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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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삶에 대한 총정리, 그리고 비체험의 위성

 

 

 

  

  가벼움 속의 무거움, 이 책을 알게 되고서 계속 했던 생각이었다. 도대체 이것의 구분을 통해 작가는 뭘 말하려는 것일까. 무작정 읽고 싶은 책으로 분류해놓긴 했지만 언제쯤 읽어야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금, 첫번째 독서 후 감상을 남기려 했지만 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을 다룬 이동진의 빨간책방 13회를 듣고 어느정도 생각이 자리잡힌 것 같다. 그리고 두번째 독서를 하게 된다면 아마도 그때쯤에야 조금 더 보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어쨌든 이 다음은 '한번' 읽고 들은 뒤의 정리다.

 

  닳고 닳도록 읽혀지는 고전이자, 쿤데라라는 이름하나로 대표되는 이 책은 언뜻 보면 네명의 사랑이야기로만 보일지도 모른다. 대단한 여성편력의 소유자인 토마시와 그를 운명이라고 믿는 테레자, 그리고 토마시의 연인인 사비나, 그리고 그녀에게 매력을 느끼는 프란츠. 그들의 관계, 그리고 가벼움과 무거움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줄타기 속에서 삶과 사랑의 변화, 역사 (프라하의 봄이라는 배경), 존재, 권태와 허무, 욕망 등 소설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소재를 이야기 속에 품어두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이 책에서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계산하는 단위는 '질량이 아닌 무게'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에 작용하는 관계와 함께 소설 속 주제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 생각에 대한 해답은 아마도 그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우연들을 필연으로 바꾸기 위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쿤데라가 소설 속에서 직접 언급하기도 했던 '키치'라는 표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에 대해 처음에는 유머와 가벼운 시선등으로 생각했지만, 빨간책방의 임자 둘의 해석에 의하면 '키치'는 세상에 대한 풍부한 다의성을 배제하고 '이것은 이것이다'하고 굳게 믿는 통념이나 편견을 말한다.

 

  쿤데라 전집 중 <소설의 기술>에 의하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첫 제목은 '비체험의 위성' 이었다고 나와있다. 비체험의 위성. 우연을 반복하는 이 비체험의 위성은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인 지구를 가리킨다. einmal ist keinmal, 한 번이면 영원히 끝인 우리의 삶,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비체험의 위성에 우리가 살고 있는 까닭이다.

 

 

  

   - 우리 모두는 사랑이란 뭔가 가벼운 것,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는 무엇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반드시 이런 것이여야만 한다고 상상한다. 또한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삶도 더 이상 삶이 아닐 거라고 믿는다. 덥수룩한 머리가 끔찍한, 침울한 베토벤도 몸소 그의 'Es muss sein! (그래야만 한다)'을 우리의 위대한 사랑을 위해 연주했다고 확신한다. (58p)

 

  - 우연만이 우리에게 어떤 계시로 나타날 수 있다. 필연에 의해 발생하는 것, 기다려 왔던 것, 매일 반복되는 것은 그저 침묵하는 그 무엇일 따름이다. 오로지 우연만이 웅변적이다. 집시들이 커피 잔 바닥에서 커피 가루 형상을 통해 의미를 읽듯이, 우리는 우연의 의미를 해독하려고 애쓴다. (80p)

 

  - 사비나의 삶이 음악이었다면, 중산모자는 그 악보의 모티프였다. 이 모티프는 영원히 되풀이되었으며 매번 다른 의미를 띠었다. 그 모든 의미는 마치 물이 강바닥을 스치고 지나가듯 중산모자를 거쳤다. 그리고 내 생각에 그것은 헤라크레이토스의 강바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물에서 두 번 목욕하지 않는다!" 중산모자는 강바닥이었고, 사비나는 매번 다른 강물, 다른 의미론적 강물을 보았던 것이다. 같은 대상이 매번 다른 의미를 야기했지만 그 의미는 이전의 다른 모든 의미와 공명을 일으켰다. (마치 하나의 메아리, 꼬리를 무는 메아리들처럼) 새로운 체험은 보다 풍부한 화음으로 공명을 일으켰다. (143p)

 

  - 한 인생의 드라마는 항상 무거움의 은유로 표현될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 어깨에 짐이 얹혔다고 말한다. 이 짐을 지고 견디거나, 또는 견디지 못하고 이것과 더불어 싸우다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191p)

 

  - Einmal ist keinmal. 한 번은 중요하지 않다. 한 번이면 그것으로 영원히 끝이다. 유럽 역사와 마찬가지로 보헤미아 역사도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보헤미아 역사와 유럽 역사는 인류의 치명적 체험 부재가 그려 낸 두 밑그림이다.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344p)

 

  - 키치는 인간들의 기억 속에 깊이 뿌리내린 핵심 이미지에 호소한다. 배은망덕한 딸, 버림받은 아버지, 잔디밭 위를 뛰어가는 어린아이, 배신당한 조국, 첫사랑의 추억. 키치는 백발백중 감동의 눈물 두 방울을 흐르게 한다... 모든 인간 사이의 유대감은 오로지 이 키치 위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388p)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반면에 짐이 완전히 없다면 인간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려, 지상의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겨우 반쯤만 현실적이고 그 움직임은 자유롭다 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 그렇다면 무엇을 택할까? 묵직함, 아니면 가벼움?...

파르메니데스는 이렇게 답했다. 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이 부정적이라고. 그의 말이 맞을까? 이것이 문제다. 오직 한가지만은 분명하다.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

 

위대한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은 인간 존재를 탐구하는 소설들이 많은 것 같다. 그것들에 여러 해석들이 있지만 결국 하나로 모이는 건 한번의 인생 속 의미를 파악해서 살아가는 것인듯... 그나저나 쿤데라는 정말 노벨문학상을 언제 받을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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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페이지에 죽음 하나
다니엘 포르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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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페이지에 죽음 하나 - 다니엘 포르> 유쾌한 블랙 코미디? 음...

 

 

 

 

 

  나는 항상 화제였던 소설을 뒤늦게 보곤 한다. 이 책도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여러개 보다가 제목만 보고 흥미가 생겼었는데, 우연히 이웃님께 받게 되었던 책이다. '한 페이지에 죽음 하나' 언뜻 보면 별 다를 것 없는 소설일 것 같지만 형식상으로 굉장히 재미있는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정말로, 책의 제목처럼 '한 페이지에 죽음 하나'가 등장한다는 것. (비록 한글로 번역이 되면서 거의 한 페이지에 죽음 하나를 볼 수 있긴 하지만 말이다. - 번역가의 말) 참 새롭고 기발한 사실이다.

 

  책 속의 주인공이 애인에게 '겨드랑이 좀 닦아라!'는 말을 듣고 차인 후 길 위에서 사고를 목격함으로써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나서 자그마치 한 페이지에 거의 하나씩 죽음을 만나는 상황이 연출된다. 사실 말만 죽음이지, 실질적인 죽음 뿐만 아니라 관념적인 죽음의 대상들이 등장 한다. 주위의 사람들, 유명인, 가족, 동물, 망가진 전화기.. 처럼. 그러던 어느날, 유명 소설가를 꿈꾸는 이 주인공이 이렇게 죽음의 소식들로 떠들썩한 생활 속에서 역시 또 다른 죽음의 소식인 연쇄살인 사건 이야기를 듣게 된다. 더군다나 그 사건에 말려들기까지, 도대체 이 사람 어떻게 되는 걸까?

 

  현직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이 소설은 죽음이란 단어로 가득차있지만 그렇게 무겁지만은 않다. 죽음의 대상들 모두가 그리 무섭고 암울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작가의 재치를 이용해서 블랙 코미디적인 표현으로 분위기를 풀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한국 정서상 외국의 블랙코미디적 요소를 잘 이해하기 힘들긴 하다. 가끔가다 나오는 어이없는 말들에 피식하고 웃게 하는 이것들이 작가가 의도한 웃음이었는지도 모르고 지나간게 현실.. 독특하고 재밌는 문장이 가득차있는데도 가끔 흐름을 잃기도 했다는 건 아쉬울 뿐이다. 그래도 범인의 모습은 좀 웃겼다는 것에 위안을 받고 책장을 덮었다.

 

 

  내게 친구가 있던 시절, 한 친구가 습관처럼 하던 말이 떠올랐다. "이상하게도 난 내 주위에서 한동안 아무도 죽지 않으면 불안해."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운이 좋은 셈이었다. 최근에 나를 둘러싸고 연이어 일어나는 일들과 그에 수반된 감정의 기복에 비추어 볼 때 난 우울할 이유가 없었다... 이제 머지않아 내 인생에 불운이 끼어들 틈은 더이상 없을 터였다. (41p)

 

  이제 나는 그 어떤 일에도 놀라지 않았다. 쿨함 그 자체였다. 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이 곧 삶이고, 삶은 구속되거나 제어당하는 일 없이 우리 모두의 의지보다 더 강력한 논리가 뒷받침하는 흐름을 따라갈 뿐이다. 혼돈은 삶의 원천이며 질서는 습관을 형성할 뿐이다. 누가 이런 말을 했냐고? 인용문 사전을 참고하기를! (56p)

 

 "어쨌든 참 고마워!" 그녀는 수화기에 대고 역정을 냈다. 마치 나에게 일말의 기대라도 했던 것처럼. 나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죄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치 빠른 속도로 물이 차는 욕조를 보는 듯했다. 욕조는 나를, 물은 죄의식을 의미했다. 이미지는 이미지일 뿐이다(84p)

 

  내 삶은 한심하기 그지없는 해체 과정이었다. 이 나이에 현실을 외면한다는 건 아무 소용 없는 짓이다. 어린아이같은 순진함,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믿음, 대개들 희망이라고 부르는 것, 내가 규정지을 수 없는 어떤 것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져버렸다. 그 순간 왜 "절망적으로"와 같은 진부한 문구가 슬픔을 나타내는 절대적인 표현으로 내 머릿속에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그런 걸 정말로 느낀다면 끔찍할 것 같았다. 내게 속했던 그 무언가를 죽여버린 건 나일까? 혹은 내 일부분이 자살하듯 그 무엇이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일까? 어느쪽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샴고양이 시체처럼 내가 끌고 다니던 내 안에 어떤 것이 죽어버렸다는 건 알 수 있었다. (133p)

+ 이 책은 전통 추리물 (애드거 앨런 포)을 패러디한 소설이기도 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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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 로망스
김민관 지음 / 고려의학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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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이라는 상상, 즐거운 상상 <슈퍼맨 로망스 - 김민관>

 

 

  '만약 당신이 슈퍼맨을 동경한다면'이란 물음으로 시작하는 <슈퍼맨 로망스>. 요즘 슈퍼맨이나 히어로, 동화 속 누군가를 동경하는 사람이 있을까? 머리 속에는 스트레스와 해야할 일들이 가득차 있는 현대인들의 삶에 '만약'이란 가정은 생각만 해도 신나는, 재밌는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 있게 할 것만 같다.

 

  실제로 작가는 난처한 상황이 되면 '만약에'라는 공상을 하다가 공상가라는 별명까지 얻게 될 정도로 습관이 되버렸다고. 그래서 그런지 이 책 속에는 신기하고 터무니없는 상상들로 시작한 귀여운 이야기들이 많다. 만약 외계인이 지구에 존재한다면, 자신이 원하는 코를 자판기에서 뽑아서 붙일 수 있다면, 짝 없는 양말들이 모여있는 곳을 발견한다면, 시간을 돌릴 수 있는 장치가 존재한다면... 이런 이야기들은 따스하고 유쾌해서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이야기 하나하나 읽어나가다 보면 '만약'이라는 상상이 얼마나 즐거운지 생각하게 된다. 친구랑 웃기는 상상을 이야기 하면서 픽 하고 웃을때처럼 말이다.

 

  마치 동화 속 이야기를 생각할 때 처럼, 우리 안에 숨겨져있던 동심을 슬쩍슬쩍 끄집어내는 책. 각각의 짧지만 상상력 넘치는 이야기들에 '어, 이런 상상도 할 수 있구나'하고 놀라게 하는 책. 한번은 생각해본 상상이 이야기로 펼쳐진 모습을 보고 흐뭇해지는 책, <슈퍼맨 로망스>. 이 책을 만들어낸 작가의 머릿속에 어떤 것들이 들어 있을지 더더욱 궁금해진다.


 

 

  

   나는 기억들이 떠오를 때마다 따뜻하게 위로해주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어떤 이유를 통해 할 일 없이 놀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어쩌면 그 사람이 무심코 지나쳐버린 기억들이 너무도 많아 이제는 자신들을 기억해달라며 그 주인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마치 어머니의 애정을 바라는 투정 가득한 아이처럼. (36p)

 

  "이모 하늘에 달을 켜졌어요." 조카의 말을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걸려다. 그리고 나는 달이 켜졌다는 아이의 말이 전등이 켜졌다 꺼졌다. 하는 것을 하늘에 뜬 달에 갖다 붙인 표현임을 이해했다. 정확한 표현을 가르쳐 주어야 하나 고민이 된다. 하지만 네 살 아이의 순수한 동심이라고 생각하면 그저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54p)

 

  혜성이 사라진다. 혜성은 그 커다란 불꽃을 몸에 휘감고 우주 너머로 빛을 내며 사라졌다. 그런데 영희의 마음에 불쑥 이상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건 자신이 가장 처음 미술을 좋아하게 되었을 때의 기분과 비슷했다. 설레는 감정.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느낌. 영희는 가슴 속에 그날의 열정이 다시 불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132p)

 

  궁상맞은 인생.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분명 어릴 적 나는 슈퍼맨이었는데 부러울 거 하나 없는 우리들의 영웅이었는데. 여전히 슈퍼맨인 지금 무엇이 변했기에 인생이 이토록 힘겨워졌을까. 나는 이 날도 이런저런 궁상을 떨며 슈퍼에 앉아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252p)

 

 


 

작가님에게 선물받은 사인본 <슈퍼맨 로망스>. 덕분에 읽으면서 재밌게, 휴식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났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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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 - 누구나 생애 한 번은 그 길에 선다
윌리엄 폴 영 지음, 이진 옮김 / 세계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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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있다 <갈림길 - 윌리엄 폴 영>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저 멀리의 끝이 보이지 않는 그 여러개의 길에서 우리는 어떤 것들을 선택해야 옳은지 갈팡질팡하다. 내가 이 선택을 함으로써 벌어지는 모든 주위의 변화와 결과가 걱정되어, 그냥 무작정 걸어보기도 한다.  

 

  이 책의 주인공인 앤서니 스펜서는 오로지 물질과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다가 의문의 사고로 이상한 세계에 빠져드는 인물이다. 육체는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채로. 그는 (그의 영혼) 생각치 못했던 세계에서 성스러운 존재들을 만나게되고, 자신 안에 깊이 잠들고 있던 갈망과 사랑, 희망, 신앙과 같은, 생전에 바라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그는 영혼의 형태로 그 전에 살고 있던 세상 속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이야기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선택의 순간을 계속해서 맞닥뜨리게 되는 그의 두번째 이야기. 그는 '누군가를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고 이전의 삶을 되돌려 놓기 위해,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 그들과 대화를 하고 도움을 받게 된다.

 

  시종일관 진지하고 신성하게 읽게 된 <갈림길>. 세계사 서포터즈를 통해 원고를 한번 읽고, 완전히 책 모양을 갖추게된 이것을 두번째 읽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의존하는 믿음의 대상인 신앙, 그 기독교적인 의문점들을 이 책에서는 환상적으로 영상화된 텍스트로 그려내고 있다. 물론 이야기의 요소 자체가 신비로운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보다 신비로운 것 투성이인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가 일궈내야할 많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작가 윌리엄 폴 영은 진지하게 써내려가고 있다.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인 관계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이야기를 통해 나는 아마도 '모든 인간이 하나의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 사람과의 입맞춤을 통해 미끄러져내려가는 주인공의 영혼을 봐도 그렇기도 하고. 그 보이지 않는 끈 사이에 수많은 선택의 길이 있고 또 그 길에 갈림길이 이어져 있는 듯 하다. 그 엄청난 갈림길에서의 선택의 순간에서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골라내야할지, 또한 어떤 마음으로 잡아야할지를 이 책은 생각하게 해준다.

 

  그 셀 수 없는 선택들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로지 그 길의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끝에서 황량한 자신을 발견하지 않으려면 자신의 영혼의 목소리를 믿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는 것, 그것이 답인 것 같다. 

 

 

 

희망사항이야말로 그의 적이었다. 만약에, 이렇게 될 수도 있었는데, 저렇게 되었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같은 생각들은 그의 에너지를 갉아먹었고 성공과 자기만족의 장애물일 뿐이었다.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것들, 소중한 것들이 있다는 말은 거짓이었고, 망상이었으며, 죽음을 앞두고 믿고 싶은 자기 위안일 뿐이었다. 일단 죽고나면 남는 것은 지나온 삶의 환상뿐이리라.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스쳐가는 허망한 추억들을 간직한 삶의 환상, 삶이 소중한 것이라는 신기루의 작은 단편들뿐이리라. 그 모든 것이 결국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라면 희망사항이 그의 적이라는 사실조차도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리라. 희망은 하나의 미신일 뿐 적이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38p)

 

지금 그는 세 가지 선택 앞에 서 있었고 그의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전혀 알지 못했다. 놀랍게도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오히려 위안이 되었다.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될 테니까. 그는 어떤 길이든 선택할 수 있었다. 그 자유가 그를 흥분시켰고 또 두렵게도 했다. 마치 불과 얼음 사이의 줄타기처럼. (46p)

 

기쁨과 즐거움을 꼭 팔아야만 가치가 있을까? 댐을 만들어 강물을 가두면 늪이 되는 법이지. (116p)

 

지금 당신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은 당신의 기억이 조합할 수 있는 최상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내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당신의 기억과 상상력으로 빚어낸 거죠. 지금 당신은 뿌리를 바라보고 있는 뿌리예요. (227p)

 

중간지대와 이후의 삶은 당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잘한 것들로 지어졌어요.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잘못한 것이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거나, 저절로 사라져버리는 건 아니에요. 그중 많은 부분이 어디서든 볼 수 있도록 주위에 널려 있어요. 가장 중요한 건 이곳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짓는 겁니다. (233p)

 

믿음에는 모험이 따르죠. 관계에도 항상 위험이 따르고요. 하지만 결론이 뭔지 아세요? 관계가 없다면 이 세상은 아무 의미도 없어요. 어떤 관계는 다른 관계보다 좀 더 엉망이고, 어떤 관계는 오래가지 않고 또 어떤 관계는 힘들어요. 반면 어떤 관계는 수월하기도 하죠. 어찌 되었든 그 모든 관계가 다 소중해요. (367p)

 

 

 

 

"마지막 대화가 곧 그 사람은 아니다. 그 사람과 평생 맺어온 관계 전체가 곧 그 사람이다."

 

책 속에서 찾은 말. 릴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짧지만 강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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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이면 - 1993 제1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이승우 지음 / 문이당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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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그가 아닌 모든 사람의 편이었다 <생의 이면 - 이승우> 

 

 

 

 

 

  이승우 작가를 만난 적이 있다. 1년전 북콘서트에서, 그때는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이름이었지만 객석에 앉아있는 두터운 매니아층을 실감했었다. 그 만남을 위해서 그의 가장 최근 책이었던 <지상의 노래>를 읽었었는데, 장황한 이야기에 그 독특한 문체가 너무 놀라웠던 나는 2시간 거리의 홍대 소극장까지 혼자 발걸음을 옮겼었다. (물론 기사를 써야하는 의무도 있었지만...) 그때의 놀라움을 안고 읽은 <생의 이면>은 놀라움을 넘어서 거의 쇼크였다.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거의 높지않은 나에게도 이 소설은 탄탄하고 깊이있게 느껴졌다.

 

  소설의 첫 부분은 '작가탐구'의 필자가 작가 박부길을 관찰하는 시점에서 시작된다. 박부길이라는 인물은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존재, 그리고 사랑의 결핍으로 인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끈을 잡을 수 없었던 인물인데, 그는 우연처럼 혹은 운명처럼 만나게된 신앙과 글과 단 하나의 여자를 통해 구원의 손길을 느낀다. <생의 이면>의 독특한 점은 박부길의 삶을 그가 직접 쓴 허구의 구절로서 이야기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구절들을 통해 박부길의 문학은 그의 삶으로 온통 지배되어 있다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 독특한 서술방식을 통해서 우리는 '박부길'이라는 사람의 순탄하지 않은 인생을, 감춰진 죄의식과 욕망을 책의 초반 화자가 이야기 한 것처럼 '소설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것을 통해 일반적으로 보이는 박부길의 인생의 한 쪽 면만이 아니라 '생의 이면'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작가는 '모든 소설은 허구이다. 그러나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허구이다. 혼돈의 삶에 형태를 부여하기 위한 인공의 혼돈... 그러나 모든 소설은 어떤 식으로든 글쓴이의 자전적인 기록'이라고 말한다. 독자인 우리는 '가짜의 인물을 통해 비밀스러운 기쁨을 가지고 작가의 삶을 들여다본다.' 소설 속 박부길의 모습 중 몇몇의 요소와 작가와 닮아있다고 여긴것도 나의 독자로서의 야릇한 엿봄의 기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박부길이라는 인물이 작가의 모습에 허구의 삶이 여러번 입혀진 모습이라고 믿고 있다. 작가 자신의 혼이 온통 담겨있다는 이 책은 세계문학에 버금가는 우리고유의 고전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또한 믿고 있다.

 

   


  사람들은 삥 둘러서서 그가 행동하기만을 주시하고 있었다.그 야릇한 눈길들 속에서 그는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자신이, 적어도 그 순간, 거기 모인 사람들에 의해서, 매우 특별한 존재로 구별되고 있다는 인식이 그것이었다. 그는 그들과 달랐다. 그들은 그와 달랐다. 적어도 그들의 표정은 그렇게 선언하고 있었다. 너는 우리가 아니다. 우리는 네가 아니다........ 살아가면서 그가 종종 경험하곤 했던, 세계로부터 이탈되어 나가는듯한 걷잡을 길 없는 소외감이 그때 처음으로 그를 찾아왔다. (74p)

 

사람은 현실에 대해 절망하면 신화에 기대고 싶어한다. 신화는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현실의 부드러운 왜곡이다. 반영이라면 왜곡의 반영이다. 개별적인 무의식의 꿈을 공식화함으로써 현실을 넘어가려는 욕망, 그것이 신화를 탄생시키고, 신화를 받아들이게 만든다. (84p)

 

모든 예감에 비극의 냄새가 묻어 있다는 것을 나는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숙명의 울림 때문이다. 예감은 열람이 금지된 숙명의 세계를 부지불식간에 엿보고만 자의 머리 위에 그 부정에 대한 징벌로 떨어지는 벼락, 그 벼락 같은 천재지변의 떨림이다. 그래서 숙명은 예감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모든 숙명은 비극의 광배(光背)를 두르고 있게 마련이다. 숙명적이라는 말이 비극적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쓰이는 까닭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111p)

 

왜곡된 진실이라 하더라도 진실일 수 있을까? 물속에 비친 찌그러진 달, 색안경을 쓰고 보는 푸른 달, 그리고 암스트롱이 찍어 보낸 필름 속의 달, 그것들을 달이 아니면 무어라고 말할 것인가.... 그것들은 달이 아니지만 달이다. 그런 것이 있을 수 있다. 진실이 아니지만 진실인 것, 우리의 검열받은 기억 속의 과거가 그러하다. 그것들은 한낱 인상에 불과하지만, 그 인상을 조작된 것이라고 몰아붙일 수는 없다. 자, 그러면 어떤 길이 있는가. 나는 망설이고 있다. 길을 못 찾아서? 그건 아니다. 나는 내 자아를 형성하고 있는, 수많은, 서로 대립하는 층들의 싸움을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115p)

 

나는 기억한다. 세상은 나를 힘들어했다. 내가 세상에 대해 그런 것처럼. 그것은 내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상 속에 들어와야한다고 세상은 내게 말했다. 세상 속으로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세상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세상은 자기 품으로 들어오지 않은 자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나는 사전에 이해를 확보하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119p)

  

 

나타나엘이여, 그대를 닮은 것 옆에 머물지 말라. 결코 머물지 말라. 나타나엘이여, 주위가 그대와 흡사하게 되거나 또는 그대가 주위와 흡사하게 되면 거기에는 이미 그대에게 이로울 만한 것이란 없다. 그곳을 떠나야만 한다.

'너의' 집 안, '너의'방, '너의' 과거보다 더 너에게 위험한 것은 없다. - 앙드레 지드

 

또 하나의 탐독대상이 늘어났다.... ㄷㄷㄷㄷ 이승우 작가의 전집 다 읽고 싶어짐 ㅠㅠㅠ

이동진 님은 전집 거의 다있던데 역시 멋짐 b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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