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랑탕빌리지에서 체르코리까지
동유럽 여행 후기 ①


"여기에서는 전망은 트이고, 정신은 고양된다." ㅡ 그러나 높은 곳에 있고 전망이 트여 있는데도 아래를 내려다보는 반대 부류의 인간이 있다.

 

- 니체, 『선악의 저편』, <제9장, 고귀함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 * *


높은 곳에 오르기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까? 혹 있을지도 모르겠다. 높은 곳을 오르기엔 다리도 몹시 아프고 숨도 벅찰 테니까. 그런데 언젠가부터 높은 곳에 오르기가 아주 쉬워졌다. 바로 푸니쿨라(등산전차)가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그동안 푸니쿨라를 몇 번씩이나 타봤으면서도 그걸 나폴리 민요인 '푸니쿨리 푸니쿨라'와 연결해서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그저 그 노래를 '귀에 익숙한 멜로디'로만 여기고, 그 노래에 얽힌 사연은 조금도 살펴볼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푸니쿨리 푸니쿨라

 

주세페 투르코 작사, 루이지 덴차 작곡. 1880년 6월 6일 나폴리에 등산전차가 개통된 날 밤에 작곡되었으며 그해 페디그로타의 가곡제에서 발표되어 청중을 열광시켰다. 나폴리 민요 가운데서도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이며 널리 불려지는 노래이다. 제명은 푸니콜라레(funicolare:등산전차)를 의미하며 가사의 구절마다에 넣어 가락을 맞추는 말이다.  - 출처 : 네어버 지식백과

 

오늘 책을 읽다가 문득 '푸니쿨라'를 떠올렸고, '푸니쿨리 푸니쿨라'를 검색해 보고서야 알았다. 그 노래가 등산전차를 타고 높은 곳에 오를 때 흥분되고 신나는 기분을 표현한 노래라는 것을. 그리고 얌머 얌머라고 노래하는 이태리 말은 가자! 가자! 산꼭대기로! 라는 뜻이라는 것을!

 

내가 그 둘을 연결지을 수 있게 도와준 책 속 문장들은 좀 엉뚱하긴 하다. 도대체 푸니쿨라와 아무런 연관도 없어 보이니까 말이다. 어쨌든 그 문장들이 내겐 좀 인상깊게 다가왔다. 그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왜 이윽고 책을 덮고 침묵하는지


그러나 위대한 자연을 바라보는 데서 오는 깊은 감동을 가장 확실하게 전해준 사람은 단테가 처음이었다. 그는 부드럽게 물결치는 바다 멀리 햇빛을 반사하며 불어오는 아침 바람과 숲속의 폭풍 같은 것을 몇 줄의 시로 훌륭히 노래했고, 먼 곳의 경치를 즐기겠다는 일념 하나로 높은 산에도 올랐다. 이 같은 일을 한 사람은 어쩌면 고대 이래 그가 처음일 것이다.

 

보카치오는 자신이 얼마나 자연에 감동받았는지를 직접 묘사하기보다는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추측하게 만들지만, 그의 전원소설을 읽어보면 최소한 그의 상상 속에 있었을 거대한 자연의 풍광을 느끼지 못할 사람은 없다. 최초의 완전한 근대인 가운데 한 사람인 페트라르카도 자연이 감수성 예민한 영혼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를 완벽하고 힘차게 그려냈다.

 

모든 문학작품을 조사하여 거기에 드러난 회화적인 자연 감성의 기원과 발달을 처음으로 수집하고 『자연의 풍경』이라는 글로 자연 묘사의 최고봉을 이룩한 명민한 학자 알렉산데르 폰 훔볼트는 페트라르카와 관련해 말하자면 전적으로 옳은 판단을 내렸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위대한 수확자를 뒤따르는 우리로서는 얼마간의 낙수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페트라르카는 단순히 유명 지리학자나 지도 제작자에 그친 인물이 아니었다. 또 그는 고대인들이 말했던 것을 그저 반복해서 얘기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연을 바라보고 거기에서 직접 감동받은 사람이었다. 그가 볼 때 자연의 음미는 모든 정신활동에 뒤따라야 하는 가장 바람직한 동반자였다. 그가 보클뤼즈를 비롯한 여러 지방에서 학자로서 은둔생활을 하고 시대와 세상을 벗어나 주기적으로 도피의 삶을 산 것도 이 둘의 결합 위에서 이루어진 결과였다.

 

그의 빈약하고 미숙한 자연 묘사 능력에서 그의 빈곤한 감정을 추리한다면 그를 잘못 평가하는 것이다. 물론 그가 『아프리카』의 제6곡 말미에, 그때까지 고대인도 근대인도 노래한 적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삽입한 아름다운 스페치아 만과 베네레 항의 묘사는 단순한 나열에 그치고 있다. 그래도 그는 암석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풍경의 회화적인 가치와 그것의 실용성을 충분히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레조의 숲에 머무르면서 순간적으로 드넓은 자연을 바라보았을 때 받은 깊은 감동은 그로 하여금 오래 전에 내려놓았던 시필(詩筆)을 다시 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진실로 가슴 벅찬 감격은 아비뇽에서 멀지 않은 방투 산에 올랐을 때 왔다. 광활한 경치를 보고 싶다는 막연한 욕구가 마음속에서 최고조에 달했을 때, 페트라르카는 우연히 리비우스의 글에서 로마의 적인 필리포스 5세가 하이무스 산(지금의 발칸 산맥-옮긴이)에 오르는 대목을 접하고 결심을 했다. 늙은 왕에게 탓할 수 없는 것은 평범한 젊은이에게도 용서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무작정 하는 등산은 그의 주변에서는 유례가 없었고 친구나 아는 사람의 동행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는 마지막 휴게소에서 데리고 온 동향인 두 명과 남동생만 이끌고 산에 올랐다. 산중턱에서 만난 한 늙은 목자는 그들에게 돌아가라고 타일렀다. 그 역시 50년 전 같은 일을 시도했으나 돌아올 때 남은 것이라고는 후회와 피곤한 육신과 다 찢어진 옷뿐이었으며, 그전에도 그후에도 이 산을 오른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계속 위로 올라갔고 마침내 발 밑에서 구름이 넘실대는 정상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곳의 풍경 묘사를 기대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그것은 페트라르카가 둔감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거기에서 받은 감동이 너무 강렬해서이다.

 

그의 마음속에는 어리석음으로 가득했던 지난날의 모든 삶이 떠올랐다. 젊은 나이에 볼로냐를 떠난 지가 이날로 10년째 된다는 생각에 그는 이탈리아가 있는 쪽을 향해 그리움 가득한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언제나 휴대하고 다니는 작은 책, 곧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명상록』을 펼쳐들었다. 그러자 그의 시선은 10장의 한 대목에서 멈췄다. "그리고 인간은 길을 떠나 높은 산과 넓은 바다와 힘차게 출렁이는 파도와 대양과 천체의 흐름에 감탄하며 자기 자신을 잊는다." 페트라르카가 읽는 이 구절을 듣고 있던 남동생은 형이 왜 이윽고 책을 덮고 침묵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부터 몇십 년 후인 1360년, 파치오 델리 우베르티는 운문으로 된 그의 지리서에서 알베르니아 산맥의 광활한 전경을 묘사했다. 비록 지리학자와 고고학자의 관점에서만 묘사했어도 그것은 그가 실제로 목격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이보다 더 높은 산에도 분명히 올랐던 것 같다. 해발 3000미터 이상의 고지에서만 나타나는 충혈, 안구 압박, 심계향진 같은 현상을 그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신비한 여행 동반자인 솔리누스는 액체에 적신 해면으로 그를 치료해주었다. (375∼378쪽)

 

 - 야콥 부르크하르트,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제4부 세계와 인간의 발견>


 

 

 

 

 

 

 

 

 

 

 

 


내가 등산전차를 타고 가장 높이 오른 건 스위스 융프라우였다. 그 높은 산까지 전차를 건설해 놓은 인간의 기술력이 놀라웠다. 그 전차가 없었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융프라우를 구경조차 하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아름다운 설경으로 잘 알려진 알프스 산맥의 고봉 융프라우(4,158m)는 산악인뿐 아니라 여행자에게도 매력적인 장소다. 융프라우의 하이라이트는 융프라우와 묀히 두 봉우리 사이에 위치한 융프라우요흐 전망대로, 명물 톱니바퀴 열차로 오를 수 있어 근성이 없는 여행자라도 고산 지대의 짜릿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열차가 운행하는 융프라우요흐 전망대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철도역이기도 하다. 높이가 자그마치 3,454m에 달하는 이곳까지 열차가 운행한 지도 100년이 넘었다고 하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 네이버 지식백과


가장 최근에 푸니쿨라를 타본 건 2년 전 늦봄에 동유럽에 갔을 때였다. 모차르트의 고향인 잘츠부르크에 갔을 때는 험준한 고성에 오르기 위해서였고, 할슈타트에 갔을 때는 소금광산을 보기 위해서였다. 푸니쿨라가 아니었더라면 높은 곳에 올랐을 때의 멋진 풍경들을 도저히 감상할 수 없었으리라. 앞으로 '푸니쿨리 푸니쿨라'를 들으면 예전보다 훨씬 더 즐거운 마음으로 그 노래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지에서 탔던 '푸니쿨라의 추억'과 그 노래가 틀림없이 겹쳐 떠오를 테니 말이다...


 * * *


 - 잘츠부르크에 도착해서 맨 처음 찾아간 곳은 '호엔 잘츠부르크 성'이었다.

   푸니쿨라를 타고 순식간에 높은 데를 날듯이 올라갔다.



 - 잘츠부르크 성에 올라서 내려다보면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폰 트랩 대령의 집`도 보인다.



 - 잘츠부르크 성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미라벨 정원 너머로 자주 보이던 높은 성이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이 유유히 돌아 흐르는 잘츠부르크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 호엔 잘츠부르크 성에서 내려와 도나우 강을 건넌 뒤에 성 쪽으로 올려다본 풍경.

 


 - 잘츠부르크를 떠나 그 다음 행선지로 찾은 곳은 할슈타트였다. '여행자들의 로망'이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마침 우리 일행은 여기서 하룻밤을 묵었다.



 - 이튿날 오전 자유시간에 아내와 나는 '소금광산'을 오르는 등산로로 '등산'을 시작했다. 운동도 겸해서.

    아무렴, 높은 곳에 올라야 더 멋진 풍광도 불 수 있는 법이니까.



 - 그런데 마을 뒷편으로 난 '좁은 등산로'는 생각보다 무척이나 가팔랐다. 절반도 오르지 못하고 숨을 헐떡였다.



 - '도보 등산'으로는 도저히 꼭대기까지 오를 자신이 없어서 결국 '푸니쿨라'를 타기로 했다.

    등산열차로도 한참이나 올라갔다. 걸어서는 반나절이 꼬박 걸릴 형편이었다.


 

 - 푸니쿨라로 전망대에 오르니 경치가 과연 환상적이었다.

 

 

 - 소금광산으로 이어지는 전망대 꼭대기에서 내려다 보니 호숫가의 집들이 마치 장난감처럼 자그마하다.

 

 

 - 전망대에 오르면 저 멀리 '만년설이 뒤덮인 알프스'를 볼 수도 있다.

    할슈타트에 가시는 분들은 꼭 푸니쿨라를 타고 '전망대'에 올라가 보시길 추천드린다.

 


 * * *




어느 날 밤, 나는 산으로 올라갔다네,

그곳이 어딘지 아는가? (어딘지 아는가?)

거기서는 너의 무정한 마음도 이제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성가신 계략으로부터! (성가신 계략으로부터!)

산은 불을 뿜고 타오르고 있지만, 당신이 도망간다면

불이 붙는 건 당신이겠지! (당신이겠지!)

하지만 내가 당신 곁으로 가면, 타오르지 않겠지

바라보기만 한다면, (보기만 한다면,)

가자, 가자, 꼭대기로,

가자, 가자, 꼭대기로,

푸니쿨리, 푸니쿨라, 푸니쿨리, 푸니쿨라,

푸니쿨리, 푸니쿨라, 푸니쿨리, 푸니쿨라,

꼭대기로 올라가자, 푸니쿨리, 푸니쿨라!

가자, 가자, 꼭대기로,

가자, 가자, 꼭대기로,

푸니쿨리, 푸니쿨라, 푸니쿨리, 푸니쿨라,

꼭대기로 올라가자, 푸니쿨리, 푸니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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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7-03-02 12: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부럽습니다.
저는 여기서 푸니쿨리 푸니쿨라 노래나 불러야겠어요. 중학교때 교내 합창대회 단골로 불리던 곡 ㅠㅠ

oren 2017-03-02 14:21   좋아요 0 | URL
hnine 님께서는 이 곡을 중학교때부터 자주 들으셨군요. 놀랍습니다. 저는 중학교때 무슨 곡을 들었는지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는데 말이지요.

보슬비 2017-03-03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슈타트는 자주 갔었는데, oren님의 글을 읽으니 푸니쿨라를 타지 않은것이 가장 후회가 되네요. 이런 풍경이 있는줄 알았더라면 꼭 타보았을텐데 진짜 아쉬워요.

oren 2017-03-03 23:21   좋아요 2 | URL
보슬비 님 반갑습니다^^ 보슬비 님께서 할슈타트를 자주 가셨다는 말씀을 들으니 저로서는 정말 깜놀입니다. 그 먼 데를 단 한 번 가기도 힘든데 말이지요.(님의 블로그에서 짧은 페이퍼 찾아서 읽어봤답니다. 독일 퓌센에서 그리고 넘어가셨더군요. 저도 맨처음 갈때 자동차를 몰고 퓌센 거쳐서 그리로 갔답니다. ㅎㅎ) 저는 뜻하지 않게 두 번 가봤습니다만, 맨 처음 갔을 땐 일정에 쫒겨 할슈타트에서 고작 한 시간 밖에 머물지 못해서 너무나 아쉬웠더랬습니다. 거기서 매우 가까운 장크트 길겐(St.Gilgen) 마을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바람에 그리 되었지요. 거기도 우연히 두 번 가봤는데 맨 처음 갔을 땐 그 동네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의 외가가 있는 줄도 몰랐답니다. ☞ http://blog.aladin.co.kr/oren/7546217

보슬비 2017-03-03 23:56   좋아요 1 | URL
예전에 프라하에 살때 가까운곳이라서 가족들이 오면 감머구트 구간에 자구 가게 되었던것 같아요. 구른들제 근처 ‘몬디 할러데이‘ 호텔이 좋아 그곳에 가면 계속 이용했던 숙소예요. oren님 글을 읽으니 그때 기억이 나서 댓글 달았었는데, 구른들제에 있는 호수들이 너무 이뻐서 아직도 좋은 기억이 남은 곳이지요. 푸니쿨라 알았지만, 주변에 이용했다는 분들이 없어서 그저 지나쳤는데, 올려주신 전망 사진을 보니 무척 후회가 되네요.

링크 걸어주신 페이퍼보니 감회가 새로워요.^^ 예전에도 느꼈지만, 진짜 사진 너무 멋지게 찍으세요.

oren 2017-03-04 00:59   좋아요 0 | URL
보슬비 님께서는 무려 프라하에서도 사셨군요! 보슬비 님께서 거기 사셨다는 말씀만 들어도 금세 또다시 그 도시에 막 달려가 보고 싶어지네요. 거기 사셨으면 혹시 우플레쿠(U Fleku)라는 술집에도 가보셨는지 모르겠군요. 거기서 생맥주 마시며 스메타나의 블타바를 아코디언 연주로 들었던 순간이 잊혀지지 않아서 말이지요. 저는 프라하에 다녀온 후로는 여행후기 말고도 따로 책에 대한 페이퍼를 쓰면서도 프라하 풍경들을 잔뜩 집어넣은 적도 있었답니다. 프라하 여행 경험 때문에 카프카와 쿤데라에 홈빡 빠져든 적이 있었거든요^^ ☞ http://blog.aladin.co.kr/oren/8564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