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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무정 1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흰머리가 찾아온 것은 사흘 뒤 밤이다. 산은 기척을 느꼈지만 곧바로 일어나지
못한다. 장례를 치르느라 꼬박 사흘 밤낮을 지새운 탓이다. 커커커컹 청룡의
맹렬한 울음과 동생의 비명을 듣고 아비의 유품인 총 '밀림무정'을 뽑아들 때,
거기 흰머리가 있었다. 동생의 팔을 찢어 문 채 산을 노려보는 개마고원의 지배자.
흰 머리는 팔뚝을 질겅질겅 씹어대며 산을 노려보았다.
'잘 봐라. 넌 사냥꾼도 가장도 사내도 아니다. 집과 가족을 지킬 힘이 없다!'
산은 아비의 총을 움켜쥐고, 뜯겨나간 동생의 팔에 눈물을 쏟으며 맹세했다.
놈을 죽이기 전까지는 돌아오지 않겠노라고.
- 책 뒷 표지에서 -
그랬다. 이 책은 복수를 위해 백호를 잡으러 다니는 '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포수의 이야기다. 그것도 일반 호랑이가 아닌, 왕대라고도 불리고, 영험하다고도 알려진 산중호걸의 주인. 개마고원의 지배자로 이름이 높은 거대한 호랑이다. 그들은 그 호랑이를 '흰머리' 라고 불렀다.
아비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그의 장례식에 찾아와 동생의 오른팔까지 뜯어내며 흰머리는 '산'에게 경고 한다. '더이상 나를 쫒지 말라'고, '복수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경고였다. 호랑이의 위엄과 기세에 보통의 사람이라면 기가 죽고 한 동안 병치레를 할 정도로 극도의 공포심을 드러내지만, 산은 달랐다. 평생을 사냥꾼으로 밀림에서 살아온 그 아비의 그 아들이란 말을 심심찮게 들어왔던 산에게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은 일반인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타고난 포수의 기질과 복수심이 만나 지독하고 집요한 추적이 시작된다.
영험한 존재며, 산속의 지배자인 흰머리는 자신의 영역에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고 했는데, 산의 아버지 '웅'을 해한건 좀 이상했다. 아직 사연이 나오진 않았지만 실수나 오해로 벌어진 사건이지 않을까 싶다. 그 사건이 산의 인생을, 한 가족의 해체를 불러왔다. 그 끝없이 이어지는 쫒고 쫒기는 싸움은 흰머리나 산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이 날 것 같다.
산은 흰머리를 찾아 7년을 헤맸다. 몇 번 마주치기도 했지만 번번히 무산되었다. 흰머리도 산의 존재를 짐작했으리라. 산은 1년 365일을 흰머리만 생각했다. 흰머리의 세세한 움직임을 그림으로 그렸고, 마주쳤을때 한방에 끝내기 위해 머리속으로 수백번도 더 연습했다.
추적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한 겨울의 추위와 배고픔은 생명을 위협한다. 겨울에는, 내리는 눈이 짐승의 흔적을 지운다. 냄새도 발자국도 모두. 옷은 물론이고 양말, 장갑, 모자도 두장씩 겹쳐 입어야 하는 강추위는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게 한다. 인적 없는 밤이 되면 더 위험해 진다. 호랑이 뿐 아니라 삵, 표범, 늑대, 스라소니... 또다른 짐승들의 먹이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새우잠도 편하게 허락되지 않는다. 한 겨울의 추적은 여러모로 인간에게 불리한 조건일 수 밖에 없다.
산에게는 또 다른 불리한 조건이 추가되었다. 밀림도 모르고 호랑이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합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히데오' 대장과 일본 총독의 군사들, 동생 '수', 호랑이 연구가 '주홍' 이 그들이다. 특히 주홍은 유일한 홍일점으로 총독의 총애하는 수양딸이다. 나름대로 산전수전을 겪었다고는 하나 혹독한 개마고원의 환경에서도 버틸 수 있을지 의심이다. 또한 산이 흰머리를 죽이기 위해 쫓는 반면에, 주홍은 호랑이를 사랑하는 쪽이다. "꼭 죽여야 하느냐" 며 딴지를 건다. 산과의 충돌이 불가피하다. 홀홀단신 생활을 7년째 해오고 있는 산에게는 발을 더디게 만들고 여러모로 신경이 쓰이는 불청객들이다.
7년간의 고통스런 날들을 이젠 끝낼 시간이 된 것 같다. 흰머리를 불과 몇 시간 거리를 두고 바짝 추격하고 있는 산의 일행들. 이번 겨울엔 끝을 볼 수 있을지... 얘기는 2권에 이어진다. 2권으로 고고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