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외

 

페크 님의 글에 적극 공감합니다. 드라마든, 영화든, 책이든, 음악이든, 반복해서 보거나 들을수록 더 자세히 알게 되고,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얘기는 일견 너무나 당연한 얘기 같지만, 유독 책의 경우에는 반복해서 읽는 경우가 그리 흔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시험을 치르기 위해서 교과서를 열심히 반복해서 읽는 경우가 아니라면요.)

 

왜 그런가에 대해서는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쉽게 생각하자면 '한 번도 제대로 읽지 못한 책들을 너무나 많이 알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어서 빨리 다른 책을 펼쳐 봐야지 하는 생각을 품지 않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그런데 책을 아주 많이 읽은 사람들이나 소설가 혹은 문학평론가들은 뜻밖에도 '반복해서 읽는 독서'에 대해서 너무나 자주 강조하고 있어서 깜짝깜짝 놀랄 때도 많더군요. 이와 같은 내용에 대해서 저도 언젠가는 꼭 한 번 글로 써봐야지 하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품고 있었는데, 페크 님의 글 때문에 오래도록 묵혀 두고 있었던 그 생각이 다시금 꿈틀거리네요.

 

저 또한 반복해서 읽은 책들이라고 해봐야 손으로 겨우 꼽을 정도로 빈약한 터여서, 제 경험담을 담은 글을 쓸 형편이 되지 못하는 게 안타깝네요. 그 대신, 여태까지 책을 읽다가 우연히 마주쳤던 '반복해서 읽는 독서'에 관한 잊을 수 없는 문장들만이라도 몇몇 찾아서 인용문으로 덧붙여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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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독서란 독자를 가르친다기보다 그들의 머리를 도리어 산만하게 만든다. 덮어 놓고 많은 책을 읽는 것보다 몇몇 좋은 저자의 책을 골라 읽는 편이 훨씬 유익하다."

 - 톨스토이

 

 

 

좋은 책은 좋은 사람과 비슷한 점이 많다. 사람을 처음 만나면 잘 알 수 없듯이 책도 한 번 읽어서는 잘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여러 번 되풀이하여 읽는 과정에서 그 책을 잘 알게 되고 그리하여 아주 가까운 친구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가 없으면 더 이상 삶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마저 갖게 된다. 이것을 보여주는 좋은 에피소드가 있다. 독일의 소설가 프란츠 베르펠은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이라는 장편소설을 너무 좋아하여 평생 30번 가량 읽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으로 그 소설을 읽은 것은 죽기 한 달 전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30번이라는 횟수가 아니라 죽기 한 달 전의 경황없는 상황에서도 토마스 만의 소설을 읽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베르펠에게 있어서 죽음은 곧 만의 소설을 읽지 못하는 것이었으리라.(476쪽)

 

 - 클리프턴 패디먼, 『평생 독서 계획』, <역자 후기> 중에서

 

 

 

나보코프가 말했다. "이상한 말이지만 사람은 책을 읽을 수 없다. 다시 읽을 수 있을 뿐이다. 좋은 독자, 일류 독자,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독자는 재독자(再讀者)다."(『문학 강의』 이 말은 어떤 책이든 '두 번째, 세 번째, 혹은 네 번째 읽을 때' 비로소 '한 장의 그림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책 전체를 바라보며 문장 하나하나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는 뜻이다. 『롤리타』를 읽는 독자들에게 이 독서법을 권한다.(545쪽)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 <옮긴이의 말> 중에서 

 

 

따라서 『롤리타』는 최소한 두 번 읽어야 하는 작품이다. 한 번은 험버트의 목소리로, 다른 한 번은 나보코프의 목소리로. 실제로 나보코프는 소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소설은 읽고 또 읽어야 합니다. 아니면 읽고 읽고 또 읽든가요." 그것이 소설을 읽는 두 가지 방법이고 『롤리타』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니 한 번 더 읽어보자.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리-타." (535쪽)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 <해설_시적 에로티시즘과 심미적 희열의 세계> 중에서 

 

 

 

윌리엄 해즐릿이 말한 것처럼 오래된 작품들을 다시 읽는 일은 가장 높은 수준의 즐거움이면서 독자 자신의 열망 깊은 곳에서 새로운 가르침을 준다. 나는 디킨스의 『픽위크 페이퍼즈』를 일 년에 두 번씩 읽곤 했는데, 그 과정에서 여러 권의 책이 닳아 없어지기도 했다. 그게 도피라면 난 기꺼이 그 도피에 참여하리라. 비록 『픽위크 페이퍼즈』에 등장하는 누구도 내게 동일화의 즐거움을 주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 헤럴드 블룸, 『교양인의 책읽기』 


 

 

훌륭한 단편은 반복해서 여러 번 읽을수록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다.(93쪽)

 

 - 헤럴드 블룸, 『교양인의 책읽기』

 

 

 

소설을 처음 읽으면 단순한 즐거움을 느끼지만 『위대한 유산』이나 『파르마의 수도원』 같은 작품을 다시 읽게 되면 전혀 다른, 혹은 보다 나은 경험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그 전에는 불가능했던 전망 속으로 들어서는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즐거움은 첫 번째 독서보다 더 다양하고 계몽적인 요소가 된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아도 어떻게, 왜 일어났는가를 이해하는 일은 새로운 인식이다. 무엇이든 한 번 더 본 것에 다가가기가 쉽다.

 

누구나 젊은 날 열정적으로 반복해서 책을 읽고, 소설 속의 마음에 드는 인물과 동질성을 느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은 그러한 동일화의 즐거움이 나이에 관계없이 독서라는 경험의 합법적 일부라고 앞서 내 경험을 통해 이야기했다. 그러한 즐거움이 비록 중년 이후에는 단순한 것에서 감상적인 것으로 될지라도 말이다.(296쪽)

 

 - 헤럴드 블룸, 『교양인의 책읽기』

 

 

 

독자로서 내 경험에 따르면 포크너의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는 첫 번째 독서 어딘가에서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다시 읽었을 때 그 의미를 재조립할 수 있었다. 웨스트의 『미스 론리하트』는 그 멋진 부패함에 이끌려 읽자마자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다시 읽었을 때는 우러르고 사모하는 마음에 이해를 덧붙일 수 있었다.

 

반면 『49호 품목의 경매』를 처음 읽었을 때 분노 자체였다. 그러나 두 번째 읽으면서 순식간에 그것에 사로잡혔는데 그 감정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그런고로 나는 독자들이 이 작품을 두 번 정도는 읽었으면 한다. 처음 짜증나게 했던 것이 '놀라움'이 된다.(326쪽)

 

 - 헤럴드 블룸, 『교양인의 책읽기』

 

 

 

나는 문학 비평을 비방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사실 작가로서는 비평의 부재에 직면하는 것보다 더 고약한 일도 없다. 내가 말하는 비평은 명상으로서의 비평, 분석으로서의 문학 비평이다. 논하고 싶은 책을 여러 번 읽을 줄 아는 문학 비평(좋은 음악을 끝없이 반복해서 듣듯, 훌륭한 소설 역시 반복해서 읽히도록 만들어졌다.), 시사성의 무자비한 괘종시계에 귀 기울이는 일 없이, 일 년 전, 삼십 년 전, 삼백 년 전에 탄생한 작품들을 논할 줄 아는 문학 비평, 어떤 작품의 독창성을 파악하여 이를 역사의 기억 속에 기록하고자 하는 문학 비평 말이다. 그런 명상이 소설의 역사를 수반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우리는 도스토옙스키, 조이스, 프루스트 등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을 것이다. 그런 것이 없으면 모든 작품이 자의적인 판단에 내맡겨지고 신속히 잊혀 버린다.(38쪽)

 

 - 밀란 쿤데라, 『배신당한 유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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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11-24 11: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먼댓글 해 주셔서 먼저 감사드립니다.

재독에 관한 글이 이렇게 많군요. 어떻게 이런 글을 다 모아 놓으셨는지 존경스럽습니다. 물론 독서광이어야 가능한 일일 테지요.
덕분에 흥미롭게 읽었어요.
저도 재독한 경험이 있긴 하지만 앞으로 더 많이 재독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편소설을 일곱 번까지 읽어 본 것이 제 최고 기록입니다. 밑줄을 친 글을 여러 번 읽는 취미가 있을 뿐, 책 전체를 다 읽은 건
몇 권밖에 되지 않아요. 맘에 드는 책은 1년 뒤에 다시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서울에 오늘 첫눈이 왔어요. 사진을 올렸으니 감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oren 2018-11-24 14:52   좋아요 5 | URL
재독에 관한 글을 따로 모아둔 게 아니어서, 어젯밤에 이 구절들을 찾느라 시간이 꽤나 걸리더라구요. 특히나 밀란 쿤데라의 문장 ˝좋은 음악을 끝없이 반복해서 듣듯, 훌륭한 소설 역시 반복해서 읽히도록 만들어졌다.˝ 라는 글은 예전에도 한번 생각나서 일부러 찾으려다가 실패했었는데, 이번에 페크 님의 글 덕분에 기어이 찾아 냈고요. 헤럴드 블룸의 『교양인의 책읽기』에는 ‘반복 독서‘를 워낙 여러 곳에서 강조하고 있어서, 그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 훑어보느라 시간이 정말 많이 걸리더군요.^^

그런데 페크 님은 단편소설을 무려 일곱 번까지 읽으셨다니, 이미 ‘반복 독서의 묘미‘를 깊이 체험하신 듯싶네요. 저는 한 번 읽고 나서 손아귀에 꽉 붙잡히지 않는다는 느낌이 드는 책들은 ‘필사를 하면서‘ 다시 읽는 고약한 습관이 있답니다. 그게 소설이든 수필이든 역사책이든 상관없이요. 그런 버릇을 들이다 보니, 그렇게 책을 반복해서 읽을 때마다 (처음에는 어렴풋했지만) 나중에 확연하게 눈에 들어오는 부분들이 정말 많더라구요. 물론 다른 책들을 읽을 욕심 때문에 ‘두 번째로 읽으면서 주요 대목을 필사하는 작업‘을 건너뛴 책들도 많았지만, 다시 읽으면서 필사한 책들은 결국 제게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책이 되더군요.(예전에 이런 내용에 대해 쓴 글도 있었고요. http://blog.aladin.co.kr/oren/8201971)

제가 반복 독서의 묘미를 가장 최근에 맛 본 경험은 뜻밖에도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었답니다. 그 책에 등장하는 영웅들이 워낙 많기도 하고, 수많은 국가와 도시와 지명과 강과 산들이 무수히 등장하기 때문에 맨 처음 읽을 땐 사건의 윤곽을 붙잡는 것조차 힘들 때도 있었는데, 그 방대한 책을 다 읽고 나자, 다시금 그 책 속으로 풍덩 빠져들고 싶은 열망이 생기더라구요. 그 속에 담긴 게 아무튼 어마무지하다는 걸 느꼈으니까요. 곧바로 두 번째로 읽기 시작하자마자 많은 것들이 진짜로 새롭게 드러나더라고요. 숱한 영웅들이 처음 읽을 땐 정말 따로따로 조각난 듯이 움직였는데, 두 번째로 읽기 시작하자 그 수많은 영웅들이 마치 거대한 파노라마처럼 여기저기서 함께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소름이 끼칠 정도로 흥분되더라고요. 역사가이기 전에 철학자로 더 유명했던 플루타르코스의 진면목도 그때 뚜렷이 더 드러나 보이기 시작했고요. 나중에 필사를 하는 동안에 그 인물들에 얽힌 ‘유명한 그림들‘까지 찾아 보고 나니까, 그 책이 얼마나 많은 문학작품이나 예술작품에 뿌리깊이 스며 들어 있는가도 알게 되고요.

그런데 나보코프의 놀라운 작품인 『롤리타』와 같은 경우는, 그 책을 금방 읽고 나서 ‘이건 한번 읽어서는 절대로 안 되는 작품이야‘ 라고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도, 기어코 그 책을 다시 붙잡지 못하고 다른 책으로 옮겨 간 아픈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네요. 그래서 그 책에 대해서는 ‘어떤 글‘도 도저히 쓰지 못하겠더라구요. 고작 한 번밖에 안 읽었는데 제가 무얼 끄적거릴 수 있었겠어요. 아무튼 ‘반복 독서‘만큼 권장할 만한 독서법도 드문 듯해요.^^

설해목 2018-11-24 14: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친구 같은 경우는 발췌독도 하고 훑어보기식 독서도 하지만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나면 몇 번을 다시 읽더라구요.
어서 새로운 책을 빨리 만나기 위해 재독을 거의 안해본 저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런데 올려주신 글 보니 반복해서 읽는 게 오히려 제대로 된 독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페이퍼 잘 보고 갑니다. ^^

oren 2018-11-24 14:55   좋아요 4 | URL
저는 눈으로만 읽는 반복 독서를 일부러, 그것도 의식적으로 헀던 경우는 아주 드물었던 듯해요. 한번 읽고 나서 ‘이 책 속에는 너무나 풍성한 보물들이 가득하구나. 그런데 나는 고작 그 책 속에서 무얼 얼마나 건졌지?‘ 라는 생각이 드는 책들은 두 번째로 읽으면서, 웬만하면 필사를 하기 시작하게 되더라구요.(‘둔필승총(鈍筆勝聰)이라는 말도 있고, 나중에 얼른 다시 찾아보기 위해서라도 ‘메모‘는 꼭 필요하니까요.) <일리아스>, <오딧세이아>,<변신이야기>도 그랬고,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몽테뉴 수상록>, <도덕감정론>,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등과 같은 철학책에 대해서도 그랬었고요. 그게 나중에는 결국 소설이나 에세이로까지 번져나가더라구요.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돈키호테>, <마의 산> 등과 같은 방대한 소설들도 그렇게 해서 필사를 하면서 두 번씩은 읽었더랬지요. 그런데 ‘이 책은 분명 다시 읽으면서 필사까지 해 보고 싶어.‘ 했다가도, 잠시 방심하면서 다른 책들을 붙잡는 순간, 그 의지가 순식간에 물러지는 걸 여러 번 경험하기도 했어요. 나보코프의 『롤리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같은 작품이 특히 생각이 나네요. 어차피 그런 작품들은 나중에 꼭 다시 읽게 되리라는 확신이 있긴 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