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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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표지와 제목을 보아서는 이 책 안의 내용이 가늠되지 않았다. 남자의 자리라, 어떠한 남자를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한 아무런 힌트도 없이 여자의 얼굴 뒤에 자리 잡은 책의 표지에는 나무 의자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주인공이 앉아 있었을 그 의자 뒤로 한 남자의 인생이 펼쳐지게 된다.

나는 아니 에르노라는 작가를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나보았다. 내가 태어난 해 르노도상을 수상했다는 그녀는 소설이라는 틀 안에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회고적인 기록을 모아 이 책을 만들었다. 아마도 그 의자는 그녀의 아버지의 자리였을 것이다. 아버지라는 단어보다 라는 단어로 담담하게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고백해 나가는 그녀의 이야기에서 나는 그녀의 아버지가 아니라 나의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설명해 봐야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버지와 그의 삶에 대해. 그리고 소녀 시절에 그와 나 사이에 찾아온 그 거리에 대해 말하고, 쓰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계층 간의 거리, 하지만 무어라 이름 붙이기 힘든 특별한 거리였다. 헤어진 사랑의 그것처럼 말이다. –본문

끝났어이 한 마디로 시작된 소설은 이 말로 다시 끝을 맺는다. 한 인간의 생이 시작하여 끝날 때까지. 한 남자의 아들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한 생을 살다간 그의 이야기가 딸인 그녀의 기억에 의해 재조명된다. 억지로 슬프게 혹은 화려하게 꾸미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를 전달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그녀의 용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러내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들을 담백하게 이어나가면서도 그녀는 이 소설이 너무나도 빨리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것에 대해 이토록 빠르게 그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워했다. 무뚝뚝한 아버지를 닮아 글에서 마저 여실히 그의 딸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녀의 문체는 그래서 더욱 슬프게 느껴졌다.

아버지와 나와는 30년이란 간극이 존재한다. 그의 인생은 이미 30년 전부터 시작하고 있었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의 인생은 내가 다섯 살이 넘어가는 시점 이후부터이다. 그러므로 내가 가지고 있는 그의 잃어버린 35년은 오롯이 그가 나에게 알려준 내용대로 구성한 나의 머리 속에서 재구성한 것들이다. 35년의 시간을 단 10여분 정도의 시간으로 그는 자신의 인생을 설명해 주었고 나는 그것으로 그의 젊은 시절을 이해해보려 했지만 사실 현재와 너무나도 다른 그의 세상은 흑백사진에나 등장할 만한 사건처럼 느껴졌다.

10대의 어린 나이에 그는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고 했다. 그리고 나의 어머니를 만나 작은 제과점으로 시작하여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 치며 지금까지 왔다. 내가 태어난 이후에 나의 세계에서는 밥을 굶거나 전쟁을 경험하거나 하는 일들은 없었기에 어느 정도 누릴 것을 누리는, 부족함 없는 삶을 살수 있었으나 그것은 모두 나의 부모의 주름과 굳은 살과 맞바꾼 것이었다.

그녀의 부모 역시 그러했다. 그들이 아름다움, 한 줄의 글로 가슴 설레여 하는 것들에 대해 모르는 것이 아니었으나 무엇보다도 먹고 사는 것이 중요했다. 자신들의 가게를 열고 나서도 원금조차 회수하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긍긍하며 손님들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갈 때마다 초조해했으며 자신들이 지금까지 지켜온 자리가 물거품으로 사그라질 수 있다는 것을 두려워했다.

방들은 어두컴컴해 대낮에도 전깃불이 필요했으며, 그야말로 손바닥만 한 넓이의 안뜰에 있는 화장실에서 나오는 것들은 그대로 강으로 방출되었다. 그들이 외관에 무심한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무엇보다도 먹고사는 게 중요했던 것이다. –본문

자신의 열등함을 드러내지 않고 딸에게 혹시라도 피해가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는 자신의 무지함은 숨기며 딸은 그러한 삶을 살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가 가진 지식이 그녀에게 담기기를 소망했다. 어느 날인가 자신을 뛰어 넘어 앞으로 나아가는 자신의 딸을 보면서 그는 조용히 그녀의 삶이 자신과 달라야 한다는 것이 자명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글짓기에서 칭찬을 받아 올 때마다, 그리고 나중에는 시험에 합격하고 상을 받아 올 때마다, 딸이 자신보다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느꼈던 것이다. –본문

공부는 좋은 신분을 얻고, 직공과 결혼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고통이었다. –본문

나의 아버지 역시 딸들에게 자신이 못다한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기를 주었다는 사실에, 그리고 당신이 가지 못한 길을 자신의 분신이 가고 있다는 행복에 수 백 만원의 등록금 고지서가 날아오는 그 날을 내심 자랑스러워하셨다. 언젠가 장학금 덕에 고지서의 금액이 2만원 남짓으로 날아든 봉투를 들고 은행으로 향하던 날 보단 원래의 등록금을 내러 가는 그의 뒷모습이 내겐 더 없이 가벼운 발걸음과 당당함으로 각인되어 남아 있다. 대학을 다닌 다는 것에 대해, 그만큼을 가치를 지불하고서 얻는 것이 어쩌면 타당하다고 느꼈을 지도 모르겠다. 단 한 문장의 영어 문장을 내뱉은 딸을 보면서 흐뭇해하고 그 순간의 찰나를 위해 매일 새벽처럼 일을 하신 아버지는 내게 당신의 행복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전달해 준 적은 없었지만 함께 해온 시간 속에서 자연스레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성장해 갈수록 점점 늙어가고 있었으며 그녀는 이제 그를 뛰어넘게 되었다.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게 된 부녀는 서로를 이해하면서도 거리는 실제 그들의 거리는 멀어져만 갔다. 그녀가 새로이 알게 된 세상을 아버지에게 전달하려 했던 그 이전의 노력의 시간들도 추억이란 글자에 묻어지고 어느 새 이전의 그가 아닌 나약해진 한 남자만이 남아있다.

만일 바캉스를 보내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를 비난했다면 내 자신이 부끄러웠겠지만, 그의 상스런 방식들을 고쳐 주려 하는 행동은 정당하다고 확신했다. 어쩌면 그는 다른 말을 갖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그는 이렇게 말했다. [헤어나 음악은 너한테나 좋은 거다. 난 살아가는 데 그런 거 필요없다] –본문

이제 나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어 라고 쓸쓸히 말하는 그를 보며 눈가에 눈물이 핑 맴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갖기 위해 몸부림 쳤다기 보다는 살기 위해,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 투철히 던져진 그의 몸이 이제 그가 원하는 대로 더 이상 움직여 주지 않는다. 묵묵하고 별 다른 표정 변화 없이 살아온 그를 제대로 알 시간도 없이, 아니 알고자 하는 노력도 제대로 못해보았는데 어느 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나는 그를 통해서 그의 세계를 살고 그의 삶을 기반으로 나는 도약을 한다. 무심한 듯 지나간 그의 자리를 이제서야 돌아본다. 나는 그가 영원히 강한 남자의 모습으로 살기를 바랐다. 나에게는 무서우면서도 엄한 당당한 그의 모습으로 남기만을 기원하지만 어느 새 그에게도 세월이라는 흔적이 그에게 풍화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그의 얼굴에는 주름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의 자리에만은 그림자가 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직 알고 싶고 알아야 하는 것들이 많기에 나의 아버지와 나 사이에 흐르는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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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 전세계가 주목한 코넬대학교의 "인류 유산 프로젝트"
칼 필레머 지음, 박여진 옮김 / 토네이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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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80년의 시간이 나에게 허용되어 있다면 나는 그 중 1/3의 시간을 넘게 걸어왔다. 지금까지의 시간을 돌아보면 나는 나의 의지대로 오기 보다는 이미 그려져 있는 길을 따라 걸어온 것들이 태반이며 그나마 나에게 주어진 선택의 길목 앞에서 우왕좌왕하며 시간을 허비하기 일쑤였다. 아직 가보지 않았던 길이기에 두려웠고 그래서 때론 타로나 점괘에 따라 혹은 타인의 말에 그 선택을 미루기도 했었다. 현재의 결과가 실패로 다다르더라 하더라도 나는 나의 실패가 아니라 타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현황으로 책임을 전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를 남겨두고 싶었던 것이다.

노인, 그들을 나이 가 든 늙은 사람으로 칭하기엔 그들이 담고 있는 힘을 너무 경시하는 처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지내온, 견뎌온 세월 속에 고스란히 축척 된 시간의 탑과 지혜를 찬미하기에 저자는 그들은 현자라 부른다.

노인들은 다른 연령대 사람들에게는 없는 지혜의 원천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살았고 젊은 사람들은 가보지 않은 곳을 가보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첨단기기 작동법을 누구보다 빨리 습득하거나 은행 창구를 이용하는 것보다 자동인출기를 더 편안하게 여기거나 최신 예능 프로그램을 훤히 꿰뚫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삶의 경험만큼은 어마어마하다. 기나긴 인생의 대부분을 산 그들은 삶에 있어 무엇이 효과가 있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를 정확히 판단한다. –본문

사실 나는 내가 할머니가 될 거이란 그 자명한 진리가 아직까지 와 닿지 않는다. 10대의 그 급박했던 시간을 흘러 30대의 문턱으로 오는 동안, 서른 살이란 숫자가 내 인생에 드리울 것도 버거웠던 만큼 노년의 나는 아직 내겐 미지의 세계이고 오지 않은 것만 같은 내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인간에게 가장 낯설고 두려운 경험. 그것은 나이가 든다는 것으로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피해가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머리가 히끗하게 변하고 얼굴에는 윤기보다는 검버섯과 주름이 가득한. 그 때의 나를 상상하기도 받아들이기도 힘든 나에게 이미 그 곳에 당도해 있는 그들은 이야기한다. 생각보다 훨씬 괜찮고 상상했던 것 보다는 더 즐겁고 행복하다고. 그러니 미리 걱정하지 말고 지금의 나를 위해 펼쳐진 시간을 즐기라고 말이다.

80대에 접어든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나이가 많다고 해서 나이 들고 노쇠하다고 생각하지도 말고 무덤이나 영안실로 가는 중이라고도 생각하지 말라는 거야. 그보다는 훨씬 괜찮으니까. 아직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 세상에는 많아. 관심을 가질 만한 일들, 기쁨을 안겨다 줄 일들이. 우리는 지금 길의 끝에 서 있는 게 아니야.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 있는 거지. –본문

1000여명이 넘는 노인들을 통해 얻어낸 8만년이란 삶 속에서의 지혜, 3만년의 결혼 생활이 나에게 아낌없는 삶 속 요추를 진하게 전해주고 있다. 그 안에서 지금 나에게 가장 어려우면서도 피할 수 없는 부분인 결혼에 대한 문제는 너무나도 깊은 울림으로 전달되었다.

내가 가족과 살아온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할 나의 반려자가 될 사람을 만나 결혼이란 관문을 통과하려 한다. 그 누가 떠밀거나 강요하진 않지만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나 나의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 때가 왔음을 직감으로 알고 있다. 서른이란 숫자가 주는 자명종이 아니라 내 안에서 울리는 시계의 초침이 요동치고 있음에 현재의 나는 두려우면서도 지금의 나의 시간에 집중해야만 한다. 결혼을 한 사람들이 말하기를 나의 반려자가 될 사람이 눈 앞에 나타나면 직감적으로 알게 된다고 한다. ‘그냥 알 수 있어. 그 순간이 되면 너도 알게 될 거야.’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알 게 되고 이해 됐던 일처럼 만약 그 타이밍을 정확하게 알 게 된다는 확신만 있다면 이렇게 초조하고 불안하지도 않을 것이다. 정말 경험자들이 말하는 그 순간 내 귓가에 종소리라도 울려 퍼지는 영화 속의 한 장면이 재연될 수만 있다면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도 있을 것도 같다. 그 누가 나에게 당신의 반려자는 누구 입니다 라고 알려줄 수 있겠는가. 현자인 그들은 나에게 객관식 마냥 답을 알려주기 보다는 그 곳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제시해 주고 있었다.

낭만과 사랑은 다른 거야. 경험이 가르쳐주지. 내가 봐온 바로는 낭만적인 사랑만으로는 결혼생활을 제대로 하기에 부족해. 결혼 생활을 시작하면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들은 신기루에 지나지 않아. 사랑은 결혼생활을 통해서 서서히 자라나고 평생을 거쳐 계속 커지는 것이지. 처음 사랑이 육체적으로 끌리는 감정이었다면 그 다음 사랑은 비슷한 관심사나 활동을 함께 하면서 찾는 즐거움이야. –본문

그들은 아직 내가 가보지 못한 부부, 부모로서의 몇 십 년의 세월을 보내고 그 동안의 자신들이 만들어온 발자취 중 가장 필요한 것들은 스스럼없이 내어주고 있었다. 이미 모든 것을 다 겪어 왔기에 초연하고 담백하게 그들의 삶의 한 조각을 나눠 주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그들도 처음에는 이렇듯 여유롭지 많은 않았을 것이다. 하루하루가 넘기 힘든 오늘이었을 것이고 내일의 그림자가 두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을지도 모른다. 이미 지나 왔기에 그 터널은 어둡고 막막한 것이 아닌 진주로 거듭날 수 있었을 것이다. 단지 한 권의 책으로 나는 몇 만년이란 시간 속의 양분을 양껏 흡수한 기분이다. 그들이 평생토록 일궈온 인생의 밭에서 나는 아름드리 자란 과실을 얻어왔다. 그들이 있었기에 나는 너무도 쉽게 이 가르침을 얻은 것이리라. 그들이 알고 있는 것들을 이제 나도 알게 되었다는 그 사실이 너무나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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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로 보는 한국 현대미술
박영택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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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명의 작품이 들어있는 이 책은 제목만큼이나 실제로도 꽤나 묵직했다. 책의 단면을 보아도 알록달록한 것이 많은 그림이 들어있으리라는 짐작을 했었는데 이 한 권만 있으면 그 동안 등한시 했던 한국의 현대 미술에 대해 어느 정도 섭렵할 수 있을 거란 소망에 부풀어 읽기 시작했다.

이전에 영화 평론가들의 글을 읽으면서도 같은 영화를 보고도 나와는 첨예하게 대립되거나 상이한 견해를 가지고 바라보는 그들의 글을 읽을 때면 과연 그들과 내가 같은 작품을 본 것일까? 란 의문이 들곤 했었다. 그 때는 그래도 보고 생각한다라는 과정이 있었다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보고 흡수한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듯 하다. 미술 평론가의 해설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며 이해하려 했지만 사실 이 과정이 생각처럼 쉽지 많은 않았다. 하나의 작품 안에 저자는 너무나도 깊이 있게 꿰뚫어보고 있었지만 나는 그저 작품과 해설 사이에서 맴돌고만 있었다.


박승예의 작품을 처음 보는 순간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에 소름이 돋았다. 괴기스러운 표정으로 종이를 투과하여 나를 보고 있는 듯한 이 장면은 책을 덮고 나서도 한 동안 뇌리에 남아 잊혀지지 않았다. 이 작품은 볼펜으로 그린 것으로 작가 자신을 얼굴을 모델로 하여 그린 것이라고 한다. 볼펜을 스프링처럼 원형의 선들로 만든 것으로 나는 낙서할 때 종이에 무한이 그리던 이 방법으로 이러한 작품이 완성이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작가가 이 그림에 담고자 하는 내용은 내 안에 자리 자고 있는 또 다른 나를 가감 없이 나타내고자 했단다. 하나의 표정 아래 자리 잡고 있는 인간의 추악한 욕망들이 드러낼 까봐 억압하고 있지만 실제 우리 모두는 이러한 모습을 감추고 있다. 내 안의 괴물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에, 드러내지 않으려 온 힘을 다해 누르고 있는 모습이 나의 두 눈 앞에서 드러나 있기에 그래서 이 그림 앞에서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관객에게 무척 친절한 그림이라 평하고 있는 이 그림은 실로 그러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듯 하다. 작가가 원하는 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언젠가는 그 시대를 풍미했던 치열한 생의 흔적들이 새로움과 편한 것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물결에 휩쓸려 사라지고 있다. 그 안타까운 시간의 기록들을 사진으로나마 남기려 했던 김종엽 작가는 오늘도 달동네로 향한다. 그에게 이 곳의 풍경은 유년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고 자신이 살아온 역사를 다시금 마주치게 하는 파노라마와도 같은 장소이다. 그래,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어느 새 익숙해진 빌딩과 아파트 숲만을 보고 자라온 나는 이들의 삶이 이전 세대들의 보편적인 시간들이란 사실을 생각지도 못했다. 강남 한 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구룡마을을 봤을 때의 느낌들이 살아난다. 도심에서 자리 잡고 생을 이어나가려던 그들의 터전은 미관을 해치고 금싸라기 땅을 놀릴 수 없다는 명목 하에 사라지기를 고대하고 있다. 어느 순간이 되면 이 한 장의 사진으로만 남아있게 되는 날이 곧 도래하겠지.


교복을 입은 소녀는 앳되고 고운 여학생일 것이다. 어깨부터 드러난 그녀의 사진 속에서 나는 손톱에 칠한 매니큐어의 색이 눈에 거슬렸다. 무언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 듯 하면서도 길거리에서는 쉽게 접할 수 있는 네일 아트가 교복과 함께 자리 잡은 모습이 왠지 불편했다. 두발 및 복장 자유가 선언된 지금 학생들에게도 자신을 표현할 자유가 있는 것은 지당하다. 하지만 너무 빠르게 하이힐의 세계로 다가오는 그들이 나는 안타깝기만 하다.

타인의 불안 혹은 불편함을 렌즈에 담으려 하는 오형근 작가는 청소년들의 불안한 정체성이 여성적 정체성으로 연기 되는 것을 꼬집어 이 작품을 내 놓았다고 한다. 10대를 위한 색조 화장품부터 TV만 켜면 여기저기서 등장하는 아이들의 과감한 모습들이 보고 있노라면 자못 씁쓸하게 한다. 교복이라는 보호대 속에 학교라는 제도 안에서 그녀들을 통제하려 하지만 그 이면에 교복은 여성의 관능적 몸매를 드러내기 위해 드러내는 옷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왜 우리 사회에는 그들을 그들 나름대로의 모습이 아닌 여성으로서만 부각시키기 위해 온 힘을 쓰는 것일까? 꽃이 피기 위해서는 봉우리로 지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인내의 시간도 기다리지 못하여 촉진제로 그들이 피어난다면 그 잃어버린 시간은 누가 찾아 줄 수 있을까.

식사하셨어요? 라는 인사에 많은 것이 담겨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에야 다이어트를 위해 밥을 굶는다지만 우리네 조상들에게 밥은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존재였다. 그래서 그들에게 밥 한 공기는 오늘을 살고 내일을 준비하는 원동력이 되어 주는 것이다. 임명숙 작가는 밥 위에 꽃을 피웠다. 하나하나의 밥알을 그리며 그네들이 염원했던 삶을 그리고 그로 인해 생을 마감한 이들을 위로하고 있다. 제사상에 치성을 다해 흰 쌀밥을 올리는 간절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올린 밥은 그 안에 정성과 희생이 담겨 있다. 내가 잊고 있던 밥에 대한 소중함을 이 아름다운 그림으로 그녀는 재창조 한 것이다. 밥 위에 소담스럽게 피어난 꽃. 그녀는 내일을 살기 위해 준비하는 우리를 위해 이 밥상을 준비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고양이가 좋아졌다. 이전에는 별 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만 고양이에 관한 다큐를 보고 나서부터 마음이 끌리기 시작한 듯 하다.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뉘는 고양이란 존재가 그 흑백의 시선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사실 이 그림이 마음에 든 것은 온전히 고양이의 도도한 표정과 자세에 매혹되었기 때문이다. 이경미작가에 의해 재 해석된 이 그림은 안에는 수 많은 알레고리로 엮어져 있었다. 복잡하고 정신 없이 흘러가는 일상에 혼자 우두커니 서있는 자신을, 겉에서 보기에는 유연하게 자리 잡고 있는 듯 하지만 내면에서는 아직미 성숙된 인물을 고양이에 빗대어 그려내고 있다. 하나의 작품에 이렇게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니. 아마 저자의 해석이 없었다면 나는 그저 한 마리의 고양이에만 빠져서 나머지 부분은 버려졌을 것이다.












평론가인 저자의 시각에서는 명쾌하게 이해되는 것들이 내겐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 상당했다. 전문가의 시선을 한 번에 이해할 수 있을 거란 생각 자체가 오만이었을 게다. 책을 보는 동안에 그 작품의 기반 내용이나 그 작가의 성향을 파악한 뒤에도 좋은 작품은 좋고 별로 마음이 가지 않는 작품은 여전히 미진하게 느껴졌다. 나에게는 그저 스쳐지나 가는 것들을 그들은 찰나의 순간에 그것을 잡아내고 하나의 작품으로 남긴다. 다 이해 할 수는 없다지만 한정된 틀 안에서 이것만이 미술이다! 란 벽을 산산이 부서뜨려 준 책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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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끼, 50cc 스쿠터로 유라시아를 횡단하다
권준오 글 사진 / 문학세계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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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자마자 사진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여행에 관한 책자를 보면 어느새 습관처럼 굳어진 것으로 그 안의 사진들을 통해 이 여행의 발자취에 더욱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표지 속의 주인공은 이 유라시아를 횡단한 장본인으로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사람처럼 변화하는 듯이 느껴졌다. 그 공간 안에 딱 맞게 맞추어 변신하는 듯한 그를 보면서 젊은 나이에 이런 패기와 열정만으로 여행을 할 수 있는 그가 부럽기도 하면서도 시샘의 대상이 된 것도 사실이었다.

 

 스쿠터로 여행을 떠난 다는 것을 보며 그래도 일반 배낭 여행보다는 좀 더 수월하겠지 그리고 왠지 그에게는 금전적인 구속이 없이 이 젊은 나이에 훌쩍 떠났다는 사실에 배알이 뒤틀리기도 한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는 떠나기에는 힘든 여건 속에서 자신을 다독이며 이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으며 책의 마지막을 읽고 났을 때는 나는 달려가서 그의 어깨라도 다독여 주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항상 밝게 웃고만 있어 인식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그 아름다운 풍경들을 보며 그의 힘든 상황들을 하나의 에피소드로만 치부한 것인지 모르겠다. 여하튼, 그는 이 여행을 통해서 성장했을 것이고 나는 그의 여행을 통해서 인생을 다시금 배운 느낌이다.



언제 이렇게 파란 하늘을 마음껏 봤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비몽사몽하며 회사로 출근하여 점심시간에도 시간 내에 이동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하늘을 한 번 쳐다보는 일 조차도 쉽지가 않다. 책을 펼치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그의 여행이 벌써부터 부러워졌다. 나침반과 지도 한 장 달랑 들고서 스쿠터를 타고 홀로 떠나는 여행. 28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혼자 국내 여행을 떠나면서도 시간 단위로 계획을 세우고 떠나기 몇 주 전부터 철저하게 계획했던 내 모습과는 너무 달랐다. 지인의 말처럼 나는 여행이 아니라 극기훈련과 같이 철저히 정해진 틀 속에서만 움직였다면 그는 전반적인 큰 틀 안에서 무한히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새벽부터 자정이 될 때까지 그는 근 2년동안 쉼 없이 이 여행을 준비하기 위해 일을 했다고 한다. 대학생 때 유럽 여행가는 친구들을 보며 마냥 부러워만 하면서도 실제 그 곳으로 가기 위해 아무런 노력은 하지 않고 동경하던 나는 그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그에게 너무나도 달콤하고 아름다운 풍경들이 펼쳐지기에 그 간의 땀방울이 이렇게 그를 위로해 주는 듯 했다. 뜻하지 않게 여기 저기서 만나게 되는 따스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보면서 그가 가는 곳 어디에도 사람이 살고 있는 정겨움이 느껴졌다.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아도 바디랭귀지로도 이미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처음 본 사람들에게도 선뜻 손을 내밀 수 있는 그들의 보며 그 간의 여행에서 나는 너무 마음을 닫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사진 속의 그들은 너무나도 여유로워 보였다. 매일은 아둥바둥하며 살고 있는 나에게는 볼 수 없는 그 한산하지만 쓸쓸하지 않고 유쾌한 느낌이었다. 우리나라도 충분히 아름답고 절경이 많다고는 하지만 나의 일상에서는 그러한 여유를 만끽할 만한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 사진 속에 웃고 있는 그들의 일상이 내겐 너무나도 갖고 싶은 하루라는 것을 알고는 있을까? 그들에겐 이미 평범한 하루이기에 별 다른 감흥 없이 지내고 있는 것일까? 사진을 보는 내내 궁금해졌다. 그리고 정말 미친 척 떠나고 싶어졌다.


터키의 중부에 있는 카파도키아. 이 곳은 만화 스머프와 영화 스타워즈의 배경이 된 곳이라고 한다. 사실 이 책을 통해서 이러한 곳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자연이 만들어 낸 곳이라 하기에는 그 형태며 크기가 너무나도 웅대하고 장관을 이루었으며 버섯 모양 같기도 한 것들이 풍화작용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라니. 시간과 자연의 힘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가 이곳에서 만난 터키인과의 토론도 인상 깊었는데 이슬람 문화에 대한 견해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핏빛 전쟁을 일으키고 남녀차별의 근원이 되고 있는 이슬람 문화는 터키를 이 만큼 성장시킨 성장 동력이기도 하단다. 아이러니한 그 현상을 나름대로 꿰뚫어 보고자 하는 그 시간 속에 함께 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두바이하면 7성급 호텔이 떠오른다. 고급스런 휴양지와 평온한 그림들만 상상했었는데 그 안에는 또 다른 삶이 존재하고 있었다. 온 몸이 타 들어 가는 듯한 뜨거운 열기 속에 건물과 건물은 내부의 연결 통로로 이어져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원한 공기 위를 사뿐히 거닐고 있다.  그 창 너머로 인근의 가난한 나라의 노동자들이 이 시스템들은 계속 거미줄마냥 연결하고 있었는데, 전형적인 빈익빈 부익부의 현장이었다. 자본주의의 논리 아래 당연한 그림이라 하기엔 뭔가 씁쓸함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그가 갔던 곳 중에서 유일하게 내가 가본 곳이어서 그런지 인도가 가장 기억에 남기는 하다. 아니면 그에게 가장 슬픈 도시였기에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시작과 끝,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갠지스 강에 다다랐을 때 그곳은 그들의 삶터이자 놀이터였다. 산 사람에게 갠지스 강은 성스러운 강으로서 이 강물에 목욕을 하면 모든 죄를 면할 수 있었고, 죽은 자들에게는 이 강물에 뼛가루를 흘려 보내면 극락으로 보내지는 것으로 믿었다.

모든 것이 힘든 상황을 감내하고 떠나온 여행이었지만 그는 이 곳에서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접하게 된다. 더군다나 비자 문제로 삼일장 내에 한국에는 돌아갈 수도 없이 발이 묶인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서 그는 어떠한 생각을 했을까. 중학교 이후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그는 이 곳에서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언젠가 아버지를 찾아가 울겠다고 다짐을 하며 다시 길을 떠난다.


영국에서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그는 다양한 사람들과 수 많은 풍경을 만나는 동안 스쿠터와 함께 출발한 여행에서 배낭 하나만 고스란히 되돌아 오게 된다. 모두들 스펙을 쌓기 위해서, 더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서 고군분투할 때 그는 혼자 홀연히 떠났다. 공부로서 자기를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한 그들이나 미친 척 혼자 떠나 세상을 누비다 온 그나 누가 더 잘하고 바른 선택을 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그와 같은 기회가 왔어도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수 많은 제약에 발목 잡혀 그냥 오늘을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똘끼가 존경스럽다. 단순히 미치고 허망한 것을 좇는 것이 아닌 자신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이 크게 느껴진다. 나도 언젠가 이런 미친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

 이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있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잃은 것도 많다. 이 여행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고민을 해결해줄 수는 없을지언정 내가 살아가면서 겪을 아픔을 이겨내는 데는 확실히 도움이 될 것 같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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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시간은 갈수록 내 편이다 - 진짜 내 삶을 찾아가는 일곱 여자 분투기
하이힐과 고무장갑 지음 / 아름다운사람들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표지 속 그녀는 뭔가 당당하고 여유로워 보인다. 마흔이라고 하기엔 젊어 보인다지만 마흔의 그녀들에게 보고 싶고 기대하는 바는 이러한 당당하게 그들의 자리를 영위하고 있는 모습일 것이다.

 아직 나에게 마흔이란 숫자는 10년이란 시간이 남아있다. 그 전에 먼저 서른이란 숫자에 익숙해져야 할 터인데 아직까지 낯설기만 한 것이 사실이다. 스무 살 초반만 해도 서른이 되면 무언가 자리 잡혀 있고 멋진 여자가 되어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은 현재의 나로 하여금 두려움과 공허함만을 감싸 자리잡고 있다. 마흔을 앞두고 혹은 그 시간 속에 있는 그녀들에게서 나는 지금의 혼란을 떨쳐버리고 재도약 할 수 있는 힘을 고대했는지도 모르겠다.

 마흔이 도둑고양이처럼 조용히 그리고 갑작스럽게, 내 앞에 다가왔다. 전문성과 성숙함, 단단한 배포로 무장한 채 흔들림 없는 자기 길을 갈 거라고 믿었던 마흔이란 나이. 하지만 나의 마흔은 달랐다. 스무 살의 어설프고 나약하고 이기적인 모습에선 별로 달라지지 않았고, 젊은 날의 당당함과 무모한 도전 정신은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 어처구니 없는 초라함. –본문

 하이힐과 고무장갑. 20대에겐 하이힐을 신고 달릴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시간들이라면 40대언저리인 그녀들에게는 하이힐에 고무장갑이 추가되었다. 도통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묘한 조합을 그녀들은 충실히 각 아이템들을 소화해내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들의 역할은 점점 더 늘어난다. 가정에서는 엄마로서, 부인으로서 혹은 미혼일 경우에는 딸로서 그녀들은 자신의 나이가 주는 중압감과 현실에서 요구하는 바람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들을 끊임없이 독촉해야만 한다.

마흔인 그들에게 생물학적인 여자의 의미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사라지고 아줌마라는 존재로만 남아있기 마련이다. 사회에서는 상사에게는 달콤한 부하로서 부하에게는 서번트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며 퇴근하자 마자 엄마로서 제 2의 야근을 해야 하는 그녀들에게 남는 것은 제로섬의 법칙뿐이다. 어느 역할에서나 척척 해 나가는 원더우먼 같은 그녀들을 원한다지만 그들도 사람인지라 매사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기엔 버겁다. 직장과 육아라는 두 개의 추를 두고 마냥 저울질만 할 수 없는 그녀들의 서글픔이 아려온다. 나는 결혼이라는 관문만을 통과하면 무언가 달달한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나 보다.

튀어나온 살들을 큰 옷으로 감추듯 덮어 두고, 모른 척하고 싶었단 중년의 불안과 나이 듦의 서글픔이 어느 날 한 편의 시를 읽으며 낱낱이 내 앞에 드러났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며 중년의 흙바닥 위에 시인이 엎드린 순간 나도 그랬다. ‘물고기 같이 울었다라는 구절 앞에서는 나 역시도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순식간에 나를 덮친 중년의 피곤과 허탈함에 나는, 놀랐다- 본문

세월 속에 숫자가 늘어나고 내 이름이 사라지고 수식어로 대체 된다고 해서 여자로서의 삶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랑에 대한 기대와 설렘의 순간이 아득하지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그 마음들을 끄집어 내어 드러낼 시간이 없을 뿐이다. 여자로서 사랑을 원하지 않는 순간이 있을까 만은 전쟁 같이 빠르게 돌아가는 시간 속에서 사랑에 대해 태무심하게 만들어 버린다.

 가끔 텔레비전 속의 소재로 종종 등장하는 남편의 외도에 대한 그녀들의 견해는 한 번쯤 살다 보면 발생하게 되고 언젠가 그는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는 것이라 한다. 사실 나는 아직도 이 부분에 대해 이해가 되질 않는다. 무던하게 기다리고 있는 혹은 그저 마음을 놓고 있는 다는 그 시간을 이해하고 싶지도 이해 할 수도 없는데, 글쎄. 연륜의 힘이란 이런 것일까? 그녀들은 묵묵하게도 이 시간을 견뎌왔고 지나왔다. 아직 터널의 입구에도 다다르지 못한 나에겐 아득히도 멀기도 하고 내겐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이지만 과연 내 앞에 이러한 일들이 나타났을 때도 나는 처연하게, 지혜롭게 그 시간을 지나갈 수 있을까?

 내게 다가온 사랑의 세 번째 모습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자유를 인정한다는 것, 특히 그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자유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의 시선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향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분노로 어쩔 줄 모르고 괴로워하던 마음은 나의 소유욕에서 비롯된 것임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그의 사랑을 지켜보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세 번째 모습이다. 이런 사랑은 참 힘들다. 그런데 때로는 그런 사랑을 하게 될 때가 온다. 그때 나는 사랑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가? 그의 사랑을 축복할 순 없지만 말없이 지켜보고 견뎌낼 수는 있을 것 같다. 견뎌냄이 내가 나의 자유를 사랑하듯 그의 자유를 사랑하는 방법이기에. –본문

 아직 가보지 못한 마흔의 그녀들을 보며 나는 미래의 나를 보기 보다는 이미 그 시간을 지나온 엄마의 모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엄마가 마흔이란 그 격정의 시간을 보낼 때 나는 나의 미래만을 걱정하고 있었을 뿐 그 당시 그녀의 시간은 나와는 별개의 것으로 보였다. 부부싸움을 하고 나서도 혹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을 테지만 매번 쳇바퀴 속 일상 속에 엄마는 엄마의 공간이 없었다. 하루 정도 가게를 본다고 외출을 감행하시는 엄마한테 그 하루의 시간을 할애하는 것에 대하 생색을 냈었는지. 단 하루의 외출도 마음 편히 못해보신 엄마를 떠올리며 안식 휴가를 떠난 그녀의 이야기는 비수처럼 다가왔다.

 내 두통의 원인은 좋은 엄마, 좋은 아내, 좋은 며느리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과 긴장이었다는 것을. 그 동안의 나는 완벽하게 내 역할을 소화해내야 내 자존심을 지키는 줄 알았다. 가족 누구에게도 힘들다고, 좀 도와달라고 손 내밀지 않는 동안 내 몸이 먼저 지쳐가고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결혼 안식 휴가, 많은 여자들이 생각은 하고 있지만 선뜻 나서지 못한다. 내가 없으면 우리 애들은 어쩌지? 남편은? 혹시 내가 너무 무책임한 행동을 하려는 것은 아닐까?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대자면 백 가지도 넘는다. 떠나기 좋은 때를 기다린다는 것은 영원히 떠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본문

 시간이 흐를수록 고려해야 하는 문제의 폭이 더 넓어지고 있다. 마흔인 그들이 현재의 나를 보면 뭐든 할 수 있는 나이야, 나도 그 나이만 되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어라고 이야기 할 것이다. 내가 지금 20대 초반의 그녀들에게 말하듯 말이다. 망망대해에 혼자 떠 있는 듯한 불안감이 엄습해 오곤 하지만 그녀들은 그녀 나름대로 멋지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어디든 정답은 없을 게다.

얼굴은 지나온 삶을 오롯이 담는 그릇이라고들 한다. 나의 마흔을 위해 지금부터 나의 일생을 닮을 나만의 잔을 어떠한 형태로 채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들과 많이 다르진 않을 것 같다. 그 무엇도 정해지지 않고 지금과도 별 반 다르지 않을 내가 있을 테지만 나의 마흔이 기다려진다. 바둥거리며 살고 있다곤 하지만 하이힐과 고무장갑이 잘 어울리는 그녀들이 위대해 보이고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  

 뭘 했다라는 결론은 생각하지 마라. ‘내가 하고 있다라는 과정을 즐기다 보면 결국 무엇이 되는 것이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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