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삶에 대한 총정리, 그리고 비체험의 위성

 

 

 

  

  가벼움 속의 무거움, 이 책을 알게 되고서 계속 했던 생각이었다. 도대체 이것의 구분을 통해 작가는 뭘 말하려는 것일까. 무작정 읽고 싶은 책으로 분류해놓긴 했지만 언제쯤 읽어야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금, 첫번째 독서 후 감상을 남기려 했지만 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을 다룬 이동진의 빨간책방 13회를 듣고 어느정도 생각이 자리잡힌 것 같다. 그리고 두번째 독서를 하게 된다면 아마도 그때쯤에야 조금 더 보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어쨌든 이 다음은 '한번' 읽고 들은 뒤의 정리다.

 

  닳고 닳도록 읽혀지는 고전이자, 쿤데라라는 이름하나로 대표되는 이 책은 언뜻 보면 네명의 사랑이야기로만 보일지도 모른다. 대단한 여성편력의 소유자인 토마시와 그를 운명이라고 믿는 테레자, 그리고 토마시의 연인인 사비나, 그리고 그녀에게 매력을 느끼는 프란츠. 그들의 관계, 그리고 가벼움과 무거움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줄타기 속에서 삶과 사랑의 변화, 역사 (프라하의 봄이라는 배경), 존재, 권태와 허무, 욕망 등 소설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소재를 이야기 속에 품어두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이 책에서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계산하는 단위는 '질량이 아닌 무게'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에 작용하는 관계와 함께 소설 속 주제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 생각에 대한 해답은 아마도 그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우연들을 필연으로 바꾸기 위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쿤데라가 소설 속에서 직접 언급하기도 했던 '키치'라는 표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에 대해 처음에는 유머와 가벼운 시선등으로 생각했지만, 빨간책방의 임자 둘의 해석에 의하면 '키치'는 세상에 대한 풍부한 다의성을 배제하고 '이것은 이것이다'하고 굳게 믿는 통념이나 편견을 말한다.

 

  쿤데라 전집 중 <소설의 기술>에 의하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첫 제목은 '비체험의 위성' 이었다고 나와있다. 비체험의 위성. 우연을 반복하는 이 비체험의 위성은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인 지구를 가리킨다. einmal ist keinmal, 한 번이면 영원히 끝인 우리의 삶,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비체험의 위성에 우리가 살고 있는 까닭이다.

 

 

  

   - 우리 모두는 사랑이란 뭔가 가벼운 것,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는 무엇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반드시 이런 것이여야만 한다고 상상한다. 또한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삶도 더 이상 삶이 아닐 거라고 믿는다. 덥수룩한 머리가 끔찍한, 침울한 베토벤도 몸소 그의 'Es muss sein! (그래야만 한다)'을 우리의 위대한 사랑을 위해 연주했다고 확신한다. (58p)

 

  - 우연만이 우리에게 어떤 계시로 나타날 수 있다. 필연에 의해 발생하는 것, 기다려 왔던 것, 매일 반복되는 것은 그저 침묵하는 그 무엇일 따름이다. 오로지 우연만이 웅변적이다. 집시들이 커피 잔 바닥에서 커피 가루 형상을 통해 의미를 읽듯이, 우리는 우연의 의미를 해독하려고 애쓴다. (80p)

 

  - 사비나의 삶이 음악이었다면, 중산모자는 그 악보의 모티프였다. 이 모티프는 영원히 되풀이되었으며 매번 다른 의미를 띠었다. 그 모든 의미는 마치 물이 강바닥을 스치고 지나가듯 중산모자를 거쳤다. 그리고 내 생각에 그것은 헤라크레이토스의 강바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물에서 두 번 목욕하지 않는다!" 중산모자는 강바닥이었고, 사비나는 매번 다른 강물, 다른 의미론적 강물을 보았던 것이다. 같은 대상이 매번 다른 의미를 야기했지만 그 의미는 이전의 다른 모든 의미와 공명을 일으켰다. (마치 하나의 메아리, 꼬리를 무는 메아리들처럼) 새로운 체험은 보다 풍부한 화음으로 공명을 일으켰다. (143p)

 

  - 한 인생의 드라마는 항상 무거움의 은유로 표현될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 어깨에 짐이 얹혔다고 말한다. 이 짐을 지고 견디거나, 또는 견디지 못하고 이것과 더불어 싸우다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191p)

 

  - Einmal ist keinmal. 한 번은 중요하지 않다. 한 번이면 그것으로 영원히 끝이다. 유럽 역사와 마찬가지로 보헤미아 역사도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보헤미아 역사와 유럽 역사는 인류의 치명적 체험 부재가 그려 낸 두 밑그림이다.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344p)

 

  - 키치는 인간들의 기억 속에 깊이 뿌리내린 핵심 이미지에 호소한다. 배은망덕한 딸, 버림받은 아버지, 잔디밭 위를 뛰어가는 어린아이, 배신당한 조국, 첫사랑의 추억. 키치는 백발백중 감동의 눈물 두 방울을 흐르게 한다... 모든 인간 사이의 유대감은 오로지 이 키치 위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388p)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반면에 짐이 완전히 없다면 인간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려, 지상의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겨우 반쯤만 현실적이고 그 움직임은 자유롭다 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 그렇다면 무엇을 택할까? 묵직함, 아니면 가벼움?...

파르메니데스는 이렇게 답했다. 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이 부정적이라고. 그의 말이 맞을까? 이것이 문제다. 오직 한가지만은 분명하다.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

 

위대한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은 인간 존재를 탐구하는 소설들이 많은 것 같다. 그것들에 여러 해석들이 있지만 결국 하나로 모이는 건 한번의 인생 속 의미를 파악해서 살아가는 것인듯... 그나저나 쿤데라는 정말 노벨문학상을 언제 받을 수 있을런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