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인규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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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가 승리를 말할 수 있으랴 <노인과 바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한달 전이던가, 기자단을 통해 연극 맛보기를 보러갔을 때 초등학생 한 명이 소설에 대한 느낌을 표현하는데 '잔인했다'고 하더라. 내가 그 나이였을 땐 어땠던가? 물론 집에 청소년용으로 나온 '노인과 바다' 책이 있었다. 읽었는지 안읽었는지 잘 생각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후루룩 펼쳐보긴 했던 것 같다. 그때는 이 책이 잔잔하고 담담하고 그런데 재미도 없다고, 그렇게 느껴졌었다. 그래서 세계문학은 '재미없다'라는 인식이 박혀왔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책에 대한 '맛'을 알게 되고 읽었는지 안읽었는지도 모를 '노인과 바다'를 읽으니 확실히 달랐다. 아마도 그때는 '그냥 한 늙은이가 바다를 표류하는 이야기'라고 여겨졌을지도.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구나. 지금은 왠지 모르게 숙연해지는 감정이 생긴다.

'노인과 바다', 고독한 배 한척의 그림 속에 벅차는 감정이 숨겨져 있었다.

 

 

 

노인은 생각했다, 새는 우리보다 더 고달픈 삶을 살고 있지, 도둑갈매기나 크고 강한 새들을 빼곤 말이야. 바다가 그토록 잔인할 수 있는데 어쩌자고 저 제비갈매기처럼 가냘프고 여린 새들을 창조했담? 바다는 상냥하고 아주 아름다워. 하지만 몹시 잔인해질 수 있어, 그것도 아주 갑자기. - 30p

나는 줄을 정확하게 드리우지, 노인은 생각했다. 다만 더이상 운이 없을 뿐이야. 하지만 누가 알아? 오늘이라도 운이 트일지? 매일매일이 새로운 날인걸. 운이 있다면야 물론 더 좋겠지. 하지만 난 우선 정확하게 하겠어. 그래야 운이 찾아왔을 때 그걸 놓치지 않으니까 - 34p

"그렇지만 난 놈을 죽이고 말 거야." 노인은 말했다. "위대함과 영광의 절정에 있는 저놈을" 그게 부당한 짓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어. 노인은 생각했다. 나는 인간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또 얼마나 견뎌낼 수 있는지 놈에게 보여주고 말겠어. - 69p

이런 일들은 난 잘 모르겠어, 노인은 생각했다. 어쨌든 우리가 태양이나 달이나 별을 죽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건 다행이야. 바다에서 살아가며 우리의 진정한 형제를 죽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말이야. - 79p

노인의 정신은 이제 맑고 또렷했다. 그는 굳은 결의로 가득 차 있었지만 희망은 거의 품지 않았다. 이런 좋은 일은 오래가지 않아, 노인은 생각했다. 그는 그 커다란 물고기를 한 번 쳐다보고는 상어가 접근해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차라리 꿈이었다면 좋았을걸, 노인은 생각했다. 놈이 공격하는 건 못 막겠지만 놈을 죽일 수는 있을지 몰라. 이놈의 덴투소, 노인은 생각했다. 이 망할 놈의 자식. - 106p

 

"사람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지 않아."

 

 

바람은 어찌 되었든 우리의 친구야, 노인은 생각했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항상은 아니지만 말이야. 우리의 친구도 있고 적도 있는 저 드넓은 바다도 그렇지. 그리고 침대도, 노인은 생각했다. 그래, 침내는 내 친구야. 그저 침대면 돼, 그는 생각했다. 그래, 침대는 내 친구야. 그저 침대면 돼, 그는 생각했다. 침대에 눕는다면 참 좋을 거야 침대는 바로 네가 패배했을 때 편하게 누울 수 있는 곳이지, 그는 생각했다. 침대가 얼마나 편한 곳인지 난 여태껏 알지 못했어. 그런데 널 패배시킨 것은 누구지? 노인은 생각했다.

"아무도 아냐." 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난 그저 너무 멀리 나갔을 뿐이야." - 126p

 

이미 여러 번 고기잡이에 실패한 노인에게 새롭게 행운이 오고 좋아할 찰나도 없이 바로 상어들이 쫓아와 그 행운을 앗아가 버린다. 또다른 큰 실패가 겹쳐지면서 좌절해 무너질 줄 알았지만 노인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칼을 잡는다. '차라리 처음부터 나한테 잡히지 말았으면' 한 순간에 상어밥이 되버린 거대한 물고기를 보며, 그리고 자신의 처지를 보며 노인은 말한다. '그저 누구의 탓도 아닌 내가 멀리 나갔기 때문이라고.' 격정적인 상어떼와의 혈투, 그토록 큰 자연인 바다와의 혈투는 안타까워 숨이 턱턱 막혔다. 바다 위의 배 한척, 홀로 있는 외롭고 고독한 싸움에 자신의 나약함을 느끼면서도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는 모습이 눈물겨우면서도 장엄하게 보이던건 왜일까. 현실에 있을 수많은 난관들에 우리는 노인처럼 자존심으로 불굴의 의지로 일어날 수 있을까. 헤밍웨이는 이 작품을 구상할 때 릴케의 '그 누가 승리를 말할 수 있으랴, 극복이 전부인 것을'이란 구절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 비록 수확을 얻지 못했고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패배가 아니라고 말하는 노인. 또다시 사자꿈을 꾸며 새로운 희망을 기약하는 노인에게 '그 누가 승리를 말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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