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 되었고 아카시아꽃이 환하게 피었다. 아파트 복도에 나가면 옅게 아카시아 향이 닿는 듯하다. 송홧가루가 지나가고 아카시아 꽃이 피고 곧 밤꽃도 필 것이다. 앵두는 붉게 익고, 내가 모르는 곳에서 작약은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을 터. 모든 것들이 자기 자리에서 부지런히 해야 할 일들을 해내고 있다. 나는 여기 그대로 있고 너는 아직 멀리 있구나. 너에 속한 다른 이름들의 너는,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는다. 너¹에게 가슴에 새기는 달, 5월에 편지를 보냈다. 너²에게 초록이 닿기를 이란 문자를 6월에 보냈다. 너³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같은 하루를 너와 나는 다르게 보내고, 같은 하늘을 너와 나는 다른 부분을 보고, 같은 드라마를 볼 수도 있고, 같은 노래를 듣기도 하겠지. 같은 책을 읽고 있을 수도 있고, 어느 순간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다. 그러니 속상할 필요도 없다. 나는 여기에, 너는 거기서 살아가면 된다.

 

 6월, 이런 책을 곁에 두려고 한다. 돌아온 정유정이란 말은 적당하지 않지만 떠오르는 말이 없다.『28이란 숫자가 의미하는 게 무얼까, 궁금할 뿐이다. 도서관이 아닌 내 방 책장에서 꺼내보고 싶은 박범신의『외등』, 표지부터 수줍은 숙녀를 닮은 박상수의『숙녀에게』, 김려령과 구병모의 소설을 만나는 창비청소년문학 『파란 아이』를 우선 담는다.

 

 

 

 

 

 

 

 

 

 

 

 

 

 

 

 

 

 

 

 

 겨울과 봄이 지났고, 여름이 시작된다. 작년보다 강한 더위와 많은 비가 내릴 거라고 한다. 작년만큼만 견디면 될 것이다. 작년만큼만 이겨내면 될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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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전히 슬픔의 구간에 속하지만
    from 그리하여 멀리서 2013-09-09 20:16 
    나를 증명하는 몇 가지 서류를 본다. 한글과 한자로 쓰인 나의 이름, 나의 나이, 내가 살고 있는 주소를 본다. 한때 내가 나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아니, 적확하게 말하자면 그 시절에는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아무에게도 나를 보이고 싶지 않았고, 나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존재 자체가 엄숙한 감사라는 사실을 나는 아주 늦게 깨달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그대로다. 변한 건 무엇일
 
 
프레이야 2013-06-04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월도 벌써 넷째날이네요. 올여름 더 덥고 비도 더 많이 온다고 하던가요? 그렇군요! 자목련님에게도 제게도 지치지 않는 여름이 되면 좋겠어요.^^ 정유정의 신간소설 제목의 의미가 궁금하네요, 저도.

자목련 2013-06-04 20:34   좋아요 0 | URL
해마다 여름은 더 빠르고 강하게 달려오는 듯해요.
좋은 책들이 더위를 막을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겠어요!!
 

 

 지난 화요일 밤 늦게 오랜 친구 H가 전화를 했다. 그녀는 항상 바쁘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의 목소리를 자주 듣지 못한다. 때문에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받았다. 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나는 H가 울고 있다는 걸 알았다. 통화하는 내내 울면서 말을 이어갔다. H에게 갑작스런 일이 일어났고, 그것은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 와중에 H는 이상하게도 내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고 했다. 마지막까지 니 목소리를 들어서 됐다고, 그 말을 반복했을 뿐이다. H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 나는 어떤 질문도 어떤 위로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오랜 시간 만나지 못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자신의 기억 속에 새겨진 어떤 모습으로 서로를 기억할 뿐이다. H가 다시 전화를 걸어올 때까지 많은 날들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거다. 어떤 일들은 이야기로 꺼낼 수 조차 없을 정도로 강력한 슬픔을 지닌다. 슬픔이란 온전하게 그것을 헹구어 낼 수 있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건조한 눈을 크게 뜨고 있어도 가슴에는 눈물이 자라기 때문이다.

 

 H의 전화를 기다리는 날들, 나의 일상은 다르지 않다. 먼지와 머리카락이 거실에서 춤출 때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감이 탑을 쌓을 때 세탁기를 돌린다. 출판사의 사재기 소식을 다룬 기사를 읽고, 좋아하는 작가의 블로그에 올라온 짧은 글을 읽고, 몇 권의 책을 고른다. 아주 많이 기다렸던 책들이다. 정미경의 단편집 <프랑스식 세탁소>, 김숨의 장편소설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 이사라 시인의 시집 <훗날 훗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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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3 1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17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13 2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16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18 2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떤 것들은 한꺼번에 온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렇다. 예고된 것들이 아니기에 감당하기 어렵다. 좋은 일인 경우에는 내 기쁨에 취해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고 나쁜 일인 경우에는 절망하느라 나를 돌아보지 못한다. 한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계획되지 않았기에 내가 가진 능력의 한계를 시험할 수 있고 처음 당하는 일이기에 나중에는 누군가에게 경험자로서 위로하고 이해할 수 있고 나아가 조언을 할 수 있다. 그런 것이다, 삶이란.

 

 내가 좋아하는, 사랑하는 4월이 되었다. 4월에는 집을 비우는 날들이 많을 것이다. 실지로 나는 어젯밤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나무를 심는 식목일, 책을 심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이런 책들을 기다린다. 집에 있는 날들, 읽는다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하겠지만 매만지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황혜경의 첫 시집 『느낌 氏가 오고 있다』 와 김충규의 『라일락과 고래와 내사람』 이다.  두 권의 시집이 나의 4월을 채워줄 것이다.

 

 

 

 

 

 

 

 

 

 

 

 

 

 

 

 

 집을 떠나 있던 날, 나를 기다린 책들은 이렇다. 적확하게 말하자면 내 눈길과 내 손길을 기다렸을 책이다. 웅진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곰에서 나온 첫 책 김다은의 『금지된 정원』,  제 3회 문지웹진 수상작 『소설작법』, 읽고 싶었던 책이지만 읽게 될 날을 기약할 수 없는 황현산의 『잘 표현된 불행』, 아이 키우기의 새로운 혁명을 보여줄 『벌집혁명』이다. 읽겠다고 다짐했고 읽어야 할 책들이다.

 

 

 

 

 

 

 

 

 

 

 

 

 

 

 

 

 4월, 꽃들은 피기 시작하고 무거웠던 감정들은 조금씩 가벼워진다.  새소리는 더 가까이서 들려오고 창에 기대어 가만히 바깥을 바라보는 시간도 길어진다. 봄이라는 계절을 앓기도 좋을 4월이다. 어쩌면 올 4월 앓을지 모르겠다. 4월을 잃을지 모르겠다. 한 번이니 그래도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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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이 되었고 추위는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 전기장판의 뜨거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내 몸과 마음에 봄과 겨울이 동거를 하는 것이다. 3월은 괜히 분주하고 복잡하다. 작년 3월에도 그랬다. 마치 3월을 잃어버릴까 두려운 마음처럼 기억을 되살린다. 그래도 봄날은 따뜻하다. 어제 오후에 잠깐 외출을 했는데 투명하지 않은 하늘과 달리 바람은 투명했다.

 

 책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읽기에 대해서다. 읽지 못하면서 책을 받고 사는 일을 멈춰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멈춰야 할 때를 안다는 건 얼마나 현명한 일인가. 유명한 책의 제목처럼 멈추면 무언가 확실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책들이 궁금한 건 어찌해야 할까. 어떤 책은 읽지 못해서, 어떤 책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라서 그렇다. 모든 게 나를 위한 변명일 테지만 말이다.

 

 주원규의 이름은 익숙하다. 하지만 소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광신자들』을 읽었는데도 그렇다. 그러니까 나는 그를 알지 못한다. 놀이기구를 타고 높이 날고 싶은 소망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너머의 세상을 보자 그 시절이 떠오른다. 로맹가리의 유럽의 교육과 이응준의 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은 개정판이라고 한다. 『내 여자친구의 장례식』의 느낌을 줄 것 같아 읽고 싶은 소설이다. 신경숙의 동화같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의 표지 속 고양이의 뒷모습처럼 사랑스러울 것이다. 이웃의 글에서 김숨의 백치들을 보았다. 왜 이 책을 잊고 있었을까. 지금이 아닌 과거의 김숨을 읽고 싶다. 좋아하는 지인이 추천한 슬픔의 위안과 봄의 뒷모습처럼 노란 케빈 파워스의 『노란새좋아하는 출판사 책읽는수요일에서 나온 설, 여자의 인생에 답하다몽환적인 이야기라 단정하고 싶은 사폰의 마리나는 서늘하고 시원한 여름의 맛을 떠올리는 표지다.

 

 

 

 

 

 

 

 

 

 

 

 

 

 

 

 

 

 

 

 

 

 

 

 

 

 

 

 이 책들을 사게 될지, 읽게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알 수 없기에 매력적이다.  알 수 없기에 어떤 계획을 세우고 기대한다. 알 수 없기에 꿈꾸고 알 수 없기에 오해하고 착각한다.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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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절이 있던 주에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다. 미용실에 다녀온 후 거울 앞에서 흰머리를 뽑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다시 흰머리가 나오지만 뽑는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팔이 아플 정도로 뽑았다.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다음에 미용실에 갈 때는 퍼머를 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비가 내린다는 예보는 맞지 않으려나 보다. 아직 비는 내리지 않고 점심으로 요리한 비지찌개는 실패했다. 레시피를 따라 했지만 완벽하게 실패했다. 그나마 썰어 넣은 김치가 맛있어 먹을 수 있었다. 일주일째 책을 읽지 못하고 있다. 손에 잡고 있고 눈으로 보고 있으나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여 지인이 추천한 시집과 신간 시집을 둘러본다. 설레는 봄처럼 환한 빛깔의 시집과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한다. 이렇게 고운 색의 표지라니, 직접 보면 얼마나 눈부실까. 

 

 

 

 

 

 

 

 

 

 

 

 

 

 

 

 

 마음산책 블로그에 올라온 신간 메리 올리버의 산문집 『완벽한 날들』과 복효근의 『따뜻한 외면』과 이영광의 『홀림 떨림 울림』의 표지에 반할 수밖에.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이란 함민복의 시집도 그렇다. 봄을 알리는 씨앗을 담은 듯하다. 열병을 앓게 될지 모르지만 손에 닿는 봄, 이런 책들을 곁에 두면 아주 기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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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7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28 2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