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가 죽었다. 죽었다기보다는 갑자기 나무토막이 되었다. 특별히 말썽을 부리거나 못된 짓을 일삼는 아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모를 기쁘게 해 주는 그런 아이도 아니었다. 언니와는 달리 성적도 시원찮아서 아예 큰 관심을 쏟지도 않았다. 그런 것들이 마음에 걸려 더욱 애절하게 나무토막이 된 아이를 붙잡고 제발 다시 살아나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기적이 일어났다. 나무토막에 두 눈이 생긴 것이다. 가만 보니 죽은 딸아이의 눈과 똑 닮았다. 그 눈으로 무언가 절실하게 말을 걸어온다. 옆집 아이처럼 쌍꺼풀이 진 예쁜 눈은 아니지만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직 나무토막일 뿐이지만 딸아이의 눈을 보자 죽었던 아이가 되살아나기라도 한 것처럼 기쁜 마음에 밤새도록 눈으로 대화를 나눈다. 딸아이의 눈이 이렇게 예쁜지 처음 알았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자 부모의 마음은 다시 애가 타기 시작했다. 입을 열어 말을 할 수만 있다면, 귀가 있어 이쪽에서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더 이상 소원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런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는지 나무토막에 입이 생기고 드디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말을 한다. 비록 나무토막이지만 딸아이의 목소리가 분명하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귓바퀴도 분명 딸아이의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부모의 마음은 더욱 간절해졌다. 그 간절함이 다시 하늘에 닿았는지 딸아이의 볼그레한 뺨이 돌아오고 봉긋한 가슴도 생겼다. 배꼽티를 입고 있어서 배꼽도 보였다. 늘 그것 때문에 부모 자식 간에 싸움도 하고 그랬는데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왜 배꼽티를 못 입게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시 손이 돌아오고 발도 돌아왔다. 토실토실한 엉덩이도, 허리도 돌아왔다. 이제 나무토막은 없어지고 거기에 온전한 사람이 서 있다. 사랑을 나눌 수 있고 꿈을 꿀 수도 있는 영혼을 가진 사람 말이다. 이 놀라운 기적에 부모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배가 부를 것 같다. 눈에 넣어도 아플 것 같지가 않다. 가만 생각해 보니 이 놀라운 기적들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미 존재했던 것이다.

아이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학교에서 성적표를 받아 온다. 여전히 중간 이하의 성적을 받아 온다. 영어나 수학 문제를 푸는 머리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명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아이가 다시 살아났는데 이게 무슨 대수냐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부모의 마음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이가 지닌 몸과 생명의 경이로움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딸아이의 눈과 입술과 귀와 엉덩이와 허리와 손과 발은 더 이상 놀라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웃집 아이에게도 있는 너무도 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류대를 목표로 공부하고 있는 옆집 아이에 비하면 딸아이가 초라해 보이기만 한다. 그 초라함이 자신의 것이 되기 시작하면서 딸아이에게 다시 미움이 돌아갔다.

바로 그날 밤, 딸아이가 다시 나무토막으로 돌아가 버렸다. 부모는 통곡을 하다가 가만 꿈에서 깨어난다.

안준철, 그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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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이 학생에게 잘못 가르치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옳게 공부를 해야 한다.

교사의 일은 보석 찾기, 아이들 스스로 가슴 깊이 숨겨진 것들을 찾아 내어 그 휘황한 광채에 황홀해하는 모습을 보는 일, 그것은 교사에게 허락된 최고의 보람이자 즐거움이지만 학생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지 앟으면 불가능한 일

아이들을 함부로 판단하는 것은 죄다.

오늘 꽃이 피지 않았다고 내일도 꽃이 피지 말라는 법은 없다. 생명이 있는 한 따사로운 햇볕과 바람만 있으면 꽃은 피어나게 마련이다.

얼굴이 예쁘거나 성실한 아이를 귀여워해 주고 칭찬해 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반대의 경우라도, 교사라면 교육적 상상력으로 칭찬의 조건을 만들어 낼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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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ylontea 2004-07-30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퍼갈께요..

드팀전 2004-07-30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휴가때 오대산 상원사을 다녀왔습니다. 상원사에는 가장 오래된 동종이 하나 있지요.국사시간에 배웠던... 종은 누각을 세워 보호하고 있더군요. 그 틈새로 얼마나 돈들을 던져 넣었는지.바닥에 100원짜리가 수두룩하데요.도대체 왜 돈을 던져 넣는거지요?
어쟀건 아이와 부모들이 함께 온 경우도 많았습니다. 한 아이의 부모 동전을 아이에게 주며 아주 교육적인 목소리로 ... " 던져서 종을 맞춰봐.무슨 소리가 나는지..."
아주 교육적으로 훌륭하신 부모님이더군요. 보고 있다 열받아서 한 소리 했습니다.
'아주머니 그다지 교육적으로 좋지 않은것 같은데요..."

애들 망치는 건 부모 맞습니다.그러고도 아이 한테는 공부잘해라 뭐 잘해라 뭐 잘해라하지요.
정신차리고 교육받아야 할 건 아이가 아니라 부모들인것 같습니다.

밀키웨이 2004-07-31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새벽별님 서재 거쳐서 왔습니다.
퍼갈께요, 근데 눈이 쪼매 아퍼서 글자색은 수정하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일단 수정해서 올리구요, 혹시나 마음에 아니 드시면 서재주인 보기로 말씀해주세요 ^^
인사도 미처 못드리고 퍼가기부텀 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

글샘 2004-08-01 0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모의 문제만은 아닌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은 인성이 올바른 인간이기 전에 적자생존의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인간인 것이 현실이니까요.
그러나 우리 아이들의 가치는 비교 대상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지 않을까요.
정작 포기하고 싶어지는 건, 그 아이들일테니깐요.
아이에게 요구하기 전에, 사랑부터 주는 마음을 요즘 배우고 있습니다.
사랑은 공부라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