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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페이지에 죽음 하나
다니엘 포르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한 페이지에 죽음 하나 - 다니엘 포르> 유쾌한 블랙 코미디? 음...
나는 항상 화제였던 소설을 뒤늦게 보곤 한다. 이 책도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여러개 보다가 제목만 보고 흥미가 생겼었는데, 우연히 이웃님께 받게 되었던 책이다. '한 페이지에 죽음 하나' 언뜻 보면 별 다를 것 없는 소설일 것 같지만 형식상으로 굉장히 재미있는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정말로, 책의 제목처럼 '한 페이지에 죽음 하나'가 등장한다는 것. (비록 한글로 번역이 되면서 거의 한 페이지에 죽음 하나를 볼 수 있긴 하지만 말이다. - 번역가의 말) 참 새롭고 기발한 사실이다.
책 속의 주인공이 애인에게 '겨드랑이 좀 닦아라!'는 말을 듣고 차인 후 길 위에서 사고를 목격함으로써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나서 자그마치 한 페이지에 거의 하나씩 죽음을 만나는 상황이 연출된다. 사실 말만 죽음이지, 실질적인 죽음 뿐만 아니라 관념적인 죽음의 대상들이 등장 한다. 주위의 사람들, 유명인, 가족, 동물, 망가진 전화기.. 처럼. 그러던 어느날, 유명 소설가를 꿈꾸는 이 주인공이 이렇게 죽음의 소식들로 떠들썩한 생활 속에서 역시 또 다른 죽음의 소식인 연쇄살인 사건 이야기를 듣게 된다. 더군다나 그 사건에 말려들기까지, 도대체 이 사람 어떻게 되는 걸까?
현직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이 소설은 죽음이란 단어로 가득차있지만 그렇게 무겁지만은 않다. 죽음의 대상들 모두가 그리 무섭고 암울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작가의 재치를 이용해서 블랙 코미디적인 표현으로 분위기를 풀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한국 정서상 외국의 블랙코미디적 요소를 잘 이해하기 힘들긴 하다. 가끔가다 나오는 어이없는 말들에 피식하고 웃게 하는 이것들이 작가가 의도한 웃음이었는지도 모르고 지나간게 현실.. 독특하고 재밌는 문장이 가득차있는데도 가끔 흐름을 잃기도 했다는 건 아쉬울 뿐이다. 그래도 범인의 모습은 좀 웃겼다는 것에 위안을 받고 책장을 덮었다.
내게 친구가 있던 시절, 한 친구가 습관처럼 하던 말이 떠올랐다. "이상하게도 난 내 주위에서 한동안 아무도 죽지 않으면 불안해."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운이 좋은 셈이었다. 최근에 나를 둘러싸고 연이어 일어나는 일들과 그에 수반된 감정의 기복에 비추어 볼 때 난 우울할 이유가 없었다... 이제 머지않아 내 인생에 불운이 끼어들 틈은 더이상 없을 터였다. (41p)
이제 나는 그 어떤 일에도 놀라지 않았다. 쿨함 그 자체였다. 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이 곧 삶이고, 삶은 구속되거나 제어당하는 일 없이 우리 모두의 의지보다 더 강력한 논리가 뒷받침하는 흐름을 따라갈 뿐이다. 혼돈은 삶의 원천이며 질서는 습관을 형성할 뿐이다. 누가 이런 말을 했냐고? 인용문 사전을 참고하기를! (56p)
"어쨌든 참 고마워!" 그녀는 수화기에 대고 역정을 냈다. 마치 나에게 일말의 기대라도 했던 것처럼. 나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죄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치 빠른 속도로 물이 차는 욕조를 보는 듯했다. 욕조는 나를, 물은 죄의식을 의미했다. 이미지는 이미지일 뿐이다(84p)
내 삶은 한심하기 그지없는 해체 과정이었다. 이 나이에 현실을 외면한다는 건 아무 소용 없는 짓이다. 어린아이같은 순진함,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믿음, 대개들 희망이라고 부르는 것, 내가 규정지을 수 없는 어떤 것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져버렸다. 그 순간 왜 "절망적으로"와 같은 진부한 문구가 슬픔을 나타내는 절대적인 표현으로 내 머릿속에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그런 걸 정말로 느낀다면 끔찍할 것 같았다. 내게 속했던 그 무언가를 죽여버린 건 나일까? 혹은 내 일부분이 자살하듯 그 무엇이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일까? 어느쪽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샴고양이 시체처럼 내가 끌고 다니던 내 안에 어떤 것이 죽어버렸다는 건 알 수 있었다. (133p)
+ 이 책은 전통 추리물 (애드거 앨런 포)을 패러디한 소설이기도 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