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둥이들아, 들어봐라! - 사모아 추장 투이아비의 이야기, 윤구병이 다시 읽은 책 1
에리히 쇠르만 엮음, 윤구병 옮김 / 장백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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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쯤 전에, 우연히 어느 반 학급 문고에서 '빠빠라기(하늘을 찢고 나타난 사람이란 뜻으로 문명인, 서양인을 뜻함)'란 책을 읽게 된 일이 있었다.

사모아 섬의 어떤 추장(투이아비)이 유럽의 백인 문명을 체험하고 나서, 기이하기 짝이 없는 서양인들의 생활을 비판하는 이야기를 했고, 그것을 에리히 쇠르만이란 독일인이 기록한 책이었다.

그 생각의 위치가 우리가 높이는 가치를 완전히 깎아 내리고, 별볼일 없는 것들의 가치를 인식하게 만드는 자못 심오한 것이 있었다.

도서관에서 윤구병이 다시 읽은 책이라고 해서 이 책을 만들었다. 청소년들이 이 책을 꼭 읽어 봐야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청소년들에게 <문화적 상대주의>와 <자문화 중심주의>를 가르치지만, 자문화 중심주의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가르치지만, 날마다 살아가는 곳곳에 자문화 중심주의가 얼마나 속속들이 들어있는지를 그 문화 속에 사는 우리들은 모르기가 쉽다.

가장 가난한 인도 사람들이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것도 자문화 중심주의 때문이 아닐까.

흰둥이들은 온 몸을 천쪼가리로 감싸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자연인들은 살갗을 드러내 놓고 사는데 말이다. 살갗을 드러내 놓고 사니 여자의 살을 보고 미치는 정도가 덜하단다. 원투가 있는 말이다.

문명인들의 집이 얼마나 답답한 공간인지와, 문명인들의 돈이란 것이 얼마나 무가치한 것인지...

거룩한 넋이 만드는 물건들은 파괴적이지 않은 반면, 문명인들이 만드는 모든 이기들은 얼마나 파괴적인지...

물신주의에 빠져있는 인간들의 파괴적인 삶을 신선한 눈으로 비판하는 글들이다.

지천으로 깔린 시간을 지혜롭게 맞이하지 못하고, 늘상 하루 24시간이 모자라서 허덕이는 인간의 모습을 보면 얼마나 어리석으냐... 그런 어리석음을 투이아비 추장 덕분에 깨닫게 된다.

그래서 결국 흰둥이들의 삶은 눈속임 삶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자기의 인생에 주어진 <오늘>이란 선물을 놓쳐 버리고, 늘 미래에 오지 않을 <눈속임 선물>에 현혹되어 허덕이며 생을 소모하고 있는 어리석은 현대인에게 주는 따끔한 충고.

십여 년만에 다시 읽었지만 문명 비평으로서는 <내 영혼이 따스했던 날들> 버금가는 훌륭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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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란1 2006-06-20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오래된 미래>의 감동과 비슷할 것같은 느낌입니다. 꼭 읽어 봐야겠군요.

글샘 2006-06-20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빠빠라기를 읽어보지 않으셨다면 한번쯤 읽어 보셔도 좋을 것입니다.
오래된 미래는 현실이지만, 이 책은 문명 일반을 비판하는 <장자>의 눈이니까요.

몽당연필 2006-06-27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빠빠라기>...읽어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책이었어요.
지금쯤 책장 어딘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텐데...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시간이 지난만큼 내 자신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도 궁금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