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려야 한다는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양철나무꾼 님께서도 지적했듯이, '맥락' 없이 인용하는 글들은 곧잘 '말도 안되는 소리'로 매도될 때가 자주 있는 듯합니다. 저 역시 (바로 그런 '표현'을 앞세운 지인의 글을 보고) 대뜸 그런 느낌을 받았으니 말이지요.

 

 

'연도 멸도 없는 해탈의 세계'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저도 한동안 곰곰 생각해 봤습니다. '해탈'이 곧 불교도의 궁극적인 목적이고, 그 해탈에 이르면 곧 '윤회'를 벗어난다는 뜻일진대, 왜 거기서 다시 '새로운 연을 이루고 그 연을 따라 보살이 되고...' 라는, 곧 '윤회의 세계'로 되돌아가는 듯한 과정이 다시 '불교의 목적'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거듭 생각해 보게 되었고요. 제게는 (양철나무꾼 님의 친절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 대목이 아직까지도 여전히 아리송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결국 '해탈'이 무슨 뜻인지를 네이버에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다음과 같은 대답을 들려주더군요.

 

해탈 [解脫, Vimukti, Vimoka]

 

결박이나 장애로부터 벗어난 해방, 자유 등을 의미하는 말. 원래 인도 바라문교에서 사용하던 말이었는데 후에 불교에 도입되었다. 불교에서의 해탈은 수행을 통해 도달하는 궁극적인 경지로, 업과 윤회를 벗어난 상태를 일컫는다. 업()은 인간의 행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인과()의 법칙이 절대적으로 적용되어 선업()인지 악업()인지에 따라 낙과()와 고과()가 따른다. 즉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다른 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윤회()는 마치 수레바퀴가 굴러서 끝이 없는 것과 같이 인간이 번뇌와 업에 따라 생사()의 세계를 거듭하며 그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해탈은 이러한 인간의 상태에서 벗어나 열반()의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문학비평용어사전, 2006. 1. 30., 국학자료원)

 

네이버가 들려주는 대답이 어찌 '궁극적인 해답'을 던져줄 수 있을까요. 그저 '용어사전'을 옮겨놓은 것일 뿐인데 말이지요. 결국 이 문제에 대해 아주 깊이 고민했던 몇몇 철학자들의 생각까지 다시 뒤져보게 되었고, 그들의 말을 천천히 다시 반추해 봤습니다. 과연 그들의 책은 여전히 '얼음을 깨는 도끼'로 남아 있었고, 저는 '다시, 도끼'를 펼친 듯한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저도 양철나무꾼 님의 말씀처럼, '불교 용어'를 가지고 아무런 맥락도 없이 꼬치꼬치 따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는데, 이상하게도 자꾸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여전히 '뗏목'과 '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직도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걸 보면 말이지요.

 

 

* * *

 

금욕주의적 이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ㅡ 예술가들에게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거나, 또는 너무 많은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철학자들이나 학자들에게는 높은 정신성을 위한 유리한 선행 조건들을 냄새맡는 후각이나 본능을 의미한다. 여성들에게는 잘 해야, 더욱 유혹하기 위한 애교나 아름다운 육체가 보이는 약간의 부드러움이나 포동포동 살쪄 예쁜 동물의 천사 같은 것을 의미한다. 생리적인 실패자나 부조화자(죽어야 할 운명을 지닌 대다수의 인간들)에게는 이 세계에 '너무 선하게' 존재하려는 시도이자, 방탕의 성스러운 형식이며, 만성적인 고통이나 권태와 싸우려는 그들의 주요한 무기를 의미한다. 성직자들에게는 본래의 성직자적인 믿음이나, 그들의 권력의 최상의 도구, 또는 권력을 지향하는 '최고의' 면허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성자(聖者)들에게는 동면을 하기 위한 구실이며, 그들의 가장 최후의 영예욕이자, 허무('신') 속에서의 안식이고, 그들의 착란의 형식을 의미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금욕주의적 이상이 인간에게 그렇게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 그 안에는 인간 의지의 근본 사실, 즉 인간 의지가 지닌 공허의 공포가 표현되어 있다 : 인간의 의지는 하나의 목표가 필요하다. ㅡ 이 의지는 아무것도 의욕하지 않는 것보다, 오히려 허무를 의욕하는 것이다.내 말을 이해하겠는가?……내 말을 이해했는가?…… "전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ㅡ 그럼 처음부터 시작해 보자.(451∼452쪽)

 

 - 니체, 『도덕의 계보』, <제3논문 : 금욕주의적 이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1절

 

 * * *

 

의심의 여지 없이 우리는 이제 우리 자신을 폭행하고 있다. 우리는 영혼의 호두를 까는 사람들이며, 마치 인생이란 바로 호두를 까는 것일 뿐이라는 듯 질문하며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매일 더욱 의심을 품는 자, 물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자가 되어야만 하며, 따라서 아마도 또한 더욱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자가 되어야만 하지 않는가?…… 모든 좋은 것은 전에는 나쁜 것들이었다. 하나하나의 원죄에서 어떤 유전적인 덕이 생겨났다. 예를 들어 결혼은 오랫동안 공동체의 법을 침범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옛날에는 매우 불손하게도 한 여성을 홀로 독점할 경우에는 배상을 했다 (예를 들어, 초야권이 그에 해당하는데, 이는 캄보디아에서는 오늘날에도 이러한 '낡은 미풍양속'의 수호자인 승려들의 특권이다). 부드럽고 호의적이고 관대하며 동정적인 감정들은 ㅡ 이것은 점차 높은 가치로 높이 자리잡게 되어, 거의 '가치 자체'가 되었다 ㅡ 오랫동안 그 자신에 대한 자기 경멸을 지녀왔다 : 사람들은 오늘날 가혹함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처럼, 온순함을 부끄럽게 여겼다(《선악의 저편》, 260절). 에 대한 복종 : ㅡ 지상 곳곳에 있는 고귀한 종족들은 스스로 복수를 단념하고 스스로에 대한 권한에 폭력을 사용하도록 허용하는 데 얼마나 양심의 저항을 느꼈던 것일까! '법'이란 오랫동안 하나의 금기였으며, 불법이었고, 혁신이었다. 그것은 폭력으로 나타났고, 그 폭력에 복종하는 것을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한 치욕으로만 여겼다. 지상에서 그 어떤 가장 작은 발자국이라 할지라도 이전에는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고통과 싸워왔던 것이다 : 이러한 전체적 관점, 즉 "전진뿐만이 아니다. 그렇다! 걸음걸이, 움직임, 변화는 무수히 많은 고문의 고통이 필요했던 것이다"는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는 아주 낯설게 들린다. ㅡ 나는 이것을《아침놀》18절에서 밝혔다.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날 우리가 자부하고 있는 약간의 인간의 이성과 자유의 감정보다 더 비싼 대가를 치른 것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자부심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에게는 인류의 성격을 확정짓는 진정한 결정적인 주요 역사로 '세계사'에 선행하는 '풍습의 윤리'의 저 어마어마한 시대적 거리를 느끼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 여기에서는 고통이 덕으로, 잔인성이 덕으로, 꾸밈이 덕으로, 복수가 덕으로, 이성의 부정이 덕으로 통용되었고, 이에 반해 평안이 위험으로, 지식욕이 위험으로, 평화가 위험으로, 동정이 위험으로, 동정받는 것이 모욕으로, 노동이 모욕으로, 광기가 신성으로, 변화가 부도덕적이고 불행 자체를 품고 있는 것으로 어디서나 통용되었던 것이다!" ㅡ (474∼476쪽)

 

 - 니체, 『도덕의 계보』, <제3논문 : 금욕주의적 이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9절

 

 * * *

 

금욕주의적 삶의 경우에 삶이란 저 다른 생존을 위한 하나의 다리로 간주된다. 금욕주의자는 삶을 결국 출발한 지점으로 되돌아가야만 하는 미로처럼 취급한다. 또는 행위에 의해 반박당하고 ㅡ 반박당해야만 하는 오류처럼 취급한다 : 왜냐하면 그는 사람들이 자신과 함께 가기를 요구하며, 할 수 있다면, 생존에 관한 자신의 가치 평가를 함께 하기를 강제하기 때문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와 같은 기괴한 평가 방식은 예외적인 경우나 진기한 일로 인류의 역사 가운데 기입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폭 넓고 영속적으로 존재하는 사실 가운데 하나이다. 멀리 떨어진 천체에서 읽는다면, 우리 지구상의 생존이라는 대문자는 아마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게 될 것이다. 즉 지구는 본래 금욕주의적인 별이다. 자신에 대해, 지구에 대해, 모든 생명에 대해 깊은 불만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면서, 고통을 주는 것을 즐기면서 ㅡ 아마도 유일한 즐거움으로 여기면서, 가능하면 스스로에게 많은 고통을 주는 불만에 차고 오만하며 불쾌한 피조물의 은둔처일 것이라고. 어쨌든 우리는 금욕주의적 성직자가 얼마나 규칙적이고도 보편적으로, 거의 모든 시대에 나타나는지 생각해보자. 그는 개별적인 종족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곳곳에서 성장하고 있다. 그는 모든 계층에서 자라나온다. 그는 자신의 평가 방식을 유전에 의해 배양하여 증식시키지 않는다. 실상은 반대의 경우이며, ㅡ 대체로 말해서, 어떤 깊은 본능이 오히려 그의 번식을 금지시킨다. 이러한 삶에 적대적인 종족을 되풀이하여 계속해서 성장시키고 증식시키는 것은 최고급의 필요성임이 틀림없다. ㅡ 이러한 자기모순적인 유형이 소멸되지 않는 것은 삶 그 자체의 관심사임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금욕주의적 삶이란 하나의 자기 모순이기 때문이다 : 여기에는 견줄 데 없는 원한이, 즉 삶에서의 어떤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삶 자체, 그 가장 깊고, 강력하며, 가장 기저에 있는 조건들을 지배하고 싶어 하는 기갈 들린 본능과 힘 의지의 원한이 지배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힘의 원천을 봉쇄하기 위해 힘을 사용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진다. 여기에서는 생리적인 발달 자체에, 특히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나 아름다움과 기쁨에 대해 서툴고 음험한 눈초리가 쏠린다. (……) "바로 마지막 죽음의 고통 속에서의 승리" : 이 최상의 기호 아래 옛날부터 금욕주의적 이상은 싸워왔다. 이러한 유혹의 수수께끼 속에서, 이러한 환희와 고통 속에서 그 이상은 자신의 가장 밝은 빛을, 자신의 구원을, 자신의 마지막 승리를 인정했던 것이다.(479∼481쪽)

 

 - 니체, 『도덕의 계보』, <제3논문 : 금욕주의적 이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11절

 

 

 * * *

 

삶은 이 이상 속에서 그러한 이상을 통해 죽음과 싸우며 죽음에 대항하여 싸운다. 금욕주의적 이상은 삶을 보존하기 위한 기교인 것이다. 이와 같은 이상이 인간을 지배하고 제어할 수 있었다는 것, 특히 문명과 인간의 순화가 성취된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그랬다는 것은 역사가 가르쳐주는 대로이지만, 그 사실 안에는, 지금까지의 인간 유형에는, 적어도 길들여진 인간의 유형에는 병적인 것이, 인간의 죽음과의 생리학적 싸움(더욱 자세히 말하자면, 삶의 권태와의, 피로와의, '종말'을 바라는 소망과의 싸움)이라는 중요한 사실이 표현되어 있다. 금욕주의적 성직자는 다르게 되고 싶은, 다른 곳에 존재하고 싶은 체화된 소망이며, 실은 이러한 소망의 최고점이며, 이 소망의 진정한 열정이자 정열이다 : 그러나 그 소망의 이야말로 그를 여기에 붙잡아 매는 질곡이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그는 여기에 존재하고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한 좀더 유리한 조건들을 만들어내도록 작업해야만 하는 도구가 된다. ㅡ 이러한 힘으로 말미암아 그는 모든 종류의 덜된 자, 부조화자,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한 자, 실패자, 자기 스스로 괴로워하는 자들의 전체 무리를 생존에 묶어 두게 되는데, 이때 그는 본능적으로 목자로 그들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484∼485쪽)

 

 - 니체, 『도덕의 계보』, <제3논문 : 금욕주의적 이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13절

 

 * * *

 

그러나 이 금욕주의적 성직자가 진정 의사란 말인가? ㅡ 우리는 그가 아무리 스스로를 '구원자'로 느끼고, '구원자'로 존경받고자 한다 해도, 그를 의사라고 부르는 것이 어째서 허용되지 않는지를 이미 이해하고 있다. 그가 싸우는 것은 단지 고통 자체일 뿐이며, 고통받는 자의 불쾌일 뿐이지, 그 원인이나 진정한 병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 (……) 좀더 분명한 것은 이러한 것이야말로 온갖 정신 착란에 이르는 길을, 예를 들면 아토스산의 헤쉬카스트파처럼, '내적인 광명'에 이르는, 환청이나 환시에 이르는, 음탕하게 넘쳐흐르는 관능의 황홀(성녀 테레사의 이야기)에 이르는, 길을 열고, 또 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상태에 사로잡힌 자들이 이와 같은 상태로 부여하게 되는 해석이 가능한 한 언제나 열광적이고 잘못된 것이었음은 명백하다 : 우리는 그러한 종류의 해석을 하려는 의지에서 이미 울려나오고 있는 맹신적 감사의 어조를 단지 건성으로 들어서는 안 된다. 최고의 상태, 해방 그 자체, 마침내 이르게 된 저 완전한 최면 상태와 정적은 그들에게는 언제나 최고의 상징으로도 그것을 표현하기에는 충분치 못한 신비 그 자체로, 사물의 근거 속으로 들어가고 귀환하는 것으로, 온갖 망상에서의 해방으로, '앎'으로, '진리'로, '존재'로, 모든 목적이나 모든 소망이나, 모든 행위에서 벗어남으로, 또한 선과 악의 저편으로도 여겨진다. 불교도는 "선과 악 ㅡ 이 두 가지는 결박이다. 완전한 자는 이 두 가지를 지배했다"고 말한다. 베단타의 신도는 "행해진 것이나 행해지지 않은 것이나 그에게 고통을 주지 못한다. 현자인 그는 선과 악을 자신의 몸에서 흔들어 털어낸다. 어떤 행위로도 그의 영역은 고통받지 않는다. 그는 선과 악, 이 두 가지를 넘어선다"고 말한다 : 이것은 즉 인도 전체에 나타나는 견해인데, 바라문교적인 견해도, 불교적 견해도 이와 마찬가지다. (……) 최면에 걸린 허무의 감정, 가장 깊은 잠의 휴식, 간단히 말해 고통이 없는 상태 ㅡ 고통 받는 자나 근본적인 부조화자는 이것을 이미 최고의 선으로, 가치들 가운데 가치로 여기며, 이것을 그들은 적극적으로 평가해야만 하고, 적극적인 것 자체로 느껴야만 하는 것이다. (동일한 감정의 논리에 의해 모든 염세주의적 종교에서 허무란 신을 의미한다.)(497∼503쪽)

 

 - 니체, 『도덕의 계보』, <제3논문 : 금욕주의적 이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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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욕주의적 이상을 제외해보자 : 그러면 인간은, 인간이라는 동물은 지금까지 아무 의미도 지니지 않았다. 지상에서의 인간의 생존은 아무 목표도 없다.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ㅡ 이것은 해답이 없는 물음이었다. 인간과 대지를 위한 의지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모든 거대한 인간의 운명의 배후에는 더욱 거대한 '헛되다!' 라는 말이 후렴으로 울리고 있었다. 무엇인가 결여되어 있었다는 것, 어머어마한 균열이 인간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는 것, 실로 이것이 금욕주의적 이상을 뜻한다. ㅡ 인간은 스스로를 변명하고, 설명하고, 긍정할 줄 몰랐다. 인간은 자신의 의미의 문제 때문에 괴로워했다. 그는 그 밖의 문제로도 괴로워했다. 인간이란 대체적으로 보아 병든 동물이었다 : 그러나 그의 문제는 고통 자체가 아니었고,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가?" 라는 물음의 외침에 대한 해답이 없다는 것이었다. 가장 용감하고 고통에 익숙한 동물인 인간은 고통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 인간에게 고통의 의미나 고통의 목적이 밝혀진다고 한다면, 인간은 고통을 바라고, 고통 자체를 찾기도 한다. 지금까지 인류 위로 널리 퍼져 있던 저주는 고통이 아니라, 고통의 무의미였다. ㅡ 금욕주의적 이상은 인류에 하나의 의미를 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유일한 의미였다.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보다는 낫다. 금욕주의적 이상은 어떤 점에서 보더라도 지금까지 있었던 최상의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이상 속에서 고통은 해석되었다. 어마어마한 빈 공간은 채워진 것처럼 보였다. 모든 자살적 허무주의에 대해 문이 닫혔다. 해석은 ㅡ 의심의 여지 없이 ㅡ 해로운 고통을 가져왔고, 좀더 깊고, 좀더 내면적인, 좀더 독이 있는, 삶을 갉아먹는 고통을 가져 왔다 : 이 해석은 모든 고통을 라는 관점 아래로 가져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ㅡ 인간은 그것에 의해 구출되었다. 인간이 하나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인간은 그 후로 더 이상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 같은 존재가 아니었고, 불합리나 '무의미'의 놀이공이 아니었다. 이제부터 인간은 무엇인가를 의욕할 수 있었다. ㅡ 우선 어디를 향해, 무엇 때문에, 무엇으로 인간이 의욕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 의지 자체가 구출되었던 것이다. 금욕주의적 이상에 의해 방향을 얻은 저 의욕 전체가 본래 표현하고자 한 은 도저히 숨길 수가 없게 되었다 : 인간적인 것에 대한 이러한 증오, 더욱이 동물적인 것, 더욱이 물질적인 것에 대한 이러한 증오, 관능에 대한, 이성 자체에 대한 이러한 혐오, 행복과 미에 대한 이러한 공포, 모든 가상, 변화, 생성, 죽음, 소망, 욕망 자체에서 도망치려는 이러한 욕망 ㅡ 이 모든 것은, 감히 이것을 이해하고자 시도해볼 때, 허무를 향한 의지이며, 삶에 대한 적의이며, 삶의 가장 근본적인 전제들에 대항한 반발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하나의 의지이며 하나의 의지로 남아 있다!…… 그래서 내가 처음에 말했던 것을 결론적으로 다시 한번 말한다면, 인간은 아무것도 의욕하지 않는 것보다는 오히려 허무를 의욕하고자 한다……(539∼541쪽)

 

  - 니체, 『도덕의 계보』, <제3논문 : 금욕주의적 이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28절

 

 

 * * *

 

참다운 구원, 즉 생과 고통으로부터의 해탈은 의지의 완전한 부정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거기에 도달하기까지는 모두들 이 의지 자체에 불과한 것이고, 의지의 현상은 덧없는 존재다. 그리고 언제나 공허하고 끊임없이 좌절되는 노력으로 모든 사람이 똑같이 불가항력적으로 속해 있으며, 우리가 묘사하는 고뇌에 찬 세계다. 왜냐하면 앞서 보아 온 것처럼, 생에 대한 의지에서 생은 언제나 확실하고, 생의 유일하고 현실적인 형식은 현재며, 현상 속에서는 탄생과 죽음이 지배하는 것처럼 아무도 이 현재에서 도피할 수 없다. 인도의 신화는 이것을 표현하여 "그들은 다시 태어난다"고 말하고 있다.(942쪽)

 

 - 쇼펜하우어,『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제4권」, <68. 생에 대한 의지의 부정> 중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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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6-06-21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정성된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근데, 정말 죄송한데...저 님의 이런 페이퍼의 문제제기에 논리적으로 댓글을 달 깜냥을 지니지 못했습니다.
제가 페이퍼에서 말씀드렸듯, 전후 문맥에서 오는 어법상의 문제를 제시한 것이었을 뿐입니다.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꾸벅~(__)

oren 2016-06-21 19:02   좋아요 0 | URL
많은 사람들이 `불멸`이나 `영원한 삶`을 꿈꾸고, 심지어 많은 종교에서는 `죽음 이후의 복된 삶`을 꿈꾸기도 하지요. 그런데 유독 불교는 그와 정반대로 `완전한 無`를 수행의 목표로 삼는다는 게 늘 제게는 인상적이었답니다. 그런데 박웅현 님의 책 속에서 바로 그런 점에 대해 언급한 대목(`불교에서 수행의 최종 목적은 환생이 아니라 멸이랍니다`)을 두고, 어떤 분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제게는 마치 `어리석은 중생들`을 향해 큰 소리로 `일갈`하는 듯이 들리는) 표현한 대목에서 저는 솔직히 적잖은 충격을 받았더랬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글을 읽고 나서 많은 고민과 생각 끝에 여러 번 망설이다가 끝내 `괜한 댓글`까지 달게 되었구요. 사실 오늘 이 글에 덧붙인 `책 속 구절들`은 지난 주말에 내내 살펴봤던 글들인데, 양철나무꾼 님께서 거듭 `뗏목에 관한 글`을 올려주셔서 저도 (생략해도 충분했을 법한 이 글을 또다시 참지 못하고) 기어이 글로 쓰고 말았네요. 굳이 문제 제기라기 보다는 `함께 생각해 봤으면` 하는 가벼운 심정으로 쓴 글이었는데, 너무 부담을 드렸다면 저 역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암튼 오늘은 날씨가 몹시 덥네요. 한 줄기 시원한 장대비라도 좀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2016-06-22 0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3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차트랑 2016-06-24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지랖이 넓은 사람은 아닙니다만 모처럼 흥미로운 글을 읽었기에 관심을 가져봅니다 oren님
덕분에 불교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 점 감사드립니다

불교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니체, 쇼펜하우어 등이 불교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가 없겠습니다.
특히 니체는 더욱 그러하다고 봅니다.
(물론 고대 인도 철학에 관심을 가졌던 서구의 지식인들이 한 둘이 아니겠습니다만)

제가 그들의 저서에서 느꼈던 점은 그들의 사유가 싯다르타 이후의 이후의 불교 정심에 접근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저는 그들의 저서를 통해 불교에 대한 그들의 앎이 지식에 그치고 있다고 느꼈거든요 그들의 동양적사유가 대부분 우파니샤드에 닿아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우파니샤드가 불교의 전신에 해당하는 것은 지당하지만 싯다르타의 존재는 인도의 정신을 우파니샤드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관점에서 저는 그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구축하는 도구로서 불교를 이용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 특히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이러한 느낌을 떨칠 수 없게 하는 대표작이라 느꼈습니다. 불교에 관해서라면 차라리 니체의 손을 들어주고 싶군요)

결과적으로 그들이 체화한 불교의 정신에 대한 저의 느낌은 겉멋이 들었다, 정도였습니다. 쇼펜하우어는 특히 이에 해당한다고 느낍니다. 그의 사유가 허무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하겠습니다.
(이는 불교에 관한한 그들의 사유가 그리 깊은 것이 아니었으며, 당시 서구의 지식인들에게 열병처럼 퍼졌던 현상 중 하나였고 결과적으로 그들의 불교에 대한 이해도의 수준은 얄팍한 것이었다는 점을 언급하고자 하는 것이지 여타의 사유를 폄하하고자 하는 것이 결코 아님을 밝혀드립니다)

물론 그들의 목적과 의도는 충분히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다만 그들의 프리즘으로 불교에 접근하는 것은 너무나도 먼 길을 돌아가는 느낌이라 몇자 드렸사오니
저의 무례함을 부디 용서하세요 oren님


oren 2016-06-23 13:47   좋아요 0 | URL
차트랑 님 반갑습니다. 님의 말씀처럼 `불교의 심오한 사상`까지도 서양철학자들이 온전히 흡수했다고 보기는 어렵지 싶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쇼펜하우어나 니체처럼 천재들이었다고 하더라도 말이지요. 사실 쇼펜하우어만 하더라도 그 당시 `이제야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불교 사상을 공부했다고 하니, 제아무리 산스크리트어까지 공부해가며 불교서적을 탐독했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겠지요.

니체 또한 서양 철학이나 성경 해석 등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이지만, 불교 사상에 대해서는 불교 경전으로부터 직접 얻어낸 `원문`에 대한 심오한 해석을 내놓는 모습을 구경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지요. 그러나, 쇼펜하우어와 니체가 불교를 일종의 `염세주의 철학`으로 잘못 이해한 점이 있다손 치더라도, 플라톤의 이데아와 기독교의 구원 신앙에 깊이 물든 `서양 정신 세계`에 `혁명`을 일으킨 공로만큼은 그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지 싶습니다. 그 두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서양 철학은 아직도 그들만의 세계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숱한 `미망`에 사로잡혀 있을 뻔했을 테니까 말이지요.

차트랑 2016-06-24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을 주시니 반갑고 고맙습니다 oren님

저 역시 니체의 혁명적 사고와 그 위대한 영향력을 인정하는 바이고 또한 그의 저술들을 사랑하는 일인입니다.

니체가 고대 인도 철학에 상당한 관심을 가졌고 상당한 이해도를 가졌던 것은 전적으로 쇼펜하우어의 영향이었을 것입니다. 쇼펜하우어의 영향력 하에 방대한 우파니샤드의 번역 작업이 이루어졌고, 니체는 그 번역된 우파니샤드를 중심으로 불교를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당시만 해도 서구인들에게 고대 인도의 사상이란 거의 새로운 것이었지요. 어쩌면 충격적인 것 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많은 서구의 지식인들(토마스 만, 바그너, 하이데거, 베버등)이 너도 나도 인도 철학에 관심을 보였던 것을 보면 말입니다.

사실 인도철학 전공자가 아닌 니체가 그 방대한 원전 하나 하나를 죄다 짚어가며 공부할 이유가 없었던 것은 우리가 중국 고전을 알기위해 갑골이나 백서 혹은 죽간에 쓴 글들을 하나하나 짚을 필요가 없는 이유와 같다고 봅니다. 물론 니체에게는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니체가 붓다의 가르침을 원어로 접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서구의 지식인들이 돌림병을 앓듯 접한 것은 붓다 이전의 인도철학 중심축인 우파니샤드 였다는 점은 그들의 불교에 대한 이해도를 알게해주는 중요한 근거입니다.

제가 지난 글을 드린 것은 니체의 위대한 혁명적 사유를 부인하고자 함이 아니라 (그들의 목적이 성공적이었음을 언급했습니다만...) 바로 위에서 말씀 드렸듯, 당시 그들(쇼펜하우어, 니체)이 공부한 주된 경전은 우파니샤드였고 그들의 불교에 대한 사상은 얄팍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 점입니다(어쩌면 의도적 왜곡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군요). 붓다의 출현은 인도의 사상을 우파니샤드 이전과 이후로 나누었다고 말씀드린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 였습니다.

이는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접근이라기 보다는 그 이전의 인도철학(우파니샤드)에 대한 접근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렌님께서 언급하신 용어인 ‘염세’가 그들의 사유 속에 향기를 피운 것은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그들의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했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그들이 우파니샤드를 중심축으로 공부했기 때문으로 저는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우파니샤드가 불교의 전신이지만 결코 불교의 경전은 아닙니다. 그리고 붓다 이후 불교는 커다란 사유의 변화를 거듭합니다. 우파니샤드가 불교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경전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그것을 붓다의 가르침과 구별해야하는 이유입니다.

참고로 독일의 지식인들이 불교를 제대로 접하기 시작한 것은 1892년이 지난 후에서야 입니다. 노이만이 불교의 원전을 번역하면서 부터인 것이지요. 이는 쇼펜하우어가 죽은지는 수십 년이 흐른 뒤였고 니체가 죽기 바로 2년 전의 일입니다 (니체가 원전으로 붓다의 가르침을 접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쇼펜하우어가 집에 불상을 모셔놓았을 정도로 심취했다고는 하지만 그 이해도가 그리 밝지 못했던 것은 붓다의 가르침에 관한 자료의 부족이었던 것이지 불교의 경전을 잘못 이해했던 것이라고 보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헤세가 불교에 밝았던 것은 오로지 노이만의 노력 덕분이었습니다. 하여 저는 독일의 불교를 노이만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생각해야 한다고 보는 일입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우파니샤드를 접한 서구의 지식인들이 불교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조건이 불충분했던 것은 자명한 일이지요. 결과적으로 우파니샤드에 대해서라면 몰라도 불교에 대해서라면 자연스럽게 쇼펜하우어와 니체는 결코 불교의 깊은 사유를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불교사상에 대한 그들의 미성숙한 이해를 근거로 불교를 사유하고자 함은 너무나도 먼 길을 돌아가는 느낌이라는 것이 요지였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리며 논점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더불어 오렌님 덕분에 당시 서구 지식인들의 불교에 대한 이해를 잠시나마 생각해볼 수 있었던 점 귀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평안하십시오 오렌님.

PS. 제가 지난 번에 드린 댓글에 오자가 보여 그 오자 하나만 정정했음을 알려드립니다
(것 멋 ⟶ 겉멋 ㅠ.ㅠ.)



oren 2016-06-24 15:54   좋아요 0 | URL
차트랑 님께서 상세하고도 깊이 있는 해석을 곁들여주시니 훨씬 더 이해하기 쉽군요. 사실 서양 철학은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등장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너무 협소한 그들만의 세계에 갇혀 있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더군요. 비록 쇼펜하우어와 니체가 불교 사상의 진수에까지 온전히 닿지는 못했더라도, 그 두 사람으로부터 시작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고대 인도 철학과 불교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서양철학이 그 때 이후로 갑자기 엄청난 사유의 확장을 불러온 것도 사실이지요.

쇼펜하우어가 언젠가 `전세계의 절반이 훨씬 넘는 인구`가 `수천 년 동안` 성서와 예수의 존재조차도 까마득히 모르고도 아주 태평스럽게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살아왔던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음을 술회한 적이 있었는데, 그런 모습이야말로 동양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도리어 낯설고 이상하게 보일 정도로, 동양과 서양 사이에는 켜켜이 쌓인 두터운 `생각의 장벽` 같은 게 존재하는 듯합니다. 동양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정반대로 서양 철학자들이야말로 2천 년 이상이나 인도 철학이나 불교 사상을 제대로 모른 채 `그들만의 철학`을 연구해 왔으니 말이지요. 그러니 차트랑 님의 말씀대로, 불교에 적잖이 심취했던 쇼펜하우어와 니체를 통해 `불교`에 대한 해석을 들여다보는 일 또한 어쩔 수 없는 `그들만의 프리즘`에서 벗어나기 힘든 한계를 지닐 수밖엔 없다고 봅니다. 우파니샤드에 대한 무수한 언급에 비해 여타 불교 경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거의 없는 점 또한 그런 한계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일 테지요.

아무튼 차트랑 님께서 남겨주신 댓글 덕분에 서양 사람들 가운데 특히 독일 철학자들과 몇몇 작가들이 `불교에 다가갔던 길들`을 아주 소상히 들여다볼 수 있어서 정말 유익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