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표지와 제목을 보아서는 이 책 안의 내용이 가늠되지 않았다. 남자의 자리라, 어떠한 남자를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한 아무런 힌트도 없이 여자의 얼굴 뒤에 자리 잡은 책의 표지에는 나무 의자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주인공이 앉아 있었을 그 의자 뒤로 한 남자의 인생이 펼쳐지게 된다.

나는 아니 에르노라는 작가를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나보았다. 내가 태어난 해 르노도상을 수상했다는 그녀는 소설이라는 틀 안에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회고적인 기록을 모아 이 책을 만들었다. 아마도 그 의자는 그녀의 아버지의 자리였을 것이다. 아버지라는 단어보다 라는 단어로 담담하게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고백해 나가는 그녀의 이야기에서 나는 그녀의 아버지가 아니라 나의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설명해 봐야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버지와 그의 삶에 대해. 그리고 소녀 시절에 그와 나 사이에 찾아온 그 거리에 대해 말하고, 쓰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계층 간의 거리, 하지만 무어라 이름 붙이기 힘든 특별한 거리였다. 헤어진 사랑의 그것처럼 말이다. –본문

끝났어이 한 마디로 시작된 소설은 이 말로 다시 끝을 맺는다. 한 인간의 생이 시작하여 끝날 때까지. 한 남자의 아들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한 생을 살다간 그의 이야기가 딸인 그녀의 기억에 의해 재조명된다. 억지로 슬프게 혹은 화려하게 꾸미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를 전달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그녀의 용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러내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들을 담백하게 이어나가면서도 그녀는 이 소설이 너무나도 빨리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것에 대해 이토록 빠르게 그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워했다. 무뚝뚝한 아버지를 닮아 글에서 마저 여실히 그의 딸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녀의 문체는 그래서 더욱 슬프게 느껴졌다.

아버지와 나와는 30년이란 간극이 존재한다. 그의 인생은 이미 30년 전부터 시작하고 있었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의 인생은 내가 다섯 살이 넘어가는 시점 이후부터이다. 그러므로 내가 가지고 있는 그의 잃어버린 35년은 오롯이 그가 나에게 알려준 내용대로 구성한 나의 머리 속에서 재구성한 것들이다. 35년의 시간을 단 10여분 정도의 시간으로 그는 자신의 인생을 설명해 주었고 나는 그것으로 그의 젊은 시절을 이해해보려 했지만 사실 현재와 너무나도 다른 그의 세상은 흑백사진에나 등장할 만한 사건처럼 느껴졌다.

10대의 어린 나이에 그는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고 했다. 그리고 나의 어머니를 만나 작은 제과점으로 시작하여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 치며 지금까지 왔다. 내가 태어난 이후에 나의 세계에서는 밥을 굶거나 전쟁을 경험하거나 하는 일들은 없었기에 어느 정도 누릴 것을 누리는, 부족함 없는 삶을 살수 있었으나 그것은 모두 나의 부모의 주름과 굳은 살과 맞바꾼 것이었다.

그녀의 부모 역시 그러했다. 그들이 아름다움, 한 줄의 글로 가슴 설레여 하는 것들에 대해 모르는 것이 아니었으나 무엇보다도 먹고 사는 것이 중요했다. 자신들의 가게를 열고 나서도 원금조차 회수하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긍긍하며 손님들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갈 때마다 초조해했으며 자신들이 지금까지 지켜온 자리가 물거품으로 사그라질 수 있다는 것을 두려워했다.

방들은 어두컴컴해 대낮에도 전깃불이 필요했으며, 그야말로 손바닥만 한 넓이의 안뜰에 있는 화장실에서 나오는 것들은 그대로 강으로 방출되었다. 그들이 외관에 무심한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무엇보다도 먹고사는 게 중요했던 것이다. –본문

자신의 열등함을 드러내지 않고 딸에게 혹시라도 피해가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는 자신의 무지함은 숨기며 딸은 그러한 삶을 살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가 가진 지식이 그녀에게 담기기를 소망했다. 어느 날인가 자신을 뛰어 넘어 앞으로 나아가는 자신의 딸을 보면서 그는 조용히 그녀의 삶이 자신과 달라야 한다는 것이 자명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글짓기에서 칭찬을 받아 올 때마다, 그리고 나중에는 시험에 합격하고 상을 받아 올 때마다, 딸이 자신보다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느꼈던 것이다. –본문

공부는 좋은 신분을 얻고, 직공과 결혼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고통이었다. –본문

나의 아버지 역시 딸들에게 자신이 못다한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기를 주었다는 사실에, 그리고 당신이 가지 못한 길을 자신의 분신이 가고 있다는 행복에 수 백 만원의 등록금 고지서가 날아오는 그 날을 내심 자랑스러워하셨다. 언젠가 장학금 덕에 고지서의 금액이 2만원 남짓으로 날아든 봉투를 들고 은행으로 향하던 날 보단 원래의 등록금을 내러 가는 그의 뒷모습이 내겐 더 없이 가벼운 발걸음과 당당함으로 각인되어 남아 있다. 대학을 다닌 다는 것에 대해, 그만큼을 가치를 지불하고서 얻는 것이 어쩌면 타당하다고 느꼈을 지도 모르겠다. 단 한 문장의 영어 문장을 내뱉은 딸을 보면서 흐뭇해하고 그 순간의 찰나를 위해 매일 새벽처럼 일을 하신 아버지는 내게 당신의 행복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전달해 준 적은 없었지만 함께 해온 시간 속에서 자연스레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성장해 갈수록 점점 늙어가고 있었으며 그녀는 이제 그를 뛰어넘게 되었다.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게 된 부녀는 서로를 이해하면서도 거리는 실제 그들의 거리는 멀어져만 갔다. 그녀가 새로이 알게 된 세상을 아버지에게 전달하려 했던 그 이전의 노력의 시간들도 추억이란 글자에 묻어지고 어느 새 이전의 그가 아닌 나약해진 한 남자만이 남아있다.

만일 바캉스를 보내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를 비난했다면 내 자신이 부끄러웠겠지만, 그의 상스런 방식들을 고쳐 주려 하는 행동은 정당하다고 확신했다. 어쩌면 그는 다른 말을 갖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그는 이렇게 말했다. [헤어나 음악은 너한테나 좋은 거다. 난 살아가는 데 그런 거 필요없다] –본문

이제 나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어 라고 쓸쓸히 말하는 그를 보며 눈가에 눈물이 핑 맴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갖기 위해 몸부림 쳤다기 보다는 살기 위해,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 투철히 던져진 그의 몸이 이제 그가 원하는 대로 더 이상 움직여 주지 않는다. 묵묵하고 별 다른 표정 변화 없이 살아온 그를 제대로 알 시간도 없이, 아니 알고자 하는 노력도 제대로 못해보았는데 어느 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나는 그를 통해서 그의 세계를 살고 그의 삶을 기반으로 나는 도약을 한다. 무심한 듯 지나간 그의 자리를 이제서야 돌아본다. 나는 그가 영원히 강한 남자의 모습으로 살기를 바랐다. 나에게는 무서우면서도 엄한 당당한 그의 모습으로 남기만을 기원하지만 어느 새 그에게도 세월이라는 흔적이 그에게 풍화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그의 얼굴에는 주름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의 자리에만은 그림자가 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직 알고 싶고 알아야 하는 것들이 많기에 나의 아버지와 나 사이에 흐르는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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