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개의 마음이 서로를 견제한다. 자신이 옳다고 말하는 마음은 없다. 그저 짐작하고 추측할 뿐이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경계해야 할 마음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12월은 그렇게 내게로 왔다. 어떤 마음은 처참하게 무시했고 어떤 마음은 은근슬쩍 힘을 보탰다. 모두 내 마음이다. 그러니까 여러 개의 마음을 가장하여 진짜 마음을 감추고 싶었던 거다.

 

 어제는 병원에 다녀왔다. 어떤 통증을 확인받으러 간 것이다. 단순한 통증이었고 일상처럼 받아들이는 방법이 현명하다는 뜻을 담아 의사는 진통제를 처방해주냐고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말했고 3시간 동안의 병원 일정을 끝내고 돌아왔다. 피곤한 육체는 어제가 아니라 오늘 본색을 보인다. 살짝 미열이 지속된다. 내 몸이 내게 전하는 신호, 나쁘지 않다. 그로 인해 나는 충실하게 몸을 돌볼 수 있으니까. 책에 대한 구매욕이 주춤했다. 그건 위장이었다.

 

 단편과 시집으로만 만난 이장욱의 장편 <천국보다 낯선>이 민음사 젊은 작가 시리즈 4로 나왔다. 이장욱을 좋아하는 많은 독자들이 기다렸을 것이다. 나는 아직 이장욱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성란의 산문집 <아직 설레는 일은 많다>는 제목이 참 좋다. 물론 내용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왈왈>보다 긴 호흡의 글을 기대한다. 김연수, 김이설, 황석영, 천명관 등 활발히 활동하는 한국 작가들이 읽은 세계문학을 만나는 책 <한국 작가가 읽은 세계문학>은 세계문학에 대한 길잡이가 되지 않을까 싶다.  현대문학에 대한 기사를 읽고 다시 검색하니 절판이 된 황정은의 <양의 미래>, 좋아하는 작가들의 단편은 나중에 단편집으로 만나야 할 것이다.

 

 

 

 

 

 

 

 

 

 

 

 

 

 

 

 

 

 

 

 

 

 여러 갈래의 마음은 모두 나의 것이다. 나의 마음인데 나는 왜 그 마음들이 두려울 때가 있을까? 12월이라서 그럴까. 감기로 이어질 미열을 챙기듯 나의 마음을 챙겨야 할 12월이다. 12월과 1월 사이, 길을 잃는 나의 마음을 돌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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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13-12-18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설레는 일은 많다. 읽어보고 싶군요. 보관함에 콕!!

마음 다독일 책 한권 고르고 갑니다...

자목련 2013-12-18 12:15   좋아요 0 | URL
제목 때문인지 더욱 관심이 가는 책이에요^^
 

 

 아침부터 내리는 눈은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린다. 점심에는 캔맥주를 마셨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치지 않는 눈 때문이라고, 해두자. 긴 낮잠을 자려했으나 깨어 있다. 전화를 건 친구와 겨울 난방비 걱정과 반찬 이야기를 했고, 좋아하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긴 통화를 했다. 그리고 시집을 주문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R 다섯 번째 정현종의 <견딜 수 없네>. 이 시집을 받는 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 책장에서 시집을 본다.  방금 주문한, 이제 구판이 된 시집이다.

 

 

 

  새로운 시간의 시작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순간을 보아라

 하나둘 내리기 시작할 때

 공간은 새로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늘 똑같던 공간이

 다른 움직임으로 붐비기 시작하면서

 이색적인 선(線)들과 색깔을 그으면서, 마침내

 아직까지 없었던 시간

 새로운 시간의 시작을 열고 있다!

 

 그래 나는 찬탄하느니

 저 바깥의 움직임 없이 어떻게

 그걸 바라보는 일 없이 어떻게

 새로운 시간의 시작이 있겠느냐.

 그렇다면 바라건대 나는 마음먹은 대로

 모오든 그런 바깥이 되어 있으리니…… (27쪽)

 

 

  행복

 

 산에서 내려와서

 아파트촌 벤치에 앉아

 한 조각 남아 있는 육포 안주로

 맥주 한 병을 마시고

 지하철을 타러 가는데

 아 행복하다!

 

 나도 모르겠다

 불행 중 다행일지

 행복감은 늘 기습적으로

 밑도 끝도 없이 와서

 그 순간은

 우주를 온통 한 깃털로 피어나게 하면서

 그 순간은

 시간의 궁핍을 치유하는 것이다.

 시간이 기나긴 고통을

 잡다한 욕망이 낳은 괴로움들을

 완화하는 건 어떤 순간인데

 그 순간 속에는 요컨대 시간이 없다 (62, 63쪽)

 

 

  경청

 

  불행의 대부분은

  경청할 줄 몰라서 그렇게 되는 듯.

  비극의 대부분은

  경청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는 듯.

  아, 오늘날처럼

  경청이 필요할 때는 없는 듯.

  대통령이든 신(神)이든

  어른이든 애이든

  아저씨든 아줌마든

  무슨 소리이든지 간에

  내 안팎의 소리를 경청할 줄 알면

  세상이 조금은 좋아질 듯.

  모든 귀가 막혀 있어

  우리의 행성은 캄캄하고

  기가 막혀

  죽어가고 있는 듯.

  그게 무슨 소리이든지 간에,

  제 이를 닦는 소리라고 하더라도,

  그걸 경청할 때

  지평선과 우주를 관통하는

  한 고요 속에

  세계는 행여나

  한 송이 꽃 필 듯. (74, 75쪽)

 

 

  절망의 그림자

 

  순간순간 절망을 넘어서려고 그러는 거야.

  산보

  술 한 잔

  한숨과 눈물

  어떤 꽃

  어떤 웃음

  무책(無策)을 밀고 나가는 듯한

  힘찬 몸짓

  무슨 지껄임

  뒷모습만 있는 그림자. (55쪽)

 

 

  흰 종이의 숨결

 

  흔히 한 장의 백지가

  그 위에 쓰여지는 말보다

  더 깊고,

  그 가장자리는

  허공에 닿아 있으므로 가없는

  무슨 소리를 울려 보내고 있는 때가 많다.

  거기 쓰는 말이

  그 흰 종이의 숨결을 손상하지 않는다면, 상품이고

  허공의 숨결로 숨을 쉰다면, 명품이다. (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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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절반이 지나고 나니 한 해를 다 소모한 듯하다. 소모라는 말이 우습지만 지난 1년 동안 내가 읽은(읽었다고 믿는) 책들은 다 어디로 흩어졌을까. 첫눈도 내렸고 소소한 절망은 어느새 눈 덩어리처럼 커졌다. 11월이 아프다. 예전과 다른 이유로 아프니 다행인지도 모른다.

 

 아픈 마음을 달래주는 건 이번에도 책이다. 책들의 유혹은 언제나 강렬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책이라면, 내가 만나지 못한 작가라면 더욱 그렇다. 최근엔 백민석 작가의 새 책 소식에 흥분하는 이들을 보고 놀랐다. 백민석이 누구길래? 나는 그를 알지 못한다. 『혀끝의 남자』가 궁금했다. 해서 주문했고 기다린다. 같은 이유로 아직 곁에 두지 못한 사데크 헤다야트의 눈먼 부엉이를 리스트에 올린다. 글샘 님의 글로 만난 김신용 시인의 시집 『잉어도 함께.

 

 

 소설가 한강이 첫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이 나왔다. 아니, 시인이 맞다. 그녀는 시를 먼저 발표했고 소설로 등단했다. 작년엔 『노랑무늬영원』이 아주 많은 위로가 되었다. 버티고 견디며 담금질하는 날들, 이번 겨울엔 그녀의 시집이 그 역할을 할 것 같다.

 

 

  ‘나도 앞이 보이지 않아. 항상 앞이 보이지 않았어. 버텼을 뿐이야. 잠시라도 애쓰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니까. 그저 애써서 버텼을 뿐이야.’ <「회복하는 인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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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13-12-18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집도 몇권 고르고 갑니다... 아픔 많이 가라앉으셨길... ...

자목련 2013-12-18 12:16   좋아요 0 | URL
따뜻한 댓글 고맙습니다. 여울마당 님 포근한 오후 보내세요^^*
 

 

 어제 점심엔 그릇을 깼다. 밥을 담는 공기였다. 깨질 수 있는 물질이니 깨지는 건 당연하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게 화가 날 뿐이다. 좋아하는 그릇이라 다시 주문하려 하니 판매중지 상품이라고 공지가 뜬다. 구매할 수 없다는 글은 그릇에 대한 집착을 키웠다. 내가 소유할 수 없는 물건이 되고 말았으니 말이다. 지난 금요일에는 어떤 책에도 비슷한 생각을 품었다. 큰 언니가 주문해 달라는 책이었다. 에쿠니 가오리였다. 몇 권의 책을 읽었지만 그는 아주 좋아하는 작가가 아니다. 언니의 주소로 주문한 책은 『한낮인데 어두운』이었고, 『낙하하는 저녁』은 품절이라 주문하지 못 했다. 두 권에 대한 책이 갑자기 궁금해졌다. 얼마 후면 잊힐 관심이지만 현재는 그렇다.  

 

 저녁엔 할아버지 추도 예배를 드렸다. 목사님을 모시지 않고 가족들끼리 예배를 드렸다. 작은 아버지가 오셨고, 예배를 드리고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색이 고운 황도를 먹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고, 우리는 가을 비와 추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대신 아버지 형제들의 나이와 내 형제의 나이와 아이와 조카의 나이를 헤아렸다. 우리는 모두 늙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은 아주 무더운 여름이었다. 마당에는 할머니와 엄마가 밭에서 따온 콩을 손질하고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 곁에 있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건, 언니와 오빠는 학교에 갔고 동생은 어렸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할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본 것이다. 물론 그때는 인식하지 못한 일이다. 그 후로 몇 년 동안 벽에 걸려있었던 할아버지의 사진은 사라졌다. 하성란의 소설집  『여름의 맛을 보자 날의 한 장면이 함께 떠올랐다. 가족이라는 끊을 수 없는 끈을 생각하면 언제나 줌파 라히리의  『그저 좋은 사람』『이름 뒤에 숨은 사랑』, 개정판을 기다리는 『축복받은 집』이  겹쳐진다. 자식의 태어나고, 이름을 지으며 부모가 가졌던 사랑을 말이다.

 

 가을 비가 내리는 날, 밀란 쿤데라의 유일한 단편집  『우스운 사랑들』 과 가을을 닮은 글일 것만 같은 시인들의 연서  『어쩌다 당신이 좋아서』 를 검색한다. 그리고 장필순의 노래를 반복해서 듣는다. 새로 발표한 앨범에 수록된 노래 <그리고 그 가슴 텅 비울 수 있기를>과 드라마 아일랜드에 나왔던 노래 <그대로 있어주면 돼>를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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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3-09-30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늙기 시작한다'는 말도 있으니 너무 늙어 가는 일에 신경쓰지 말아야겠다 싶어도, 사실 눈에 들어오는 주위 사람들은 모두 자꾸만 늙어가는 모습들 뿐이니, '늙어감'에 대한 감상은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얘기인 듯해요.

* * *

어째서 오늘의 내 심정은 젊은 날의 내 것이 아닌가?
또는 순진하던 내 양 볼은
어째서 이 정신에게로 돌아오지 못하는가? (호라티우스)

나는 노년기가 수많은 내 친지들에게 얼마나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가를 보았던가! 노년이란 자연히 자기도 모르는 새에 저절로 흘러드는 강력한 질병이다. 노년이 우리에게 짋어지우는 결함을 피하려면, 적어도 그 진전을 막으려면, 대단히 많은 연구와 조심스러운 준비가 필요하다. 나는 아무리 몸을 아껴도 이 노년이 한걸음 한걸음 나를 이겨감을 느낀다.나는 힘 닿는 대로 버티어 볼 뿐이다. (몽테뉴)

자목련 2013-09-30 19:32   좋아요 0 | URL
아이들의 모습으로 확연하게 늙음을 느끼는 것 같아요. 어쩌면 늙어감은 죽음의 다른 말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누구나 늙고, 누구나 죽는 게 삶의 진리겠지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절대 같을 수 없다는 말을 중얼거리는 날들입니다..
 
너는 아직 멀리 있구나

 

 나를 증명하는 몇 가지 서류를 본다. 한글과 한자로 쓰인 나의 이름, 나의 나이, 내가 살고 있는 주소를 본다. 한때 내가 나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아니, 적확하게 말하자면 그 시절에는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아무에게도 나를 보이고 싶지 않았고, 나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존재 자체가 엄숙한 감사라는 사실을 나는 아주 늦게 깨달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그대로다. 변한 건 무엇일까. 어떤 이의 말처럼 이제 조금씩 철이 드는 걸까.

 

 지난주에는 봄에 소식을 전했던 친구와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다. 여전히 슬픔의 구간에 있었지만 친구는 그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때문에 나는 내가 인정한 슬픔을 말할 수 있었다. 목소리는 편안했고 우리는 많이 웃었다. 불확실한 만남의 계획을 세우며 다가오는 추석을 언급하며 통화를 끝냈다.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이 있더라도 그 시간만으로 우리는 충만했다.

 

 읽지 않은 소설집이 많다. 그러니까 읽지 못한 게 아니라 읽지 않은 소설집 말이다. 어떤 책은 읽다 만 소설집이기도 하다. 어떤 책은 좋은 리뷰는 아니더라도 리뷰는 쓰고 싶은 소설집이기도 하다. 책장을 둘러보니 그런 단편집이 꽤 많다. 어디 단편집 뿐이랴, 시집과 계간지도 그렇다. 그럼에도 엊그제는 좋아하는 동생이 보낸 택배를 거절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나는 표지와 제목만 보고 김사과를 떠올렸다. 소설집  팽이 는 김사과가 아니라 최진영이었다. 최진영의 소설은 많이 만나지 못했다. 주목받는 작가라는 건 알지만 아직이다. 주목받는다는 건 좋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손보미는 확실한 선두 주자다.  그들에게 린디합을 엔 다른 수상집에서 만난 단편도 꽤 많다. 김유진이 황순원 문학상을, 윤성희가 이효석 문학상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그들의 소설집을 꺼낸다. 이 소설집도 읽지 않았거나 읽다 만 소설집이다.

 

 

 

 

 

 

 

 

 

 

 

 

 

 

 

 

 

 

 달이 차오른다. 열흘 후엔 보름달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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