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책 (정영효)

동굴을 지날 때까지만 침묵하기로 했다 우리는 너무 많은 말을 했으므로 자주 의심했고 너무 빠르게 계획했으므로 늦게 도착하고 말았다.

같은 곳에 있어도 같은 곳을 보지 않았다 누군가 소리친다면 돌아올 듯한 울림, 동굴의 문제는 두려움이었고 앞을 감싼 채 단단해지는 어둠과 알 수 없는 형상이 닿은 주변을 따라서

하나의 길만 믿었다 하나의 출구를 찾았다 고요함도 시선도 하나뿐인 게 이상했다 여태 우리가 모으지 못했던, 하나라는 것은 모두 평화로울까

그러나 동굴을 지날 때까지 묻지 않았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게 궁금했으므로 친구가 필요했고 너무 쉽게 헤어졌으므로 소문을 가지고야 말았다 같이 시작했는데도 다르게 걱정하면서

동굴을 선택했다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가장 가까운 길을 위해 가장 확실한 방법을 위해 함께 움직였다 함께 이해하기로 약속했다 우리만 있다는 게 함정처럼 느껴질수록

동굴을 지나갈 때까지만 계속 침묵하기로 했다


---<계속 열리는 믿음> 시집을 읽으며 가장 많이 공감한 시이다. 때로는 `침묵`만큼 좋은 해결책이 있을까 싶었던 적이 많아서였을 것이다.
남편과 다툴 일이 많았던 결혼초에는 서로에 대한 믿음도 부족하고 함께 하고자 하는 것도 달라서였던 것 같다. 그럴때마다 잔소리 비슷한 말로 시작해서 서로 감정 상하는 대화까지 이르는 일이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좀 더 침묵할 필요가 있었고 좀 더 기다리고 믿어줬어야했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남편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더 기다려주지 못하고 아이들을 믿어주지 못해서 애먼 소리를 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은 예전보다는 나은 것도 같지만 결국 관심이 없어진 거 아니냐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그래도 상처내는 말보다는 차라리 침묵하는 게 나을 수 있겠다. 하지만 오랜 침묵은 서로에게 벽이 생길 수 있는 부작용도 따를 것 같다. 어렵다, 사람과의 관계가, 소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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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2 1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섬 2016-03-02 13:42   좋아요 0 | URL
후애님 저도 시를 다 이해하지 못해요. 다만 좋은 글귀를 만나면 좋아서 읽게 되더라구요.
맛난 점심 드셨나요? ㅎㅎ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

2016-03-02 1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6-03-04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꾸는섬님, 즐거운 금요일 되세요.^^
오늘도 퀴즈 준비합니다.

꿈꾸는섬 2016-03-04 20:35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님 퀴즈 풀러 들릴게요. 좋은밤되세요.^^

후애(厚愛) 2016-03-06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심 맛있게 드시고 행복한 주말 되세요.^^
 

슬픔이 나를 깨운다 - 황인숙

슬픔이 나를 깨운다.
벌써!
매일 새벽 나를 깨우러 오는 슬픔은
그 시간이 점점 빨라진다.
슬픔은 분명 과로하고 있다.
소리없이 나를 흔들고, 깨어나는 나를 지켜보는 슬픔은
공손히 읍하고 온종일 나를 떠나지 않는다.
슬픔은 잠시 나를 그대로 누워 있게 하고
어제와 그제, 그끄제, 그 전날의 일들을 노래해준다.
슬픔의 나직하고 쉰 목소리에 나는 울음을 터뜨린다.
슬픔은 가볍게 한숨지며 노래를 그친다.
그리고, 오늘은 무엇을 할 것인지 묻는다.
모르겠어......나는 중얼거린다.

슬픔은 나를 일으키고
창문을 열고 담요를 정리한다.
슬픔은 책을 펼쳐주고, 전화를 받아주고, 세숫물을 데워준다.
그리고 조심스레
식사를 하시지 않겠냐고 권한다.
나는 슬픔이 해주는 밥을 먹고 싶지 않다.
내가 외출을 할 때도 따라나서는 슬픔이
어느 결엔가 눈에 띄지 않기도 하지만
내 방을 향하여 한발 한발 돌아갈 때
나는 그곳에서 슬픔이
방안 가득히 웅크리고 곱다랗게 기다리고 있음을 안다.


나를 깨우는 건 슬픔이 아니라 남편이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출근하는 남편, 새벽잠 많은 나도 12년을 함께 살다보니 저절로 눈이 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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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란
튀어오르건
쏜살같이 달아나건
설설 기건
웃음 위를 달리는 것.

가장 점잖은 말조차
그 묵직한 편자에
웃음을 묻히고 있다

말이란 그런 것.
말이란 웃음 위를 달리는 것.

재갈 물린 말.
갇힌 말.
말의 발효, 웃음의 숙성.
폭발은 코르크마개를
달아나게 하는 것.

난로 위의 주전자처럼
적당히, 적당히
하품을 하십사.

(p.28)




저처럼
종종걸음으로
나도
누군가를 찾아나서고
싶다......

(p.46)


밤이 깊으면

소리가 세계를
그물처럼 받쳐준다.
새들은 지저귄다.
무의미한 소리도 의미깊게.
소리가 그치지 않는 한
세계는 별수없이
존재하기에,

나뭇잎과 바람이
다른 새와 새들이
지저귀는 틈을 타
새는 멈춰 쉰다.
여전히 세계를 쪼아보면서
그물이 느슨해질세라
이어 지저귄다.

새가 지쳐 부리를 다물 때
느슨해진 그물코로 낙하해 잠이 들 때
화들짝 놀란 새를
나뭇가지가 받쳐준다.

바람이 작은 몸짓으로
불어온다.
새는 기다린다.
정적에 흔들리며

기다린다.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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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6-02-23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싶어 하셨던 시인님의 책을 읽으셨군요.^^
올려주신 시들이 참 좋습니다!!!^^
편안한 하루 되세요.^^

꿈꾸는섬 2016-02-23 17:12   좋아요 0 | URL
네 5권 모두 빌려와서 열심히 읽고 있어요.ㅎ 좋아요.^^

실비 2016-02-23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용히 잘 읽고 갑니다^^

꿈꾸는섬 2016-02-23 17:13   좋아요 0 | URL
실비님 얼른 나으시길 바랄게요.^^

서니데이 2016-02-23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꾸는섬님, 새벽에 올리신 시 읽었어요.
오늘 날이 추워요.
따뜻하고 좋은밤 되세요.^^

꿈꾸는섬 2016-02-23 23:17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고맙습니다.^^
내일 다시 추워진다니까 건강조심하세요.^^

후애(厚愛) 2016-02-24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도 시집 책들을 대출 받을 수 있군요.^^
좋으시겠당~ ㅎㅎ
감기조심 꼭!!! 하시고 따뜻한 오후 되세요.^^

꿈꾸는섬 2016-02-24 17:55   좋아요 0 | URL
시집은 되도록이면 사고 싶은데 없을땐 빌려 읽어야죠.^^ 후애님도 즐거운 오후되세요.^^

서니데이 2016-02-24 2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꿈꾸는 섬님, 좋은 저녁 되세요.^^

꿈꾸는섬 2016-02-24 22:04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님 고맙습니다. 좋은밤 보내세요.^^

후애(厚愛) 2016-02-26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심 맛있게 챙겨드시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알고 싶다. 황인숙 시인의 시를 읽어 보고 싶다.
시집이 꽂힌 곳 어디를 살펴도 황인숙 시인의 시집 한권이 보이지 않아서 당황했다.
난 여태 무엇하느라 이 시인의 시집 한권 챙겨놓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내일 도서관으로 뛰어 올라가서 우선 급한대로 빌려 읽어야겠단 생각뿐이다.
하필 지금 이 시간 황인숙 시인의 시가 읽고 싶은 건 뭔지ㅜㅜ 다른 시집들을 들춰 보지만 채워지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이 답답하다.

<자명한 산책>과 <리스본 행 야간열차>는 읽은 기억이 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다. 이상하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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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21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인숙 시인, 시집이 5권이나 되네요. 대단합니다. *^

꿈꾸는섬 2016-02-21 09:09   좋아요 0 | URL
대단하신 분 맞아요.^^

2016-02-21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21 1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6-02-22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꾸는섬님 , 오늘 대보름입니다.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꿈꾸는섬 2016-02-22 23:07   좋아요 0 | URL
날이 흐려 달이 보이지 않아요. 서니데이님도 좋은밤되세요.^^

무해한모리군 2016-03-17 0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라고는 안읽는 제가 두권을 읽을 걸로봐서 대단한분이 맞습니다

꿈꾸는섬 2016-03-17 07:26   좋아요 0 | URL
황인숙시인의 시가 참 좋더라구요. 모리님 두권이나 읽으셨군요.^^
 

금요일밤 혼자만의 시간
<캐롤>을 보고 왔다.
책으로 읽으면 어떨지 무척 궁금하다.
영상, 음악, 그녀들이 아름다웠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 나도 안다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도.
가까운 곳에 공감할만한 사람이 살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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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0 0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20 0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6-02-20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캐럴도 봐야겠군요.
동주, 좋아해줘도 봐야하구...
아직 혼자는 갈 용기를 못내요.

꿈꾸는섬 2016-02-20 17:32   좋아요 0 | URL
세실님 좋아하실 것 같아요.^^
동주는 애들 데리고가서 보려구요.
혼자 영화보기는 20대때부터 그랬어서 좋아요. 어제 캐롤 보러 대부분 혼자 왔더라구요.

2016-02-20 1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20 2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