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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기술 ㅣ 밀란 쿤데라 전집 11
밀란 쿤데라 지음, 권오룡 옮김 / 민음사 / 2013년 1월
평점 :
일시품절
밀란 쿤데라 전집의 11번째 책.
밀란 쿤데라의 소설들 역시 상당 부분 현실과 넘나드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소설 읽기 이상의 힘을 기울여야 겨우 읽어낼 수 있을 정도의 독자에 불과한 나는,
유럽의 다양한 소설 세계,
특히 번역의 문제까지를 다룬 밀란 쿤데라의 이 책을 설렁설렁 읽어 넘기기엔 무리였다.
더군다나... 알라딘 서평단에서 '에세이' 분야의 서평자로서 읽어야 하는 책 치고는...
상당한 수준의 에세이를 만난 셈이다.
보통 여느 문맥에서 말하는 에세이처럼 신변잡기나 한 주제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기대한 내게
무지한 복병이 등장한 셈.
더군다나 해외 수학여행까지 겹쳐 책을 일어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책을 읽으려면, 유럽 소설에 대한 다양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우선, 밀란 쿤데라의 소설들, '농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웃음과 망각의 책' 같은 것들을 읽어야 하고,
카프카의 소설들도 '성, 심판, 변신' 같은 것들을 읽어 주어야 할 듯 싶다.
소설(로망)이라는 것들이 중세에 등장한 기사들의 사랑 이야기에서 발단된 것이라지만,
현대의 소설은 현대의 역사를 담고 있을 수밖에 없다.
밀란 쿤데라처럼, 체코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살아가는 이라면...
그의 언어 체코어나 불어가 담고있는 역사와 무관할 수 없는 것이다.
20세기 양차 세계대전과 지독한 민족주의 전쟁들 와중에서, 과연 '소설'은 어떤 기능을 하게 되는가?
괴물은 바깥에서 온다.
사람들은 그것을 역사라고 부른다.
이 역사는 모험에 나서는 사람들의 행렬과는 더이상 비슷하지 않다.
비인격적이고 다스릴 수도 예측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그런데 아무도 그것에서 빠져 나가지 못한다.
바로 이 순간(1차 대전 직후)에 중부 유럽의 위대한 소설가들은 근대의 종말적 역설을 느끼고 체험하고 포착했더 것(24)
역사는 인간을 하나의 파편으로 전락시키고 만다.
인간을 둘러싸고 있던 매력적인 아우라는 사라지고,
아우슈비츠의 아이히만처럼, 인간은 '관료 조직'의 말단 조작체에 불과하게 된다.
우리 시대에 와서 세계는 우리 주위로 갑자기 좁아져 버렸습니다.
세계가 덫으로 바뀌는 이러한 변화에 있어서 결정적인 계기는 아마 1914년의 세계대전일 거예요.(44)
카프카에게 제도는 그 자체의 법칙만을 따르는 메커니즘이다.
그 법칙은 언제,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지도 알 수 없고,
인간적 이해관계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으며 이해되지도 않는다.(147)
그럼, 그는 왜 소설을 쓰고, 소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가?
인간을 비인간화 시키는 세계에 대하여,
적어도, 인간은 인간이라는 소리를 지르기 위하여,
최소한의 저항을 위하여 이런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것이나 아닌가 싶다.
소설은 실제를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실존을 탐색하는 겁니다.
그런데 실존이란 실제 일어난 것이 아니고 인간의 가능성의 영역이지요.
인간이 될 수 있는 모든 것,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소설가들은 인간의 이러저러한 가능성들을 찾아내 실존의 지도를 그리는 것이죠.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존재한다는 것은 '세계-안에-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인물과 그의 세계를 '가능성으로 이해해야만 하는 겁니다.(65)
카프카에게서도 잘 드러나듯,
소설 속 세계는
인간적 세계의 극단적인, 그러나 현실화되지 않은 가능성이다.
안나 카레니나를 들먹이면서 톨스토이의 업적을 이렇게 쓴다.
사람들의 행위에 있어 비인과적이고 가늠할 수 없으며
심지어는 신비롭기까지 한 측면에 대한 조명이라는 문제에 대한 일종의 비유.(88)
하나의 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또 그것은 어떻게 행위로 전환되며 행위들은 또한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모험을 이루게 되는가.
소설은 결국 인간 세계의 가능성을 이야기 속에 형상화해내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통해 독자는 인간 삶의 '우발성'과 그 결과의 '필연성'에 대한 실존적 고민을 읽으며,
자신의 삶과 주인공의 삶을 나란히 두면서 긴장하고 안도하는 것이다.
이 책에는 그의 다양한 연설, 대담도 등장해서, 소설에 대한 그의 다양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다양함은 늘 풍부하게 헷갈릴 수 있다는 약점도 품고 있는 법)
그래서 그는 소설이 담고 있는 주제에 대해서 이렇게 정리한다.
주제란 실존적 질문이죠.
소설은 우선적으로 몇몇 기본 단어 위에 기초합니다.
주된 단어들은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줄곧 분석되고 연구되고 정의되고 다시 정의되어,
마침내 실존의 범주로 변환됩니다.
소설은 마치 집 한 채가 몇 개의 기둥 위에 세워진 것과 마찬가지로 몇 개의 범주 위에 세워진 것이죠.(124)
실존적 질문을 위하여 선택한 단어들과 그 단어들이 드러내는 실존의 범주.
결국 그는 자신의 소설을 설명하기 위하여,
키워드들을 정리하기에 이른다.
6부 소설에 관한 내 미학의 열쇠어들...
소설은 무엇을 드러내기 위한 것인가?
밀란 쿤데라 자신은 왜 소설을 써서 자신을 드러내는가?
이런 문제에 대하여 한 마디로 질문하기 어려우니,
이런 길고 난삽한 글들을 하나로 묶어 책으로 펴냈을 것이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 역시 이 책에서 엿볼 수 있다.
찌질하기 그지없이 사는 나의 삶은 참으로 비참하다.
그치만, 주변 사람들을 아무리 둘러봐도 다들 번드르르하게 잘도 적응하며 사는 거 같다.
나와 '유사'한 인물들은 현실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텔레비전 속 연속극 주인공들 역시 늘 해피엔딩으로 잘도 살고 있다.
소설 속에서 세계와 갈등하며 대치하고 패배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슬프기 그지없는 삶의 '실존'을 만나면서 긍정의 고갯짓을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시적인 독백은
심리적 공감이 큰 삶에게는 무한한 울림을 전달할 수 있다.
그렇지만 복잡다단하고 부조리한 세계에 맞닥뜨린 인간들에게,
남의 독백을 쉽사리 공감하고 수용하라고 하기에는 '시'의 공감대가 멀어져가고 있나보다.
왜, 이 시대의 소설을 이야기하는가...
같이 들어볼 만한 이야기가 많다.
(듣고 알아먹지 못한 부분이 많다는 고백이다.)
한자 하나 고칠 곳...
162쪽. 非時的... 時가 아니고 詩로 고쳐야 옳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