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절반이 지나고 나니 한 해를 다 소모한 듯하다. 소모라는 말이 우습지만 지난 1년 동안 내가 읽은(읽었다고 믿는) 책들은 다 어디로 흩어졌을까. 첫눈도 내렸고 소소한 절망은 어느새 눈 덩어리처럼 커졌다. 11월이 아프다. 예전과 다른 이유로 아프니 다행인지도 모른다.
아픈 마음을 달래주는 건 이번에도 책이다. 책들의 유혹은 언제나 강렬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책이라면, 내가 만나지 못한 작가라면 더욱 그렇다. 최근엔 백민석 작가의 새 책 소식에 흥분하는 이들을 보고 놀랐다. 백민석이 누구길래? 나는 그를 알지 못한다. 『혀끝의 남자』가 궁금했다. 해서 주문했고 기다린다. 같은 이유로 아직 곁에 두지 못한 사데크 헤다야트의 『눈먼 부엉이』를 리스트에 올린다. 글샘 님의 글로 만난 김신용 시인의 시집 『잉어』도 함께.
소설가 한강이 첫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이 나왔다. 아니, 시인이 맞다. 그녀는 시를 먼저 발표했고 소설로 등단했다. 작년엔 『노랑무늬영원』이 아주 많은 위로가 되었다. 버티고 견디며 담금질하는 날들, 이번 겨울엔 그녀의 시집이 그 역할을 할 것 같다.
‘나도 앞이 보이지 않아. 항상 앞이 보이지 않았어. 버텼을 뿐이야. 잠시라도 애쓰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니까. 그저 애써서 버텼을 뿐이야.’ <「회복하는 인간」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