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Stars Are Scattered (Paperback, 미국판) - 『별들이 흩어질 때』원서
빅토리아 제이미슨 / Dial Books for Young Readers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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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은 파괴되고 우여 곡절 끝에 난민 캠프에 들어온 두 아이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지내게 된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 배움을 얻고 성장하는 둘의 모습이 대견했다. 가족과 헤어지고 고향이 사라지는 비극은 없었으면 하고 누구에게나 같은 기회가 주어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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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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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이상문학상 작품집에서 김기태의 작품을 처음 만났다. 꽤나 인상적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얼마 전 첫 소설집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반가운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이상문학상 작품집에서 읽은 책은 <세상 모든 바다>이다. 부모님이 자이니치인 제일교포3세인 하쿠와 한국인 백영록의 묘한 만남이다. BTS 이후 가장 성공했다는 케이팝 그룹인 세모바가 아니었다면 그들은 만나지 않았을 사람들일지 모른다. 세상 모든 바다는 ‘ALL THE SEAS OF THE WORLD’로 그 자체로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의미로 보였다. 세모바는 인권,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평소 그런 가사와 메시지를 꾸준히 펼쳐왔다. 팬들도 이에 원전 건설 예정인 곳에 반대 메시지를 내며 ’SAVE MY BADA’로 캠페인을 벌이기도 한다. 


<로나, 우리의 별>에서는 대국민 오디션을 통해 가수로 데뷔하고 성공하는 오로나를 만날 수 있다. 그는 기타 하나에 의지해 목소리로 승부하는 가수로 시작해 여러 앨범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기부를 하는 등 사회적 영향력을 펼치게 된다. 스스로 길을 닦아 개척해나가겠다 말할 때는 결연한 기개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세모바와 오로나를 보면서 엔터테이너에게 대중이 기대하는 바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특출난 장기, 스타성을 원하면서도 사회적 목소리를 내면 ‘적당히 해라!’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가. 게다가 도덕성까지도 요구하는 상황이라면 참 요즘 스타란 쉽지 않겠다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보편교양>은 생각할 거리가 많은 소설이었다. 곽은 고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고전교양’이라는 수업을 개설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엎드려서 잠을 자고 5명 정도만이 눈을 뜨고 귀를 기울일 뿐이다. 그 5명의 아이들 중 은재가 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럼에도 입시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현재의 공교육 시스템을 부정하기란 어렵다. 학교 수업도 모자라 늦은 시간까지 학원 수업 및 과외에 매달리는 아이들에게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쓸데없거나 사치라고 느껴질 수 있을테니까. 


모두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수업을 듣지 않는 게, 혹은 어떠한 학교교육에도 참여하지 않는 게 부와 권력만을 추종하고 소수자를 배척하며 환경을 파괴하는 불량배로 성장할 거라는 뜻은 아니었다. 노동 착취에 시달리며 형벌 같은 생존을 이어가지만 어떤 비판 의식도 벼릴 수 없는 죄수가 된다는 뜻도 아니었다. 아무도 예단할 권리는 없었다. 학교에서 잘 배워야 훌륭한 시민으로 성장한다는 믿음은, 제도교육에서 ‘모범적인’ 성취를 얻어서 삶의 기반을 마련한 자신 같은 교사들의 고정관념이었다. 공교육이란 중산층의 아비투스를 재생산하고 체제 유지에 기여하는, 필연적으로 보수적인 국가 장치 아닌가. 바른 자세로 수업을 경청하라는 지도는 규율화된 신체를 양산해 사회적 유용성을 극대화하려는 ‘학교-감옥’의 통치술 아니냔 말이다. 곽은 일리치, 부르디외, 푸코 등을 떠올리며…… 어떤 지도도 하지 않았다. 엎드린 학생들의 뒤통수를 애정어린 눈으로 보았다. 학생들이 버리고 간 학습지의 빈칸에 숨은, 자신이 모르는 언어로 된 가지각색의 목소리들을 상상했다.


은재 아버지는 학교를 통해 수업에 대한 항의를 한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히는 게 유해하지 않는가 하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입시 과목 선생님이 아버지께 자본론은 문제 되는 저작이 아니라고 해명한 뒤 그제서야 곽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한다. 은재는 졸업식 때 곽에게 3학년 때 배웠던 과목 중 고전교양 수업이 가장 재밌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무척 기뻐한다. 곽은 입시 과목에서 벗어나 보편 교양을 지향하려 했으나 학생의 이야기 한마디에 일희일비하고 좌지우지되는 것을 보면 학생이 입시, 점수에 목을 매는 것처럼 자신도 평가에 목을 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말 우리가 바라는 교육자에 대한 모습은 어떤 것일까.


<롤링 선더 러브>는 공포와 동경 사이를 저울질하며 마음의 길을 잃은 주인공 독신녀 맹희가 나온다. 그는 사랑이란 무엇일까를 질문하며 짝짓기 프로그램에 큰 마음을 먹고 나간다. ‘완두’가 된 맹희는 출연자가 아닌 인터뷰 때마다 만난 ‘우엉’ 피디에게 호감을 갖는다. 방송이 나간 후 맹희는 생각한다.


저게 나인가. 아니지. 저것도 나인가. 그건 맞지. 완두는 맹희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일부이긴 했다. 나 생각보다 관종이었을지도. 맹희는 갖가지 조합의 검색어를 입력하여 시청자들의 반응을 찾아 읽었다. 각오는 했지만 어떤 말들은 너무 부당했다. 사람들은 나이와 직업과 외모를 초월한 사랑이 더 진실하다 여기면서도 정말 그것들을 초월하려고 시도하면 자격을 물었다. 인생을 반도 안 산 사람에게 어떻게 ‘도태’되었다는 표현을 할 수 있는지, 596명이나 거기에 추천을 누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의아했다. 맹희 자신도, 감자도 토마토도 양파도 그들이 비난하는 만큼 잘못한 건 아니었다. 어째서 이렇게나 많은 남자가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해지고 싶다’는 말을, 무엇을 속이거나 팔아넘기겠다는 말로 번역해서 들을까.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와 다를 것이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고독한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기대서만 채워지는 충족감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사랑은 이성 간의 사랑만이 다가 아니다. 일상에서도, 자연에서도 충분히 애정을 쏟을 만한 것을 찾을 수 있다. 


전철역을 나서고도 집에 가지 않고 산책하는 날들. 노점에서 굽는 붕어빵 냄새. 담장 위를 걷는 고양이의 발걸음. 전동 킥보드에 올라탄 여중생들의 웃음소리. 모든 것이 은총처럼 빛나는 저녁이 많아졌다. 하지만 맹희는 그 무해하게 아름다운 세상 앞에서 때때로 무례하게 다정해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런 마음이 어떤 날에는 짐 같았고 어떤 날에는 힘 같았다. 버리고 싶었지만 빼앗기기는 싫었다. 맹희는 앞으로도 맹신과 망신 사이에서 여러 번 길을 잃을 것임을 예감했다. 많은 노래에 기대며. 많은 노래에 속으며.


9편의 소설 중 좋았던 작품 두 개만 뽑으라면 표제작인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과 <무겁고 높은>이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두 사람의 역사는 길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데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너무나 단순한 문장일 수도 있는데 그냥 좋았다. 니콜라이와 진주는 자동차 전조등 생산 공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마트 직원으로 팍팍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쉬운 삶을 사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둘은 그렇기 않기에 서로를 향해 내민 손이 위로가 되고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미래는 여전히 닫힌 봉투 안에 있었고 몇몇 퇴근길에는 사는 게 형벌 같았다. 미미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워 담았고 그게 도움이 안 될 때는 불확실하지만 원대한 행복을 상상했다. 보일러를 아껴 트는 겨울. 설거지를 하고 식탁을 닦는 서로의 등을 보면 봄날의 교무실이 떠올랐다. 어떤 예언은 엉뚱한 형태로 전해지고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야 실현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때로는 시시하고 때로는 끔찍했으며 결국에는 죄다 망해버린 연애들이 있었다. 초라하게 사라진 나라들조차 폐허 어딘가에는 영광을 남기는 것처럼 그 연애들에도 부정할 수 없는 순간은 있었다. 연애가 망하더라도 사랑은 망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저렴한 각본으로 사랑하느니 다른 이름을 붙이고 싶었다. 어차피 첫 단추부터 이상했으니까. 차라리 이것은…… 딩동. 음식 도착을 알리는 초인종이 울렸다. 두 사람이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우리는 친한 사이야."


<무겁고 높은>에서는 역도 선수인 송희를 만날 수 있다. 우리 나라 스포츠는 일부 종목만 인기 있을 뿐 비인기 종목은 대중들조차 관심이 없다. 인기 종목도 프로 선수로 데뷔하고 성공하기 힘든데 비인기 종목은 그보다 더할 것이다. 어쩌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기록을 깨어 나간다는 것이 고독함을 불러오지 않을까. 

송희는 마지막 대회에서 94kg의 바벨을 들었으나 100kg의 바벨을 드는 것에는 실패하고 경기장을 내려온다. 

정확한 궤적으로 떠오르는 바벨. 무수히 상상했던 깨끗한 움직임. 꽂힌 원판을 세어보니 이미 100킬로그램이었다. 3차 시기를 위해 복도를 걸으며 송희는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오늘 역도대에 오른 건 이십여 명. 그중 십수 명은 역도화를 벗게 될 것이다. 송희는 자기가 그 십수 명 중 하나라는 걸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다만 바벨을 떨어뜨리고 끝내고 싶진 않았을 뿐.

이 대목을 읽는데 뭉클했다. 자신과의 승부에서 송희는 적어도 지지 않았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기회를 송희는 쉽게 날려버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만두더라도 후회는 없지 않을까. 그는 다른 일을 하게 되더라도 힘을 내서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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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4-05-20 1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언제 나왔죠?! 알라딘 오랜만에 들어왔다가 이런 기쁜 소식을 또 접하고! 고마워요 화가님!

거리의화가 2024-05-21 08:02   좋아요 0 | URL
수이 님 도움이 되셨다니 저도 기뻐요^^ 평범함 속에 특별함을 찾으실 수 있으실 거예요. 건강 잘 챙기셔요!

2024-05-21 1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 - 세계의 시간, 제2판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
페르낭 브로델 지음 / 까치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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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시리즈의 마지막 3권은 ‘세계’를 다룬다. 1권에서는 물질활동, 일상의 ‘소비’에 주목했고, 2권에서는 그 상위인 ‘자본주의’ 경제 구조에 대해 알아보았으니 3권은 시간과 공간을 바탕으로 한 세계를 살펴볼 차례가 되었다. 


세계의 시간은 전체사의 상층구조의 작동과 관련을 가진다. 그 상층구조는 아래층에서 작용하는 힘들이 창조하고 부양해준 결과물이지만, 동시에 그 무게가 아래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장소와 시대에 따라서 이러한 아래에서 위로의 움직임과 위에서 아래로의 움직임의 중요성이 변화한다. 그러나 사회적, 경제적으로 가장 발전한 지역에서도 세계의 시간이 모든것을 다 책임지지는 못한다. - P17


세계경제는 지구 전역에 걸쳐 있다. 시스몽디가 이야기했듯이 이것은 "전지구적인 시장 또는 "함께 교역을 하여 오늘날에는 일종의 단일시장을 형성한 인류 전체, 또는 인류의 어느 부분 전체를 가리킨다. 세계-경제(이 말은 사실 어색하고 프랑스어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 표현으로예전에 내가 독일어의 ‘벨트비르트샤프트[Weltwirtschaft]의 번역어를 찾을 때 그다지 논리적이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달리 나은 표현이 없어서 만든 말이다)는 우선 지구의 일부분에만 관련된 말임을 주목해야 한다. 이 말은 경제적으로 독자적이며, 핵심적인 것들을 자급자족할 수 있고, 내부적인 연결과 교역이 유기적인 통일성을 이루는 단위를 가리킨다. - P26


3권의 내용은 우리가 대부분 세계사에서 배우는 경제사의 궤적의 흐름을 보여준다. 시장과 자본의 흐름을 바탕으로 한 ‘경제’의 영역이다. 경제는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고 사회, 문화 등과 엮여서 돌아간다. 그렇기에 15세기에서 18세기까지의 세계 경제의 역사를 살펴보는 일은 그 시기의 경제만이 아닌, 사회와 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 방편이 된다. 

다만 여기에서 세계의 시간과 공간에 보편성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브로델은 세계 지도의 나라들 중 유럽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부각되어 떠올라 빛을 본 국가가 있다면 그 이면에는 착취 당하는 국가들과 수많은 시민들이 있었음을 인지해야 한다. 


세계(또는 세계경제) 차원의 분업은 매번 동등한 파트너 사이에서 조화롭고수정 가능한 협약을 통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결정한 종속관계의 연쇄로서 점진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불평등 교역은 세계의 불평등을 낳고 반대로 세계의 불평등은 끈질기게 교역을 창출한다. 불평등 교역과 세계의 불평등, 이 두 가지는 모두 오래 전부터 존재하던 현실이다. 경제라는 카드놀이에서는 다른 것보다 더 나은 패들이 언제나 존재했으며 때로는 속임수가 개재되기도 했다. 어떤 활동은 다른 활동들보다 더 많은 이윤을 가져다준다. - P62


서유럽은 북쪽과 남쪽으로 지리적으로 구분되었을 뿐 아니라 사회, 문화적으로도 다른 모습으로 대비되었다. 하나는 지중해를 둘러싼 이탈리아와 이슬람과 비잔티움의 남유럽 세계, 다른 하나는 원시적 모습에 가까웠던 북유럽의 세계다. 

13세기 두 세계는 샹파뉴 정기시를 통해 물품 교역이 이루어졌다. 


14세기 서유럽이 불황을 겪는 와중에도 이탈리아 도시들의 교역은 여전히 활발했다. 이 중 특히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경쟁이 치열했다. 이 중 승리한 것은 베네치아다. 어째서 승리했는가.


베네치아의 경제적 풍토는 따라서 아주 독특했다. 상업활동은 전반적으로 대단히 활력이 넘쳤지만 그것은 무수히 많은 소규모 사업으로 나뉘어 행해졌다. 장기간 지속되는 회사인 콤파니아(compagnia) 몇몇이 등장하기는 했으나, 피렌체식의 거대주의는 결코 이곳에서 적합한 토양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정부이든 도시귀족 엘리트이든 피렌체에서처럼 도전을 받는 일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베네치아는 안전한 곳이었다. 달리 말하면 일찍이 유복한 삶에 푹 빠진 상업활동은 이미 검증된 전통적인 방법에만 만족했던 것이다. 그러나 거래의 성격 역시 하나의 원인이 된다. 베네치아에서 상업은 무엇보다도 레반트 무역을 의미했다. 이것은 분명히 막대한 자본을 요구하는 상업이므로 베네치아의 거대한 화폐자본이 여기에 투입되어서 시리아로 갤리 선단이 떠나고 나면 도시 내에 현찰이 문자 그대로 바닥나는 정도였다. 이것은 나중에 서인도로 선단이 떠난 후에 세비야에서 일어났던 현상과 비슷했다. 그러나 자본의 순환은 제법 빠른편이어서 6개월 혹은 1년 정도면 회수되었다. 그래서 선박의 왕복이 이 도시의 모든 활동에 리듬을 부여했다. - P183


베네치아는 비교적 안전했고 지리적 상황이 더 유리했다. 베네치아의 석호를 나오면 아드리아 해로 들어가게 되지만 이곳은 여전히 자국 내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에 비해서 제노바는 도시를 빠져나오면 티레니아 해로 들어가는데 이 바다는 너무 넓어서 효과적으로 감시하기가 어려웠고 사실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되어 있었다. 그리고 베네치아는 오리엔트 방향의 교역로에 섬들이 연이어 있는 것이 이점으로 작용했다. 또 베네치아는 독일 및 중유럽 지역과 연결되어 면화, 후추, 향신료, 은 등의 공급을 쉽게 주고받을 수 있었다.  


베네치아는 16세기 초부터 쇠퇴하게 되었는데 1500년 이후부터 안트베르펜이 베네치아의 위치를 대신하게 되었고, 포르투갈이 아프리카 대륙과 대서양 연안의 여러 섬들을 정복하면서 세계를 확장시킨 것이다. 

포르투갈의 해상항로가 열린 이후 안트베르펜으로 직접 후추가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1508년 포르투갈 국왕이 상관을 세우는데 그곳은 인도 상관의 안트베르펜 지사였다. 후추와 향신료를 찾는 고객이 포르투갈의 해상을 통해  가능해져서 더는 베네치아의 상관을 거치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또 1520~1530년대 아메리카산 은과 스페인 상품이 안트베르펜의 경기를 활성화시켰다. 합스부르크 가문과 발루아 가문 간의 전쟁 이후 1559년 카토-캉브레지 조약이 맺어지면서 스페인과 프랑스, 이탈리아, 발트 방면에서 통상이 재개되자 한자 동맹이 다시 기지개를 켰다. 


안트베르펜은 하나의 어음이 여러 사람들 손을 거치면서 유통되다가 어음을 처음 발행했던 사람 자신이 다른 채권의 지불용으로 받게 될 때 어음은 사라진다는 ‘소환’이라는 제도를 통해 채권자들이 마지막 채무자에게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했다. 이는 기존의 환어음이나 은행 체제 바깥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유연한 체제로 편리성과 효율성을 둘 다 잡았다. 이 제도는 추후에 프랑스, 영국, 포르투갈에서도 통용되었다. 


안트베르펜 이후에는 제노바가 잠시 유럽의 경제를 책임 지게 된다. 

제노바는 제약적인 지리 조건 때문에 언제나 망을 보며 살아야 했다. 별수 없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동시에 각별히 신중해야 했다. (…) 제노바는 언제든지 방향을 바꾸고 또 그때마다 필요한 변화를 수용했다. 외부세계를 독점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 그곳을 조직했다가 그곳이 살아가기에 불편하거나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가차 없이 버렸다. - P223

제노바의 부는 스페인령 아메리카의 은에 기대는 것보다 더 큰 정도로 이탈리아 자체의 부에 근거하고 있었다. 피아첸차 정기시라는 강력한 체제를 통해서 이탈리아 도시들의 부는 제노바로 이끌려 갔다. 제노바인인든 타지인이든 소액 대출자가 아주 적은 보상만을 받고 그들이 저축한 돈을 은행업자에게 맡겼다. 이렇게 스페인의 재정과 이탈리아 반도의 경제는 항시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 P231


암스테르담은 중간자적 위치에 있다. 과거의 베네치아, 안트베르펜, 제노바 같은 도시 경제의 중심 시스템에서 세계를 지배하는 근대국가 경제 시스템으로 건너가는 길목에 있는 것이다. 네덜란드는 좁은 국토와 부족한 자연자원으로 곡물 반 이상을 수입해야 했고 인구 절반이 도시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함께 살기 위해 서로 돕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암스테르담은 기본적인 어업을 기반으로 저렴한 조선비용으로 해운업을 성장시켜나갔다. 


늦어도 1550년경 이후에는 네덜란드의 화물선들이 북유럽과 스페인 및 폴그투갈 사이의 해상무역 대부분을 장악하게 되었다. 암스테르담에 거래소가 개장되었고 보험국이 설립되었다. 1602년 3월 동인도회사가 설립되었다. 이 회사는 국가 속의 국가로 독립적 성격을 지니는 것이 특징이었다. 동인도 회사는 아시아의 사업에 대해서 독점적 이익을 챙기기 위해 끊임없이 나아갔다. 네덜란드는 1650~1660년대쯤 제국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동인도 회사의 도움으로 아시아 시장에서 포르투갈의 힘을 밀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다. 1696년을 전후한 30-40년 동안에 동인도회사의 사정이 지속적으로 악화되었다. 

유럽에서 후추의 우월성이 사라진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것은 1670년부터 잠재적으로 보이던 현상이다. 이외의 보상으로서 고급 향신료들이 중요한지위를 계속 유지하거나 혹은 상대적으로 나아졌으며, 비단류나 면직류 염색을 한 것이든 아니든와 같은 인도의 직물이 갈수록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고 또 차, 커피, 라카, 중국 도자기 등의 새로운 상품들이 등장했다. 또 과거의 유통로와 시장에서 고장이 일어났고, 이 회사가 많이 이용하던 순환로에 틈새가 벌어졌다. 이런 경우에 흔히 있는 일이지만 때로는 옛 체제가 계속 살아남는 것이 새로운 적응을 방해하고는 한다. 가장 중요한 혁신은 차 무역의 확대 그리고 각국 상인들에게 중국이 개방된 일일 것이다. 1698년부터 영국 동인도회사가 재빨리 직교역(즉, 현찰교역)에 뛰어든 반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기존의 방식을고집했다. 즉, 후추와 약간의 계피 그리고 산탈 목재, 산호 등을 사러 바타비아에 오는 정크선들에서 중국 상품을 구매하는 데에 익숙했기 때문에 현찰에 의존하는 일 없이 상품을 통해서 거래하는 간접교역을 계속했다. 마지막으로 면화, 은 그리고 종국적으로는 아편을 주고 차를 구하는 벵골-중국사이의 연결이 영국에 이익을 주었다. 게다가 그동안 이 회사의 성공에 큰도움을 주던 코로만델 해안이 인도 내의 전쟁으로 인해서 황폐해진 것이 큰타격을 가했다. - P306~307


프랑스 리옹과 파리는 전국 시장으로 이름을 날렸던 도시들이다. 사실 세계 경제사에서 프랑스의 힘은 뚜렷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생각되었는데 18세기 프랑스의 경제성장은 두드러졌다고 한다. 당시 프랑스 국민총생산은 영국보다 두 배 이상 컸다. 강물을 이용한 운하와 내륙 도로의 도로망이 수송에 유리함을 제공했으니 프랑스 전국시장이 발전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든 셈이다. 


그러나 영국은 7년전쟁과 베르사유 조약을 거치며 세계 경제를 주름잡는 국가로 부상한다. 

영국의 전체 경제공간은 런던이라는 최정점에 복종한다. 정치적인 중앙집권, 영국 국왕의 권력, 상업활동의 집중 같은 요인들이 어우러져서 수도 런던의 위대함을 만들었다. 반대로 이 위대함이 이번에는 자기가 지배하는 공간을 조직하는 힘이 되며 이곳에 행정망과 시장망의 다양한 연결을 창출한다. 그라스는 보급영역의 조직화라는 점에서 런던이 파리보다 한 세기 이상앞서 있다고 주장했다. 런던에 우위를 가져온 요인 중에는 런던의 항구활동이 대단히 활발하다는 점(런던의 항구는 적게 잡아도 영국 전체 교역의 5분의 4 이상을 차지했다)도 작용했고 여기에 덧붙인다면 사치와 낭비곧문화적 창조와도 연결된다의 거대한 기생적 기구로서 파리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는 점도 작용했다. 마지막으로 특히 중요한 것은 런던이 일찍부터 수출입을 거의 독점한 결과 영국 전체의 생산 및 재분배망을 통제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영국의 다양한 지역들에 대해서 런던이라는 수도는 일종의 조차장(場)이었다. 모든 것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가 국내로든지 국외로든지 다시 배분되어 나갔다. - P511

영국이 산업혁명을 성취하게 된 힘은 단지 팽창하는 영국 시장의 상승 또는 조직화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또 물질적 풍성함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사실 활기 넘치던 18세기에는 영국만이 아니라 유럽 전역이 풍성함을 누렸다). 그것은 영국이 스스로 인식하지도 못한 채 근대적인 해결책들을 취하도록 만든 일련의 기회들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파운드 스털링 화라는 근대적인 화폐, 근대적인 방향으로 형성되고 변형되던 은행제도, 그리고 장기채 또는 영구채라는 안정성 속에 닻을 내린 공채 경험적으로 만들어진 가장 효율적인 걸작품 등이 그런 예들이다. 이 마지막 것은 되돌아보건대 영국의 경제가 건강하다는 최고의 표시였다. 이른바 영국의 재정혁명으로부터 탄생한 이 솜씨 좋은 체제는 영구히 지불되는 공채이자를 규칙적으로 지불했다. 이자지불을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는 것은 파운드 스털링 화의 가치를 계속 유지한 것만큼이나 특출한 묘기에 속한다. - P526


세계 곳곳에서 벌어졌던 지배와 저항의 흐름도 살펴본다. 아메리카, 아프리카, 러시아, 튀르키예, 아시아를 살펴본다. 아메리카, 아시아, 러시아 등은 특히나 한반도와 더 밀접한 거리에 있었기 때문인지 더 집중해서 읽게 되었다. 그런데 20세기 미국이 강자를 차지하지 않았다면 이 챕터는 안 쓰여졌을까라는 삐딱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어쨌든. 


영국은 산업 혁명으로 근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산업화는 개발, 발전을 낳았지만 ‘성장’이라는 키워드가 지금은 양면성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면 시간이 제법 흐른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돈과 자본의 가치는 무시할 수가 없다. 자본주의는 무너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가속화되어 부익부빈익빈의 불평등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와 시장 경제는 언제까지 가게 될까 의문을 품으며 오늘도 월급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직장인은 노동의 가치가 노동자에게 제대로 반영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사회 전체가 산업생활 방식을 향해서 움직여간다는 의미의 산업주의(industrialisme)라는 말이 산업혁명이라는말보다 더 넓은 의미를 가진다는 것은 분명하다. 농업 우위의 사회로부터 산업생산 우위의 사회로의 이행을 뜻하는 그 자체가 이미 심대한 움직임이다-산업화는 앞에서 이야기한 것보다 더 넓은 의미를 가진다는 것도 분명하다. 산업혁명은 말하자면 산업화의 가속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근대화라는 말은 산업화보다도 더 넓은 뜻을 가진다. "산업발전만이 근대경제의 전부가 아니다. " 성장은 더더욱 넓은 뜻을 가진다. 이 말은 역사의 총체성을 포함한다. - P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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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집 - 茶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0
라오서 지음, 오수경 옮김 / 민음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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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학으로 희곡 작품은 처음 읽게 되었는데 참 인상적이었고 재미나게 읽었다.

청말 시기부터 중국 항일전쟁 이후 미군이 들어와 있을 시기까지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한다.

1막의 배경은 청말 원명원이 서양 세력에 의해 불태워지면서 ‘이러다 청나라 망하는 것 아니야?’란 소리가 나올 정도로 혼란스럽던 때였다. 말 한 번 잘못했다가 언제끌려갈지 모를 혼란스러움이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전통을 고수해야 한다는 보수주의자들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고 개혁해야 한다는 ‘유신’의 입장으로 갈려 있었다.

2막의 배경은 원세개가 죽고 난 뒤 온갖 군벌들이 할거하며 내전을 일으키던 때다. 이 때도 ‘개량(개혁)’을 해야 하느냐 ‘보수’를 내세워야 하느냐로 갈등이 심화될 때다. 내전으로 민심은 흉흉해지고 공포와 두려움, 불안감이 팽배하다. 양분으로 나뉘어진 시기에 적당히 시류를 타는 이들이 이런 혼란한 시기에는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회색분자는 안 좋은 늬앙스가 담겨 있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들이 오래 살아남을지도…

3막의 배경은 항일전쟁 이후 미군이 북경에 들어오고 국민당과 공산당 간의 충돌이 있던 때다.
반동으로 몰리면 재산이 몰수되거나(사실 갖다 붙이기 나름인 ‘반동’이지만) 잡혀가서 처형되기도 하던 무서운 시절이었다.

주인공인 왕이발이 경영하던 유태찻집은 시류에 맞게 계속 찻집을 변화시켜갔다. 그런데 그 끝은 참. 사람이 먹고 살기 위해 못할 것은 없을 것이다. 살다 보면 싫은 소리도 해야 할 때가 있고 반대로 그런 소리를 듣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럴 때마다 ‘더러워서 못해먹겠네!’라는 이야기를 되뇌이게 되기도 한다.

100년 전의 중국을 무대로 한 극의 내용이지만 오늘날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들이 많다.

“나랏일은 이야기하지 맙시다.” 라는 찻집의 글은 꼴도 보기 싫은 요즘의 정치를 생각하게 하기도 하고.

”우리에게 밥 먹여주는 이에게 충성을 바치자!“라는 말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서민들은 그저 밥 먹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해서 공감이 갔다.

”우리 이 예술이 몇 년만 더 지나면 모두 사라져 버릴 것 같다는 거지!“ 라는 말에서는 오래된 것은 무조건 낡은 것으로 치부하고 폐기하는 인식에 대한 세태 풍자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는 비단 예술 뿐 아니라 구식 건물을 부수고 아파트나 주상 복합건물을 짓는 대한민국이 생각나서 씁쓸함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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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 - 교환의 세계, 제2판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
페르낭 브로델 지음 / 까치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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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델은 마르크 블로크가 제안한 ‘장기 지속’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여 15~18세기에 걸쳐 다양한 공간을 배경에서 일어난 경제 활동을 역사적으로 비교한다. 거기에서 그는 하위에 존재한 일상의 교환 경제와 상위의 고차원의 경제가 구분되어 있으며, 그 사이에 대립이 존재한다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두 층에는 각기 다른 사람과 경제 활동가들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상위에는 자본주의가 존재하고 하위에는 일상 생활에 존재하는 경제 활동(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물질생활’, 非경제)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둘 간의 비율은 물질생활이 훨씬 더 크게 자리하는 구조이다. 


다만 ‘자본주의’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의문을 표시할 수도 있음을 이야기한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이라는 책을 쓴 이후, 그러니까 20세기 이후나 되어야 자본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서 15’~18세기에 진정한 시장 경제의 영역과 반대의 내용을 가진 이 영역에 대해서도 그것을 가리키는 특별한 말로 거부하기 힘든 말이 자본주의’라고 말한다. 논쟁이 있음에도 일부러 피할 필요가 없다고도 이야기한다. 궁금증을 가지면서 이 권을 읽기 시작했다.


1권이 아래 층인 ‘물질문명’과 일상 생활의 소비에 대해서 다루었다면 2권은 상위 층인 자본주의 활동에 대해서 다룬다. 생산과 소비 사이에 교환 활동이 존재한다. 교환 활동은 시장 경제의 초기적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장 경제는 늘 균형을 고집하고 어쩌다 균형에서 벗어나더라도 곧 제자리로 되돌아가는 하나의 총체를 이루지만, 동시에 변화와 혁신의 영역이다. 마르크스는 이를 유통권이라고 지칭했는데, 나는 이 표현이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한다(P23).


18세기가 되면 상점이 유럽의 도시를 비롯하여 시골 구석까지 생겨난다. 어느 곳에서나 상품 분배가 크게 늘어났고, 상점과 정기시(상설 시장)를 통해 교환이 가속화되었으며, 서비스업이 증가했다. 어느 한 곳에 상점 수가 늘다가 거리를 장악하여 포화되면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경제의 전반적인 발전으로 이어졌다. 행상 같은 떠돌이 상인이 아니라 고정된 가게에서 상품을 팔기 시작하면서 마을에 인구가 증가하였다. 게다가 물건만이 아니라 연극 등 볼 거리가 덧붙여져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났다. 또한 상점들은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신용 거래(외상)를 기꺼이 감수했다. 상인은 그에게 빚진 사람들과 그가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불안정한 균형을 이루며 살아간 것이다. 물론 잘못되면 파산으로 가기도 했다.

17세기에는 주식 투자가 등장했다. 이 때도 일부 사람들은 거래소를 “바람장사”로 부르거나 ‘투기’ 등으로 비방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실물) 화폐는 교환 기능을 모두 처리하기에는 불충분했다. 이 문제의 해결 방안은 상품-화폐-다른 모든 상품이 반영되며 측정되는 거울과 같은 존재-이상의 것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표시-화폐를 의미한다. 유럽의 대도시는 13세기부터 환어음(lettre de change)이 등장했고 공채나 은행 증권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거래소는 지폐와 금속화폐 간에 전환 등 중요한 기능을 하는 곳으로 자리했다.


이제 생산 영역에 대해서 다루려면 자본과 자본가, 자본주의의 개념에 대해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세 개념은 거의 순서대로 만들어졌다. 

자본은 12-13세기경 등장했는데 이 때는 자금, 상품 스톡, 많은 금액의 돈, 혹은 이자를 가져오는 돈이라는 뜻이었다가 점차 회사나 상인의 화폐 자본을 뜻하게 된다. 이 중 자금(빌려준 돈 중 자본은 포기하고 이자만을 받는 상태에 이른 것)이라는 말이 오랫동안 가장 많이 쓰였다고 한다. 18세기가 되면 자본이라는 단어가 점차 다른 단어를 압도하게 된다. 포르보네는 이미 “생산자본”이라는 말을 썼고 케네는 “모든 자본은 생산수단이다”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일상적인 언어에서도 이 말이 비유적인 이미지로 쓰이고 있었다. 예컨대 볼테르가 죽기 몇 달 전인 1778년 2월에 트롱생 박사가 정확히 진단한 것처럼 “볼테르 씨는 파리에 온 이래 그의 재능이라는 자본을 소진시키면서 살고 있었으며” 친구들은 “그가 그 자본의 소득만으로 살기를 바랐다”고 말하는 식이다. 20년 뒤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탈리아에서 전쟁 중일 때 한 러시아 영사는 혁명 프랑스의 예외적인 상황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프랑스는 ‘자기 자본을 가지고 전쟁을 수행하지만’ 적국들은 단지 ‘그들의 수입만 가지고’ 전쟁을 한다!” 이 명철한 판단 속에서 자본의 뜻은 한 국가의 재산이나 부를 바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P323). 

자본가라는 말은 17세기 중반에 시작된 것으로 “공채”, 동산, 또는 투자할 돈을 가진 사람 등 다양한 의미를 지녔다. 그러다 대체로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사용하여 더욱 많은 돈을 벌려는 사람이라는 부정적 늬앙스를 가진 말로 좁혀졌다. 

자본주의는 20세기 초에 사회주의에 대한 반대어로 정치적 단어로 등장하였다. 탁월한 역사가인 히튼은 이 용어를 단순히 배제시켜버리려고 했다. “모든 -ism이 붙는 말 중에 가장 소란스러운 것은 자본주의(capitalism)이다. 불행하게도 이 말은, 제국주의(imperialism)라는 말이 그렇듯이, 너무 많은 뜻과 정의가 섞여버린 잡탕이 되어서 이제 존경할 만한 학술용어로서는 배제해야 한다.” 뤼시앙 페브르도 이 말이 너무 남용되기 때문에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그렇다고 이 말을 버리는 것은 아깝다고 이야기한다. 자본주의는 그 자체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경제적인 총체와 비교하면 상이하고 낯설기까지 한 독립된 세계이다. “자본주의”의 정의는 나중에 발전해나올 새로운 자본주의적인 형태와 비교할 뿐 아니라, 앞에서 말한 사회적, 경제적인 총체와 비교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진정한” 자본주의는 19세기에 가서야 등장했다고 주장하면서 이와 같은 지난날의 경제의 이중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자본주의의 과거 위상이라고 부를 수 있을 이 경제를 분석하는 데에 핵심적으로 중요한 포인트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P329~331). 


자본주의는 일찍부터 유럽의 도시 뿐 아니라 시골을 포함한 주변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귀족들은 도시 근처의 땅을 사서 자산을 확보했다. 오늘날 돈이 있으면 토지에 투자하려는 사람들의 패턴이 떠오르기도 한다. 땅은 어디 도망가지 않으니 안전한 투자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겠지. 농민과 영주가 활동하던 유럽에서 자본주의는 새로운 질서였다. 그것에 성공한 영국의 농촌은 다음과 같은 변화를 보였다. 첫째, 토지에 들러붙어 있던 예속성을 털어버리고 국가에 대해서는 농민과 다른 사람들에게서 세금을 거둘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보상해주었다. 그리고 봉건적인 자격으로 소유하던 재산을 근대적인 의미의 사유재산으로 요구했다. 둘째, 계약을 통해서 토지를 자본주의적 차지농에게 임대하면 이 차지농이 자신의 책임하에 경영한다. 셋째, 프롤레타리아의 면모를 띠는 임금노동자들을 고용한다. 넷째, 수직적 분업이 이루어진다. 지주는 땅을 임차해주고 임대료를 받는다. 임차인은 경영자가 된다. 그리고 임금노동자가 이 분업의 마지막 자리를 차지한다(P390). 그렇지만 이런 대도시 등 몇몇 곳을 빼면 수 세기동안 대부분은 주변 지역이었다 할 수 있다. 주변지역은 영주제적이며 동시에 봉건적 성격으로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유럽 전체로 따지면 농업자본주의는 아주 소수를 차지했다. 


산업이라는 단어는 노동, 활동, 숙련 등 이전의 뜻과 혼동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기술, 메뉴팩처, 공장이라는 단어와 오랫동안 경쟁하던 끝에 18세기경에 가서 오늘날 우리가 부여하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19세기에 산업은 점차 대규모 산업을 지칭하게 되었다. 이에 저자는 전(前)산업이라는 용어로 앞선 세기의 활동을 지칭한다. 선구산업이란 현재 또는 가까운 과거에 자본과 이익, 노동력을 자신에게 끌어모으는 산업이며, 원칙적으로 그 산업이 크게 발전하면서 주변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발전을 이끌어줄 수 있는(가능성만을 말하고 있음에 주목하라) 산업을 말한다. 과거의 경제는 사실 통합성이 부족해서, 오늘날 저개발 국가들에서처럼 흔히 분해되어 있었다. 그래서 한 분야에서 일어나는 일이 반드시 그 경계를 넘어 이웃 영역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그 결과, 전산업화 시기의 세계는 현대 산업처럼 분야 간에 차이가 생기고 또 대단히 앞선 분야가 있는, 기복이 심한 면모를 가지고있지 않았고 또 가질 수도 없었다는 점을 우선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전산업은 상대적으로는 중요성을 가진다고 해도 전체적으로 보면 경제 전체를 자기 자신에게로 이끌어오지 못했다. 실제로 산업혁명기까지는 전산업이 결코 경제성장을 지배하지 못했다. 오히려 불확실한 성장을 보이는 데다가 고장과 급정거를 겪는 경제 전체가 전산업을 지배했다. 전산업이 주춤거리는 발걸음을 옮기고 툭툭 끊어진 곡선을 보이는 것이 그런 이유에서이다. - P430


상업의 근대화로 경제 생활이 발달하면서 시장 규모가 확대되고 교환이 증가하면서 분업이 증가했다. 상인들은 전략적 거점을 마련하고 가능한 빨리 새로운 정보를 모으는 위치에 있었다. 그들은 특권을 이용하여 국가나 기업과 공모하며 원거리 무역(저자는 1등 복권이라고 표현한다)을 행했고 이는 독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상사는 자본주의와 직접 연관을 가지며, 자본주의의 진화를 이끌었다. 대규모 회사(동인도 회사 등)는 자본과 국가에 동시에 관련되어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바다가 뚫리며 후추, 향신료, 곡물, 금/은 등을 얻기 위한 무역 경쟁에 뛰어든 유럽은 세계의 계서화에 상층부를 담당하게 된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지만 특권층은 언제나 아주 소수였다. 전체 잉여는 증가하더라도 사회 상층의 소수 인구가 증가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자본주의는 그 자신이 유래한 자유경쟁을 완전히 배제해버리지는 않는다. 자본주의는 자유경쟁의 위에서 그리고 옆에서 공존한다. 왜냐하면 15-18세기의 경제-옛날부터 발달해온 몇몇 “중심들”로부터 시장경제와 교환경제의 승리를 통해서 공간을 정복한-역시 레닌이 19세기 말의 “제국주의”를 이야기하면서 제시한 수직적인 구분과 마찬가지로 두 개의 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의 혹은 법률상의) 독점과 경쟁이 그것이며, 달리 말하자면 내가 정의하는 바의 자본주의와 발전 중인 시장경제가 그 두개의 층이다(P802). 


베버에게 자본주의는 경제발전이 마침내 찾아서 도달하게 된 약속의 땅이며 진보의 최종적인 만개로 보였다. (내가 잘못 읽은 것이 아니라면) 그는 자본주의를 결코 취약하거나 일시적인 체제로 보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자본주의의 죽음, 혹은 적어도 일련의 연속적인 격변이 그렇게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그것들은 현재 우리의 눈앞에서 진행 중이다. 어쨌든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역사 발전의 최종 단어로 보이지는 않는다. - P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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