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
호어스트 에버스 지음, 김혜은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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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08년 서른 셋을 기념하는 생일선물로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에게서 받은 책 중 한 권이 바로 이 책이다. 네 권 중 두 번째로 집어든 책인데 상태가 아주 양호하다. 첫 번째는 '거꾸로 생각해 봐! 세상이 많이 달라보일 걸'이란 책이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방법,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나와 있는 책이었는데 역시 한겨레출판에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두 번째 책이 바로 이것. 읽어보지 않고 무작위로 선정하여 보내준 책 치고는 나의 혈연집단의 안목이 탁월한 듯 하다.

'호어스트 에버스'의 이 책은 나를 실컷 웃게 했다. 숨이 막힐 듯 넘어가는 꺽꺽대는 웃음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 덕분에 지하철 안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무심한 표정의 사람들이 나를 힐끗대며 이상한 시선을 날렸으며 난 살짝 광녀가 된 듯 행동할 수밖에 없었더랬다.

피식 새어나가는 웃음. 어이없음이 아니라 뭐라 규정하기에 부족한 웃음. 그냥 웃다가 버려지는 찰나의 웃음보다도 더 진하고, 실컷 웃고 나면 공허함을 안겨주는 박장대소와도 다른 웃음을 이 작가는 나에게 선사했다.- 주위에 있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전공의 사람들은 도통 작가가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이 책을 밀쳐뒀으나 나는 내 지인에게 적극 추천 중이다. 그들이 내 말을 믿거나 말거나. -피식 웃는 그 작은 웃음이 두고두고 내 머릿 속을 맴돌다가 이 책의 작가를 연상시키는 사물이나 사람, 풍경을 보면 또다시 슬그머니 새어나오곤 하니 이 책을 칭찬하지 않으려고 해야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난 이 책이 참 좋다. 혹 모르겠다. 얼마 뒤에 내가 이 책을 다시 읽었을 때도 이 감정이 그대로일지는. 간혹 너무 감동적이라 일년이 지난 뒤에 다시 읽어보노라면 내가 왜 감동했을까 의문을 갖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까. 여튼 미래의 일까지 짐작하기엔 너무 멀고, 현재 난 이 책이 참 좋다. 박민규가 삼미슈퍼스타즈 마지막 팬 클럽에서 선보였던 웃음과도 약간 통할 듯 하는 이 작가의 재치!

독일 베를린 쇼세가 18번지 '예술공장 슐로트'에서 일요일마다 이 작가가 <희한한 박사의 새벽술>이라는 공연을 18년째 하고 있다고 한다. 징하기도 하지. 이 책을 읽고 나니 당장 독일로 달려가고프다. 물론 아는 독일어라고는 Guten Tag과 Danke shen정도가 다인지라 호어스트와의 대화는 불가능하겠지만 뭐 어떤가. 그의 움직임을 보는 것만으로도 유쾌한 하루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희한한 박사의 새벽술>이라는 그들의 회동에 꼭 참여하고 싶을 정도라면 이 책을 읽은 감상이 어땠는지 짐작가능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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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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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라카미 하루키가 '노르웨이의 숲'이란 책으로 일본 열도를 울리고 있을 때 조용히 등단한 작가라고 한다. 하루만에 읽어본 소설이 얼마만이던가! 쉽게 읽히는데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이다. 80분의 기억밖에 지속시키지 못하는 늙은 수학자와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파출부, 그리고 그의 아들 루트이야기. 소재랄 것도 없는 것들로 전개되는 이야기인데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통속 소설들에 등장하기 마련인 눌 물도 자아내지 않는데 괜히 가슴이 싸하다. 주변의 모든 것을 탐내는 내 욕심을 때문에 잠시 흐트러진 순간 읽게 되어 더욱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수학자들에게 '소수'의 의미란 저리도 대단한 것인가? 요전에 읽었던 '어느 한 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이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자폐아에게도 '소수'가 갖는 의미가 참으로 특별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 책에선 책 페이지마저 소수만으로 되어있었는데...

잔잔한 가운데 완전수, 우애수, 삼각수 등에 대해 알게 된 것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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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에 번쩍 서에 번쩍 우리나라 지리 이야기] 서평단 알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우리나라 지리 이야기 사계절 1318 교양문고 4
조지욱 지음 / 사계절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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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임박해서야 서평을 쓰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나도 모를 일이다. 물론 게으름이 가장 큰 이유일 테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닌 듯 하다. 마감일이 째깍째깍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야지만 자판이 두드려지는 것은 일종의 습관이던가? 날이 갈수록 깜빡깜빡하는 횟수도 늘고, 나무늘보처럼 느적거리게 된다. 나이 때문이라 핑계를 대어보지만 민망할 뿐이다. 그나마 서평쓰는 것을 잊지 않은 것을 스스로 대견해 할 밖에...

이번에 읽은 책은 '지리 이야기'이다. 책을 읽고 나니, 참 오래간 만에 지리 수업을 조근조근 듣고 온 듯한 기분이 든다. 학교 다닐 때 칠판을 응시하며 정자세로 듣는 수업이 아니라 마룻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서 듣는 이야기 같은 느낌. 암기를 해야 하는 딱딱한 수업이 아니라 말랑말랑한 수업이었다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책 분량은 얼마 되지 않지만 쉬엄쉬엄 들춰보며 꼭꼭 씹어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내용 자체는 절대 그냥 읽고 버릴 수 없는 알찬 것들이었다. 난 이 책을 보고 팔도강산의 이름에 담긴 깊은 의미를 알 수 있었다.

p34  함경도는 함흥과 경성, 평안도는 평양과 안주, 황해도는 황주와 해주, 강원도는 강릉과 원주, 충청도는 충주와 청주, 경상도는 경주와 상주,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 이렇게 그 지역을 대표할 만한 고을의 첫 글자를 따서 8도의 이름을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냉온대 기후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고, 만년설이 무엇인지, 해수욕장의 모래는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도 알 수 있었다. 늘어가는 인구문제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고, 북한이 가지는 의미, 남북통일에 대한 우리들의 자세도 다시 한 번 살펴보는 계기가 됐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듯 하다. 이제 누군가에게 물어보기조차 민망한, 내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이 책에서 배울 수 있었다. 나의 아이가 자라서 기후에 대해, 지형에 대해 환경에 대해 묻는다면 전문가 같은 답변은 어렵더라도 조금은 자신있게 설명해 줄 수 있을 듯 하다.

저자가 쉽게 써 준 이유를 알 듯도 하다.  나에게 이 책은 아이들과 함께 읽기 좋은 지리과 부록 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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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0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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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같은 반찬을 먹다 보면 새로운 뭔가가 먹고 싶어 지듯이 책 또한 읽다 보면 난데 없는 장르가 그리워지기 마련인 듯 싶다. 동글동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문득 날카로운 이야기가 그리워지고, 그러다 보면 또 따뜻한 이야기가 생각나곤 한다. 그때 눈에 띄인 책이 바로 이거다. 너무나 경쾌한 표지 그림은 왠지 나의 흥미를 자극했다. 책 디자인과 제목이 사람들을 얼마나 매혹시키는지 알 수 있었다고나 할까? 고로 사전 지식이 전혀 없던 찰나에 난 표지만 보고 이 책을 선택한 셈이다.

그럼 우선 이 책에 대한 평을 하라면? 솔직히 '우와~이런 책이?'라는 생각보다는 '음 괜찮네.'라는 정도?  

로맨틱 환타지답게 말도 안 될 듯한 상황 속에서 인물들이 얽히고 설키는 에피소드들로 이야기는 구성되어 있다. 별개의 일인 듯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겪는 일은 결코 외따로 떨어진 일이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는 책이랄까? 한 여자의 뒤통수에 대해서는 박사학위라도 딸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한 남자와 그가 짝사랑하는 그녀의 교토 여행기. 그 속에 담긴 황당하지만 유쾌한 사건들. 이 책의 재미를 더해주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주인공의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형과도 다르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나잘났어 스타일도 아닌 그냥 물 흐르듯이 세상을 살아가기에 막힘없이 자연스런 주인공 여자가 펼치는 아니 개입하는 신나는 일들.

소설 자체는 억지스런 이야기의 조합일 터인데 억지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아 재미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문득 앉아서 이유없이 '큭큭'하고 웃고 싶거나 '피식'하며 웃음을 흘리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이백의 전기부랑의 맛을 보고 싶은 한 독자가 갑자기 다가온 쓸쓸한 가을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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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철학> 서평단 알림
걷기의 철학 포즈 필로 시리즈 1
크리스토프 라무르 지음, 고아침 옮김 / 개마고원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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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란 말이 들어가면 왠지 있어 보이기도 하고 그럴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더불어 어려운 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들은 흔히 '그따위 것에 뭔 철학이...'라고들 하지만 살아가는 데 '철학'이 개입하지 않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 왜냐 하면 철학은 우리네 생각이기 때문이다. 밥을 먹을 때도, 사람들과 마주 앉아 있을 때도, 혼자서 고독을 씹을 때도,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고 있더라도 쉼없이 우리의 머리는 작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라고 노래할 때조차 '왜'라는 물음을 하고 있으니 여기엔 '철학'이 들어 있는 것이리라.

'철학'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에 물음표를 찍으면서 시작된 것 같다. 그래서 어릴 때에는 철학을 인식하지 못하면서도 행하고 있었으나, 이제는 질문을 하는 것보다 단답형의 대답을 하는 것에, 대답을 하는 것보다 침묵하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다.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사람들의 언변 속에서 느긋하게 대답을 할 수도 없거니와, 나의 느긋한 답변을 들어주는 사람도 그리 흔하지는 않은 듯 하다.

"그러니까 본론만 말 해!"

"요점이 뭐야? 한다는 거야 안 한다는 거야?" 라는 말들. 우리는 어느 새 '이거 아니면 저거'라는 대답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이거와 저거 사이에는 이거인 듯 싶은 저것도 있고, 저것인 듯 싶은 그것도 있기 마련인데 말이다. 사람들이 무지르듯 덮어버린 황당하고 장황한 이야기 속에는 정말 우리네가 듣고픈 이야기가 가득하다. 리모콘의 빨리감기 버튼처럼 세상을 빨리 감아서 늘어난 시간을 우리는 도대체 무엇에 쓰려고 한단 말인가? 그런 면에서 '걷기'와 '철학'을 연관지은 것은 정말 그럴 듯 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세 단계로 글을 진행하고 있었다. 먼저 단어를 통해 우리에게 준비 운동을 시킨다. 그런 식으로 '걷기'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하다가 어느 새 철학으로 우릴 인도하고 있다. 속도감을 주어 달리는 것이 아니라 한 발을 땅에 디디고서야 다른 발을 내딛는 걷기를 철학과 연관지어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위대한 철학자들이 어떻게 걷기 속에 철학을 실천했는지를 간략하게 언급해 주고 있다. 낱말을 통해 시동이 걸린 '철학에 대한 이해'가 철학자들의 에피소드에서 잠시 주춤한 느낌이 든 것은 아쉬웠지만 철학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려는 시도라는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한다.

 현대 문명의 발달 속에서는 무엇보다 우선시 되는 것이 '스피드'이다. 그런데 그런 속도감에서 쾌감을 느낄 지는 몰라도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거쳐왔는지, 주위에는 어떤 풍광이 있었는지, 내가 왜 그렇게 달려왔는지를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걷기란 것은 우리의 생각을 찬찬히 살펴 볼 수 있게 해 주는 도구임에 틀림이 없다. 책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산을 등반하는 이는 삶에 도움이 되는 몇 가지 굳건한 신조를 얻게 된다. 그는 가장 짧은 길이 가장 좋은 길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

...

산악지방에 사는 사람은 이러한 관점을 노련하게 취하며 그가 지나가야 하는 지형에 자기 걸음을 맞춘다. 그가 갈 길에 놓여 있는 기복들, 흙의 성질, 경사의 가파른 정도, 하늘의 상태 등은 모두 그를 인도해주는 표지들이다. 그는 이것들을 전진에 방해가 되는 걸림돌이나 구속으로 생각하기는커녕, 가장 좋은 조건에서 걸을 수 있게 해주는 징조들로 인식하고 해독한다.

 
   

 

나는 이 부분을 읽고 나를 키워주는 많은 것들을 장애물로 인식하진 않았는지, 가장 빠른 길을 가장 좋은 길이라고 착각을 하진 않았는지 되돌아볼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앞만 보고 달리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난 후회할 짓은 하지 않아.'라든지 '자신이 한 행동을 뒤돌아 보는 것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 있어?'라고 자만하는 사람들에게 뒤돌아 보는 행위가, 천천히 음미하는 걸음이 얼마나 많은 것을 달라지게 하는지 알려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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