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차이'에 대한 생각은 박지원의 '사이'를 생각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 편과 저 편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
사람과 사물 '사이' 등의 박지원의 '사이'. 신과 인간의 '차이',
인간과 인간의 '차이', 긍정과 부정의 '차이' 등의 니체의 '차이'.
뭐가 더 철학적이고 매력적이고 위대하고 말고라기 보다는
그냥 그 틈, 그 간격을 평생 일관되게 생각하고 사유하고
글을 쓰고 또 생각하고... 뭐, 그런 것들이 뭐랄까... 좀 아련한
확실치 않은 어떤 것들을, 어떤 생각의 파편들을 떠오르게 하네요.
생각보다 쉽다라는 착각을 가지고 읽다 보니 뭐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방금 읽은 윗줄이 생각나지 않는
지극히 개인적인 치매를 경험하게 하는 책이네요.
정반합의 변증법에 머무르지 않고 정과 반 사이, 반과 합 사이,
그 차이에서의 생성, 생명력, 변화와 혁명의 가능성을 읽어내는
열정적인 광기. 그 시대의 긍정의 주류들을 부정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긍정의 부정을 이끌어내는 삶의 초긍정성이,
사랑이, 어린아이 같음이 왜 니체가 누구보다도 더 삶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철학가라고 하는지 아주아주 조금 이해되려고 하네요.
수행 중 부처를 만나면 죽이라던 어느 선승처럼 니체는 스승을 죽이고,
고정관념을 죽이고, 심지어 신을 죽이면서까지 삶을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신이 그렇게도 사랑한 인간을 말이지요. 섣부른 판단일까요?
어쨌든 니체는 '니체를 버려라'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네요.
그런데 우리는 아직 니체를 버리지 않은 듯, 아니 못한 듯합니다.