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철학> 서평단 알림
걷기의 철학 포즈 필로 시리즈 1
크리스토프 라무르 지음, 고아침 옮김 / 개마고원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철학이란 말이 들어가면 왠지 있어 보이기도 하고 그럴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더불어 어려운 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들은 흔히 '그따위 것에 뭔 철학이...'라고들 하지만 살아가는 데 '철학'이 개입하지 않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 왜냐 하면 철학은 우리네 생각이기 때문이다. 밥을 먹을 때도, 사람들과 마주 앉아 있을 때도, 혼자서 고독을 씹을 때도,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고 있더라도 쉼없이 우리의 머리는 작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라고 노래할 때조차 '왜'라는 물음을 하고 있으니 여기엔 '철학'이 들어 있는 것이리라.

'철학'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에 물음표를 찍으면서 시작된 것 같다. 그래서 어릴 때에는 철학을 인식하지 못하면서도 행하고 있었으나, 이제는 질문을 하는 것보다 단답형의 대답을 하는 것에, 대답을 하는 것보다 침묵하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다.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사람들의 언변 속에서 느긋하게 대답을 할 수도 없거니와, 나의 느긋한 답변을 들어주는 사람도 그리 흔하지는 않은 듯 하다.

"그러니까 본론만 말 해!"

"요점이 뭐야? 한다는 거야 안 한다는 거야?" 라는 말들. 우리는 어느 새 '이거 아니면 저거'라는 대답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이거와 저거 사이에는 이거인 듯 싶은 저것도 있고, 저것인 듯 싶은 그것도 있기 마련인데 말이다. 사람들이 무지르듯 덮어버린 황당하고 장황한 이야기 속에는 정말 우리네가 듣고픈 이야기가 가득하다. 리모콘의 빨리감기 버튼처럼 세상을 빨리 감아서 늘어난 시간을 우리는 도대체 무엇에 쓰려고 한단 말인가? 그런 면에서 '걷기'와 '철학'을 연관지은 것은 정말 그럴 듯 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세 단계로 글을 진행하고 있었다. 먼저 단어를 통해 우리에게 준비 운동을 시킨다. 그런 식으로 '걷기'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하다가 어느 새 철학으로 우릴 인도하고 있다. 속도감을 주어 달리는 것이 아니라 한 발을 땅에 디디고서야 다른 발을 내딛는 걷기를 철학과 연관지어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위대한 철학자들이 어떻게 걷기 속에 철학을 실천했는지를 간략하게 언급해 주고 있다. 낱말을 통해 시동이 걸린 '철학에 대한 이해'가 철학자들의 에피소드에서 잠시 주춤한 느낌이 든 것은 아쉬웠지만 철학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려는 시도라는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한다.

 현대 문명의 발달 속에서는 무엇보다 우선시 되는 것이 '스피드'이다. 그런데 그런 속도감에서 쾌감을 느낄 지는 몰라도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거쳐왔는지, 주위에는 어떤 풍광이 있었는지, 내가 왜 그렇게 달려왔는지를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걷기란 것은 우리의 생각을 찬찬히 살펴 볼 수 있게 해 주는 도구임에 틀림이 없다. 책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산을 등반하는 이는 삶에 도움이 되는 몇 가지 굳건한 신조를 얻게 된다. 그는 가장 짧은 길이 가장 좋은 길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

...

산악지방에 사는 사람은 이러한 관점을 노련하게 취하며 그가 지나가야 하는 지형에 자기 걸음을 맞춘다. 그가 갈 길에 놓여 있는 기복들, 흙의 성질, 경사의 가파른 정도, 하늘의 상태 등은 모두 그를 인도해주는 표지들이다. 그는 이것들을 전진에 방해가 되는 걸림돌이나 구속으로 생각하기는커녕, 가장 좋은 조건에서 걸을 수 있게 해주는 징조들로 인식하고 해독한다.

 
   

 

나는 이 부분을 읽고 나를 키워주는 많은 것들을 장애물로 인식하진 않았는지, 가장 빠른 길을 가장 좋은 길이라고 착각을 하진 않았는지 되돌아볼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앞만 보고 달리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난 후회할 짓은 하지 않아.'라든지 '자신이 한 행동을 뒤돌아 보는 것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 있어?'라고 자만하는 사람들에게 뒤돌아 보는 행위가, 천천히 음미하는 걸음이 얼마나 많은 것을 달라지게 하는지 알려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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