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그림이다 - 동서양 미술의 완전한 만남
손철주.이주은 지음 / 이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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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철주와 이주은이 그림을 두고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세대 차이가 나고,
전공이 동서양화로 다르고,
감성이 다른 두 사람의 글을 오가며 읽는 일은 마치 연인의 편지를 엿보는 듯한 설렘을 주는 듯 하다.
글의 어디에도 쓴 사람의 이름이 없어서,
어디가 다를까를 찾았다. 색깔이 달랐다.
손철주는 초록으로, 이주은은 보라로... 

자고 나면 날마다 빈 화폭과 마주서는 자들은 고통 속에서 복되다.
빈 화폭은 귀순하지 않은 자유의 황무지이다.
그 화폭은 인간의 세상 속에 펼쳐져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빈 화폭은 아직 경험되지 않은 낯선 공간이고 태어나지 않은 의미의 잠재태이다. 

그 잠재태의 공간이 인간을 손짓해 부른다.
빈 화폭은 그 안에,
살아있는 인간의 흔적을 담아서 이 세상과는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한다.
빈 화폭은 의미나 빛이 발생하기 이전의 우주 공간을 유동한다.
화가가 붓을 들어서 그 화폭에 맨처음 붓질을 할 때,
화폭은 인식 가능한 인간의 영역으로 돌연 바뀌는 것인데,
그 자유의 공간에서 인간은 부재하던 것들을 불러들이고 일으켜 세울 수 있다.(김훈의 서문에서) 

김훈의 서문도 멋지다.
그림이 화가와 맺는 관계를 '복됨'과 '고통'의 역설법으로 표현하면서,
빈 화폭이 그림이 되는 '텍스트성'을 부재에서 존재로, 우주 공간에서 인간의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표현이 멋있다. 

손철주의 말맛은 이미 정평이 난 바이고, 이주은의 삶의 이야기들은 아기자기하다.
아직 글맛이 제대로 그림을 품고있지 않지만, 손철주의 리드에 이주은은 성실하게 화답하고 있다. 

'그리다'는 움직씨이고 '그립다'는 그림씨입니다.
'묘사하다'와 '갈망하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지요.
묘사하면 그림이 되고 갈망하면 그리움이 됩니다.
종이에 그리면 그림이고, 마음에 그리면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어디서 옵니까. 아무래도 부재와 결핍이 그리움을 낳겠지요.
없어서 애타고 모자라서 안타까운 심정이 그리움입니다.
그리워서 그림을 그린다면 그림은 부재와 결핍을 채우려는 몸부림일 테지요. 

보는 이도 그립디는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그립습니다.
그래서 공감합니다. 공감은 그린 이와 보는 이의 욕구가 겹칠 때 일어나는 작용이겠지요.(손철주 프롤로그)

 허구헌날 '색즉시공'의 세상에 붓질을 하는 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손철주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가 음미하고 싶은 것은
배가 부르지 않아도 '지금 이 순간'을 풍부하게 해주는, 그래서 다 먹고 난 뒤에도 혀로 입맛을 다시게 되는 그런 맛.
그림도 그렇게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신선하고 순결한 과일로 술을 만들어 건조한 우리의 일상에 촉촉함을 선사했던 바쿠스의 포도주처럼...(이주은 프롤로그) 

이주은은 건조한 삶에 바쿠스의 포도주를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글을 쓰겠다고 한다. 

글을 읽으면서 두 저자와 나와 셋이서 포도주를 흠뻑 마신다면 어떨지를 생각해 보았다.
나의 '소울 푸드'는 '소주'이지만, 이주은이 포도주 이야길해서 주종은 불문하고 따르기로 했다.
나는 포도주를 음미하지 않고 훌쩍훌쩍 마시고 앉았는데,
손철주 선생이 능청스러우면서도 청승맞은 그림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대작을 한다.
옆자리의 이주은 선생은 마른 몸매 그대로 술도 깨작거리면서 잔만 들었다 놨다 시늉만 하다가 손선생 이야기에 간혹 끼어들곤 한다.
알지도 못하는 푼수에 이런저런 주워들은 이야기를 떠들어 대는 나를 보면서 손 선생은 장단을 맞춰 준다.
둘이서 마시는 술에 그림 이야기는 점점 깊어가지만, 이 선생은 말똥말똥 우리를 보다가 홀짝대다가 시계를 보다가 한다.  

그런가 하면 이야기의 시작은 엄숙했다.
와이어스의 '결혼'을 이야기하면서 '앙드레 고르'의 '세상은 텅 비었고, 나는 더 살지 않으려네.'가 등장했으니 말이다.(D에게 보낸 편지) 
거기 덧대 손 선생이 술잔을 기울이며 한 소리가 이인상의 와운이다. 병약한 이인상은 네 자식이 모두 참척을 당하고 아내도 먼저 죽는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술잔은 하염없이 기울어진다. 

나이 불문, 자리 불문하고 남녀가 어울렸을 때는 러브 스토리가 또 술안주라.
목마른 그리움을 이야기하는 손 선생이 '서생과 처녀'의 애절함을 시조에 얹어 노래한다.
사람이 사람 그려 사람 하나 죽게 되니/ 사람이 사람이면 설마 사람 죽게 하랴/ 사람아 사람 살려라, 사람 우선 살고 보자. 

이 선생은 일본의 분분한 낙화 그림과 더불어 그리스 신화의 데모폰 이야기를 뒤섞었지.
오랜 전쟁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데모폰은 필리스와 사랑에 빠지지만 집으로 갔고, 기다리다 지친 필리스가 고통과 절망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리에 피어난 아름드리 아몬드 나무, 그 나무를 끌어안고 '미안해, 미안해'하며 입을 맞추자 울음을 터뜨리듯, 봇물 터지듯 아몬드 나무에서 꽃잎에 돋아나는 반고호의 '아몬드 나무' 이야기까지, 

와이어스의 '비상'을 들면서 이 선생은 성공했을 때의 성취감에 대해 이야기하자,
이 선생처럼 공부 잘한 사람은 모른다며 손선생은 조선의 풍류로 넘어간다.
풍류 하면 주류 불문, 안주 불문, 원근 불문... 술이 빠질쏘냐.
오늘도 좋은 날이 이곳도 좋은 곳이/ 좋은 날 좋은 곳에 좋은 사람 만나 이셔/ 좋은 술 좋은 안주에 좋이 놂이 좋아라.
이렇게 시조로 주흥을 돋우는 거다. 

술에 불콰하니 취하면 늘 나오는 손 선생의 버릇은 능호관 이인상 얘기다.
절벽에 바싹 붙어 앉아 세상을 내려다보는 교목 아래 늙은이.
벼슬을 매양하랴 옛 산에 돌아오니/ 구릉에 솔바람 더러운 내입 다 씻었다/ 솔바람아, 세상 기별 오거든 불어 도로 보내라
손 선생과 마시는 한 잔은 칼칼하다. 

포도주 홀짝이던 이 선생도 삘 받았다. 시조는 없고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 한 구절~
Is this the real, is this just fantasy? 이거 장주여, 나비여? 킬킬대며 멋지다고 건배 한 잔! 
Mama~ just killed a man... mama, life had just begun, but now I've gone and thrown it all away. 사고치고 나니 삶이 뭔지 고민 되네... ㅍㅎㅎ 역시 어른이 되긴 어렵죠?
내가 누구인지 깨닫는 일은 역시 한 잔 마시고야 들이닥칠지도... ㅋ 만취 담날 깨어나는 게 장주의 꿈 같을라나 ㅎㅎ
풀린 눈에 보여주는 조지 베레스포드의 '버지니아 울프'는 왠지 삶을 슬프게 느껴지게 한다.
이건, 술의 힘인지, 예술의 힘인지...  

나랑 띠동갑 손 선생과 나보다 세 살 아래 이 선생과 나이 이야기로 접어드니,
늙었다 물러가자 마음과 의논하니/ 이 임 바리고 어드러로 가잔 말고/ 마음아 너란 있거라 몸만 먼저 가리라
하면서 손 선생 또 늙은 티를 낸다. ㅋ 
윤두서의 바위에 기대 달을 보는 노인 그림 이야기는 곧장 이백의 '월하 독작'을 떠올린다. 

이 선생은 프라고나르의 '사랑의 샘물'에 얽힌 이야길 한다.
이 샘물을 맛보면 갈증이 해소되는 게 아니라 아무리 마셔도 채워지지 않는다.
해갈되지 않는 목마름만큼 고통스런 게 있을까. 나이 먹을수록 갈증은 더해지는 모양이다. 

행복을 이야기하다가 김득신의 성하 직리를 보여준다.
시골집 낡은 질동이보고 비웃지 마소/ 거기에 술 거르며 아들손자 다 길렀네
은주전자에 술 따를 때 부럽겠지만/ 취한 뒤 대 뿌리에 자빠지기는 마찬가지. ㅋㅋ
음주 예찬을 떠드는 우리를 흘겨보면서 이 선생은 '빵 굽는 사람'의 고소한 행복을 이야기한다.
'예'에서 느껴지는 순종적 질서와 '기타 연주자'에서 보이는 자유로운 외로움 사이 어디엔가에 행복은 줄타고 있을는지...
아슴한 이 선생 금세 울 거 같다. ^^ 

손 샘은 술 좀 되더니 드디어 음양산수도 얘기를 꺼낸다. 삐뚤어져 보자는 거삼? ㅋ
좋은 술 마시고 은근히 취한 뒤/ 예쁜 꽃 보러 가노라, 반쯤 피었을 때
아이, 손샘, 옆에 이 선생 앉았구만...
대쾌도와 유곽쟁웅 얘기하면서 술 좀 깹시다.
술깨는 데는 남들 쌈 구경이 제일이라. ㅎㅎ 

일탈에 대해서 이 선생, 소심하긴 ㅋㅋ 무작정 물가에 철퍽 주저앉는 작은 일탈에도
옷이 젖으면 어쩌지, 속옷이 젖으면 어쩌지 걱정부터 앞서는 사람에게는
차라리 속수무책이란 네 글자가 해답이 될 수도 있다고요?
아이고, 이선생... 완전 범생이같은 이야기고만 ㅎㅎ (손 샘, 2차는 아무래도 우리 둘이 가야겠어 ㅋㅋ) 

취미, 취향 이야기에도 손 샘, 계속 음란하긴...
어느 해 선녀가 한쪽 젖가슴을 잃었는데/ 어쩌다 오늘 문방구점에 떨어졌네
나이 어린 서생들이 서로 다투어 어루만지니/ 부끄러움 참지 못해 눈물만 주룩주룩(무릎 연적)
무릎이 아니었구만... 헤헤... 어이, 보쇼, 이 선생 얼굴 빨개졌구만 ㅎㅎ, 뭐? 포도주 땜이라고 ㅎㅎㅎ 

이런, 이 선생.. 취미가 만화 그리기였다굽쇼? 우아하긴...
근데, 아, 손 선생... 점입가경이올시다.
금준에 주적성과 옥녀 해군성이/ 차양성지중에 어느 소리 더욱 좋으리/ 아마도 월침삼경에 해군성인가 하노라
아, 금잔 술따르는 소리와 미녀의 고름푸는 소리가 뭐가 좋냐구요... 달빛 비치는 한밤중 치마 고름 푸는 소리라니...
야해, 야해... 상상력이... ㅎㅎ 봐요, 이선생 뾰루퉁 해졌다구요. 책임져!!  

근데, 손 선생, 이제 아무도 못 말리겠구랴. 에라, 나도 모르겠다.
임제와 한우 나왔으면 갈데까지 간 거요. 이제 곧 종점이외다.
북천이 맑다커늘 우장 없이 길을 나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 비 온다/ 오늘은 찬 비 맞았으니 얼어잘까 하노라(임)
어이 얼어자리 무슨 일 얼어 자리/ 원앙침 비취금을 어디 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 비 맞았으니 녹아 잘까 하노라(한) 

ㅋㅋ 질펀한 사랑 이야기 했더니 이 선생도 끌고 나온 게,
봐요, 소녀 취향이라니까는... 큐피드와 돈 후앙 정도라니깐...  

술 취하여 엄마 이야기가 나왔는데,
손 선생, 엄마 이야긴 냅두고, 할애비 손 잡은 허난설헌의 그림 얘길세.
이제 손자 귀여울 나이신가 ㅎㅎ
엥, 근데 웬 땡중 그림? 이를 잡는 데 왜 엄지와 검지가 아니라 검지와 중지?
아, 미물에 대한 사랑이라굽쇼? 헐, 술 다 깨는 한 소식을 듣는구랴. 

이 선생, 역시 엄마는 엄마군요. 부엌에 있는 여인이란 안나 안처의 그림은 환한 등불 같아요.
그리고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오르막길'은 영락없는 이 선생 만화 취향이라니까요. ㅎㅎ 놀려서 미안. 

자, 이제 오늘은 이걸로 마치고, 손 샘, 우리끼리 2차로 간단하게 맥주 한 잔! 

에이, 손 샘, 2차왔는데 개구리와 달팽이 그림 한 장이라니요.
흐리멍텅한 정신과 풀어질대로 풀어진 육신을 만든 이유는 바로 이거죠.
딱 하나, 세상을 복잡하게 볼 필요 없다는 거.
삼세제불 일구탄이라뇨.
전생 금생 내생의 부처들을 한입에 삼킨 개구리라니...
아무리 뜻이 중요하다지만,
인생에서 허접한 것들은 줄이고 줄여서 '감필'해야 한다지만,
부처를 다 삼켜버린 당신, 이제 집에 갈 시간이우. 

손샘, 저기 택시 옵니다. 빠이빠이, 끅~ .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파워북로거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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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11-15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김훈과 손철주만 골라 편식하듯 읽었어요.
이주은은 뭐랄까...
자기가 가진 음식의 본맛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상대의 음식도 깨작깨작하는 느낌이었어요.
영혼을 나눈다는 닭고기 수프가 되더라도 이주은과는 같이 하고 싶지 않더라구요~ㅠ.ㅠ

서울은 쫌 추워요.
이 리뷰 읽으니, 이따 저녁에 뜨듯한 국물에 소주 한잔 해야겠어요~^^

마녀고양이 2011-11-15 23:44   좋아요 0 | URL
또 술마시게? 음, Y양 술꾼되려구 그러시나? 홍홍.

글샘 2011-11-16 09:32   좋아요 0 | URL
남쪽 지방은 덜 춥답니다. ^^
저는 아직도 어제 마신 술이 덜 깨서 해롱거리고 있어요. ㅠㅜ
아, 뜨끈한 국물 생각납니다.
이주은은 뭐랄까... 쫌 그렇죠. ㅎㅎ

마녀고양이 2011-11-15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이런 페이퍼는 곤란하단 말이예요!
제가 요즘 술을 멀리하는데다, 술을 그다지 많이 마시지 못 하기 때문에
이렇게 술 한잔이 너무나 그러워지는 페이퍼, 이런거 정말 슬프단 말이예요!

거기다, 서울에서 일산까지, 또는 누구를 만나더라도 요즘 택시비가 얼만줄 아세요! 흑흑.

글샘 2011-11-16 09:34   좋아요 0 | URL
저도 왜 이런 음주 페이퍼를 썼는지 모릅니다만,
손 선생님 글이 그렇더라구요. 술 마시고 수다떠는 것처럼요. ㅎㅎ
술 마시면 택시비 따윈 걱정하지 않는 대인이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