 무서운 얘기 쓰려고 무서움을 찾아 나선...

onee19 2009-08-02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여름이라 올려주시는 거예요?? 이불 뒤집었고 봐야겠는걸요..

꼬알라 2009-08-03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선생님 쵝오!!!

cqcq 2009-08-03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리 휴가가 필요없게 만드셨네요. 캄사합니다 선생님....

S.Wolf 2009-08-03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서비스가!! 감사합니다~

하늘을가진놈 2009-08-03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옷 기대되는데 ㅎ

용민이횽 2009-08-03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무서운 이야기 싫고 무서운 영화도 못 보는데... ㅠㅠ 이건 읽고 싶다는... ㅠㅠ 잠 못자겠다~

readersu 2009-08-03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멋집니다. 오늘 들락거려야겠네요. 아직 안 올라온 것 같으니깐!!! 기대기대..^^

원주 2009-08-03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옷....
저도 언젠가 읽었던 글이지만,
'납량특집'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 생각하니, 왠지 더 오싹한 느낌으로 읽게 될 것 같아요!!
오늘 올라오겠네요...두근두근!!!

여름의훈장 2009-08-03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러게요. 아직 안올라 오네요. 기다려집니다.

줄리공 2009-08-03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특별한 선물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비로그인 2009-08-03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글을 읽기 전에 다시 읽었습니다. 일단 마음을 다스리고.. 이제 보러 갈게요! 두근두근!!!

인내심 2009-08-04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읽겠습니다.

해라 2009-08-04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가 갔다왔어요 선생님^-^
휴가 갔다왔는데 이런 선물을^^
무서울 준비되어 있습니다!!!
작가님 감사합니당^^

2009-08-04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위에 사진, 미소가 정말 예쁘세요.^^
특별선물 감사합니다. 정말 소중한 선물이에요.

roar 2009-08-05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웅 기대됩니다.

타미아미 2009-08-05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2년 전 여름, EBS라디오프로그램인 [한영애의 문화 한 페이지]에서
DJ 한영애씨가 이 <벌판 위의 빈집>을 낭독해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돋았던 소름이 생각나
생각만으로도 오싹하네요^^;;
건강하시죠? 저 맞아요^^

하늘보다 2009-12-02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글을 이제 보게되네요^^ 아주 오래전에 읽었었는데...
전 이 겨울에 읽는데 별로 무섭지는 않네요..^^두번째라서 그런가..잘읽구 갑니다~..

다래랑 2009-12-07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두번째 얻은 딸아이에게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과도 같은 그 시간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을때 그순간 내아이라는 느낌보다는 어느 별에선가 온 듯한 외계인 같은 낯선 느낌일거 같네요.
시간은 흘렀지만 같은 계절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질문을 받게 된다면 결코 우연으로 생각하며 웃을수만은 없는 것일테니까요.
그런데 그때 왜 나 밀었어??
어느정도 예상한 거였지만 막상 듣는순간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쳐오더군요....
옆구리가 시린 이 계절에 더욱 더 움추리게 하는 작가님의 글이었지만 문학동네와 알라딘을 알게된 오늘,
나는 너무나 가슴이 벅차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