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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이면 - 1993 제1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이승우 지음 / 문이당 / 2013년 1월
평점 :
세상은 그가 아닌 모든 사람의 편이었다 <생의 이면 - 이승우>
이승우 작가를 만난 적이 있다. 1년전 북콘서트에서, 그때는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이름이었지만 객석에 앉아있는 두터운 매니아층을 실감했었다. 그 만남을 위해서 그의 가장 최근 책이었던 <지상의 노래>를 읽었었는데, 장황한 이야기에 그 독특한 문체가 너무 놀라웠던 나는 2시간 거리의 홍대 소극장까지 혼자 발걸음을 옮겼었다. (물론 기사를 써야하는 의무도 있었지만...) 그때의 놀라움을 안고 읽은 <생의 이면>은 놀라움을 넘어서 거의 쇼크였다.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거의 높지않은 나에게도 이 소설은 탄탄하고 깊이있게 느껴졌다.
소설의 첫 부분은 '작가탐구'의 필자가 작가 박부길을 관찰하는 시점에서 시작된다. 박부길이라는 인물은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존재, 그리고 사랑의 결핍으로 인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끈을 잡을 수 없었던 인물인데, 그는 우연처럼 혹은 운명처럼 만나게된 신앙과 글과 단 하나의 여자를 통해 구원의 손길을 느낀다. <생의 이면>의 독특한 점은 박부길의 삶을 그가 직접 쓴 허구의 구절로서 이야기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구절들을 통해 박부길의 문학은 그의 삶으로 온통 지배되어 있다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 독특한 서술방식을 통해서 우리는 '박부길'이라는 사람의 순탄하지 않은 인생을, 감춰진 죄의식과 욕망을 책의 초반 화자가 이야기 한 것처럼 '소설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것을 통해 일반적으로 보이는 박부길의 인생의 한 쪽 면만이 아니라 '생의 이면'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작가는 '모든 소설은 허구이다. 그러나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허구이다. 혼돈의 삶에 형태를 부여하기 위한 인공의 혼돈... 그러나 모든 소설은 어떤 식으로든 글쓴이의 자전적인 기록'이라고 말한다. 독자인 우리는 '가짜의 인물을 통해 비밀스러운 기쁨을 가지고 작가의 삶을 들여다본다.' 소설 속 박부길의 모습 중 몇몇의 요소와 작가와 닮아있다고 여긴것도 나의 독자로서의 야릇한 엿봄의 기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박부길이라는 인물이 작가의 모습에 허구의 삶이 여러번 입혀진 모습이라고 믿고 있다. 작가 자신의 혼이 온통 담겨있다는 이 책은 세계문학에 버금가는 우리고유의 고전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또한 믿고 있다.
사람들은 삥 둘러서서 그가 행동하기만을 주시하고 있었다.그 야릇한 눈길들 속에서 그는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자신이, 적어도 그 순간, 거기 모인 사람들에 의해서, 매우 특별한 존재로 구별되고 있다는 인식이 그것이었다. 그는 그들과 달랐다. 그들은 그와 달랐다. 적어도 그들의 표정은 그렇게 선언하고 있었다. 너는 우리가 아니다. 우리는 네가 아니다........ 살아가면서 그가 종종 경험하곤 했던, 세계로부터 이탈되어 나가는듯한 걷잡을 길 없는 소외감이 그때 처음으로 그를 찾아왔다. (74p)
사람은 현실에 대해 절망하면 신화에 기대고 싶어한다. 신화는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현실의 부드러운 왜곡이다. 반영이라면 왜곡의 반영이다. 개별적인 무의식의 꿈을 공식화함으로써 현실을 넘어가려는 욕망, 그것이 신화를 탄생시키고, 신화를 받아들이게 만든다. (84p)
모든 예감에 비극의 냄새가 묻어 있다는 것을 나는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숙명의 울림 때문이다. 예감은 열람이 금지된 숙명의 세계를 부지불식간에 엿보고만 자의 머리 위에 그 부정에 대한 징벌로 떨어지는 벼락, 그 벼락 같은 천재지변의 떨림이다. 그래서 숙명은 예감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모든 숙명은 비극의 광배(光背)를 두르고 있게 마련이다. 숙명적이라는 말이 비극적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쓰이는 까닭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111p)
왜곡된 진실이라 하더라도 진실일 수 있을까? 물속에 비친 찌그러진 달, 색안경을 쓰고 보는 푸른 달, 그리고 암스트롱이 찍어 보낸 필름 속의 달, 그것들을 달이 아니면 무어라고 말할 것인가.... 그것들은 달이 아니지만 달이다. 그런 것이 있을 수 있다. 진실이 아니지만 진실인 것, 우리의 검열받은 기억 속의 과거가 그러하다. 그것들은 한낱 인상에 불과하지만, 그 인상을 조작된 것이라고 몰아붙일 수는 없다. 자, 그러면 어떤 길이 있는가. 나는 망설이고 있다. 길을 못 찾아서? 그건 아니다. 나는 내 자아를 형성하고 있는, 수많은, 서로 대립하는 층들의 싸움을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115p)
나는 기억한다. 세상은 나를 힘들어했다. 내가 세상에 대해 그런 것처럼. 그것은 내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상 속에 들어와야한다고 세상은 내게 말했다. 세상 속으로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세상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세상은 자기 품으로 들어오지 않은 자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나는 사전에 이해를 확보하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119p)
나타나엘이여, 그대를 닮은 것 옆에 머물지 말라. 결코 머물지 말라. 나타나엘이여, 주위가 그대와 흡사하게 되거나 또는 그대가 주위와 흡사하게 되면 거기에는 이미 그대에게 이로울 만한 것이란 없다. 그곳을 떠나야만 한다.
'너의' 집 안, '너의'방, '너의' 과거보다 더 너에게 위험한 것은 없다. - 앙드레 지드
또 하나의 탐독대상이 늘어났다.... ㄷㄷㄷㄷ 이승우 작가의 전집 다 읽고 싶어짐 ㅠㅠㅠ
이동진 님은 전집 거의 다있던데 역시 멋짐 b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