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예술가의 초상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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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리책 권두의 여백을 펴고 그 자신이 거기에 써놓았던 것을 읽어보았다. 그것은 자신의 이름과 소재지였다.

 

스티븐 디덜러스

기초반

클롱고우스 우드 학교

샐린스 마을

킬데어 군

아일랜드

유럽

세계

우주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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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예술가의 초상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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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는 미지의 기술에 마음을 쓰고자 한다.
Et ignotas animum dimittit in artes.
-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Ⅷ, 188

(題詞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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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책세상 니체전집 14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정현 옮김 / 책세상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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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내 모든 작품은 일종의 낚싯바늘이다 : 나야말로 낚시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 않겠는가? ……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면,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다. 고기들이 없는 것이다.

 - 니체, 『이 사람을 보라』중에서

 

 * * *

 

니체만큼 사람의 정신을 온통 뒤흔들어 놓는 철학자는 없다. 그가 자신의 책을 읽는 독자들의 머리를 호되게 내리치는 걸 누군가가 느꼈다면, 그 사람으로서는 머리가 제법 아프겠지만 철학자로서는 자신의 의도가 제대로 맞아떨어졌다고 한바탕 너털웃음을 지을 지도 모르겠다. 니체의 책이 여전히 한겨울에 꽁꽁 얼어붙은 얼음처럼 차갑고 매끄럽게만 느껴지고, 심지어 그 얼음이 너무 두껍게 얼어붙어 있어 그 얼음 아래에서 즐겁게 노니는 온갖 물고기들은 언감생심 구경조차 할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그 사람의 한계이지 니체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얼음에 다가가는 사람이 두툼한 방한복과 장갑과 도끼와 심지어 낚시도구까지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를 나무랄 사람은 없다. 어쩌면 그 사람은 '얼음을 깰' 생각을 아예 품지 않고 그저 얼음을 구경하러 다가가는 일도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니까 말이다. 어쩄든 니체는 머리를 제대로 얻어맞을 준비가 된 사람들에겐 '망치를 든 철학자'이고, 그저 썰매라도 한바탕 신나게 타고 싶은 천진난만한 아이들에겐 아무리 단단한 돌멩이를 들고 덤벼들더라도 좀처럼 깨트리기 어려운 두껍고 매끄러운 얼음일 수밖에 없겠다 싶다. 그러나 단단히 각오를 하고 니체에게 다가갈 사람들은 도끼는 물론 물고기를 낚는 방법까지도 미리 얼마쯤 배워둘 필요가 있겠다 싶다. 물론 얼음 아래에 '고기들이 없다면' 문제는 전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니체는 왜 이토록 어려운 책을 써서 사람들이 스스로 제 머리에 망치질을 하는 느낌이 들도록 했을까. 그는 왜 자신의 책이 무려 '2000년경'에야 읽힐 수 있다고 말했을까. 그 문제는 그가 거의 전적으로 '너무나 멀리' 내다본 때문이다. 이 말은 결코 그의 시선이 단지 한 방향으로만 향해 있다고 미리 단정해서 말하는 게 아니다. 실상 그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방향은 거의 없다고 말해도 좋다. 덧보태자면 방향 뿐만 아니라 거리까지도 그렇다고 말해야 옳다. 그의 시선은 까마득한 과거와 머나먼 미래뿐만 아니라 끝모를 심연과 지옥 너머까지도 내다보는 듯하다. 책의 제목조차 '선악의 저편'이니 그의 시야를 제약하는 모든 벽들은 이미 그 책을 쓰기 전부터 '극복될 수밖에 없는' 처지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무시무시한 시야를 갖춘 영혼이 거침없는 속도로 써내려간 힘찬 문장들을 대하면 마치 여러 차례 거듭 세심하게 귀를 기울여야 겨우 들릴까 말까 한 몹시도 낯설고 난해한 음악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어쨌든 '정선된 귀'를 갖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니 말이다.

 

'미래 철학의 서곡'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사실 '오랜 구상'을 거쳐 나온 작품이다. 니체는『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출간한 이후 '다음 단계에 올라서는 자신의 새로운 철학'을 기술하려는 열망을 마침내 실행에 옮길 작정이었다. 그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그는 한동안『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근본적으로 다시 바꾸어 쓰려는 마음도 지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 계획을 포기하고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쓰게 되는데 그게 바로 이 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 담긴 내용들이 모두 한꺼번에, 말하자면 니체가 '네 번째로 질스마리아에 체류하던 시기'에 전부 쓰여진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제4장인 <잠언과 간주곡>은 이미『차라투스트라』가 씌어지기도 전에 미리 쓰여졌다. 어떤 내용들은 소위 '가치전도 시기의 노트'에 쓰여진 단상들이 여럿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대체적으로 보면 이 책은 '가치전도와 새로운 철학의 구상 시기'에 쓴 노트와 단상들을 바탕으로 쓰여졌으며, 이 작품에 뒤이어 곧바로 쓰여진『도덕의 계보』와 함께 '니체의 후기 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책이라고 평가받는다.

 

이 책은 본질적으로 '현대성에 대한 비판'을 다룬 책이다. 문제는 그가 다루는 '현대성'의 범위가 너무나 광범위하다는 점이다. '현대 학문', '현대 예술', '현대 정치', '현대 철학' 모두가 그의 비판 대상이다. 왜 '현대'가 이토록 문제인가. 그가 보기에 '현대'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평범화, 왜소화'에 방향을 잡은 것으로 비춰졌다. 엘리트 중심의 귀족 정치에 반하는 '민주주의'는 그래서 비판을 받는다. 니체는 '문명', '인간화', '진보'라고 부르는 유럽의 민주화 운동의 배경에는 '인간의 퇴화'라는 생리학적 과정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음을 밝힌다. 인간의 평준화와 평범화는 결국 무리동물적인 인간의 형성을 도울 뿐이며, 고귀하면서도 보다 높은 인간 유형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약자와 불우한 자, 병든 자와 고통받는 자에 대한 동정으로 가득 찬 '그리스도교의 도덕' 또한 그가 보기엔 '노예 도덕'에 불과할 뿐이다. 그가 보기엔 강자, 지배하는 자, 가치를 창조하는 자의 도덕, 말하자면 '주인 도덕'이 훨씬 더 고귀하고 추구되어야 할 올바른 방향이다. 그래서 니체는 현대성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바로 '자유정신의 인간'을 육성하는 데서 찾았다. 그는 '미래 철학자'는 '자유 정신'을 지녀야 하며, '진정한 철학자'는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창조하는 입법자이자 자기 명령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진정한 과제는 바로 자신의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며, 이는 선과 악의 저편에서 "가장 대담하고 생명력 넘치며 세계를 긍정하는 인간의 이상"에 눈을 뜨는 데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노예도덕을 강요하는 기독교로 물든 '왜소한 현대적 인간'에서 벗어나 주인도덕을 되찾는 '귀족적 인간', 스스로 가치를 창조할 줄 아는 위버멘쉬적 인간이 되라는 것이다.

 

여기서 그가 찾아낸 하나의 철학적 방법론이 '모든 가치의 전도'이다. 그리스도교 신앙과 도덕이 추구해 온 '선악의 명명법' 자체가 '노예 도덕'을 바탕으로 삼았기 때문에 '인류의 도덕'을 완전히 거꾸로 뒤집어 놓았다는 것이며 이를 비로소 바로 잡을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도덕에 대한 통찰'이 너무나 심오하면서도 거침이 없기 때문에 이 책은 아주 위험한 책으로 돌변한다. 니체 또한 그런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니체는 스위스 작가 비트만이 쓴 이 책의 서평 내용을 주위 사람들에게 편지로 소개하기도 했는데, 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같다. 

 

"고트하르트 기차선로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다이너마이트를 비축하고자 하는 저 차량은 죽음의 위험을 알리는 검은 경고의 깃발을 휘날리고 있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철학자 니체의 책을 위험한 책이라고 부른다"

 

이는 니체 스스로도 이 저서가 기독교 신앙과 도덕에 깊이 물든 서양의 전통적 사유나 형이상학을 거침없이 강타하는 '다이너마이트의 위력을 가진 위험한 책'으로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대변한다. 여기서 비롯된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니체 사후 100주년을 기념하여 2000년 10월에 독일의 어느 박물관에서 있었던 유물 전시회의 제목 또한 "고트하르트 터널은 언제 완성되는가?" 였던 것이다. 니체가 기독교와 서양 전통 형이상학을 상대로 벌인 가혹하리만큼 혹독한 투쟁과 '미래 철학'을 위해 새로운 사유의 길을 내는 지난한 건설 작업이 마치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하며 몹시도 위험하게 진행되었던 백여 년 전의 '고트하르트 터널 공사'와 유사했다는 점과, 이러한 니체의 엄청난 작업이 아마도 2000년경에야 비로소 사람들도부터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겠다는 니체 스스로의 평가를 모두 염두에 두고 저런 멋진 제목이 탄생되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이 작품이 현대 사상 전반에 끼친 엄청나게 놀라운 영향과 그 위상을 충분히 가늠해볼 수 있다.

 

니체는 자신의 친구에게 보내는 어느 편지에서 『선악의 저편』이 "내 『차라투스트라』에 대한 일종의 주석서"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가 한 말은 자신이『차라투스트라』에서 거의 문학적으로 다룬 철학적 주제들이 독자들에게 제대로 충분히 이해되지 못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가『차라투스트라』에서 노래했던 주제들, 가령 디오니소스, 생명, 건강, 자유, 지혜, 고귀한 덕, 위버멘쉬, 영원회귀사상 등은 사실 이 책에 와서 한층 드넓고 깊이 있는 철학적 사유들, 가령 역사, 종교, 인류학, 심리학, 생리학, 문학, 음악 등 거의 전방위에 이르는 광범위한 학문과 예술 영역에 걸친 니체 특유의 심연처럼 깊디깊은 사색이 더해짐으로써, 단지 '『차라투스트라』의 주석'이라고 불리기엔 너무 아까울 정도로 '가장 니체적인 색깔'을 띤 작품이 되었고, 그가 이 책에서 가혹하게 비판했던 '현대성'에서 벗어난 '새로운 철학'은 결국 '미래 철학의 서곡'으로 격상되어 오늘날 니체의 철학을 이해하는 결정적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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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책세상 니체전집 14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정현 옮김 / 책세상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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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록하고 그려낸 사상이여! 나의 고통에서 갑자기 나타난 불꽃과 기적이여!

 

아, 그대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대들 내가 기록하고 그려낸 사상이여! 그대들이 여전히 그렇게 다채롭고 젊고 악의적이고 가시가 가득 돋아 있고 은밀한 향냄새를 내어, 내가 재채기가 나게 하고 웃게 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ㅡ 그런데 지금은? 이미 그대들은 자신의 참신함을 잃어버렸고, 그대들 가운데 몇몇은 두렵게도 벌써 진리가 되려고 한다 : 그것들은 벌써 그만큼 불멸의 것으로 그만큼 가슴이 메어질 정도로 성실한 것으로 그만큼 지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전에는 사정이 달랐단 말인가? 우리는 도대체 어떤 일들을 기록하고 그린다는 말인가, 중국 붓을 사용하는 중국 관리인 우리, 기록할 수 있는 사물들이 영원히 전해지게 만드는 자인 우리, 우리가 오로지 그릴 수 있는 것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 언제나 막 시들어가려 하고 향기를 잃어가기 시작하는 것뿐이다! 아, 언제나 물러가는 지칠 대로 지친 폭풍우나 누렇게 변한 말년의 감정들뿐이다! 아, 언제나 날다가 지쳐서 헤매는, 이제 손으로 ㅡ 우리의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새들뿐이다! 우리가 영원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더 이상 오래 살 수 없고 날 수 없는 것, 지치고 약해질 대로 약해진 사물들뿐이다! 그대들 내가 기록하고 그려낸 사상들이여, 오직 그대들의 오후만을 위해 나는 색깔을, 아마 많은 색과 많은 다채로운 애정을, 50가지 정도의 황색, 갈색, 녹색, 적색을 가지고 있다 : 그러나 그 누구도 그대들이 아침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의 고독에서 갑자기 나타난 불꽃과 기적이여, 그대 나의 오래되고 사랑스러운 ㅡ ㅡ 나쁜 사상들이여!

 

- 니체, 『선악의 저편』, <제9장> 고귀함이란 무엇인가?, 29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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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책세상 니체전집 14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정현 옮김 / 책세상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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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디오니소스 신의 마지막 제자이자 정통한 자이다

 

저 위대한 은둔자가 가지고 있는 심정의 천재, 유혹하는 자인 신이며, 천성적인 양심의 유혹자, 그의 소리는 모든 영혼의 지하세계에까지 내려갈 수 있으며, 그가 던지는 말 한마디, 눈길 하나에도 유혹의 동기나 저의가 담겨 있지 않은 것이 없다. 그가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대가의 실력에 속한다. ㅡ 이것은 그 자신의 참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더욱더 그에게 가까이 오도록 강요하기 위한, 더욱 내면적으로 철저하게 그를 따르도록 하기 위한, 강제 이상의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다 : ㅡ 심정의 천재, 그는 시끄럽고 자만하는 사람들을 모두 침묵하게 만들며 경청하는 법을 가르치고, 거친 영혼을 지닌 자들을 잔잔하게 하고, 마치 깊은 하늘이 그들 위에 모습을 비추는 거울처럼 고요하게 누워 있고자 하는 새로운 갈망을 그들에게 맛보게 한다 ㅡ . 심정의 천재는 우둔하고 성급한 손에 망설이는 법을 가르치고 좀더 우아하게 붙잡는 법을 가르친다. 그는 감추어지고 잊혀진 보물을, 선의와 달콤한 정신성의 물방울을 흐리고 두꺼운 얼음 밑에서 찾아내며, 오랫동안 여러 가지 진흙이나 모래의 감옥 속에 파묻혀 있었던 모든 황금의 알을 찾는 마법의 지팡이다. 이 심정의 천재와 접촉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좀더 풍요로워져가는데, 이는 은혜를 받거나 놀라서도 아니고, 마치 미지의 재물에서 혜택을 입거나 억눌려서가 아니다. 오히려 억지로 열리게 되고, 따스한 바람이 불어와 캐내게 하며, 아마 더욱 불확실하게 되어 더욱 부드럽고 깨지기 쉽고 부서진 것이 되었으나, 아직 이름도 없는 희망에 부풀고 새로운 의지와 흐름에 넘치고 새로운 불만과 역류에 넘쳐 자신에 대해 좀더 풍요로워지고, 그전보다 더 새로워지게 된다 …… 그러나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의 친구들이여? 나는 누구에 대해 그대들에게 말하고 있는가? 내가 그대들에게 한번도 그의 이름을 말한 적이 없을 정도로 스스로를 잊어버렸단 말인가? 그대들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칭찬받기를 원하는 이 의심스러운 정신이나 신이 누구인지 이미 스스로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면 말이다. 즉 어린 시절부터 언제나 돌아다니며 낯선 고장에 살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경험하는 것처럼, 나 역시 희귀하고 위험한 많은 정신과 부딪쳐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방금 말했던 정신과 부딪혔던 것이다. 이 정신은 언제나 다시 나타나는 바로 디오니소스 신이며, 그대들이 알다시피 내가 일찍이 은밀히 경외심을 가지고 내 처녀작을 바쳤던 저 위대한 양의(兩義)적인 신, 유혹자인 신이다.내가 생각하기에는 나야말로 그 신에게 희생을 바쳤던 마지막 인간이었다 : 왜냐하면 내가 그 당시에 했던 일을 이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 나는 이러한 신의 철학에 관해 많은 것을, 너무나도 많은 것을 배웠으며, 이것은 이미 말했듯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ㅡ 나는 디오니소스 신의 마지막 제자이자 정통한 자이다 : 나는 기어이 한 번쯤 내 친구인 그대들에게, 나에게 허락하는 한, 이 철학을 조금은 맛보게 하는 일을 시작해도 좋을 것이 아닌가? 당연히 반쯤 낮은 목소리로 말이다 : 왜냐하면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여러 가지 은밀한 것, 새로운 것, 낯선 것, 기이한 것, 섬뜩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디오니소스가 철학자이며, 신들도 철학을 한다는 사실은 나에게는 위험이 없지 않으며 아마도 바로 철학자들 사이에서 불신을 일으킬 수도 있는 새로운 것처럼 생각된다. ㅡ 나의 친구 그대들 사이에서는, 그것이 너무 늦게 오게 되거나, 적당한 때 오지 않는다면 몰라도, 이미 저항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 왜냐하면 내게 은밀히 누설했듯이, 그대들은 오늘날 신과 신들에 대해 마지못해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또한 나는 내 이야기를 솔직히 할 때, 그대들 귀의 엄격한 습관에 항상 유쾌하게 울리는 정도를 넘어 더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확실히 이미 언급한 신은 이와 같은 대화를 할 때 더 나아가 있으며 훨씬 멀리 나아가 있고, 항상 나보다 먼저 몇 발짝 앞서 있었다 …… 만일 인간의 풍습에 따라 그 신에게 아름답고 장엄한 장식의 명칭과 덕성의 명칭을 붙이는 것이 허용된다면, 나는 그의 탐구자로서의 용기나 발견자로서의 용기를, 그의 대담한 성실성과 진실성, 지혜에 대한 사랑을 대단히 칭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신은 이러한 모든 귀한 잡동사니나 장식품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고 있다. "너와 너의 동료들이나, 그 밖에 그것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 이러한 것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라고 그는 말하고 싶어할 것이다. 나는 ㅡ 내 자신의 벌거벗은 모습을 감출 이유가 없다!" ㅡ 사람들은 이러한 종류의 신이나 철학자에게는 아마 수치심이 없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ㅡ 언젠가 그 신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 "상황에 따라 나는 인간들을 사랑한다 ㅡ 이때 그 신은 그 자리에 있었던 아리아드네Ariadne를 넌지시 암시했다 ㅡ : 나에게 인간이란 지상에서 그와 비견될 만한 것이 없는 유쾌하고 용기 있고 창의적인 동물이다. 이 동물은 어떤 미궁에 있어도 여전히 가야 할 올바른 길을 찾아낸다. 나는 그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 : 나는 종종 현재의 그보다 어떻게 하면 그를 앞으로 진전시키고 그를 좀더 강하게, 좀더 악하게, 좀더 깊이 있게 만들 것인가를 숙고하곤 한다." ㅡ "좀더 강하고, 악하고, 깊이 있게라고?" 나는 놀라서 물었다. 그는 다시 한번 말했다. "그렇다. 좀더 강하고 악하고 깊이 있고, 또한 아름답게" ㅡ 그리고 게다가 유혹하는 자인 신은 마치 그가 방금 매혹적인 인사말이라도 한 것처럼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여기에서 동시에 볼 수 있는 것은 이 신에게 없는 것이 수치심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ㅡ . 대체로 몇 가지 점에서 신들도 모두 우리 인간들에게서 배울 수도 있다는 것을 추측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우리 인간들이 ㅡ 더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 니체, 『선악의 저편』, <제9장> 고귀함이란 무엇인가?, 29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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