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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역사, 조선의 역사, 로마의 역사..그런 역사가 아니라

그냥 역사 그 자체를 고찰한 책입니다.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철학적으로 좀 들어간 책이죠. 작은 문고본의 적은 분량이지만

담고있는 내용은 만만하지 않네요. 기억 안 나는 부분이...

쉽지만은 않군요.

인간이 동물에서 분리되는 기점이 어디인가?

언제부터 역사라고 봐야하는가?

대표적인 사상가들은 역사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

등등의 질문들과 논거들이 나오고 매우 비판적으로 읽혀집니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수정자본주의.역사를 바라보는 시각,

즉 사관에 대해서도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보통 역사자료들이 충분하지는 않죠. 그렇기에 부족한 자료와

기록들을 해석하는데는 많은 시간과 공력을 필요로 합니다.

특히 해석자의 시각이 중요한데요. 식민사관에 물들어 있거나

강자의 편에서만 해석하려든다면 심각한 왜곡이 있을 수도 있고

많은 오류의 가능성도 있습니다. 역사의 진짜 얼굴이 의도적으로

감춰질 수 있는 것이죠.

 

역사가 승자의 논리, 강자의, 이긴자의 기록이라고 치부하여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나 봅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균형잡힌 시각으로 민중의, 백성의 소리를 듣는

역사학자들도 있었겠죠. 지금은 어떨까요?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은 아닌지. 다른 쪽을 너무 몰아대는 것은 아닌지.

 

역사의 평가에 균형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의 삶도 균형이

잡혀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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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차이'에 대한 생각은 박지원의 '사이'를 생각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 편과 저 편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

사람과 사물 '사이' 등의 박지원의 '사이'. 신과 인간의 '차이',

인간과 인간의 '차이', 긍정과 부정의 '차이' 등의 니체의 '차이'.

뭐가 더 철학적이고 매력적이고 위대하고 말고라기 보다는

그냥 그 틈, 그 간격을 평생 일관되게 생각하고 사유하고

글을 쓰고 또 생각하고... 뭐, 그런 것들이 뭐랄까... 좀 아련한

확실치 않은 어떤 것들을, 어떤 생각의 파편들을 떠오르게 하네요.

생각보다 쉽다라는 착각을 가지고 읽다 보니 뭐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방금 읽은 윗줄이 생각나지 않는

지극히 개인적인 치매를 경험하게 하는 책이네요.

정반합의 변증법에 머무르지 않고 정과 반 사이, 반과 합 사이,

그 차이에서의 생성, 생명력, 변화와 혁명의 가능성을 읽어내는

열정적인 광기. 그 시대의 긍정의 주류들을 부정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긍정의 부정을 이끌어내는 삶의 초긍정성이,

사랑이, 어린아이 같음이 왜 니체가 누구보다도 더 삶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철학가라고 하는지 아주아주 조금 이해되려고 하네요.

수행 중 부처를 만나면 죽이라던 어느 선승처럼 니체는 스승을 죽이고,

고정관념을 죽이고, 심지어 신을 죽이면서까지 삶을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신이 그렇게도 사랑한 인간을 말이지요. 섣부른 판단일까요?

어쨌든 니체는 '니체를 버려라'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네요.

그런데 우리는 아직 니체를 버리지 않은 듯, 아니 못한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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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가 소소한 화제를 모으는 것

같네요. 원작 재상영부터, 신민아 씨의 활약상까지.

툭 하면 천 만, 몇 백 만 관객하다보니, 숫자가 좀 작은

느낌도 있습니다만, 사실 큰 이슈 없는 영화가 200만까지

가는 건 화제가 될 만 한 것이죠.

 

또다른 소소한 화제가 있습니다.

<결혼, 하면 괴롭고 안 하면 외롭고>라는 책인데,

개그맨 보다 웃긴다는 장경동 목사님의 신간입니다.

수 많은 커플들을 상담해 온 내공이 보이는 유쾌한

책입니다. '사랑과 결혼에 대한 힐링 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네요.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질문을 하게 됩니다. 답이 있는

질문도 있고, 답이 없는 질문도 있죠. 어찌보면 대부분

답이 없는 질문들이 더 많아 보이기도 합니다. 요즘에

눈에 띄는 질문이 있습니다. 물론 제가 보기에지요.

저는 이미 상황 종료인 질문이기도 한데,

 

'결혼을 해야 하는가? 아이를 낳아야 하는가?'

개인들에게 아직까지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는

사회는 없는 듯합니다. 지금까지 인간에게 결혼과 육아는

질문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죠. 그냥 당연한 것이었죠.

어느 순간 개인들에는 심각한 질문이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기성세대와 사회에서는 답이 있죠. "해라, 낳아라"

두려움 섞인 대답입니다. 강요죠. 이 글을 쓰는 저도 어쩌면

기성세대의 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와 책은 잘 어울립니다. 해답은 아니지만

하고 싶은 낳고 싶은 마음을 심어주니까요. 즐겁게 말이죠.

파워블로거들과 있었던 영화시사회에 장경동 목사님의

짧은 강연은 같은 이유에서 의미가 있었던 듯합니다.

사실 결혼과 육아없이 인생에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지도 의문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어떤 것이

빠진다면 과연 그것도 인생이랄 수 있는 것인지......

그냥 그런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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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사랑은 성내지 않으며...

뭐,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성경구절에 곡을 붙인 것인데

가수 김세환의 소리가 진한 여운을 남기죠.

결혼은 무엇일까요?
저는 고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난이고 괴로움이죠.

주변에서 결혼하고 싶다는 사람이 있으면 말리지는 않지만

한마디 합니다. "왜?"

주변에서 아이를 낳고 싶다는 사람이 있으면 말리지는 않지만
한마디 합니다. "왜?"

고통이고 고난이고 수난이고 괴로움입니다. 이승에서의 악업이

한 꺼풀 더 쌓이는 것이죠.

그들이 묻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왜 결혼했으며, 왜 아이를 나았는가?"
아시겠지만 저의 대답은 "몰랐다"입니다.

그런데...결혼은 무엇일까요?
제가 보기에 결혼은 관계입니다. 넝쿨재 들어 온 관계이지요.

결혼으로 인하여 새로운 관계들이 엄청 생깁니다.
마치 부족과 부족의 연합과 같은 것이죠. 그러나 꼭 그렇게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이거나 꼭 그렇게 거시적이지는 않습니다. 쏠쏠한 재미가 있죠.

일상의 사소하고 소소한 뭐 그런거요. 알콩달콩이 그렇고 티격태격이 그렇고

아이도 그렇고 경제규모가 커지는 것도 생각보다 소소한 재미입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이러한 소소한 재미들이 정을 이루고

큰 의미에서의 '사랑'을 이루는 것이죠. 또 사랑입니다.

마치 인간 탄생의 목적이 사랑이라는 것처럼, 세상의 길은 마치 사랑으로
통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결혼은 어쩌면 모든 사랑을 대변하는

궁극의 형태가 아닌가 합니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입니다. 결혼을 빙자한 '사랑이야기'.

오랜 목회 활동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수많은 관계와 관계 속에서 겪은
깨달음과 많은 사례들, 삶의 언어들의 조합.
그렇게 재밌게, 편하게, 읽고 싶게, 결혼하고 싶게 흘러갑니다.

사랑하고 싶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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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간혹 책을 읽지 않는 사회라고 하면서 '부끄럽다'는

내용의 기사나 글을 종종 봅니다. 다른 나라의 숫자와 비교하면서

말이죠. 저의 직업이 직업이니 만큼 안타깝다는 생각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는다, 안 읽는다가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인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안 읽는 대신 뭔가를 그만큼 보고,

읽고, 느끼고, 경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뭐..그런 생각도 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열하일기'는 좋았습니다. 열하일기는 아시다시피

여행서입니다. 지금은 고전인문이지요. 그것도 대표적인...

제가 보기에도 그냥 여행서는 아니니까요. 당시의 정치, 경제, 문화

국제관계 등을 살펴볼 수 있고, 연암의 사유체계도 엿볼 수 있고,

그 사유가 궁극적으로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도 당연히 알 수 있고

말이죠.

 

갑자기 요즘에 누구와 비교할 수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얼핏 '알랭드 보통'이 떠오르네요.

나름의 사유체계도 있고, 지향하는 바도 있는 것 같고,

또 나름 쉬운 것도 같고 말이죠. 물론 다른 점도 있겠지만...

누가 연암 박지원과 알랭드 보통을 비교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여튼 연암의 사유는 사유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을 적용하고

활용해서 방안을 찾아보고 실천하려고 노력해던 것 같습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끊임없이 움직이는 부지런한 사람이었던

것이지요. 몸은 바쁘나 정신줄은 놓은 요즘 세상에 연암의 삶의 태도와

방식은 좋은 본이 되는 것 같습니다.

 

비도 오니 여행을 가고 싶어집니다.

연암과는 달리 잡생각만 하겠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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