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아직 멀리 있구나

 

 나를 증명하는 몇 가지 서류를 본다. 한글과 한자로 쓰인 나의 이름, 나의 나이, 내가 살고 있는 주소를 본다. 한때 내가 나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아니, 적확하게 말하자면 그 시절에는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아무에게도 나를 보이고 싶지 않았고, 나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존재 자체가 엄숙한 감사라는 사실을 나는 아주 늦게 깨달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그대로다. 변한 건 무엇일까. 어떤 이의 말처럼 이제 조금씩 철이 드는 걸까.

 

 지난주에는 봄에 소식을 전했던 친구와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다. 여전히 슬픔의 구간에 있었지만 친구는 그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때문에 나는 내가 인정한 슬픔을 말할 수 있었다. 목소리는 편안했고 우리는 많이 웃었다. 불확실한 만남의 계획을 세우며 다가오는 추석을 언급하며 통화를 끝냈다.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이 있더라도 그 시간만으로 우리는 충만했다.

 

 읽지 않은 소설집이 많다. 그러니까 읽지 못한 게 아니라 읽지 않은 소설집 말이다. 어떤 책은 읽다 만 소설집이기도 하다. 어떤 책은 좋은 리뷰는 아니더라도 리뷰는 쓰고 싶은 소설집이기도 하다. 책장을 둘러보니 그런 단편집이 꽤 많다. 어디 단편집 뿐이랴, 시집과 계간지도 그렇다. 그럼에도 엊그제는 좋아하는 동생이 보낸 택배를 거절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나는 표지와 제목만 보고 김사과를 떠올렸다. 소설집  팽이 는 김사과가 아니라 최진영이었다. 최진영의 소설은 많이 만나지 못했다. 주목받는 작가라는 건 알지만 아직이다. 주목받는다는 건 좋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손보미는 확실한 선두 주자다.  그들에게 린디합을 엔 다른 수상집에서 만난 단편도 꽤 많다. 김유진이 황순원 문학상을, 윤성희가 이효석 문학상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그들의 소설집을 꺼낸다. 이 소설집도 읽지 않았거나 읽다 만 소설집이다.

 

 

 

 

 

 

 

 

 

 

 

 

 

 

 

 

 

 

 달이 차오른다. 열흘 후엔 보름달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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