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여자
레몽 장 지음, 김화영 옮김 / 세계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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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여자 - 레몽 장> 시간이 지나간다. 이야기가, 단어들이 지나간다

 

 

 

이 책을 처음 만날 때부터 왠지 읽었던 책인양 제목이 낯익다고 느껴졌다. 좋아했었던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가 생각이 났다. 혹시 비슷한 이야기일까, 리메이크는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계속해서 생각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그 책과 비교를 하고 있었다. 사실 잘 짜여진 이야기 형태로 비교하자면 <더 리더>가 낫지만, <책 읽어주는 여자>는 보다 '책'과 그 텍스트에 집중하는 이야기로 독자들을 이끌게 된다. 자신의 내밀한 공간인 '소리 잘 나는 방'에서 혼자만의 책 낭송을 하던 주인공 마리 꽁스땅스. 어느날 단순한 '책 읽는 여자'였던 그녀가 '책 읽어주는 여자'로 급변하게 되고 새로운 것들을 접하게 된다. 그녀가 독자로서 접하는 텍스트가 그녀의 입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단어가 말해지고 이야기가 입을 통해 만들어지면서 그들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 그 후 책 '듣기'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더욱 더 많아지면서 그녀가 순수하게 지향했던 책 읽기가 직업이 되고 그들의 책 읽기에 무언가 불쾌한 것들도 같이 관여하기 시작한다.

 

책 읽기에서 책 읽어주기로의 변화는 이렇게 말의 어미를 바꾸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먼저 독자 (여기선 청취자와 다름없지만)에게 알맞은 책을 골라야할 것이고, 독자가 원하는 책이 나에게 맞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고, 책 읽기의 행위를 넘어 무언가 다른 것이 요구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의 동화 구연동화 말고는 책 읽어주기를 한번도 도전해보지 못한, 내가 상상한 그 행위의 여러가지가 이 책에 들어있었다. 사실 중간까지는 직접 발췌된 텍스트들과 더불어 독서의 황홀함을 책 속의 인물들과 함께 나또한 느낄 수 있었다. 결말 부분에 가서는 뭔가 우스꽝스러운 장면들이 연출되어서 불편함을 느꼈다. 마지막에 등장한 책 <소돔과 120일>. 유해물 판정을 받을 정도로 정서에 안좋은... 굉장히 불쾌하고 위험한 책이라고 들었었는데 이 책이 여기서 등장할 줄이야! 아마 이 책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책 읽어주는 여자>의 이야기의 한 부분이 어떻게 흘러갈지 상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결말이 책 읽는 행위처럼 그렇게 끝까지 은은하게 마무리했으면 좋았을걸. 너무 극단적인 상황이었지만 어쩌면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지도. 책 읽기를 소재로 한 소설이니만큼 사건이 아닌, 책으로 결말맺길 바란건 나만의 바람이었을까.

 

어쨌든 '책 읽어주기'는 이 책을 읽고서 왠지 궁금하고 하고 싶은 것이 되었다.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말하고, 귀로 다시 듣고, 듣는 사람의 느낌을 다시 읽는 것.

이것이야말로 오감만족의 독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우리는 시를 끝까지 읽어나간다. 내가 '우리'라고 하는 까닭은, 비록 나 혼자서 읽기는 하지만 그와 나 사이에 뭔가를 강하게 함께 나누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느끼는 것이 여간 흐뭇하지 않다. 드디어 우리는 텍스트를 끝까지 다 읽었다. - 103p

 

당신은 그렇지만 '책 읽어주는 여자'만은 아니지 않아요? ...... 나는 그를 빤히 쳐다본다. 아니, 왜 아녜요. 난 '책 읽어주는 여자'예요. 그는 팔을 축 늘어뜨린다.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 좋아요. 그러면 읽으세요. 그는 다시 자기의 안락의자로 가 앉는다. 나는 <사물들의 교훈>을 다시 읽는다. - 150p

 

다시 한번 더 글쓰기의 함정이 설치된다. 다시 한번 더 나는 숨바꼭질하는 아이, 자기가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거나 가장 원하는지 알지 못하는 아이 같아진다. 숨어있을 것인가 발각될 것인가. - 178p

 

나는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그러면서 동시에 궁지에 몰렸다는 느낌이다. 내 직업적인 명예를 도마 위에 올려놓는 딜레마에 빠진 기분이다. 응낙을 하면 나는 그의 덫에 걸려드는 셈이다. 거절을 하면 나는 '책 읽어주는 여자'가 아니게 된다. 책 읽어주는 여자는 '읽어야 한다. 남이 요구하는 것을 큰 소리로 읽어야 한다. 그 요구가 지나친 것만 아니기를 바라지만. 그는 책을 그냥 아무데나 펼친 것 같다. 그러나 그 책이 사드의 것이고 보면! - 242p

 

 

책의 뒷편에는 번역자가 진행한 작가 '레몽 장'의 인터뷰가 담겨있다. 문학을 전공한 교수이자 작가인 레몽 장이 프랑스 문학의 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전문적인 지식이라서 그런지 눈이 어질어질했다. 프랑스 문학의 '누보 로망'(새로운 문학)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프랑스 문학에 대해 관심이 많다면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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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보트 - 살아남은 자들의 광기 어린 생존 게임
샬럿 로건 지음, 홍현숙 옮김 / 세계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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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들, 그들에게 손가락질할 수 있는가 <라이프보트 - 샬럿 로건>

 

 

 

 

 

머리를 물 밖으로 내놓기 위해 널빤지를 잡고 있던 사람이 널빤지를 뺏으려 하는 자를 밀어낸다면, 그건 살인인가 아닌가에 대한 긴 토론이 이어졌다.

그런 널빤지에 두 번째로 도착한 사람이 먼저 와 있던 사람을 밀어냈다면 그 사람은 살인자인가? 인간이라면 당연히 살려고 몸부림칠 테고 널빤지는 한 사람만 지탱할 수 있는 시나리오라면, 그런 상황에서도 획일적으로 살인 혐의를 적용해야 하는가? 생존한 사람의 그런 행동을 목격한 사람이 있다면, 그 생존자는 불행하게 여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가? - 263p

 

 정의란 무엇인가? 바다 한 가운데서 약한 소년을 죽이고 다수의 생존을 위해 인육을 먹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실제 이 사건은 더들리 - 스티븐스 재판이라고 불리는 한동안 열풍이 불었던 <정의란 무엇인가> 책에서 논란의 여지가 되었던 실제 사건이다. 과연 이 사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람을 죽였다는 결과적 측면에서 정의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극한의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원인적 측면에서는 정의였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인육을 제공한 소년의 동의가 없는 채로 벌어진 일이었다면, 아니면 그 소년이 나의 가족이라면 우리는 그 사건을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혹시나 인육을 먹는 것을 보기만 한 방관자가 있었다면? <라이프보트>의 작가 샬롯 로건은 위의 이 사건을 토대로 상상력을 키워나가 이 소설을 집필했다. 어느날 큰 여객선이 침몰하게 되고 승객들이 라이프 보트에 나눠탄 상황. 그 중 한 보트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망망대해에서 얼마나 많은 라이프보트가 떠다니고 있는지, 그 속에 나의 가족들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오로지 '신과 같은' 상급 선원 존 하디의 명령 아래 4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흔들리는 라이프보트에서 항해하고 있다. 언제 살아날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바다 한 가운데서 '거대한 파도가 내던지는 작은 땅콩껍질에 불과한' 라이프보트의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변해갈까. 그 변화는 생각보다 잔혹하다.  

 

 

 

 

 

 

"앞으로는 얘기를 할 때 '배'라는 단어를 '세상'으로 바꿔봅시다. 만약 이 세상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다면, 그런데도 우리가 그런 사실을 알 수 없다면 어떨까요? 그뿐 아니라 아예 그런 생각을 하지도 못한다면요. 그게 문제가 될까요?"- 112p

그날 밤 나는 옳은 일과 그른 일 또는 선과 악 사이에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사람들이 몹시 암울한 선택권 앞에 놓였을 때도 더 나은 길을 알려주는 분명한 이정표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목격했다. - 185p

 

 

 생각했던 것보다 굉장히 철학적인 책이다. 작가는 주인공 그레이스의 입을 빌려 철학적인 질문들을 계속해서 해나간다. 라이프보트가 하나의 세상이 되버린 상황에서 그 세상 속에 사소한 일들이 우리의 세상일과 닮아간다. 신 같은 존재에 순응해서 살아가는 사람들, 서로에게 의지하는 모습들, 그러나 슬슬 일어나는 의심의 불씨와 살인, 여성과 남성의 대립, 군림과 다수를 위한 희생. 모든 문제의 결과는 책의 마지막 부분인 법정 장면에서 보여진다. 하지만 극한의 상황에서 어디가 진실이고 어디가 거짓말인지도 모른채 그 문제들은 혼돈 속에 남게 된다. 답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라이프 보트에서 일어난, 우리의 세상 속 문제들과 닮은 이 논쟁거리들에 대해 다시 우리에게 생각해볼 기회만 제공해줄 뿐이다. 옳은 일과 그릇된 일, 그 경계가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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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등 - 개정판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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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각자 하나의 외등을 갖고 있었다 <외등 - 박범신>

 

 

 

 

 

 

일전에 읽었던 박범신님의 소설과는 다르게 (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여성 화자가 이야기하는 소설 <외등>은 그 제목처럼 왠지 모르게 가녀리고 외롭고 슬퍼보였다. '한 가지에 손잡이가 길쭉한 회중전등이 거꾸로 묶여 있는 게 특이했다. 건전지가 다 닳아버린 듯, 필라멘트만 약하게 불이 들어와 있었다'라고 표현하는 책 속의 외등. 눈 속에서 깜빡거리고 있을 그 모습이 더욱 시려서 아련하다. 사실 이 책은 내가 잘 사지 않는 사랑에 관한 소설이다. 그러나 왜 샀냐한다면 물론 박범신 작가가 좋았던 이유도 있었지만 무언가 '다른'사랑을 이야기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선뜻 구매했던 것 같다. 역시나 사회 비판적인 성격이 강한 그의 책들이 많기에 <외등>의 사랑 이야기도 시대의 아픔과 맥을 같이 한다.

 

 

 

 

 

 

 

 

 

 

외진 산속, 손전등으로 만든 절상의 외등 아래 가부좌 틀고 앉은 그 사람, 서영우. 나는 분노를 보았다. 내 분노가 아니라 그의 분노를 보았다. 그에겐 그들과 맞서 싸울 수 있는 무기가 목숨밖에 없었을 터였다. 그는 자신의 외등이 그가 앉은 산속에서 병원으로, 병원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세상으로, 도미노처럼 줄지어 켜지기를 바랐을 것이다. - 106p

그녀는 마치 자신이 전신에 오물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같았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영우씨, 그녀는 속으로 말했다....... 영우 씨에게 오물이 묻을 거예요. 참으로 슬프고 잔인한 배리였다. - 273p

그 이후, 그는 실이 되었다. 탈색된, 잡아당기면 삭아서 툭, 투툭, 끊어져버리고 마는, 그렇지만 그 두 사람에겐 가죽 끈보다도 질기고 철사줄보다도 견고한, 그녀에게 그는 실이 되었다. - 277p

그것은 참으로 이상하고 이상한 사랑이 아닐 수 없었다. 그의 곁에 있어. 그의 곁에 있지 않으면 우리들 사랑도 끝나는 거야. - 396p

그게 서 군에게서 받은 첫인상이야. 그런데 나중에 봤더니, 과격하더라구. 긴가민가했어. 내가 본 첫인상으로 본 서 군이 진짜인가, 폭력 투쟁도 불사해야 한다고 불같이 주장하는 서 군이 진짜인가. 결국 서 군을 변호하고 돌아올 때 나는 내가 서 군의 본질을 바로 보았다고 느꼈어. 좋은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너무 아름답고 착하게 살 사람이었는데, 그러고 보면 시대라는 것, 참 독한거야. - 404p

목련 나무는 오랜 세월을 잊고 환하게, 순백색으로 피어났다. 그것은 쓸쓸한 외등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서 가미카제처럼 외치고 싶은 분노의 외등이 아니라, 사랑의 외등이었다. 나는 꿈 속에서, 목련 나무에 걸린 등불들이, 세상 끝까지, 산과 강을 넘어, 도미노로, 환하게, 만개한 목련꽃처럼, 제 가슴의 외등을 일제히 켜드는 것, 오래오래 보고 있었다. -441p

 

빨갱이 낙인과 함께 세상을 살아갔던 서영우, 진정한 사랑을 가슴 깊이 묻어두고 살아온 민혜주, 비뚤어져버린 외로운 사랑에 아파하지만 돈에 굴복하는 노상규.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바라보는 서영우의 동생 재희. 그들의 지독한 사랑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 각자의 외등이 서로를 똑바로 비춰주지 못해 안타까웠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쓸쓸하고 미련한 사랑이야기보다는 70년대의 아픔이 더 눈에 들어왔다. 학생운동, 재벌,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위안부 문제. 이 아픔이 뼛속까지 서려있는 책의 인물들을 생각하며 내가 읽은 박범신의 두번째 사랑 이야기는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서 약한 느낌이어서 아쉬웠다. 그러나 중간중간 연과 함께 이야기하는 장면들은 마치 시를 읽는 듯 아름다웠다. 시종일관 은은한 불빛을 쫓아다니는 듯 몽롱했다. 그리고 왠지 침울했다. 그들의 외등이 꿈 속에서나마 순수한 사랑의 외등으로만 켜질 수 있기를 -

 

p.s 이 작품 tv문학관에서 다뤄진 적이 있다고. 영상으로 만드니까 완전히 신파멜로다. 내용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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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인규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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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가 승리를 말할 수 있으랴 <노인과 바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한달 전이던가, 기자단을 통해 연극 맛보기를 보러갔을 때 초등학생 한 명이 소설에 대한 느낌을 표현하는데 '잔인했다'고 하더라. 내가 그 나이였을 땐 어땠던가? 물론 집에 청소년용으로 나온 '노인과 바다' 책이 있었다. 읽었는지 안읽었는지 잘 생각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후루룩 펼쳐보긴 했던 것 같다. 그때는 이 책이 잔잔하고 담담하고 그런데 재미도 없다고, 그렇게 느껴졌었다. 그래서 세계문학은 '재미없다'라는 인식이 박혀왔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책에 대한 '맛'을 알게 되고 읽었는지 안읽었는지도 모를 '노인과 바다'를 읽으니 확실히 달랐다. 아마도 그때는 '그냥 한 늙은이가 바다를 표류하는 이야기'라고 여겨졌을지도.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구나. 지금은 왠지 모르게 숙연해지는 감정이 생긴다.

'노인과 바다', 고독한 배 한척의 그림 속에 벅차는 감정이 숨겨져 있었다.

 

 

 

노인은 생각했다, 새는 우리보다 더 고달픈 삶을 살고 있지, 도둑갈매기나 크고 강한 새들을 빼곤 말이야. 바다가 그토록 잔인할 수 있는데 어쩌자고 저 제비갈매기처럼 가냘프고 여린 새들을 창조했담? 바다는 상냥하고 아주 아름다워. 하지만 몹시 잔인해질 수 있어, 그것도 아주 갑자기. - 30p

나는 줄을 정확하게 드리우지, 노인은 생각했다. 다만 더이상 운이 없을 뿐이야. 하지만 누가 알아? 오늘이라도 운이 트일지? 매일매일이 새로운 날인걸. 운이 있다면야 물론 더 좋겠지. 하지만 난 우선 정확하게 하겠어. 그래야 운이 찾아왔을 때 그걸 놓치지 않으니까 - 34p

"그렇지만 난 놈을 죽이고 말 거야." 노인은 말했다. "위대함과 영광의 절정에 있는 저놈을" 그게 부당한 짓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어. 노인은 생각했다. 나는 인간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또 얼마나 견뎌낼 수 있는지 놈에게 보여주고 말겠어. - 69p

이런 일들은 난 잘 모르겠어, 노인은 생각했다. 어쨌든 우리가 태양이나 달이나 별을 죽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건 다행이야. 바다에서 살아가며 우리의 진정한 형제를 죽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말이야. - 79p

노인의 정신은 이제 맑고 또렷했다. 그는 굳은 결의로 가득 차 있었지만 희망은 거의 품지 않았다. 이런 좋은 일은 오래가지 않아, 노인은 생각했다. 그는 그 커다란 물고기를 한 번 쳐다보고는 상어가 접근해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차라리 꿈이었다면 좋았을걸, 노인은 생각했다. 놈이 공격하는 건 못 막겠지만 놈을 죽일 수는 있을지 몰라. 이놈의 덴투소, 노인은 생각했다. 이 망할 놈의 자식. - 106p

 

"사람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지 않아."

 

 

바람은 어찌 되었든 우리의 친구야, 노인은 생각했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항상은 아니지만 말이야. 우리의 친구도 있고 적도 있는 저 드넓은 바다도 그렇지. 그리고 침대도, 노인은 생각했다. 그래, 침내는 내 친구야. 그저 침대면 돼, 그는 생각했다. 그래, 침대는 내 친구야. 그저 침대면 돼, 그는 생각했다. 침대에 눕는다면 참 좋을 거야 침대는 바로 네가 패배했을 때 편하게 누울 수 있는 곳이지, 그는 생각했다. 침대가 얼마나 편한 곳인지 난 여태껏 알지 못했어. 그런데 널 패배시킨 것은 누구지? 노인은 생각했다.

"아무도 아냐." 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난 그저 너무 멀리 나갔을 뿐이야." - 126p

 

이미 여러 번 고기잡이에 실패한 노인에게 새롭게 행운이 오고 좋아할 찰나도 없이 바로 상어들이 쫓아와 그 행운을 앗아가 버린다. 또다른 큰 실패가 겹쳐지면서 좌절해 무너질 줄 알았지만 노인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칼을 잡는다. '차라리 처음부터 나한테 잡히지 말았으면' 한 순간에 상어밥이 되버린 거대한 물고기를 보며, 그리고 자신의 처지를 보며 노인은 말한다. '그저 누구의 탓도 아닌 내가 멀리 나갔기 때문이라고.' 격정적인 상어떼와의 혈투, 그토록 큰 자연인 바다와의 혈투는 안타까워 숨이 턱턱 막혔다. 바다 위의 배 한척, 홀로 있는 외롭고 고독한 싸움에 자신의 나약함을 느끼면서도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는 모습이 눈물겨우면서도 장엄하게 보이던건 왜일까. 현실에 있을 수많은 난관들에 우리는 노인처럼 자존심으로 불굴의 의지로 일어날 수 있을까. 헤밍웨이는 이 작품을 구상할 때 릴케의 '그 누가 승리를 말할 수 있으랴, 극복이 전부인 것을'이란 구절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 비록 수확을 얻지 못했고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패배가 아니라고 말하는 노인. 또다시 사자꿈을 꾸며 새로운 희망을 기약하는 노인에게 '그 누가 승리를 말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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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즈가 보낸 편지 - 제6회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수상작
윤해환 지음 / 노블마인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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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즈가 보낸 편지 - 윤해환> 2013년 시작과 함께 한국추리소설을!

 

 

 

 

 

 

 

 

 제목에서 보시다시피 이 소설은 셜록홈즈 '패스티쉬'소설 입니다. 패스티쉬라고 하니 뭔가 생소해서 찾아보았는데 원작과의 유사를 드러내면서 풍자나 해학이 들어가있지 않은 기법이라고 합니다. 만약 여기에다가 풍자가 들어간다면 패스티쉬가 아닌 '패러디'물이 된다고 하네요. 패스티쉬란 소재라서 그런지 작품 내에서 셜록홈즈에 나왔던 인물이 나오고 셜록홈즈의 대사들이 가끔 등장합니다. 그리고 흥미로운 건 홈즈 패스티쉬지만 주인공은 새로운 인물이라는 거! 실제 인물인 한국 최초의 추리소설가 '김내성'입니다. <홈즈가 보낸 편지>는 이 '김내성'이란 작가를 주인공으로 그가 어떻게 추리소설을 쓰게 되었는지, 셜록홈즈 이야기와 연계해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실 이 책은 이웃인 '특급변소'님이 쓰신 작품입니다. 그리고 이 책으로 6회 디지털 작가상을 수상하셨다는.. 예전부터 홈즈가 보낸 편지에 대해 약간씩 블로그에 포스팅을 해주셔서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는데 드디어 출간이 되어서 읽게 되었어요. 출간 직후 인터넷 서점에서 꽤 순위가 높아서 너무 궁금했는데 그동안 바빴던 터라 2013년의 첫 독서를 이 책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홈즈가 보낸 편지>는 2013년의 시작에 꼭 맞는 추리소설이었습니다. 재밌게 즐길 수 있었던. 지금까지 읽었던 추리소설들을 생각해보면 셜록홈즈 단편 몇편과 한국 추리단편, 한국작가의 장편소설한권, 일본 유명작가의 소설 몇권..ㅋㅋ 이렇게 손에 꼽을 정도로 많지 않아서 한국 추리소설에 대해서는 뭐라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추리소설 초보(?)가 단순히 재미에만 맞추어 평하자면 이 소설 정말 신선했답니다!  사실 제가 좋아하는 요소를 갖고 있어서일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 근현대의 배경(근현대사 무척 좋아한다는..)과 '김내성'이란 인물이 그 이유인데요. 예전에 봤었던 고전 배경의 추리소설 단편은 조금 실망한 감이 있었는데 <홈즈가 보낸 편지>는 새벽까지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우리나라 일제강점기와 계속해서 나오는 우리 고유의 소품들(ex. 방갓)이 나오면서도 셜록홈즈와 외국인 친구, 그 당시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추리소설 작가의 이야기가 위화감없이 잘 들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긴장감 넘치는 3.1운동 배경의 오프닝! 꼭 셜로키언(셜록홈즈의 열성팬들)이 아니더라도 흥미를 일으키기는 충분했습니다.

 

 

 

 

 

중간중간 나오는 서대문 형무소의 1081호 이야기. 이 부분 덕분에 더욱 긴장감 극대화!!

 

 

내성과 카트라이트는 조금 전 처음 만났다. 공통점이라고는 주근깨와 '엿=캔디'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셜록홈즈와 왓슨,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양인들의 이야기를 듣자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 25p

나에게 지금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관찰력, 글쎄. 추리력, 모르겠다. 지식, 없다. 그에 비해 카트라이트는 대단해. 어쩜 저리도 영특하지? 카트라이트가 부러웠다. 어떻게해야 그리될지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카트라이트처럼, 아니 카트라이트가 존경하는 셜록 홈즈처럼 되고 싶어! - 56p

내성은 대동강 저 멀리 사라지는 동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게 정말 현실일까, 저 이는 실존하는 인물일까, 혹시 이게 모두 꿈은 아닐가, 내일이 오긴 할까 고민하며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89p

갑작스러운 호통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내성 자신조차 놀랐다. 자연스레 이야기하려 하였는데 감정이 조절되지 않았다. 사방에 가득한 박하향 때문이었을까, 생각과 달리 가슴이 두근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 183p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계획을 구상해야 했다. 소설이라면 트릭이 실패해도 괜찮다. 책이 안 팔리면 그만이다. 현실은 다르다. 치졸하다 비웃는 저들보다 못한 처지에 떨어지리라. 카트라이트가 이야기한 토막민처럼 몰락하리라. '도망쳐' 내성의 깊은 곳에서 목소리가 꿈틀거렸다. - 229p

과거의 사건도 현재의 고민도 미래의 정체도 모두 잊어버리고 그저 지금처럼 흐르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박힌 오래전 기억이란 이름의 바늘이 따끔따끔 가슴을 건드리며 조바심을 낸다. 우동 한 줄기 또르르 말아 입속에 넣으며 기억을 달랜다 이제 곧이다. 곧 모든 것이 해결될 테니 지금을 즐겨라. 한 그릇의 우동을. - 266p

 

 

 

 

책의 특이한 점은 작가가 '모른다고 본문을 읽는 데 딱히 큰 문제는 없지만 안 읽으면 섭섭할 매우 편협하고 사적인 주석들'이라고 적어둔 맨 뒷편의 10장 정도의 푸짐한 주석인데요. 사실 이렇게 뒷부분에 따로 정리해둔 주석들은 잘 읽지 않게 되는데 작가가 안 읽으면 섭섭할 매우 편협하고 사적인 주석들이라고 써놓으니까 '아, 왠지 엄청 비밀스런 이야기가 있을것 같다. 안보면 후회할것 같다ㅋㅋㅋㅋ' 하고 꼬박꼬박 읽게 되더라구요. 근데 재밌는 정보들이 가득! 혹시나 귀찮다고 넘어가시는 분들이 있다면 그래도 '혹시나'하고 읽어보길 바라요. 아마 추리소설의 팬들에게는 너무나 반가운 정보가 될 것이고, 저같이 추리소설과 많이는 친하지 않은 독자들은 새롭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듯 해요.

 

"You're the one! You're my Sherlock Holmes!"

널다리골 교회의 살인이야기 궁금하시졍?! (어머, 널다리골 교회 실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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