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은 사춘기 - 명진 스님의 수행이야기
명진 스님 지음 / 이솔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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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조차 무서운 세상. 민주주의의 시계가 계속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이 시절에, 그나마 명진 스님이 계시다는 것은 얼마나 위안인가. 불의를 행하는 위정자에겐 거침없이 죽비를 내리치고, 하루아침에 공권력에 의해 삶의 터전과 핏줄을 잃고, 또, 감옥 보내고 우는 억울한 사람들을 찾아서는 스님도 그들과 함께 울었다.

눈물 닦는 사진과 동영상을 유독 많이 찍힌 스님을 보노라면 혹자는 속세를 떠난 구도자가 왜 저리 눈물이 많은가 오해 할 수도 있겠으나 알고 보면 스님의 눈물은 다 지극한 사랑이자 위로임에랴. 이 눈물 많은 스님이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한권의 책을 세상에 내 놓았다.

<스님은 사춘기>(이솔). 덕분에 목적 없이 속절없이 흘러가는 삶속에서 잠시 쉼표를 찍고 스님이 던지는 삶의 의미, 존재에 대한 화두에 물음표하나 던지며 쉬어 갈수 있게 되었다. 스님은 어이하여 출가를 하였던가.

모든 스님, 신부, 수녀님들에겐 식상한 질문이겠으나 중생은 그것이 또 가장 궁금한 질문임에랴. 명진 스님은 6살 어린나이에 ‘죽음’이라는 화두를 만났다, 그것도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를 통해.

<누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스승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죽음’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죽음은 내가 삶을 투철하게 성찰하도록 했다.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너무도 이른 나이에 죽음과 맞닥뜨렸다. 내가 처음 마주친 죽음의 대상은 불행하게도 어머니였다.>-본문 11쪽

뿐인가. 스님에게 죽음은 어머니만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서로 의지했던 동생이 해군에 입대한지 불과 몇 달 만에 군함 전복사고로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연이어 쉰이라는 이른 나이에 아버지마저 병고로 세상을 떠났다. 스물 언저리 푸른 청춘에 피붙이 모두 떠나고 세상엔 스님 혼자만 달랑 남게 되었다.

‘죽음’이라는 화두를, 예기치 않은 시기라면 하나만 던져도 암흑이거늘 스님은 젊은 날에 그것도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세 개 씩이나 받았다. 그러니까 익히 보이던 스님의 눈물은 수행의 미진함이 아니라 그 누구보다 중생의 아픔을 가슴으로 알기에 흐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구나. 흐르되 걸림은 없는. 마음이란 무엇인가. 마음은 허공이다? 스님의 변을 들어보자.

<마음도 마찬가지다. 마음은 본래 허공과 같이 텅 비어서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다. 묘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 한 물건을 마음이라고 하지만 마음이라는 게 어디 실체가 있는가. 내 마음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 슬픔이나 기쁨, 욕심이나 자비심 같은 모든 감정은 허공같이 텅 비어 있는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작용이다....... 

냉철하게 자기 자신을 살펴서 내 마음이 허공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내 마음이 허공같이 텅 비어 공적한 것임을 알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작용들이 하나의 작용일 뿐 실체가 없는 것임을 투철하게 깨달으면 그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대 자유를 얻게 된다. 내 마음이 바로 허공인 그 자리는 능히 모든 것이 자유자재한 자리이다.>-본문 256쪽

노스님들은 명진 행자가 무서워~

스님의 걸음하면 법정스님의 빠르고 거침없는 걸음걸이가 생각나는데 명진 스님은 의외였다. 지난해 봉은사에서 뵌 스님의 걸음걸이는 평소 말씀이 거침없는 것에 비해 사뿐사뿐 한발 한발 새색시같이 내 딛으셨다. 그것이 참 인상적이어서 봉은사 신도인 친구에게 말했더니 절은 더 하다고 하였다.

“절은 또 얼마나 정성스럽게 하시는 줄 아냐? 천천히 한배, 두 배... 시종여일하게 하신단다.”
“그렇게 해서 언제 하루에 천배를 다하신다니?”
“한 꺼 번이 아닌 아침 점심 저녁 중간 중간 나누어서 하시는 거지.”

아무튼 스님의 걸음걸이와 절하는 모습으로 유추해 볼 때는 스님의 행자생활도 지극히 새색시 같은 모습이 아니었을까 했는데 웬걸. 스님은 행자세계의 문제아였다.(웃음) 스님의 파란만장한 수행담은 읽는 내내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다른 스님들은 스스로 점잖아서도 못하고 무서워서도 못하는 질문을 명진 스님은 노스님들에게 거침없이 해댔다. 해인사 백련암 행자시절엔 일본어 배우라는 성철 스님의 말에 교학보다는 참선에 관심이 많던 스님은 일본어를 배워야 할 이유를 납득 못하였기에, 그냥 말도 없이 내뺐다.

‘남쪽에는 성철, 북쪽에는 전강’하던 그 시절에 성철 스님 눈에 단번에 들어 행자자리 꿰찼으면 일본어 아니라 더 한 것도 배우려 노력했으련만 스님은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그 후로도 쭉 운수납자로 떠돌았다. 물론 가는 곳 마다 사건(?)도 일으켰다.

안동 봉정사에서의 일화 한 토막. 간염과 영양실조에 걸린 지인스님에게 소머리를 삶아 먹이려다 주지스님과 신도회장이 항의하자 스님 왈,

“그럼 스님 머리를 삶을 까요?”

주지스님과 신도회장이 아연실색했음은 물론이고 말리지도 못하였다. 결과는, 지인스님이 기력을 회복했다고.

그런가 하면 용맹정진기간에 졸음을 깨우기 위해 당번이 될 경우 보통 노스님이 졸면 모른척하는 게 관례하면 스님은 반대로 하였다. 젊은 스님이 졸면 모른 척 눈감아 주고 대신 노스님이 졸면 죽비가 부러지게 내리 쳤단다.

행자시절하면 보통 행자의 설움이 말도 못하게 큰 것으로 전해지는데 명진 스님의 경우는 행자인 명진 스님 보다 은사스님들이 더 힘들어 보였다.(^^) 아무튼 이 한권의 책에는 어느새 환갑이 된 지난 60년 스님의 인생이 시시콜콜 다 있다. 군부독재에 맞서고 불교개혁에 앞장섰던 것에서부터 스님을 짝사랑한 어느 여인의 이야기까지.

타협하지 않고 언제든 자유인으로 당당히 돌아서는 스님의 당당함은 하루아침에 얻어진 것이 아니라 행자시절부터 쭈욱 견지하고 있던 초지일관의 한 단면이었다. 후후~ 우좌간 스님은 그 순수한 야성을 잃지 마시길.

<불교는 무조건적인 ‘믿음’이 아니라 끝없는 ‘물음’을 통해 스스로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종교이다. 냉철한 이성으로 자신을 살펴서 자신의 내면에 있는 탐욕과 어리석음이 허망한 것임을 깨달아 무한한 자유와 지혜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본문 262쪽

정말 그런 것 같다. 불교는 끝없는 물음을 통해 스스로를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종교라기보다 ‘사상’이다. ‘자유’에 이르게 하는 사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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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3
이디스 워튼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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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영화에 대한 기억이 좋아서 읽게 되었는데  

영화는 책을 충실하게 따랐고나. 

(책의, 100여년 전 풍경에 대한 세세한 묘사를 탁월하게 재현해 낸 

영화의 미술, 의상 담당자들의 노고에 다시금 경의를~~~ )

 

영화가 있었기에 책을 읽는 내내 영상이 떠올라 읽고 봄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그런 충만을 느꼈다. 

 

특히,  

영화에서는 마지막 한 장면일 뿐이었지만(영화의 마지막도 물론 뇌리에 오래 남는...) 

책의 마지막 34장은 아처 뉴랜드에 대한 심리묘사가 탁월하고도 탁월하였다.

.... 그 저린 마음의 허허로움은 내 모세혈관에도 전이되어 꺼이꺼이...... 

10여장이 넘도록 세세히, 담담히 아처의 마음을 설명해 주어서  

그나마 이 책과 이별하는데도 도움이 되었다.^^ 

 

"그가 놓친것이 있다면 인생의 꽃이었다.  

그러나 이제와서 생각하면 너무나 얻기 어렵고 가망없는 것이어서,  

복권에서 1등을 뽑지 못한 것처럼 놓쳤다고 절망스럽지도 않았다.  

....... 

그녀는 그가 놓친 것 전부를 한데 뭉뚱그린 환상이 되었다. 희미하고 미약했으나,  

그 환상 때문에 다른 여자를 마음에 품어 본 적이 없었다. ... 

결혼에서의 일탈은 추악한 욕정과의 투쟁이 될 뿐이었다.  

그는 주변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과거를 자랑스러이 여기는 한편으로 슬퍼했다.  

어쨌거나 흘러간 옛날이 좋았다." 

 

영화에서 '메이'가 위노나 인것이 별로 였는데 책을 보니 저자와 닮아서 그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키 차이가 너무 나서  영화 찍는 내내 힘들었다던데 

보는 나도 힘들었음^^ 올렌스 부인도 미쉘 파이퍼가 아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물론  

연기는 잘 하였음) 

원작이 워낙 좋으니 최근의 <제인 에어>처럼  내 평생에 이 책이 한번더  영화로 되는것을

보고싶다. ^^  생각만 해도 체온 급상승~ 

 

이디스 워튼, 저자의 이름을 나의 해마에 저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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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리의 만돌린
루이스 드 베르니에 지음, 임경아 옮김 / 루비박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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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서너번 보기가 쉽지 않은데  <코렐리의 만돌린>은  

그렇지 않았다.

아마 케팔로니아 섬의 자연이 한목했던것 같다. 

소설은 어떨까.......무척 궁금했는데 소설 역시 따뜻하다.  유머가 있고 잔잔하다. 

그리고 접경지역을 사는 사람들의 신산이, 

흔들리는 땅(지진)위에서도 뿌리내리고 살아야 하는 이들의 삶의 역사가 눈물겹다.  

 

하여 의사선생이 케팔로니아의 역사를 쓰려한다는 소설의 설정이 참으로 지당하게 

다가온다. 이 땅의 역사를 어떻게 쓸것인가. 의사는 종이를 구기고 또 구긴다. 

그런데 그 구김이 절망이 아니라  넘 웃긴다.ㅋㅋ 그속에는 낭만과 여유,그리고 그럴수 없이 써내겠다는 '돌팔의'의 야심이 있다.^^ 의사도 '짜가'로 하는데 역사가는 몬할소냐. 

짜가를 면하고 싶어도 그시대에 어디서 뭘 배우나. 독학한것만으로도 그동네 제일가는  

선생일세~~ 

 

아무튼, 영화와 소설, 거의 같은 분위기이다. 그러나 소설을 읽고 영화를 다시보니 

한장면 한장면이 다 새롭다.  

펠라기아와 안토니오의 해후가 조금 다를뿐. ㅋㅋ  

영화가 펠라기아의 아름다움을 그대로한 채 끝났다면 소설은 좀 코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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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리시 페이션트
마이클 온다치 지음, 박현주 옮김 / 그책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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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못했는데 원작이 있었다. 

그것도 유수의 문학상을 탄... 마이클 온다치 그 이름 기억해야 겠다.^^

영화도 훌륭하지만 원작은 원작대로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특히 지뢰제거 임무를 맡은 한나의 연인 '킵'의 경우  

영국인 환자 알마시 보다 지면 비중이 높아 보였다. 하도 냉철하고 이성적이라 더 그랬나.ㅋㅋ

 

인도인으로서의 그의 자의식도 매력적.  

후쿠시마 원전폭발이 현재형이 아니었다면 과거사로 읽혔을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에 대한 그의 분노가, 현재형으로 읽혔다. 

 

히로시마, 나가사키가 만약 유럽이었다면 감히 원폭을 투하할수 있었겠냐고  

절규하는 모습이 인상적.  

각기 주인공들의 심리 묘사도 탁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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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1-03-31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정말 좋았는데, 원작이 더 좋다는 말은 들었어요.
일전에 담아두고는 아직...ㅎㅎ
폭설님 읽으셨군요. 꼭 읽어봐야겠어요.

폭설 2011-04-01 15:32   좋아요 0 | URL
책 내용에 비해 책 표지가 넘 후지다는 생각이...ㅋㅋ^^

방금 유명강사가 온다고 해서 얼굴이나 한번 보자해서 갔다왔는데
1시간 강사 연설하고 가고 나머지 1시간 반은 상조회사 홍보를 하더군요.

얼마나 말을 잘하는지 어~하는 사이에 다 말려들겠더군요.
청중을 쥐었다 놓았다.ㅋㅋ
실지로 100여명 모였는데 상당수가 혹하는 것 같았어요.
저는 저같은 사람도 있어야지 싶어서

주는 선물 안받고 왔어요. 같이간 사람은 통 이해 못했지만 그깟우산
없어도 살거든요. 안받는 사람도 있어야 되지 않겠어요. 호호호.
왠지 우산하나지만 영혼을 파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아무튼,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일전에 <시사인>에서 할머니들이 (가짜)홍삼 100만원어치 살수 밖에 없는 그들의 노하우를 읽고 간것도 도움이 됐어요.^^

현장에서 그들의 수법을 확인하는 재미를 느꼈다고나....^^ 하여간 프레님도 그런기회 있으면 속지 마세요.^^

blanca 2011-03-31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소설 읽고 너무 아름다워서 가슴이 멎는 줄 알았어요. 정말 모든 것을 아우르는 작품이지요.

폭설 2011-04-01 15:39   좋아요 0 | URL
그래요. 저도 처음엔 시점이동이 두서 없어서 이상한 소설이다
생각했는데 읽다보니 그게 또 매력이더군요.
특히 마지막 페이지는 더하고요.^^

잉글리시....에서 캐더린이 알마시를 후려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원작을 보니 그런 심리였더군요.ㅋㅋ
오늘은 날씨가 무척 따뜻하군요.^^
좋은 봄날 맞으세요.^^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 내 몸을 바꾸는 에로스혁명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6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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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깨를 볶고 있는 신혼의 조카 중 하나가 결혼 전 이런저런 연애상담을 해 와서 요즘 젊은이들의 연애 풍속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조카는 이따금 친구의 소개팅 얘기를 하면서 많이 부러워하였다. 사연인즉, 조카의 친구들은 소개팅 남자들로부터 물량공세를 많이 받는데 조카는 그것이 외면하려해도 자꾸 부러워진다는 것이었다.

“내 친구 아무개는 지난번 소개팅 남자에게서 18k 목걸이를 받았는데 또 다른 아무개의 남자는 명품가방을 사주는 것 있지? 안 부러워하고 싶은데 자꾸 부러워져. 비교되고....”

“이해가 안가네. 목걸이나 가방을 주는 사람도 그렇고 받는 사람도 그렇네.”

“능력되고, 또, 주는데 어떻게 안 받아?”

“장래를 약속하게 되어도 앞일을 모르니 고가라면 받아서 안 되는데 우리서로 좀 탐색 해 보자에서 그런 선물 받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해.”

결과는.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물어보면 물론 예상대로였다. 목걸이 준 남자 만난 아무개도 명품 가방의 아무개도 몇 번의 만남 후 서로가 별 아쉬움 없이 만남을 종료했다고 하였다.

“그렇게 빨리 헤어졌다면 선물은 돌려줘야 되는 것 아냐? 계속 하기도 뭐하잖아?”

“돌려주면 또 누가 써. 그냥 받은 사람이 쓰는 거지. ㅋㅋ”

이게 바로 세대차이인지 난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슨무슨 날들이 많아지는 것도 적응 안 되는데 가만 보니 요즘 젊은이들은 사귐의 시간이 쌓일수록 선물의 정도도 세어지는 것 같았다. 선물의 가격은 사랑의 정도를 측정하는 요소가 되기도 하고. 친구들 사이에 ‘100일 기념 선물로 너는 그런 것 받았나, 나는 이런 것 받았다’ 은근히 경쟁심리가 있기도 하고. 

소비의 덫에 빠지는 사랑, 경계를

그런 의미에서 고전평론가 고미숙의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에로스>(도서출판 그린비)는 이 시대 필수 연애 지침서가 아닐까 싶다. 무척 유쾌하면서 영양가 있다. 지금 연애중인 남녀노소 모두에 꼭 필요한 비타민제다. 

위의 예의 경우 처방은 간단하다. 저자는 ‘상품을 주고받는 식으로 사랑을 확인하지 말라’고 하였다. 소비를 통해서 사랑을 확인하려하지 말고 공부를 하라고. 상품으로 상대의 환심을 사려하지 말고 몸을 써야 한다고 했다. 

자전거 타고, 산에 오르고, 걷고, 얘기하고, 공부하고.... 소비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데이트는 찾아보면 무지 많다. 무엇보다 옆에 있는 연인이 최고의 선물인데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랴. 좋은 사람과 걸으면 길가의 풀 한 가닥, 들꽃 한 무리도 나를 축복하는 듯 도취 되게 하는 게 사랑의 선물이 아닌가 말이다.     

그러고 보니 장안에 화제를 뿌렸던 개그콘서트 ‘남보원’의 하소연도 결국 사랑이 소비의 덫에 걸린 경우를 희화한 것이라 하겠다. 당연한 말이지만 자본주의 상품으로는 사랑을 살수 없다. 남는 것은 결국 카드빚이거나 유행지난 후줄근해진 물건들뿐이다. 마음이 떠났는데 물건이 예쁠 리 있나. 남자의 경우 고가의 선물에 반색하는 여친을 조심하고 여친 역시 물질로 사랑을 표현하는 남친을 경계할지니. 

소비를 배제하고 ‘사랑하라, 두려움 없이.’ 저자 본인은 '독거노인(좀 나이든 비혼에 대한 저자의 표현)'이면서 '사랑하라, 두려움 없이 ' 마구 공수표 날린다. 두려움 없이 사랑하면 결과에 책임 질꺼유? 그 책임질 일이 두려운지 '설'이 책 한권이네. 뭐, 독자가 저자의 말을 100% 이해한다면 저자가 책임질 일은 없을 듯하다. 

요는, 두려움 없이 사랑하되, 조건이 있네. 뭘 알고 사랑을 하라. 모르면 공부 좀 하고 사랑을 하라. 사랑을 하려거든 무조건 공부를 해야 된다 이 말씀. 왜 사랑하는 순간부터 책을 읽어야 되는지 첫 장부터 끝장까지 구구절절 설파하는데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청소년들이 읽으면 좀 헷갈릴 것도 같다.^^ ‘몸이 없는 사랑은 공허하고 몸만 있는 사랑은 허무하고....’ 그러니 어떡하란 말인지. 진도를 어디 까정 나가야 되는지요? 그에 대한 답 역시 모르겠으면 알 때까지 공부하세요?ㅋㅋ

내 몸이 편안해 하는 사랑을 하라
 

그러나 공부를 너무하다보면 ‘행위로서의 연애는 없고’ ‘연애담론’에만 통달해도 난감하긴 마찬가지. 때문에 무엇보다 ‘자신의 몸과 정직한 대화를 하라’고 저자는 말한다. 어떤 이와 사랑에 빠졌을 때 자신의 몸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세세히 관찰해 보라고.

<자신의 몸이 어떤 정서적 감응을 연출하는지를 면밀하게 관찰해야 한다. 몸의 흐름과 진동, 고양과 추락, 희노애락의 파노라마 등등. 또 사랑의 과정에서 마주치게 되는 마음의 굴곡과 마디들도 알아챌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지금 내가 사랑을 하고 있는 중인데 변비와 두통, 옆구리 쑤심, 스트레스 등에 시달린다면 , 그건 좀 곤란하다. 그에 더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불안감에 시달린다면, 그 연애는 당장 멈춰야 한다. 몸이 ‘상대를 잘못 골랐다. 이 사랑은 위험하다’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본문 155쪽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는데 그냥 생각만 해도 웃음이 지어지고 룰루랄라 입에서 저절로 노랫가락이 흘러나온다면, 그것은 몸이 그 사랑을 긍정하는 것일 것이다. 반면, 사랑에 빠지긴 했는데 왠지 불안하고 그(그녀)가 날 버리고 떠날까 두렵고 걱정되고 더 괴로워진다면 스톱! 상대에 이끌려 사랑을 시작해서는 안 될 것이다. 

흔히 누군가를 좋아하면 밥이 안 넘어 가고, 살이 빠지는 게 당연하고, 불안한 게 당연하다 생각 할 수 있겠으나 그것은 오산이라는 말씀. 그것은 어쩌면 사랑은 사랑인데 감당 못 할 사랑이 아닐까. 이럴 경우 짝사랑이 차선? 짝사랑은 내 마음속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몰라요. 짝사랑을 하면서 저자의 말대로 공부를 한다면 자신도 모르게 당당해져서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을까. 불안감은 결국 내가 딸리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는지.

아무튼, 예나 지금이나 늙으나 젊으나 이 사랑과 연애와, 결혼의 문제는 참 정답도 없고 사람마다 답이 다 다르니 난감하다 하겠다. 남녀의 마음이 얄궂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를 싫어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싫고 다들 이상향은 하늘 높은 줄 모르는데 자신의 현실은 부박하기 그지없고.... 뭣이라, 그렇기 때문이야 말로 더더욱 자신을 고양시켜 향기로운 사람이 되라굽쇼?!

평균수명만 길어진 게 아니라 사랑의 감정도 길어진 것 같다. 옛날이라면 환갑 넘어 사랑타령하면 남세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영화 <그대를 사랑 합니다>가 보여주듯 노년의 사랑은 어쩜 노후 보험 중 최고의 상품이 아닐까싶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스스로는 물론 상대도 파괴하는 알고 보면 욕망인 그런 사랑 말고, 그 누구에게도 해를 주지 않는 아름다운 사랑을 위하여 공부해야 할 사람은 비단 젊은이만은 아니리. 나는 물론 상대도 고양시켜주는 사랑이야말로 최고의 가치이리. 이 책은 그에 대한 충실한 안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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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호모 쿵푸스 실사판 : 다른 십대의 탄생] 공부는 셀프!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4-06 17:13 
    ─ 공부의 달인 고미숙에게 다른 십대 김해완이 배운 것 공부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 몸으로 하는 공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적절한 계기(혹은 압력?)를 주시곤 한다.공부가 취미이자 특기이고(말이 되나 싶죠잉?), ‘달인’을 호로 쓰시는(공부의 달인, 사랑과 연애의 달인♡, 돈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부해서 남 주자”고.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근대적 지식은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만을 앎의 영역으로 국한함으로써 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