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보트 - 살아남은 자들의 광기 어린 생존 게임
샬럿 로건 지음, 홍현숙 옮김 / 세계사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살아남은 자들, 그들에게 손가락질할 수 있는가 <라이프보트 - 샬럿 로건>

 

 

 

 

 

머리를 물 밖으로 내놓기 위해 널빤지를 잡고 있던 사람이 널빤지를 뺏으려 하는 자를 밀어낸다면, 그건 살인인가 아닌가에 대한 긴 토론이 이어졌다.

그런 널빤지에 두 번째로 도착한 사람이 먼저 와 있던 사람을 밀어냈다면 그 사람은 살인자인가? 인간이라면 당연히 살려고 몸부림칠 테고 널빤지는 한 사람만 지탱할 수 있는 시나리오라면, 그런 상황에서도 획일적으로 살인 혐의를 적용해야 하는가? 생존한 사람의 그런 행동을 목격한 사람이 있다면, 그 생존자는 불행하게 여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가? - 263p

 

 정의란 무엇인가? 바다 한 가운데서 약한 소년을 죽이고 다수의 생존을 위해 인육을 먹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실제 이 사건은 더들리 - 스티븐스 재판이라고 불리는 한동안 열풍이 불었던 <정의란 무엇인가> 책에서 논란의 여지가 되었던 실제 사건이다. 과연 이 사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람을 죽였다는 결과적 측면에서 정의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극한의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원인적 측면에서는 정의였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인육을 제공한 소년의 동의가 없는 채로 벌어진 일이었다면, 아니면 그 소년이 나의 가족이라면 우리는 그 사건을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혹시나 인육을 먹는 것을 보기만 한 방관자가 있었다면? <라이프보트>의 작가 샬롯 로건은 위의 이 사건을 토대로 상상력을 키워나가 이 소설을 집필했다. 어느날 큰 여객선이 침몰하게 되고 승객들이 라이프 보트에 나눠탄 상황. 그 중 한 보트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망망대해에서 얼마나 많은 라이프보트가 떠다니고 있는지, 그 속에 나의 가족들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오로지 '신과 같은' 상급 선원 존 하디의 명령 아래 4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흔들리는 라이프보트에서 항해하고 있다. 언제 살아날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바다 한 가운데서 '거대한 파도가 내던지는 작은 땅콩껍질에 불과한' 라이프보트의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변해갈까. 그 변화는 생각보다 잔혹하다.  

 

 

 

 

 

 

"앞으로는 얘기를 할 때 '배'라는 단어를 '세상'으로 바꿔봅시다. 만약 이 세상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다면, 그런데도 우리가 그런 사실을 알 수 없다면 어떨까요? 그뿐 아니라 아예 그런 생각을 하지도 못한다면요. 그게 문제가 될까요?"- 112p

그날 밤 나는 옳은 일과 그른 일 또는 선과 악 사이에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사람들이 몹시 암울한 선택권 앞에 놓였을 때도 더 나은 길을 알려주는 분명한 이정표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목격했다. - 185p

 

 

 생각했던 것보다 굉장히 철학적인 책이다. 작가는 주인공 그레이스의 입을 빌려 철학적인 질문들을 계속해서 해나간다. 라이프보트가 하나의 세상이 되버린 상황에서 그 세상 속에 사소한 일들이 우리의 세상일과 닮아간다. 신 같은 존재에 순응해서 살아가는 사람들, 서로에게 의지하는 모습들, 그러나 슬슬 일어나는 의심의 불씨와 살인, 여성과 남성의 대립, 군림과 다수를 위한 희생. 모든 문제의 결과는 책의 마지막 부분인 법정 장면에서 보여진다. 하지만 극한의 상황에서 어디가 진실이고 어디가 거짓말인지도 모른채 그 문제들은 혼돈 속에 남게 된다. 답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라이프 보트에서 일어난, 우리의 세상 속 문제들과 닮은 이 논쟁거리들에 대해 다시 우리에게 생각해볼 기회만 제공해줄 뿐이다. 옳은 일과 그릇된 일, 그 경계가 무엇이란 말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