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주문할 때마다 시집을 한 권씩 주문한다. 최근 내 곁에 온 시집은 한결같이 좋다. 

요동치는 마음을 위해, 편협한 마음을 위해, 시를 읽어야 한다.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다.

때로 눈물 대신, 때로 분노 대신, 때로 슬픔 대신 시를 먹는다.

그리하여 시가 되는 꿈을 꾼다.

다시, 시를 읽어야 할 시간이다.

 

 

 

 

 

 

 

 

 

 

 

 

 

 

 

 

물방울들은 얼마나 멀리 가는가

새들은 어떻게 점호도 없이 날아오르는가

 

그러나 그녀의 발은 알고 있다

삶은 도약이 아니라 회전이라는 것을

구멍을 만들며 도는 팽이처럼

결국 돌아오고 또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러나 그녀의 손은 알고 있다

삶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에 가깝다는 것을

가슴에 손을 얹고 몇 시간째 서 있으면

어떤 움직임이 문득 손끝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동작은 그렇게 발견된다는 것을

 

동작은 동작을 낳고 동작은 절망을 낳고 절망은 춤을 낳고 춤은 허공을 낳고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길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녀는 아는가

돌면서 쓰러지는 팽이의 낙법을

동작의 발견은 그때야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나희덕의 <동작의 발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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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온다는 예보대로 비가 내리고 있다. 지금 이 시각에도 고속도로나 국도에서 고향으로 향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조류독감으로 자녀들에게 설에 내려오지 말하던 방역 작업을 하며 인터뷰를 하던 아주머니가 떠오르는 아침이다. 고향이라는 말은 마치 엄마란 말이 지닌 그것처럼 아린 통증을 불러온다. 비는 곧 그치겠지만 떠나지 못한 이들의 가슴에 내리는 비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 내리겠지 싶다. 그믐날 아침이라 그럴까, 김경후의 시도 생각난다.

 

 

 나를 꽝! 닫고 나가는 너의 소리에

 잠을 깬다

 깨어날수록 난 어두워진다

 기우뚱댄다

 

 거미줄 흔들리는 소리

 눈을 감고 삼킨다

 

 오래 머물렀던 너의 이름에서

 개펄 냄새가 난다

 그것은 온통 버둥거린 자국을

 부러져 박힌 비늘과 지느러미들

 

 나를 꽝! 닫고 나가는 소리에

 내게 묻혀 던 악몽의 알들이 깨어난다

 깨어날수록 난 잠든다

 컴컴해진다

 

 닫힌 내 안에

 꽉 막힌 목구멍에

 이제 그곳에 빛나는 건

 부서진 나를 짚고 다니던 부서진 너의 하얀 지팡이

 내 안에 악몽의 깃털들만 날리는 열두 개의 자정뿐  (「그믐」전문, 46~47쪽)

 

 

 그믐의

 마지막

 빛

 테두리

 

 버려진

 뱀 허물을 뚫고

 자라나는

 제로

 담쟁이덩굴

 한

 줄기 (자라나는 제로전문, 38쪽)

 

 

 어제는 알라딘에서 주문한 책이 도착했다. 설 연휴 배송 안내를 참고하여 2월 3일에나 받겠지 생각했는데 빠른 배송에 살짝 놀랐다. 기대하지 않았기에 더 반가운 책들이다. 계획했던 폴 오스터의 에세이가 아닌 소설을 주문했고 그 책의 첫 문단을 옮기면 이렇다.

 

 일은 잘못 걸려 온 전화로 시작되었다. 한밤중에 전화벨이 세 번 울리고 나서 엉뚱한 사람을 찾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으로. 훨씬 나중에, 그러니까 자기에게 무슨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는 우연 말고는 정말인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될 터였다. 하지만 그것은 휠씬 뒤의 일이다. 처음에는 단지 사건과 결가가 있었을 뿐이다. 그 일이 다르게 끝이 났건, 낯선 사람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로 미리 정해진 것이었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야기 그 자체이며, 그것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 없느냐는 여기서 할 이야기가 아니다.

 

 김영하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을, 이제야 읽었다. 정말 입소문 그대로 아주 짧고 아주 강렬한 소설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강렬함이라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니 소설에 대한 짧은 감상이나 리뷰를 쓰기는 힘들 듯하다. 남성적 소설이라는, 권희철의 해설을 읽고 다시 소설의 처음으로 돌아가 읽는 이가 많지 않을까 싶다.

 

 설 연휴에는 떡국을 먹을 것이고, 몇 권의 책을 뒤적이며 가끔 긴 잠에 빠질 것이다. 기름진 것들을 만들고 먹기도 할 것이며, 내 나이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말(馬)과, 말(語)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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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30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04 0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을 구매하고 소장하는 이유는 많다. 가장 큰 이유는 읽고 싶을 때 언제든지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을 이용하면 좋겠지만 내 경우 그게 쉽지 않다. 시골이라 그런지 아니면 찾지를 못하는 것인지 내가 원하는 책은 도서관에 없는 경우가 많다. 한국문학전집 중 몇 권을 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10만원 이상 구매하면 큐브 책장을 주는 이벤트에는 응모하지 못하고 한 권, 한 권씩 주문을 하는 것이다. 아침과 저녁의 마음이 달라서다. 아침엔 구매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저녁에 다시 와서 책을 보거나 검색을 해보면 그 사이 새로운 책이 나오고 멋진 사은품과 적립금이 지급된다고 유혹한다.

 

 박정대 시인의 시집을 두 권 가지고 있다. 읽어냐고 묻지 말길, 제대로 아니 훑어보기가 아닌 미리보기 수준이니까. 그런데도 이번에 나온 체 게바라 만세에 눈이 간다. 와인색의 표지와 <체 게바라 평전>을 주는 이벤트 때문이다. 세상에나 이런 기회는 놓쳐도 괜찮을까? 을유문화사도 고전 이벤트 중이다. 구간은 할인율도 크고 신간은 적립금이 있다. 장바구니에 담은 책은 『브루노 슐츠 작품집』이다. 다들 좋다고 말하는 폴 오스터(아직 나는 이 작가의 소설을 읽지 않았다)의 에세이 『겨울일기』가 있다.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끌린다. 마지막으로 애거서 크리스티의 『봄에 나는 없었다』는 그냥 끌린다.

 

 책이라는 게 무엇일까, 정답을 아는 이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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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주문한 책이 도착했다. 주문한 책은 5권이었고 그 중 한국문학전집 중 두 권이 있다. 001인 김승옥 대표단편선 생명연습, 007인 이승우 장편소설 식물들의 사생활이다. 상자를 뜯고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세상에나, 교환을 해야 할 책이 왔다. 내게도 이런 일이 생기다니. 알라딘에서 구매한 책 교환은 처음이다.( 분명, 맞을 것이다.) GIFT 코너가 있을 때 주문 상품이 덜 온 적은 있었고 선물했던 아동 신발을 교환한 적은 있었지만 이런 경우는 없었다. 그래서 살짝 당황스럽다. 반품 교환 신청서를 쓰다 보니 자세하게 설명을 하라는데, 그게 참 쉽지 않다. 해서 이렇게 페이퍼를 쓴다.

 

 

 

김승옥의 책, 아래는 함께 주문한 이승우의 책

 

 

 

 

 교환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르겠다. 우선 교환한 책을 가져가고 다시 책을 발송해주는 걸까? 배송된 상자에 이 책만 넣어서 보내야 하는 걸까? 심란한 밤이다. 교환은 정말 번거로운 일이다. 직접 서점에서 구매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물론 김승옥 소설집을 만날 때마다 떠오를 장면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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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01-23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1:1 고객상담인가에 파손내용을 썼더니 맞교환으로 바꿔주더군요.
(택배아저씨가 새책을 가져올때 그때 파손된 책을 포장했다, 드리면 됐어요.)
심란하고 짜증도 나셨겠네요...ㅠㅠ

자목련님! 오늘은, 상큼하고 좋은 하루 되세요~*^^*

자목련 2014-01-23 17:23   좋아요 0 | URL
교환은 처음이라서 고객센터에 문의를 여러차례 했어요. ㅎ
택배아저씨가 오지 않아서 아직 교환은 못했구요.

다정한 덧글 고맙습니다^^

알라딘고객센터 2014-01-28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편드려 죄송합니다. 이미 1:1고객상담으로 문의주셔서 안내해드린것으로 조회됩니다. 이후 이용중 불편사항은 고객센터 1대1상담 이용해 신고해주시면 신속히 해결해드리겠습니다.
편안한 시간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자목련 2014-01-29 11:44   좋아요 0 | URL
네, 혹 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바로 고객센터로 신고하겠습니다.
감사드리며 설 명절 즐겁게 보내세요^^*
 

 

 크리스마스 이브다. 택배 알림 문자가 도착했다. 나를 위한 선물이 곧 도착할 것이다. 이장욱의 천국보다 낯선, 하성란의 아직 설레는 일은 많다, 백민석의 죽은 올빼미 농장을 주문했다. 작가정신 이벤트가 있어서 작가향 시리즈를 몇 권 더 구매할까 생각 중이다.  그리고 이런 책들을 읽고 고른다.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을 아무 곳이나 펼쳐 읽고 있다. 오늘 읽은 부분은 이렇다.

 

 

  ‘우리가 억누르고 있는 걱정거리는 생의 특별한 마지막 순간만이 아니다. 거기엔 우리가 나이를 먹고, 건강을  잃고, 시들고 쇠약해진다는 사실이 딸려 있다. 생의 현 단계는 순식간에 흘러가고, 돌이켜보면 무상하기 그지없다. 스무 살이 되면 일곱 살 때 보낸 수천 시간은 휴지 조각처럼 느껴진다. 쉰 살이 되면 이십 대에 보낸 십 년 세월이 한순간처럼 덧없어진다. 삶의 문제들은 오늘, 우리 앞에 펼쳐질 며칠, 그리고 강렬하거나 혹은 멍한 몇 시간 동안 아주 크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모두가 사소해져 기억조차 하찮은 과거의 일이 된다.

 

  예술은 여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예술이란 현재를 앞질러 가, 자연이 우리를 데려갈 종착역에 대비해 우리의 합리적, 감각적 자아를 준비시켜주는 상상의 힘이기 때문이다. 얀 호사르트의 나이든 남녀의 초상화에서, 두 사람의 얼굴은 각기 약간 다른 방식으로 그들이 끌고 온 삶의 무게를 보여준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나 상대방에게 특별히 만족하는 듯 보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환멸을 느끼거나 우울해 보이지도 않는다. 

 

 

 

 

 남자의 모자에는 작은 금색 배지가 꽂혀 있고, 배지에는 그들보다 훨씬 젊은 남녀의 벌거벗은, 확실히 에로틱한 모습이 새겨져 있다. 그 배지는 그들이 관계를 맺기 시작하던 시절, 이제는 희미하게 멀어진 그때의 기억을 추억하는 기념물이다. 이 작품은 노년이 아니라 젊은 시절에 봐야 할 이미지를 담고 있다. 예술은 우리에게 미래의 소식을 전해주곤 한다.’ (영혼의 미술관, 142쪽)

 

 

 

 

 

 읽고 싶은 책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전적 에세이 존재의 순간들 맨부커상 수상작가 하워드 제이콥슨의 『사랑의 행위』, 강창래의 『책의 정신』, 최근 알게 된 문학치료와 비슷한 맥락 일 것 같은 존 폭스의 『시詩치료』,  제32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인 손미의  『양파 공동체, 윤제림 시집 새의 얼굴, 아직 만나지 못한 최진영의 장편 『나는 왜 아직 죽지 않았는가, 강렬한 표지로 말을 거는 듯한 박선희의 『이브가 말했다』, 에밀 시오랑의 『지금 이순간, 나는 아프다.

 

 

 

 

 

 

 

 

 

 

 

 

 

 

 

 

 

 

 

 

 

 

 

 

 

 

 

 

 기다리고 기대했던 소식은 들리지 않는 오후다.  그러니까 소식의 주인은 내가 아닌 것이다. 조금은 천천히 흐를 오후, 어떤 책을 읽어야 빨리 지나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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