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이 몸 위에 식탁을 만든다 밤 속으로 타들어가는

당신 숨소리를 들으며 식탁보 끝자락에 코를 박고 엄지

손가락을 빤다 하얗게 부르튼 엄지손가락을 다른 네 손

가락 밑에 숨긴다 콘센트를 앞에 두고서도 플러그를 어

디다 꽂아야 할지 몰라 청소기를 가지고 방 안을 빙빙

돌던 당신에게 암이 뇌로 전이됐어요 말하지 못했다 숫

자를 더 이상 읽을 수 없는데도 고개를 돌려 자꾸 시계

를 보던 당신에게 몇 신가요 물어보지 못했다 하나, 둘,

셋 다음은 어둠 바람이 당신을 통과하지 못한다 당신만

큼의 바람이 밀려난 곳에서 불이 비를 태우는 시간 이

빨과 잇몸 사이에 자를 대고 칼을 긋는다 아무것도 뱉

지 않는다 수박을 입에 넣어드릴 때마다 까맣게 탄 숫

자를 틱, 틱 식탁 위로 내뱉던 당신이 내 앞머리를 쓰다

듬는다 (「사월」전문)

 

 

 

 

 어쩌다 이런 시를 마주하고 읽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그저 장승리의 『무표정』시집이었고 처음에 펼쳤을 때는 들어오지 않았던 시다. 4월이라서, 사월이라서 그런가 보다.

 우리 아파트에도 자목련이 보이고 팝콘 같은 벚꽃도 보인다. 복도에 서면 야트막한 동산 속 초록의 틈에서 분홍이 보이기도 한다.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점점 늘어나는 흰 머리카락처럼 진달래가 늘어난다. 예뻐서 슬픈 봄이다. 맑아서 아픈 봄이다. 봄이 나를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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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16-04-14 1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자목련님의 글은 그저 반갑지요..

자목련 2016-04-15 11:44   좋아요 0 | URL
반갑게 맞아주시니 감사해요.
바람구두 님, 맑은 봄날 보내세요^^

[그장소] 2016-04-14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다는 말 ㅡ놔두고 가요 ...모든 단어를 구겨넣은 ㅡ좋다 !

자목련 2016-04-15 11:43   좋아요 1 | URL
장승리 시집, 참 좋아요!!

[그장소] 2016-04-15 18:37   좋아요 0 | URL
몹시 ㅡ이해가 갑니다 ㅡ아직 보진 못했지만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