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사는 이유는 다양하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사고 싶어서다. 일종의 소유욕이라 볼 수 있다. 바로 읽지도 않으면서 사는 일, 언제나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신간이 나오면 그 다짐은 멀리 달아난다. 좋아하는 작가의 새로운 글을 읽고 싶은 마음, 소설이 발표되는 공간인 계간지, 문학잡지를 읽는 마음도 같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계간지를 읽지 않으니까. 한때는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 리뷰를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욕심은 아예 없다. 우선은 사고 보겠다는 마음이 더 크다. 이건 좋지 않은 마음이라는 걸 안다.


어쨌거나 6월이 되었고 6월엔 6월의 문학이 있다. 그러니까 7월엔 7월의 책이 있고 문학이 있다. 이주혜의 책이 나온 걸 몰랐다. 이럴 수가. 나는 이주혜를 관심 작가로 등록하지 않았단 말인가. 트리플 시리즈 『누의 자리』, 단편과 에세이가 수록된 책이다. 이주혜는 최근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작가 중 하나다.




윌리엄 트리버의 단편집 『마지막 이야기들』, 제목처럼 왠지 쓸쓸할 것 같다. 언제부턴가 문학동네 세계문학은 양장본이 나오지 않는다. 양장본이 나올 때를 기다리다 구매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모두 옛일이다. 예전만큼 책을 사거나 책을 기다리는 마음이 아니라는 거다. 그 책들도 거의 없다. 수집이 아닌 정리를 우선으로 하려고 한다. 내 방의 내 책장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 내 책들이 보호 받을 수 있다. 그래야 내 책들이 사랑 받을 수 있다. 내가 주는 보호, 내가 주는 사랑이지만 말이다.


22명의 작가들이 외로움에 대해 쓴 『 ALONE 』은 ‘줌파 라히리’와 앤‘서니 도어’, 두 작가의 이름만 눈에 들어온다. 그 두 작가의 에세이가 제일 궁금하다. 팬데믹의 시대를 견딘 작가들의 시간, 그 외로움과 고독을 어떻게 그려냈을지 기대가 된다. 다른 작가들은 잘 모르겠다. 읽어봐야 할 것이다. 소설은 소설대로 좋을 것 같고 에세이는 에세이대로 좋을 것 같다. 기대 이상이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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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6-07 1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의 자리> 빼곤 저도 두 권 다 찜한 책이에요.
<마지막 이야기들>은 지금 제게 오고 있습니다! ㅋ

자목련 2023-06-08 09:19   좋아요 2 | URL
잠자냥 님의 <마지막 이야기들> 리뷰를 기대합니다.
<alone>도 무척 좋을 것 같아요. 이제 읽어야 하는데, 좋은 건 천천히~~

새파랑 2023-06-07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에는 문학동네 양장이 안나오는거 같더라구요 ㅋ 트레버 저도 읽고 싶습니다 ㅜㅜ 그래도 단편은 트레버죠 ^^

자목련 2023-06-08 09:19   좋아요 0 | URL
단편은 트레버! 새파랑 님도 곧 읽으시겠지요?

독서괭 2023-06-07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사고보자, 하는 그 마음을 억누르기란 참 힘든 일입니다 흑흑 ㅠㅠ
<자두>의 이주혜 작가 얘긴 많이 들었는데 아직 만나보지 못했네요~ alone도 궁금합니다~ 어서 읽고 리뷰 써주시길요^^

자목련 2023-06-08 09:21   좋아요 2 | URL
기대평 적립금의 기쁨을 알아버려서 배보다 배꼽이 큰 구매로 이어져요 ㅋ
이주혜의 책, 독서괭 님도 좋아할 것 같아요. alone은 저도 기대가 커요^^

책먼지 2023-06-08 1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저 완전 뼈맞았어요 ㅠㅠ 맞아요 사고 싶어 사는 거죠😭 다른 그럴듯한 이유로 포장해도 결국은 물욕, 소유욕!!! 이주혜 작가님 책 나왔군요!! 번역에 소설에 에세이까지 (살림도 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ㅠㅠ) 사람이 진짜 어떻게 이렇게까지 부지런할 수가 있죠??!! 일단 담아둡니다💕

자목련 2023-06-09 09:53   좋아요 1 | URL
사고 싶어 하는 즐거움, 살짝 누려봐요~~
이주혜 작가는 열심히 쓰는 것 같아요. 곧 번역 책도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담아두는 즐거움도!

은오 2023-06-09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유욕이야 다들 있겠지만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 리뷰를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욕심! 아 정말 이런 욕심도 있을 수 있겠어요. 지금은 없으시다지만 신기합니다 😆
저 기대평 적립금 알림 북플 와서야 알고 켰어요!!!!! 이제 기대평 알림 뜨면 자동반사적으로 눌러서 적립금 받아요ㅋㅋㅋㅋㅋ 자목련님도 늦게 아신 건가요? 이거 진짜 쏠쏠하던데 말입니다. 알림 귀찮아서 다 끄고 살았는데....ㅠㅠ

자목련 2023-06-09 09:55   좋아요 0 | URL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알리는 데 일조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었어요. 그때는 젊어서 열정이 ㅎㅎ
기대평 적립금은 잠자쟝 님이 친절하게 설명해주셔서 알게 되었어요. 저도 이벤트 알림을 받지 않았거든요.
 
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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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설은 소설에 대해 말하는 나를 주저하게 만든다. 좋은 소설이 그러하다. 망설이고 주저하는 이유는 뭘까. 나만 알고 싶은 좋음이라서, 시리고 아파서 꼭 끌어안고 싶은 소설이라고 하면 맞을까. 클레어 키건의 짧은 소설 『맡겨진 소녀』가 그랬다. 양 갈래머리를 한 소녀의 뒷모습이 아련해서, 맡겨진 소녀라는 제목이 왠지 슬퍼서. 아무런 설명도 없이 소녀는 먼 친척 집에 맡겨진다. 소녀를 데려다준 아빠는 소녀와의 이별에 슬픔은커녕 안타까움도 없다. 심지어 소녀에게 필요한 짐도 내려주지 않고 트럭을 타고 떠나버린다. 사는 게 힘들어서 그런 걸까. 너무 아파서 그 모습을 딸에게 감추고 싶어서 도망치듯 가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아빠는 세심함과 다정함이라고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저 아이가 태어났으니 아빠로 살아가는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미 소녀에게는 언니들이 있었고 동생도 있고 엄마는 태어날 아이를 품고 있다. 그러니까 돌볼 여력이 없어서 잠시 딸을 맡긴 것이다. 다시 집으로 데리러 올 테니 아무렇지 않았던 것이다. 세상에나 이런 아빠라니.


낯선 집에 덩그러니 혼자 남은 소녀. 킨셀라 부부는 그런 소녀를 극진하게 보살핀다. 극진하게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정성을 다해 아이를 대하고 사랑을 준다. 잠자리에서 실수를 한 소녀를 혼내는 대신 부끄러울까 얼른 다른 이야기를 꺼내고 사소한 것까지 함께 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우편함에서 편지를 꺼내오는 사소한 심부름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소녀는 킨셀라 부부와 지내면서 이제껏 받아보지 못한 애정과 사랑을 받는다.


소녀에게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살피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나하나 챙겨주는 킨셀라 부부. 처음에 소녀가 친척 집에 맡겨졌을 때 나는 소녀가 학대를 받으면 어쩌냐 내심 걱정했다. 그러니까 일손을 돕기 위한 하녀처럼 맡겨진 게 아닐까 싶었던 거다.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걱정 대신 다른 걱정이 생겼다. 소녀가 집으도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방치와 무관심에 가까운 집이 아닌 그냥 여기 이곳에서 킨셀라 부부와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킨셀라 아저씨가 내 손을 잡는다. 아저씨가 손을 잡자마자 나는 아빠가 한 번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런 기분이 들지 않게 아저씨가 내 손을 놔줬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힘든 기분이지만 걸어가다 보니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나는 집에서의 내 삶과 여기에서의 내 삶의 차이를 가만히 내버려 돈다. 아저씨는 내가 발을 맞춰 걸을 수 있도록 보폭을 줄인다. (69~70쪽)


그러나 소녀는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라는 이유만 있을 뿐 따뜻하고 포근한 기운은 찾을 수 없는 냉랭한 분위기의 집으로 말이다. 자매들의 반응도 마찬가지. 소녀의 부모의 마음을 자세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 어디서도 애틋함을 찾을 수 없다. 물론 다자녀를 돌보는 일은 버겁다. 그러나 버거움과 사랑을 주고 표현하는 일은 다르다. 소설을 읽으며 내 어머니를 생각한다. 5명의 자녀를 둔 내 엄마. 농사일로 바빠서 등교 옷차림이나 준비물을 꼼꼼하게 살피지는 못하셨지만 나는 엄마의 사랑을 충분히 받았다고 느낀다. 그리고 엄마가 돌아가신 후 큰언니가 그 역할을 해주었다. 마냥 사이가 좋았던 건 아니지만 힘든 직장 일을 안쓰럽게 여기고 아픈 동생을 위해 주말마다 병실을 찾았다. 엄마와 큰언니 모두 떠났지만 그들의 사랑이 나를 지켜준다.


이처럼 지난 시절의 따뜻했던 돌봄은 따뜻한 어른으로 성장하게 만든다. 사랑을 받은 이가 사랑을 줄 수 있다는 말처럼 소녀는 그 사랑을 기억할 것이다. 담담한 슬픔은 벅찬 아름다움이 된다. 차곡차곡 쌓아둔 소녀의 마음이 터지는 순간엔 나도 울컥하고 만다. 우편함까지 달리기를 하며 초를 재던 시간, 기본적인 생활 태도를 배우고,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려주며 모든 걸 함께했던 포근했던 순간들. 부끄러움도 비밀도 없던 그 집에서 보낸 시간, 그 짧은 시절이 소녀가 앞으로 살아갈 시간을 지켜줄 사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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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안부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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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상실과 슬픔을 배운다. 아니, 배우는 게 아니라 체득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과 상실에 대해 차근차근 알려주는 이가 없다. 자신의 슬픔에 빠져 주변을 둘러보고 살필 여유가 없는 것이다. 어른도 예외가 아니다. 아이의 감정을 돌볼 여력이 없다. 아이는 눈치껏 감정과 말을 숨긴다. 사랑하는 엄마를 아프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괜찮다고, 잘 지낸다고 거짓말을 한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된다. 누군가 그게 성장하는 거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조금씩 나아지고 괜찮아지고 있다고 말이다.


그래도 누군가 곁에서 그 슬픔을 어루만지고 달래줘야 한다. 『눈부신 안부』속 어린 ‘해미’는 스스로가 그런 역할을 자처했다. 1994년 가스 폭발 사고로 중학생이었던 언니를 잃고 엄마와 아빠는 슬픔에 침잠한다. 해미와 다르게 동생 해나는 마냥 즐겁다. 엄마와 아빠는 별거를 했고 해미는 유학을 결정한 엄마와 해나와 함께 ‘행자’ 이모가 있는 독일 G시로 향한다. 행자 이모는 파독 간호사로 일하다 지금은 의사가 되었고 같은 처지의 다른 이모들과 함께 살아간다. 그곳에서 ‘마리아’ 이모와 ‘선자’ 이모를 만나고 조금씩 독일 생활에 적응한다. 언니를 잃은 슬픔이나 낯선 독일에서의 외로움을 알아주는 건 엄마가 아닌 행자 이모다. 해미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건 엄마가 아닌 행자 이모다. 한 번씩 산책을 하면서 해미를 웃게 하고 본연의 모습을 찾게 만든다.


해미가 독일에서의 생활에 적응하고 안정이 되기 시작한 건 마리아 이모의 딸 ‘레나’와 선자 이모의 아들 ‘한수’를 만나고부터다. 가족끼리 만나고 왕래를 하면서 서로가 독일어와 한국말을 가르쳐 주면서 친해진다. 그러다 한수의 부탁으로 셋은 단단한 사이가 된다. 한수의 엄마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찾아달라고 한 것이다. 아픈 엄마에게 마지막 선물을 하고 싶은 한수의 부탁에 레나와 해미는 적극 동참한다. 광부로 일하며 엄마와 결혼하고 이혼한 아빠가 아닌 한국에서부터 시작된 엄마의 첫사랑. 단서는 ‘K.H’란 이니셜 하나다. 레나와 해미는 선자 이모의 일기장을 몰래 읽으며 이모의 주변 사람들에게는 연애 소설을 쓸 거라며 도움을 요청한다.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찾기 위한 해미의 거짓말에 다른 이모들은 선자 이모에 대해 아는 걸 알려준다.


선자 이모를 비롯해 이모들이 처음 독일에 왔던 이야기, 각자 독일로 온 사연, 독일에서 일을 하면서 겪은 서러움과 향수병, 휴일마다 고추장, 간장을 차에 싣고 이모들을 찾아온 파독 광부들. 그 안에서 단서를 찾으려 온갖 추리를 하고 상상하는 하면서 해미는 레나와 한수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한국의 외환위기가 찾아오면서 해미는 한국으로 돌아온다. 엄마와 아빠의 별거는 끝났지만 여전히 불안한 기운이 감돌고 학교에 적응하기도 힘들다. 당연 한수와 레나와의 연락도 끊기고 선자 이모의 첫사랑 찾기도 마찬가지다.


어른이 되어 기자 일을 하다 그만둔 해미는 우연히 사진작가 전시회에서 대학 동기 우재를 만나다. 고향인 제주도로 내려가 약국을 운영하는 우재와 소소한 일상을 나눈다. 서울에 올 일이 있으면 만나 식사를 하고 시간을 보낸다. 우재는 오래전 해미가 이모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한다는 기억을 꺼낸다. 해미는 우재의 말에 독일 G시에서의 시간과 선자 이모와 한수를 떠올린다. 선자 이모의 죽음과 한수가 보낸 택배, 독일에서 걸려온 한수의 전화를 외면했던 자신의 모습을 말이다. 한수가 보낸 선자 이모의 일기장을 상자에 넣어둔 채 잊고 있었다. 선자 이모를 위해 ‘K.H’를 찾았다는 거짓말과 ‘K.H’인 척 편지를 보낸 사실까지.


해미는 다시 하나씩 이모의 일기장을 읽으면서 국회도서관에서 1970년대 독일로 건너간 간호사의 기록을 찾는다. 저마다의 이유로 독일로 온 사연, 취업과 돈을 벌기 위해 독일로 건너간 이들도 많았지만 선자 이모는 아니었다. 선자 이모는 본인이 원해서 독일을 선택한 것이다. 해미는 선자 이모의 고향인 인천과 다녔던 교회를 수소문하면서 ‘K.H’에 대한 단서를 찾는다. 그러다 이모가 문학잡지를 만들었다는 걸 알게 된다. 독일에서 처음 읽었을 때 그냥 지나친 문장이나 선자 이모의 감정을 온전히 읽게 된다. 선자 이모가 일기장에 적어 두었던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속 문장(아무것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어.)의 의미를 말이다.


『눈부신 안부』는 독일 파독 간호사를 통해 그 시대의 여성들이 살아온 삶에 대한 이야기와 선자 이모의 첫사랑 찾기가 중요한 소설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내게는 상실과 슬픔을 어루만지고 조금씩 나아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어린 해미가 사고로 언니를 잃고 언니의 나이를 지나 어른이 되면서 겪은 감정은 큰언니를 떠나보내고 언니의 나이를 지나 살고 있는 나와 겹쳐졌다. 선자 이모가 첫사랑과 이별하고 독일에서 지낸 시간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충분히 슬퍼하고 그리워하는 일, 그 모든 걸 나누며 곁을 지켜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 그래서 나아갈 수 있다는 것 말이다. 해미가 언니에게 전한 말처럼. 서툴다고 여기며 전했던 그들의 안부와 위로가 이제 와 보니 얼마나 눈부시고 아름다운지 알게 된다.


“언니, 사람의 마음엔 대체 무슨 힘이 있어서 결국엔 자꾸자꾸 나아지는 쪽으로 뻗어가?” (109쪽)


백수린은 여전히 고요하고 담담한 어투로 다정함을 건넨다. 그 다정함은 마냥 부드러운 건 아니어서 때로 모나고 뭉툭하다. 그건 내가 그 다정함을 어루만져 누군가에게 건네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이별과 작별을 맞이하며 살아가야 하는 생에 있어 그런 다정함이 꼭 필요하다고 말이다.


*k.h의 존재가 짐작을 벗어나지 않아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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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06-02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아쉬움 때문에 별 하나 빼신 건가요? 스토리는 보니까 재밌어 보여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자목련 2023-06-03 15:20   좋아요 1 | URL
네, 첫사랑의 존재는 예상한 대로 흘러서요.
재미도 있었고 백수린의 문장이 좋았어요. 이모와 친구들과 보내는 해미의 일상이 아름다웠어요.

책읽는나무 2023-06-02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정함이 마냥 부드러운 건 아니어서 때로 모나고 뭉툭하다!
오....갑자기 더 기대 상승입니다^^

자목련 2023-06-03 15:21   좋아요 1 | URL
다정함에 대한 문장은 개인적인 느낌을 표현한 거라 ㅎ
책읽는 나무 님도 즐겁게 만나시면 좋겠어요.

책읽는나무 2023-07-26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다시 자목련 님의 리뷰를 자세히 읽어보았습니다. 정성가득한 글로 새롭게 다가왔어요.
근데 자목련 님은 K.H의 존재를 짐작하셨군요?
전 짐작을 못해 그 부분에서 와 반전!! 그리 생각했었거든요.
그래서 자목련 님의 유추하는 섬세함에 놀랐습니다.^^

2023-07-26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23-07-26 16:36   좋아요 0 | URL
전 완전 샛길로 새어 혹시 우재 아버지인가? 엉뚱한 생각을 했었네요.ㅋㅋㅋ
여성, 연대....선자 이모의 성격으론 여자를 사랑할 수도 있었겠구나! 공감은 가는데...막상 여자였다는 결론을 확인하고 나니까, 조금 맥이 빠지긴 했어요. 더군다나 그 분은 평범하게 잘 살아왔었기에 선자 이모의 삶이 비교가 되어 좀 더 시원섭섭한 마음도 들었었구요.
뭔가 좀 더 강력한 한 방이 있었더라면? 그런 아쉬움도 들었네요.
이제 첫 장편이었으니 다음 장편은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가 큽니다.
 

읽지 않은 소설은 물음표로 남는다. 그건 읽다가 만 소설도 마찬가지다. 소설을 좋아하면서도 때로 피로감을 느낀다. 서점가에서 독자에게 인기 있는 주제나 테마가 생기면 너도나도 그 테마를 따라잡는다.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 당연한 흐름일지도 모른다. 다 읽지 않았어도 비슷한 느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도 새로운 소설은 좋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은 더욱 좋다. 여기 세 권의 소설이 주는 기쁨도 같다.


제목 그대로 짧은 소설, 그리고 긴 소설이다. 김혜진의 짧은 소설 모음인 『완벽한 케이크의 맛』, 이제는 마음산책의 대표 시리즈가 되었다. 짧은 이야기와 그림. 박혜진의 그림도 좋다. 김혜진의 단편, 장편을 만났기에 짧은 단편은 어떨까 궁금하다. 기존의 소설과 닮았을 것 같으면서도 약간은 다르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백수린의 첫 번째 장편 『눈부신 안부』는 백수린의 다정함이 곳곳에 묻어 있다. 『친애하고, 친애하는』이라는 경장편이 있지만 문학동네에 연재한 이 소설이 백수린에게는 첫 장편인 것 같다. 김혜진과 백수린, 둘 다 좋아하는 작가라서 읽기 전에, 읽으면서 물음표는 느낌표로 바뀐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짧은 소설이자 가장 긴 소설인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 100쪽 정도의 얇은 책이 주는 울림이 대단한다. 뭐라 할 말이 많으면서도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고 할까. 어떻게 이런 슬픔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전할 수 있을까. 꼭 끌어안고 싶은 마음을 참아내며 가볍게 스치듯 포옹을 하는 마음이랄까. 아무튼 좋다. 이 소설은 영화 <말 없는 소녀>로 만들어졌다. 기회가 되면 영화도 보고 싶다. 검색해 보니 개봉일이 오늘이다.


읽기에 치진 마음이 있다면 이런 소설을 추천하고 싶다. 짧은 소설, 그리고 긴 소설. 세 명의 여성 작가가 보여주는 섬세한 아름다움, 여성 작가가 마주하는 사회의 모습,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 한 꼭지 짧은 소설을 읽고 잠시 멈춰도 좋고 장편은 나중에 천천히 읽어도 좋다. 어떻게 하든 좋은 소설은 우리와 만나게 되고 읽게 되니까. 그 좋음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어떤 좋음은 누구나 같으니까. 6월엔 그 좋음을 즐겁게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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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5-31 1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맡겨진 소녀 읽으셨군요~! 저도 읽었는데 너무 짧아서 아쉬웠습니다 ㅋ 더 많은 작품이 번역되길 바래봅니다~!!

자목련 2023-06-01 10:37   좋아요 1 | URL
맞아요, 짧아서 아쉬운데 그 아쉬움이 참 묘해요. 감 좋은 출판사가 진행하고 있지 않을까요 ㅎ

그레이스 2023-05-31 1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백수린작가는 좋았는데 다른 분들은 모르겠네요.
추천 감사합니다

자목련 2023-06-01 10:37   좋아요 0 | URL
김혜진 작가도 좋습니다. 기회되면 만나보세요^^

독서괭 2023-05-31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부신 안부 좋으셨군요! 맡겨진 소녀가 저렇게 얇은 거 보니 혹하네요 ㅋㅋ

자목련 2023-06-01 10:38   좋아요 1 | URL
<눈부신 안부>, 곧 리뷰를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맡겨진 소녀는 단숨에 읽을 수 있어요. 더 혹하시죠?

은오 2023-05-31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북플 피드 쭉 보는데 맡겨진소녀가 계속 언급되는중.... 자목련님도 호평하시니 보관함에 담습니다~!
그리고 저는 자목련님이 특히 좋아하시는 한국 작가들이 누군지 궁금해요!!

자목련 2023-06-01 10:42   좋아요 1 | URL
은오 님도 호평하시길~~
좋아하는 작가를 생각나는 대로 꼽자면 김연수, 권여선, 황정은, 김혜진, 김이설, 백수린, 조해진, 여성 작가가 많네요. 절필 선언한 윤이형이 소설을 써주면 좋겠어요. 한강은 초기 소설을 좋아하고요. 정용준도 좋아하고 최근엔 이주혜가 좋아요. 좋아하는 작가를 궁금해하는 은오 님도 좋고요!

은오 2023-06-01 18:19   좋아요 0 | URL
오오..!! 제가 번역을 거치지 않은 소설을 그러니까 한국 작가 소설을 읽어보고 싶은데 거의 안 읽어본 터라 고르기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자목련님께 여쭤봐야지 했어요 😀 추천해주신 작가들 작품 검색해 보고 맘이 가는 걸로 읽어보겠습니다~! 넘 감사해요!! 그리고 마지막 문장.... 자목련님이 먼저 저 꼬셨어요?! 맞죠?! ㅋㅋㅋㅋㅋ🫶 제가 더 좋아합니당!!!!!

자목련 2023-06-02 11:45   좋아요 1 | URL
어떤 작가의 글이 은오 님 마음에 닿을까요?
꼬셔서 넘어온 건가요? 아, 설레라~~

페넬로페 2023-05-31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 책 다 읽고 싶어집니다.
전에는 한국 작가의 소설 많이 읽었는데 다시 관심 가져봐야겠어요^^

자목련 2023-06-01 10:43   좋아요 1 | URL
페널로페 님도 즐겁게 만나시면 좋겠어요.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시면 한 번 떠올려주세요^^

coolcat329 2023-05-31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맡겨진 소녀 좀전에 새파랑님 글에서도 봤는데 여기서도 보이네요.
짧은데 울림이 대단하다니 저도 급 끌립니다.
저는 올해 두 권 세 권짜리 장편을 좀 읽자 했는데 중간에 살짝 넣어야 겠습니다.

자목련 2023-06-01 10:44   좋아요 0 | URL
급 끌림, 좋아요 ㅎ
호흡이 긴 장편, 어떤 장편일까 궁금해지네요^^

책읽는나무 2023-05-31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제가 좋아하는 김혜진 작가와 백수린 작가의 책이로군요?^^
<맡겨진 소녀>의 책표지의 뒷모습의 소녀는 혹시 앤은 아니겠죠? 돌아보면 왠지 앤일 것 같은??ㅋㅋㅋ
그런데 내용은 아름다우면서 슬픈 내용이라니...
괜스레 앤 이야기를 꺼낸 듯 합니다. 긁적긁적...

자목련 2023-06-01 10:45   좋아요 1 | URL
두 작가의 신작, 다 좋습니다. ㅎ
표지 보면 앤 생각하실 수 있어요. 초록 지붕의 앤.
나무 님의 긁적임을 제가 좋아합니다!
 
고요한 우연 - 제13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3
김수빈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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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소설을 읽을 때마다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린다. 흐릿한 기억과 풍경이라고 할까. 새 학년, 새 학교에서 느꼈던 설렘과 불안. 친해질만한 아이가 있을까 주변을 둘러보며 서먹한 공기의 흐름을 읽느라 정신없던 학기 초의 모습은 소설이나 현실이나 다를 바 없다. 어느 시절, 어느 반이든 모두가 친구로 지내고 싶은 존재 곁에는 어떤 무리가 있었다. 반대로 아무와 어울리지 않고 혼자 지내는 존재도 있었다. 혼자서도 잘 지내는 아이는 뭔가 특별한 존재처럼 여겨졌다. 김수빈의 『고요한 우연』에 등장하는 ‘고요’가 그러하다. 평범한 고등학생 ‘수현’과 다르게 고요는 그런 존재였다.


고요는 자기에게 다가오는 아이들과 거리를 두었고 결국엔 그 아이 무리에게 왕따를 당한다. 책상을 더럽히고 사물함의 체육복까지 입지 못하게 만든다. 고요는 신경을 쓰지 않고 공부를 할 뿐이다. 수현은 그런 고요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용기를 내지 못한다. 반장인 ‘정후’가 항상 고요를 챙기는 모습에 수현은 더욱 정후가 좋아진다. 그런데 이상하게 정후만큼 자꾸 관심이 가는 아이가 있다. 항상 휴대폰으로 뭔가를 보고 있는 조용한 성격의 ‘우연’이다. 오랫동안 정후를 짝사랑하고 있는 게 맞는데 왜 우연을 살피는 것일까. 그러다 우연이 보고 있는 sns 계정을 알게 된다.


비공개 계정으로 사용자가 승인을 해야 친구가 될 수 있다. 아이디는 ‘고요의 바다’로 프로필의 보름달은 미술 시간에 볼 수 없는 것에 대해 달의 뒷모습을 그렸던 우연을 떠올리게 한다. 고요의 바다와 친하게 지내는 이들은 소수였고 달과 관련된 아이디를 지녔다. 수현은 그 계정이 우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호기심으로 친구를 신청한 수현은 수현이 아닌 익명의 존재로 고요의 바다와 마음을 나누게 된다. 그 과정에서 수현은 고요의 바다가 고요라는 걸 확신한다. 그리고 고요의 바다와 친하게 지내는 계정을 둘러보다 정후와 우연의 계정에 댓글을 단다.


정후와 우연은 학교에서 보고 알았던 모습과 달랐다. 항상 모든 일에 앞장서고 모범적인 인기를 얻는 정후에게는 아픈 누나가 있었고 우연은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마음을 접고 힘들어했다. 고요도 마찬가지였다. 학교에서는 말 한마디 붙이기 어려웠지만 sns에서는 아주 솔직하고 편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같은 존재였지만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는 다른 모습이었다. 수현도 다르지 않았다. 소심하고 주저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정후, 우연, 고요와 대화를 나눈다. 그러면서 조금씩 서로에게 다가가고 위로하고 공감한다.


그러나 오프라인인 교실에서는 여전히 먼 존재였다. 정후, 우연, 고요에게 자신이 그 계정의 주인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러면 관계가 끊어질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조심스럽게 일찍 등교해서 고요의 책상을 정리하거나 우연이 돌보는 길냥이를 산책하며 찾아보고 정후를 염려하고 걱정한다. 익명으로 존재해야만 관계를 지속하고 단단하게 유지할 수 있다니.


김수빈의 『고요한 우연』은 십 대의 복잡한 마음과 관계를 sns로 보여주고 존재와 정체성을 달로 비유하고 보여주는 소설이다. 주인공 수현은 자신만의 개성이자 특별함을 지닌 정후, 우연, 고요를 지켜보면서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존재, 수많은 모래알 중의 하나라고 여긴다. 하지만 그건 정후, 우연, 고요도 다르지 않았다. 저마다 깊은 고민이 있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 만족하지 않는다. 수현은 우리가 보는 달의 모습이 전부가 아닌 달의 뒷면이 있다는 사실을 통해 사람들도 같다는 걸 깨닫는다.


“사람들은 달을 올려본다고만 생각하지, 달이 지구를 보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지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달인데 말이야.” (229쪽)


대부분 수현과 같은 생각을 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보잘것없는 존재라고 말이다. 하지만 수현은 누군가를 오래 지켜보고 관심을 갖고 마음을 건넸다. 그걸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쓸모없는 게 아니다. 나의 뒷면을 궁금해하고 알고자 노력하는 누군가의 마음, 우리는 서로에게 그런 존재일까. 마음을 나누고 건네며 보이지 않는 어떤 걸 알아가는 일이야말로 소중하고 중요하다는 걸 알려주는 아름다운 소설이다. 달의 뒷면을 꿈꾸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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