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이 몸 위에 식탁을 만든다 밤 속으로 타들어가는
당신 숨소리를 들으며 식탁보 끝자락에 코를 박고 엄지
손가락을 빤다 하얗게 부르튼 엄지손가락을 다른 네 손
가락 밑에 숨긴다 콘센트를 앞에 두고서도 플러그를 어
디다 꽂아야 할지 몰라 청소기를 가지고 방 안을 빙빙
돌던 당신에게 암이 뇌로 전이됐어요 말하지 못했다 숫
자를 더 이상 읽을 수 없는데도 고개를 돌려 자꾸 시계
를 보던 당신에게 몇 신가요 물어보지 못했다 하나, 둘,
셋 다음은 어둠 바람이 당신을 통과하지 못한다 당신만
큼의 바람이 밀려난 곳에서 불이 비를 태우는 시간 이
빨과 잇몸 사이에 자를 대고 칼을 긋는다 아무것도 뱉
지 않는다 수박을 입에 넣어드릴 때마다 까맣게 탄 숫
자를 틱, 틱 식탁 위로 내뱉던 당신이 내 앞머리를 쓰다
듬는다 (「사월」전문)
어쩌다 이런 시를 마주하고 읽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그저 장승리의 『무표정』시집이었고 처음에 펼쳤을 때는 들어오지 않았던 시다. 4월이라서, 사월이라서 그런가 보다.
우리 아파트에도 자목련이 보이고 팝콘 같은 벚꽃도 보인다. 복도에 서면 야트막한 동산 속 초록의 틈에서 분홍이 보이기도 한다.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점점 늘어나는 흰 머리카락처럼 진달래가 늘어난다. 예뻐서 슬픈 봄이다. 맑아서 아픈 봄이다. 봄이 나를 지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