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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판 위의 빈집」에 붙여
아주 오래전에, 그러니까 십오 년도 더 전에, 아주 무서운 이야기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습니다. 미루다 미루다 더 미룰 수 없게 되어서 어쨌든 무서운 이야기를 써야 했습니다. 어찌나 원고 독촉을 심하게 받았는지 무서운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 주문을 걸고 다녔어요. 그때는 구기동의 오피스텔에 살았습니다. 매일 새벽에 승가사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곤 했던 때입니다. 그날도 승가사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데 저만큼 어느 집 높다란 담장을 담쟁이 잎사귀들이 시퍼렇게 뒤덮고 있더군요. 매일 마주치는 풍경이었는데 그날따라 바람에 수수수 흔들리며 뒤채는 잎사귀 하나하나가 푸른 혓바닥처럼 느껴졌어요. 그 앞을 지나올 때는 수만 개의 혓바닥이 길게 뻗어나와 내 목을 휘감는 것 같았지요. 그 순간 이 작품이 탄생했습니다. 그 당시 내가 들었던 무서운 얘기, 엄마 나 이뻐? 와 담쟁이 잎사귀를 서로 접목시켜 들판으로 내보냈더니 이런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이 「벌판 위의 빈집」을 페루에서 낭독한 적이 있습니다. 이 작품이 선택된 것은 단 하나, 짧다는 것이었죠. 33매밖에 되지 않습니다. 33이라는 숫자는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의 나이이기도하군요. 무서우라고 썼는데 그쪽 사람들은 매우 아름다운 이야기로 받아들여서 잠깐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그렇지요. 지나친 아름다움은 두려움을 느끼게 하고, 지나친 아름다움은 슬픔을 느끼게 하고, 지나친 아름다움은 불안을 느끼게 하고, 지나친 아름다움은 또……
갑자기 이 오래전에 쓴 무서운(?) 이야기를 여러분께 드리고 싶어졌어요. 무더운 여름이니 무서운 얘기로 우리 서로 한순간을 견뎌보자는 의미입니다.
2009. 7. 29.
신경숙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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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알라딘 연재소설입니다.
무더운 여름, 독자 여러분들 모두 즐겁게 지내고 계신가요. <어디선가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연재도 어느덧 1달째에 접어들었습니다. 조금 더 시원한 여름을 위해, 신경숙 선생님이 독자분들께 드리는 특별한 선물이 도착하였습니다.
이전에 신경숙 선생님이 발표하셨던 단편 '벌판 위의 빈 집'을, 8월의 첫 월요일-3일에 특별 공개합니다.(<감자 먹는 사람들>(창비, 2005)에 수록)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다음 주 월요일을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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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벌판 위의 빈집」은 아주 짧은 단편소설이다.
길이는 장편(掌篇)소설급이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장편(長篇)소설의 구조를 가진 이 작품은 나를 이상하게 전율하도록 만들었다.
나는 이 짧은 소설을 읽고 그 주술적인 무서움, 세상의 허망한 종말을 보는 슬픔, 그럼에도 그것들을 모두 싸안는 전율적인 아름다움을 느꼈다.
(…)
우리에게 이 소설은, 그냥 무서운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무서울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슬프고 아름답다.
그리고 허망하고 아득하며, 인생유전의 끝을 본 듯한 절망을 그것은 동반하고 있다.
그 슬프고, 아름답고, 그러면서, 그 슬픔과 아름다움을 싸안고 다가오는 섬뜩함은, 어떻게 하나의 춘사(椿事)처럼 일어난 것인가.
_김병익, <불길한 아름다움 : 신경숙의 「벌판 위의 빈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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